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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32화 (32/200)

나만 1회차 032화

바르녹은 땅에 떨어지는 자신의 머리통을 떠올렸다.

피에 젖은 몸통은 전장에 묻혀 버릴 것이다.

그러나 실현되지 않았다.

챙강!

목에 건 로켓에서 보호막이 흘러나와 투명한 칼날을 막았다.

바르녹은 힘의 격돌에 튕겨져 나와서 돌바닥을 굴렀다.

“쿠, 쿨럭! 쿨럭!”

목을 감싸며 눈앞을 주시했다.

본래 투명화 마법은 지속시간은 수어 초로 한정될 만큼 짧다.

그런데 놈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범철, 그놈이 어떻게……?’

이유야 몰랐지만 상황이 긴박했다.

로켓의 보호막이 목숨을 보호해 주는 것은 단 한 번뿐이다.

다음번에도 칼날이 온다면, 죽게 될 것이다.

‘망할!’

투명화 마법의 대처법은 소리와 흔적의 탐색이다.

그러나 전장은 격동적이다.

범철의 발소리, 발자국 그 무엇 하나 찾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놈을 잡아낼 방법은 있다.

“도망……!”

퇴각 명령을 내리려고 하자.

아니나 다를까, 목에서 살벌한 기척이 느껴졌다.

바르녹은 곧바로 몸을 숙이고 뛰어들었다.

무언가 부딪치는 감촉이 들자, 곧장 주먹으로 쥐어 잡았다.

‘여기다!’

오십대 후반이지만 회귀 시점의 육체는 정정한 편이다.

바르녹은 잡히는 형체를 향해서 무차별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범철은 젊었다.

“크흡!”

바르녹은 턱뼈가 나가는 충격을 느끼며 나가떨어졌다.

다시 한번, 목이 죄였다.

보이지 않는 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 치는 데 양손검은 별로군.”

“커, 커허헉……!”

다섯 손가락이 목에 구멍을 뚫을 것만 같았다.

호흡이 끊기는 고통에 바르녹은 몸부림쳤다.

할퀴고 잡아채도 보이지 않는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 이쪽을 향해 달려드는 녀석이 있었다.

“안 돼! 죽이지 마!”

피트였다.

소년병은 바르녹에게 뛰어오다가 보이지 않는 발에 차였다.

맥없이 쓰러졌지만, 소년은 입술에서 피를 흘리며 일어났다.

퍽!

피트는 쓰러졌고, 일어나 달려들었다가, 또 쓰러졌다.

범철의 내키지 않는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쯤 하지그래.”

그러나 피트는 덜덜 떨면서도 물러나지 않았다.

무릎까지 꿇고서 엎드린다.

“제발요! 부탁할게요! 바르녹을, 할아버지를 죽이지 마세요!”

바르녹은 욕설을 내뱉고 싶었다.

멍청한 것.

피트는 살아온 세월이 얼마 되지 않아서 세상을 잘 모른다.

은인이 고통받아서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이다.

어지간히 자신은 죽으면 회귀할 것이다.

그런데 꼴사납게도 남의 목숨을 구걸하는 꼴이라니.

세상을 향해서 남을 위한 구걸이 허락되는 자는 윗사람뿐이다.

결코 너의 자존심만은 팔아선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범철은 동정에 휩쓸리지 않았다.

“싸움을 걸어온 것은 멸살군주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바르녹은 범철의 판단에 찬사를 보냈다.

그래, 비록 적이지만 칭찬해 주지.

물론 다음 삶에서 복수할 테지만.

“크…… 허억……!”

눈앞이 극도로 희미해진다.

바르녹의 죽음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누군가 목젖을 태우며 소리쳤다.

“멸살군주를 위해서!”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힘차게 소리친 것은 피트였다.

바르녹의 눈동자가 커졌다.

피트가 눈물을 흘리며 왼쪽 가슴을 손으로 꿰뚫고 있었다.

“끄…… 흐윽!”

오른손이 가슴을 꿰뚫고 등짝을 삐져나왔다.

영혼을 바친 대가로 얻은 완력이었기에 가능한 행위였다.

심장을 파괴한 소년의 울부짖음이 전장의 한가운데 몸부림쳤다.

[소년병 피트 에더만이 군주를 위하여 육체를 바쳤습니다.

수하들의 바쳐진 육체는 군주의 권능을 강화시킵니다.]

자결한 소년병의 시체가 푸르른 빛이 되어 그에게 스며들었다.

바르녹은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저놈이…… 제기랄!’

피트가 육체를 바친 순간, 몸에서 힘이 끓어올랐다.

바르녹은 곧바로 보이지 않는 손을 후려치고 물러났다.

그러나 전장의 외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멸살군주를 위해서!”

짧은 머리칼의 여성이 거침없이 소리치곤 왼쪽 가슴을 후벼 팠다.

또 다른 수하가 픽 웃더니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심장을 박살 내었다.

“멸살군주를 위해서!”

전세는 이미 적들에게 기울었다.

패배를 예감하고서 수하들이 군주에게 스스로 육신을 바치는 것이다.

“이런 멍청한!”

바르녹의 눈동자가 격노로 일그러졌다.

비록 회귀할지언정 혼자 살기 위해 아랫것을 죽게 내버려 둔다?

그것은 절대 멸살군주의 방식이 아니었다.

“머저리 같은 것들! 시답잖은 이유로 너희 삶을 포기하지 마라!”

바르녹의 격렬한 외침을 모든 수하가 들었다.

멸살군주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절대복종의 세력은,

명을 거부했다.

칼에 찔려서 숨이 끊기기 직전이거나.

상대편에게 몰려서 전멸을 직감한.

그 모든 병력이 충성심으로 굳게 쥔 손을 힘차게 들어 올렸다.

“멸살군주를 위해서!”

“멸살군주를 위해서!”

“멸살군주를 위해서!”

기백의 수하들이 자결하며 군주에게 푸른빛으로 흘러들었다.

연이은 자결에 상대편도 당황했다.

빛나는 글귀가 눈이 따가울 만큼 눈앞에 메워졌다.

[창병 란도르 랜테디가 일말의 후회조차 없이 육체를 바쳤습니다.

의무병 베나반 소르카테가 은혜를 갚기 위해 육체를 바쳤습니다.

척후병 티레 바흘린이 승리를 장담하며 육체를 바쳤습니다…….]

어느덧, 전장에 서 있는 아군이라고는 바르녹 자신뿐이었다.

먼지가 되어 사라진 수하들을 떠올리며 주먹을 굳게 쥐었다.

“다음 삶에서 명령 불복종은 엄히 문책하겠다. 그러나 그전에.”

그는 돌아섰다.

거친 용과 수백 명이 넘는 적들이 자신만을 목표하고 있었다.

멸살군주 바르녹의 안광이 시푸르게 타올랐다.

“네놈들 전원을 멸할 것이다.”

***

상황이 좋지 않군.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칼자루를 만지작거렸다.

거기다 마나가 소진되어 투명화도 풀려버렸다.

‘부하들의 힘을 흡수한 건가?’

멸살군주를 둘러싼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말로 표현할 순 없지만 그 꺼림칙한 위용에 누구도 다가가질 못했다.

그때 대기를 찢는 포효가 울렸다.

“죽어라, 하찮은 인간!”

피를 보고서 흥분한 퀸소히니베가 호기롭게 발톱을 내려쳤다.

끔찍한 진동이 대지를 울렸다.

그러나 발톱을 들었을 때, 멸살군주는 그 자리에 없었다.

[멸살군주 바르녹이 용의 기력을 태워 버리고 있습니다!]

[기력이 줄수록 태워지는 기력이 많아집니다.]

[현재 소멸되고 있는 기력 1%…… 2%…… 4%…… 7%.]

퀸소히니베의 발 언저리, 양팔을 내리고 있는 바르녹이 보였다.

멸살군주는 재빠른 속도로 그녀의 기력을 태워내고 있었다.

마법에 저항하는 비늘이 없어서 더욱 취약했다.

“카아아악-!”

퀸소히니베가 괴로워하며 난동을 부렸다.

망할, 돕고 싶어도 저러면 몸에 오를 수가 없다!

일레아흐를 품에 안은 히사네가 그녀의 명령을 크게 전달했다.

“모두 멸살군주를 쏘아라! 기력을 소멸하게 둬선 안 된다!”

자살기도회 일원들도 멸살군주를 노리고 화살을 퍼부었다.

그러나 화살은 모조리 빗나갔고, 멸살군주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용의 몸을 등반하듯 팔다리를 민첩히 움직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난동을 부릴수록 기력이 빠져서 탈진이 빨라졌다.

[……100%]

[멸살군주 바르녹이 용의 모든 기력을 태워 버렸습니다!]

[권능이 발휘돼 용은 영구적으로 기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아아…!”

기력이 다한 퀸소히니베가 완전히 힘을 잃고서 쓰러졌다.

다들 쓰러진 용을 보며 망연자실할 때, 누군가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악!”

불과 몇 초전까지 멀쩡히 서 있던 일원의 몸이 터지듯 찢겼다.

용에게 깔렸을 거라고 생각했던 멸살군주가 질주하고 있었다.

내 눈으로도 좋기 힘든 움직임이었다.

“꺄아아악!”

“사, 살려줘! 어억!”

“어, 어디야! 얼마나 빠른 거야!”

멸살군주의 힘과 속도는 방금 전과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그가 지나가는 곳에 서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찢겨서 죽었다.

나는 눈동자를 좁히며 그의 움직임을 쫓았다.

“히사네! 피해요!”

그녀는 내 외침을 들었지만, 회피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멸살군주의 주먹이 품에 안긴 일레아흐를 향해서 뻗어 나갔다.

히사네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반응속도로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콰앙!

멸살군주의 주먹에 후려쳐 맞은 그녀가 저편에 튕겨져 굴렀다.

히사네의 품에 안긴 일레아흐도 충격이 컸을 것이다.

자살기도회 일원들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본부장님!”

“어서 본부장님을 보호해라!”

일원들이 막아섰지만, 멸살군주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창칼을 손끝으로 쳐내 박살 낸다.

주먹을 꽂으면 육신이 묵처럼 으깨졌다.

그가 뛰는 길 아래에서 선혈과 시체가 융단처럼 깔려졌다.

나는 미친 듯이 뛰었지만 그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본부장을 죽이러 가던 멸살군주가 발걸음을 돌린 것은 그때였다.

“그래, 여기에서 가장 까다로운 것은 바로 네년이었지.”

멸살군주는 천천히 바닥에 뒹구는 큼지막한 돌을 주워들었다.

가볍게 던지자 돌이 화살보다 빠르게 날아갔다.

끔찍한 빛을 뿜으려던 카티에의 왼쪽 손목이 정확히 부러졌다.

“크흣!”

“기적을 그리 함부로 쓰면 되겠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인데.”

멸살군주가 돌을 허공에 던지며 손으로 잡아챘다.

다음 돌은 소녀의 머리로 향할 것이 분명했다.

그는 문득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도 범철을 따르고 있는 것이냐, 헤르탄.”

바르녹은 몸을 얽매는 나무뿌리를 단숨에 끊고 팔꿈치를 휘둘렀다.

그러자 뒤에서 곰발로 내려치려던 헤르탄의 팔이 꺾여 버렸다.

빠각!

족히 어깨뼈가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헤르탄은 얼굴만 약간 찌푸렸을 뿐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기습에 실패하자 곧바로 다음을 노릴 뿐이었다.

“침착하고, 치밀해. 매 삶마다 느끼지만 네놈은 남의 밑에 있기 너무나 아까운 인재야. 거물들이 괜히 너를 탐냈던 것이 아니지.”

그때 멸살군주가 옆을 돌아보았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놈을 마주 보았다.

바르녹이 입을 벌리며 웃었다.

“범철! 1회차의 검사. 너와 부딪쳤던 적도 가끔 있었지.”

손아귀에 땀이 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방금까지와 달리 놈과 나의 상황은 역전되어버렸다.

회귀자 살해 재능으로 알아본 멸살군주의 기피변수는 이러했다.

[최하급 변수 3개 획득!]

『멸살군주 바르녹은 아동학대를 혐오합니다. 병아리에게 닭튀김을 먹이면 그는 불쾌해할 것입니다.』

『성적불능을 고백하면 멸살군주가 탄복하여 덜 아프게 죽여줍니다.』

『그는 조용한 사중주를 즐깁니다. 젊음에 몸을 바친 난타공연으로 멸살군주를 마구 분노케 하십시오!』

[중급 변수 2개 획득!]

『멸살군주는 본인의 부하를 자기 몸처럼 아낍니다. 밴시를 불러와 그들을 백치로 만들어버리십시오.』

『전장에서 투명화로 기습하면 커다란 타격을 입히게 될 것입니다.』

그나마 멸살군주에게 써볼 만한 변수라곤 투명화와 밴시가 전부였다.

그러나 투명화 변수는 방금 써먹었고, 밴시는 불러올 수가 없었다.

바로 기습을 하려고 해도 방금 헤르탄처럼 당해 버릴 뿐이다.

오늘 소환한 유령기사단 역시 전장 속에서 소멸되어버렸고.

그렇다면 역시…… 도박에 걸어보는 수밖에 없겠군.

멸살군주는 손을 쥐었다 펴며 말했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고통을 아나?”

“그딴 걸 뭐하러 알아야 돼.”

“나는 수없이 부하들을 잃어봤지.”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서 죽음이, 회귀가 멈추는 것이 두렵다. 그런데 네놈은 나와 반대군. 왜 회귀를 멈추려 하는 건가?”

“세상을 미쳐가게 하니까.”

나는 전생의 아내, 아로즈의 죽음을 기억한다.

그녀는 반복되는 회귀로 인한 희생자였다.

나는 그녀를 동정했고, 기억에 없는 나의 아이들에게 죄스러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회차목표를 이뤄서 회귀를 멈출 것이다.”

“너의 동료 중 하나가 죽는다면?”

“뭐?”

멸살군주는 멀찍이 서 있는 카티에, 헤르탄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네게 속한 동료가 죽으면, 원래는 회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네가 세상을 바로잡게 되면 모두가 회귀 할 권리를 잃게 된다. 네 동료의 인생도 정말로 끝나게 되는 것이지.”

나는 입을 다물고 눈매를 좁혔다.

멸살군주가 차갑게 일갈했다.

“세상을 바로잡으면 사망한 동료의 삶도 끝난다. 그것이 진정한 죽음이지. 그런데도 회귀를 끝낼 건가?”

“그건…….”

내가 대답을 하려던 순간.

멸살군주의 발등이 다가와 내 얼굴을 찢어낼 듯이 차올렸다.

반사적으로 나는 플랑베르쥬로 공격을 흘려냈다.

“크읍!”

나는 이를 악물고 칼자루를 놓치지 않았으나 칼날에 금이 가버렸다.

“큿!”

힘의 충격으로 나는 뒤로 세차게 넘어졌고 돌바닥에 부딪혀 뒤통수가 부서질 것만 같았다.

“커억!”

“너를 끝내마.”

멸살군주가 나의 위에 섰다.

주먹을 방어하기엔 늦어버렸다.

육신조차 찢어버리는 일격이 나의 가슴에 꽂힌다.

그리고…….

우드득!

불멸자의 갑의를 내려친 멸살군주의 오른손이 아작 나버렸다.

“크허헉!”

그의 오른손은 손가락뼈까지 완전히 박살 난 데에 비해서.

막대한 괴력이 후려쳤어도 나의 갑옷에는 흠집 하나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멸살군주가 고통에 경악해 이를 악물었을 때. 나의 칼은 이미 그의 안면에 꽂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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