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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13화 (13/200)

나만 1회차 013화

나는 칼을 붙잡고 브레나딘과의 간격을 쟀다.

밥으로 비유하자면 저놈은 막 끓여 낸 국밥쯤 된다.

성급히 처먹다간 입 데기에 십상인 것이다.

“반드시 널 태우고야 말겠다……! 범철……!”

브레나딘의 불꽃이 맹수처럼 이글거렸다.

방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큰 불꽃.

살갗에 스치기만 해도 화상만으론 끝나진 않을 것이다.

‘회귀자의 공통된 약점은 변수다.’

그렇다면 변수는 무엇에서 시작되는가?

고정된 관념을 깨뜨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놈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준비를 했다.

“영혼까지 고통스럽게 불타라!”

놈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불덩이를 내게 쏘았다.

장담컨대 내가 살면서 보아온 불꽃 중 제일 격렬했다.

저건 피하거나 베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화르르륵!

“안 돼요, 대장!”

뒤편에서 카티에의 비명에 가까운 절규가 들려왔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겠다.

아무리 나를 걱정한다 한들 설마 기절이라도 하겠는가.

나는 불덩이를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만용에 미쳐 버렸군……!”

브레나딘이 내 돌발행동에 입매를 비틀었다.

내가 불에 타버리기 일보 직전.

내 건틀릿이 희푸르게 빛났다.

콰아앙!

굉음과 동시에 매캐한 연기가 폭풍처럼 주위를 휘감았다.

브레나딘이 고통 속에서도 탄성을 내질렀다.

“복수를 마쳤다……! 드디어……!”

하지만 연기 속에서 벌어진 실제 상황은 달랐다.

비명은 내가 아닌, 엉뚱한 존재들이 지르고 있었다.

「끄아아악!」

「갑자기 웬 불꽃이냐!」

내 앞에 소환된 다섯 명의 유령기사단!

본래 소환 권한은 하루에 1회.

낮에 한 번 소환했었지만, 지금은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다.

다섯 명의 유령기사는 주인을 대신해 불의 방패막이 되어줬다.

「아, 뜨, 뜨겁다! 뭐냐, 이건!」

「아악! 평범한 불꽃이 아니다!」

「살려줘! 아, 아니, 죽긴 했지만, 하여튼! 온몸이 타고 있어!」

본래 유령에겐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다.

칼로 베어도 그냥 스쳐 지나갈 뿐이다.

하지만 마법만큼은 유령도 피해를 입는다.

그 말인즉, 유령도 고기방패로 쓸 수 있단 의미다.

유령기사가 분통을 터뜨렸다.

「주인이여! 충직한 우리를 어째서 방패 용도로 쓸 수 있느냐!」

“사회의 인간이란 아랫사람을 그렇게 다루지. 그리고 너희 주인은 인간과 유령을 이분법 짓는 세상의 차별을 증오한단다.”

아무 말이나 내뱉었지만 유령기사단에겐 그 말을 들을 시간이 없었다.

유령기사단은 소환되자마자 불타서 소멸되어 버렸다.

나는 칼을 쥐고서 검은 연기 속을 벼락처럼 뛰쳐 나갔다.

“버, 범철?”

브레나딘은 불덩이를 들이받고도 멀쩡히 살아 있는 나를 괴물처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칼로 화답해 줬다.

“커헉!”

마법사의 약점은 근거리에 약하단 것이다.

물론 상대가 120회차 회귀자라면 그 논리는 좀 바뀐다.

120번의 삶 동안 검사나 용병으로 살았을 수도 있을 테니.

그러나 회귀자이기에 또 다른 약점이 생기곤 한다.

“크윽!”

놈은 공격을 당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심장만은 보호했다.

그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방어 동작이었다.

덕분에 나의 칼질은 놈에게 공포를 주기 수월했다.

“네놈, 범철……!”

브레나딘은 타는 잇몸을 물며 불의 창을 소환했지만 그 행위조차 늦은 것이었다.

나는 땀을 흘리고 매캐한 연기에 쿨럭이면서도 눈을 부릅떴다.

칼질이 좌우로 휩쓴 뒤, 놈의 마지막 다리가 떨어졌다.

“끄아아악!”

나가떨어진 왼쪽 다리가 폭발할 것처럼 달아오른다.

그러나 나는 물러나지 않았다.

거리를 좁힌 지금 기회를 놓치면 놈을 잡을 수 없다!

“뒈져라. 더우니까.”

“아, 안 돼……!”

브레나딘은 내 아래에서 겁에 질려 양손으로 가슴을 막았다.

그러나 나의 칼이 훨씬 빨랐다.

콰직!

“아아악!”

칼이 꽂힌 가슴이 얼어붙는다.

브레나딘의 절규와 함께 놈에게 붙은 불꽃이 사그라졌다.

주위를 둘러싼 불길도 잦아졌다.

재와 연기로 엉망진창이 된 숲길.

나는 재가 되어버린 시체에서 팔찌를 주웠다.

한껏 달아오르던 암적색 팔찌가 거짓말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글거리는 화염봉헌의 팔찌』

정체불명의 존재가 남긴 장신구. 귀중한 것을 바치면 힘을 얻는다.

+마나회복속도 1.15배 증가

+‘봉헌의 불꽃’ 사용 가능.

+착용자가 특수한 조건을 만족하면 팔찌의 제작자가 접선해 옴.

+이글거리는: 열기 2배 증가

나는 입이 절로 벌어졌다.

‘회귀자의 장비답게 끝내주는군.’

브레나딘처럼 자신을 봉헌하지 않더라도 굉장히 좋은 팔찌였다.

마나회복속도를 올리는 물건은 이계에서도 아주 진귀한 축에 속한다.

지금 내 마나로는 투명화는 6분이 한계다.

하지만 마나회복속도가 늘어나면 투명화 지속시간 역시 증가한다.

뿐만 아니라 차후에 다양한 마법을 익히더라도 도움이 될 옵션이었다.

‘하여간 회복부터.’

아직도 화끈거리는 잔부상에 손을 대고 마나를 흘리자 빛이 흘렀다.

1서클 마법 별빛회복.

카티에의 치유력보단 훨씬 못하지만 마법재능이 더해져서인지 1서클 치곤 그럭저럭 응급처치는 되었다.

‘그러고 보니 카티에는?’

나는 소녀를 찾아서 주위를 돌아보다가 자연스레 얼굴이 찌푸려졌다.

카티에는 기절해 있었다.

***

달밤.

나는 기절한 여자애를 등에 업은 채로 걷고 있었다.

지쳐 버린 나는 식사 때 소녀에게 쌀밥을 두 공기나 퍼준 내 만용을 맹렬하게 후회하던 차였다.

‘그래, 함부로 귀한 쌀밥을 두 공기나 퍼주다니. 내가 정신이 나갔던 거다.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운 게 만용이 아니야. 얘한테 밥 두 공기 퍼준 게 만용이지.’

정신이 나가 헛소리까지 지껄이면서 걷자니 감각이 마비된다.

이쯤 걸었으면 날 찾고 있을 전생의 원수들과도 멀어졌을까?

나는 인기척 없는 나무숲에 소녀를 내려놓고 주저앉았다.

“후.”

상현달이 눈부시다.

세상 모든 것에는 아스러진 달빛이 내려앉는다.

수려한 소녀 얼굴 위에도 말이지.

카티에의 흰 머리칼이 달빛에 바스러지는 등나무 꽃잎처럼 보였다.

‘얘는 어째서 나를 왜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걸까.’

나에게 집착하는 카티에가 때로는 참 이상스럽게 느껴졌다.

회귀를 해오며 100번이나 함께할 정도로 내가 멋들어진 위인인가?

‘전생의 나는 어떻게 살았던 걸까.’

방금 브레나딘의 일갈이 떠올랐다.

놈은 전생에서 보아온 미래가 그러하듯, 내가 언젠가 혐오하는 회귀자처럼 변하게 될 것이라 말하였다.

‘웃기지 말라지.’

애당초 적이 던진 말을 순진하게 믿는 것 자체가 등신짓이다.

나는 나무기둥을 등받이 삼아 몸을 기대었다.

밤은 잡념이 범람하는 시각이다.

나는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에 관해 상기해 보았다.

‘숙원.’

모든 대륙의 지배자를 죽여서 내가 사망회귀를 멈춘다면.

하나의 숙원을 실현시킬 수 있다.

그 숙원으로 무엇을 이뤄야 할까.

‘숙원의 개수는 하나로만 한정된다고 했지.’

그렇다면 숙원의 숫자를 늘려달라는 소망은 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언젠가 내가 실현시켜야 할 단 한 가지의 숙원은…….

잡념에 휩쓸리던 가운데 귓가를 스치는 소리가 있었다.

‘물소리.’

근처에 물가라도 있나 보군.

지금 내 얼굴은 재가 껴서 거지꼴이었다.

‘잠깐 가서 몸이나 좀 씻어야겠다.’

나는 카티에에게 모포를 덮어주고 일어났다.

물소리가 들리는 곳에 가보자 조그만 개울이 보였다.

얼굴을 씻고 가슴께에 물을 적실 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회, 회귀하자마자 줄곧 당신만 찾아다녔어.”

눈을 가늘게 뜨자 웬 아름다운 여인이 대뜸 다가와 있었다.

귀부인처럼 고풍스러운 행색이나 치마가 거침없이 찢겨져 있다.

어찌나 급히 달려왔는지 머리칼이 잎사귀와 잔가지투성이였다.

“후.”

회귀자 가득한 세계의 장단점은 누굴 찾아갈 필요가 없단 거다.

알아서 죄다 날 찾아와주거든.

나는 젖은 뺨을 손바닥으로 쓸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댁은 또 누구인데…….”

“잘 들어. 난 살면서 당신 피를 이은 24명의 딸과 16명의 아들을 낳았어.”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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