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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22화 (22/200)

나만 1회차 022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옥의 시련방 깨고 얻은 펜타그램. 이게 조금 가려워서.”

나는 작은 냄비에 국자를 부드럽게 휘젓는 헤르탄을 돌아봤다.

벌써부터 코끝에 감도는 향이 기가 막혔다.

“혹시 헤르탄은 이 펜타그램에 대해 아는 것 있습니까?

“지옥의 시련을 성공한 것은 120회차를 통틀어 그대가 처음입니다.”

헤르탄은 냄비뚜껑을 닫았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그러니 회귀자라도 모르겠죠.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대장이 설마 지옥의 시련까지 성공할 줄은 몰랐어요.”

“왜, 내가 양팔이라도 잘리길 바랐냐?”

내가 빈정대자 카티에는 새빨개진 얼굴로 눈물을 그렁그렁 고였다.

“내가, 내가 몸이 불편한 대장의 수발을 들어주던 시절도 있었는데.”

“……농담이야, 인마.”

하여간 회귀자들이랑 하는 대화는 분위기를 종잡을 수가 없어요.

헤르탄이 뚜껑을 열자 냄비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랐다.

“다 됐습니다. 식기 전에 떠드시죠.”

그가 그릇에 진한 스튜를 담아줬다.

“으음.”

과연 스튜 맛은 끝내줬다.

특히 노계처럼 꾸득꾸득 씹히는 고기 식감이 아주 그만이었다.

나는 그에게 엄지를 들어줬다.

“죽이는데요.”

헤르탄은 조신하게 미소 지었다.

“말린 개구리를 좀 넣었습니다. 그대가 이런 맛을 즐겨 했죠.”

“…….”

***

“아크 리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조우할 수가 없습니다.”

쾌청한 여름 하늘.

헤르탄은 걸어가면서 설명을 해줬다.

“신에 근접한 몬스터. 그 존재의 힘은 가히 절대적이지요.”

우리들의 발걸음은 굉장히 보폭이 불규칙했다.

카티에는 너무 좁았고, 헤르탄은 너무 넓었다.

따라서 중간인 내가 적당한 속도를 유지해야만 했다.

“다만 반복되는 삶에서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신에 근접한 대륙지배자를 죽이려는 집단. 우리는 정점을 없애려는 그들을 ‘자살기도회’라고 부릅니다.”

“……굉장히 개성적인 이름이군요.”

또한, 가장 어울리는 명칭이기도 하지요.”

카티에는 열심히 걸으며 구슬땀을 닦았다.

“황색대륙 자살기도회 본부는 윤회수뇌부랑 항상 앙숙이었죠. 항상 대인원이 회차목표랑 관계없이 무조건 대륙지배자만 죽이려 했으니까.”

“예. 그래서 이번 삶에서는 그들을 찾아가는 겁니다.”

헤르탄은 어째선지 상체만은 여전히 벗고 있었다.

햇살에 피부가 따가울 법도 한데 그는 내색조차 안 했다.

“윤회수뇌부의 핵심인물은 전부 자살했을 테고, 회차목표 또한 대륙지배자 말살입니다. 자살기도회가 그냥 가만히 있진 않을 테지요.”

헤르탄은 멀리서 보이는 도시를 가리켰다.

아지랑이가 올라와 건물들이 일그러진 것처럼 보였다.

“우선 소도시의 지부를 찾아가서 본부와 접촉해 봐야겠습니다.”

“좋습니다만, 문제가 있습니다.”

“예? 뭐가 말입니까?”

내가 두 사람보다 시력이 좋기는 한가 보다.

희미하게 무너지는 건물과 깨알 같은 몬스터 떼가 보였다.

“저 도시, 습격 받고 있는 것 같은데요.”

***

리자드맨Lizard man.

개개인은 약할지라도 영리한 편에 속하는 몬스터.

저들끼리 군집을 형성하고, 엉성하게나마 규율을 지킨다.

그러니 저것들이 방비가 약해진 도시를 습격한 것도 당연했다.

“쿠라락!”

리자드맨의 비늘은 갑옷처럼 탄탄하고 떨어진 무기도 주워든다.

어딘가 습격할 땐 분대를 이루고, 꼭 마법사를 후방에 넣었다.

하급 몬스터임을 생각하면 놀라운 집단지성이다.

그러나 그들이 상대해야 할 인간들은 이제까지와 수준이 달랐다.

몇몇은 근육 붙지 않은 체격도 불구하고 백전노장처럼 싸웠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들은…….

“아오, 여기서 살려고 했더니만 또 습격이네. 개 같으니까 회귀한다!”

“자, 과거로 가게 죽여줘! 다음 삶에선 다른 도시로 이민 가야지.”

“이게 어디서 새치기야! 어차피 질 싸움. 나부터 죽여라, 이놈아!”

상황이 희극처럼 우스웠다.

시민들은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싸움의 결말을 ‘회귀’로 결정해 버렸다.

리자드맨들은 거리낌 없이 죽겠다는 인간들에게 당황했다.

죽는 쪽이 너무 당당해, 오히려 죽이는 쪽이 겁을 집어먹었다.

“쿠라락!”

몬스터란 인간들의 공포에서 우월감을 느낀다.

그래서 리자드맨 분대장들은 지극히 잔인한 행동까지 선보였다.

인간시체를 집어 들어 단단한 이빨로 물어뜯어 버린다.

콰득!

그러나 살점과 뼈를 씹고 삼켜도 인간들은 두려움이 없었다.

심지어 앳되어 보이는 소년은 상의를 찢고 가슴을 내밀었다.

“자, 어서 먹어치워! 심장이나 머리를 단숨에 씹으라고, 뭘 망설여?”

“쿠, 쿠라락…….”

본래 리자드맨은 새끼를 죽이지 않는다.

비록 몬스터일망정, 저것들은 모성애와 부성애가 유독 진하다.

미래의 위협이 될지라도 새끼만은 살려두는 것이 철칙이다.

그런데 애새끼들마저 제멋대로 튀어나와 죽여 달라고 징징대니 혼란의 도가니가 따로 없을 것이다.

‘어째 몬스터한테서 동질감이 느껴지냐.’

나는 괜히 내 신세가 처량해졌다.

우리는 산 중턱에서 소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티에가 망설임 없이 판단했다.

“돌아가요. 기적을 쓰기에도 범위가 너무 넓네요.”

“동의합니다. 돌아가지요.”

나는 두 회귀자 일행을 돌아보았다.

“어째서 말입니까?”

“대장, 회차 초반에 리자드맨은 집단전투로 상대하기가 힘들어요.”

“맞습니다. 다수일 때 가장 위협적이지요. 반나절이면 시민이 전멸할 테고, 이길 수 없는 전투는 피하는 것이 옳습니다.”

헤르탄도 소녀의 의견에 끄덕였다.

“물론 자살기도회 일원이라면 최후까지 살아남으려 하겠지만,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군요.”

하기야 저 리자드맨들은 최소 삼백은 넘어 보인다.

그에 비해 우리는 셋이고, 시민들은 대부분 자살하려 안달이군.

카티에가 헤르탄을 올려다봤다.

“자살기도회 지부가 있는 타도시로 돌아가면 얼마나 걸리죠?”

“못하더라도 15일입니다.”

“좀 걸리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최대한 기간을 단축해서 가보겠습니다.”

두 사람은 돌아섰다.

그러나 나는 발걸음을 떼지 않았다.

“지금 싸워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헤르탄은 부정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범철, 아직 그대의 칼은 체계화된 분대를 몰살할 만큼 여물지 못했습니다.”

“대장, 헤르탄의 말이 옳아요.”

카티에마저 만류했다.

물론 그 말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시민들이 죽어 나가는 도시를 지그시 보았다.

멋대로 죽겠다는 자들을 구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비록 숫자는 적지만.

리자드맨과 살고자 맞서는 회귀자들도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럼 내가 검을 쓰지 않으면 됩니다.”

“그게 무슨 소리…… 설마?”

카티에가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래, 몬스터 몰살에는 칼보다 나은 것이 있지 않은가.

나는 흉내쟁이 마법서를 꺼내서 책등을 쥐었다.

“뭐하러 멀리 돌아갑니까? 여기서 깔끔하게 다 휩쓸어버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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