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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11화 (11/200)

나만 1회차 011화

이번 회차에서야말로 놈을 잡는다!

브레나딘은 맹세했으나 이 결심만 20번 넘게 해왔단 것이 문제였다.

그는 119번을 회귀한 마법사였으며, 20번의 삶 동안 복수를 완수하지 못했단 것에 자존심이 금 갔다.

‘나는 회귀한 마법사고, 놈은 기껏해야 1회차다. 그런데 왜 이러냐고.’

이가 뿌드득 갈린다.

과거 100회차 세상 분기에서 그는 미친 고열의 용암술사로 각성했다.

성좌의 금속을 제조하는 용광로에 몸을 던져 살과 뼈를 녹여 버렸다.

용광로에서 그는 새롭게 태어났다.

전신에 용암이 들끓었고 견고한 심장, 타오르는 안광은 넘실거렸다.

인간이란 종족을 벗어나 불꽃에 모든 것을 바친 초월체가 된 것이다.

그야말로 100회차의 전생지식과 근성을 총동원해 이룬 각성이었다.

“이제 내가 불태우지 못할 건 없다!”

브레나딘이 숨결만 뱉어도 모든 게 불타오르고 만지면 전부 재가 됐다.

눈보라, 장맛비가 덮쳐 와도 그는 코웃음 치며 빙산조차 지워 버렸다.

100회차 브레나딘은 불의 제왕이었고 누구 하나 그한테 대적할 수 없었다.

그렇게 전성기를 누리던 그 시절.

그의 앞에 범철이 나타났다.

“너는 뭐냐, 칼잡이?”

브레나딘이 비웃음을 머금은 사이에 그의 심장은 여섯 번이나 베였다.

“커헉!”

말 못 할 격통에 그는 당황했다.

얼음검에 베여도 멀쩡하던 그였다.

그의 눈에 범철의 검이 들어왔다.

성좌의 금속으로 제조된 장검!

“너! 그 검……! 어디서 손에 넣었지?”

“뒈져라. 더우니까.”

“뭐, 뭐라…… 아악!”

브레나딘은 초월체로 각성하며 습득한 대재앙조차 써보질 못했다.

적외선 안광으로도 범철의 빛처럼 빠른 칼부림을 쫓지 못했던 것이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사, 사, 살려 주십쇼! 제발!”

사지가 잘려 브레나딘은 애원했다.

불의 제왕인 자신이 고작 인간 하나에게 철저히 능욕당하고 있었다.

“아, 안 돼! 그러지 마!”

범철은 말없이 칼을 높게 들었다.

콰직!

마침내 브레나딘의 심장이 깨졌다.

살아오면서 가장 강력히 성장했던 자신이 1회차 놈에게 죽은 것이다.

자신을 죽이고 태연히 누룽지를 꺼내 우적우적 씹던 범철을 떠올리면 아직도 그는 분통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브레나딘은 이를 부서져라 갈았다.

‘더럽도록 허무한 죽음이었다.’

불의 제왕 브레나딘은 이제 없다.

회차 초반, 겨우 4서클의 흔해 빠진 마법사만이 이곳에 있을 뿐이다.

그는 다시 한번 60년을 수련해 초월체가 되기보다 복수를 택했다.

‘그런데 왜 계속 실패한단 말이냐.’

브레나딘은 20번의 삶 동안 범철만을 노려왔지만 줄곧 실패했다.

회차 초반의 범철은 쥐새끼처럼 튀었다 훗날 강해져 돌아와 역습했다.

‘범철 곁의 일행 때문이겠지.’

회귀해도 범철과 함께한다는 일행.

범철보단 못해도 그놈들 다섯의 각기 능력도 강하기 그지없다.

그것들이 전생의 정보를 누설한 것이 아니고서야 1회차인 범철이 자신을 피해갈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이번 삶만큼은 다르다.’

윤회수뇌부가 포기한 120회차.

회차목표를 이루려던 놈의 일행도 이번 삶은 버리고 회귀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범철에게 원한 가진 마법사들을 역대 최대로 모집했다.

무려 14명.

지난 삶에서 인원이 고작 다섯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자존심 세고 피폐한 120회차의 악당들은 협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그가 마법사들을 연합시킬 수 있던 것은 복수심 덕이었다.

세상 곳곳에는 브레나딘처럼 범철에게 원한을 가진 자들이 널려 있다.

어쩌면 어딘가에는 이보다 더욱 많은 복수자 연합이 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이것도 손에 넣었으니까.’

브레나딘은 암적색이 선명한 팔찌를 만지며 싸늘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번에야말로 복수해 내리라.

바로 그때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콰강!

건너편에서 열기가 느껴져 오며 환한 불꽃이 잠깐 번뜩였다.

회귀자들이 포효하듯 소리쳤다.

“소리, 소리가 났어! 범철이다!”

“드디어 놈이 조급해졌나 보군!”

“그놈 목 핏줄은 내가 뜯을 거야!”

복수에 미친 것들은 급히 달려 나갔지만 브레나딘은 코웃음만 쳤다.

“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다.”

회귀자들이 멈춰서 그를 돌아봤다.

“젠장! 하지만 저기 범철이……!”

“닥쳐라, 멍청한 것. 120번을 살았으면서 아직도 그렇게 감이 없나?”

이것은 저급한 함정이 분명했다.

브레나딘은 경고하듯이 험악한 어조로 암적색 팔찌를 꽉 움켜쥐었다.

“이번 회차마저 죽으면 너는 평생토록 범철 발치에도 못 닿을 거다.”

그러자 불만스레 항의하던 회귀자가 움찔하며 금세 입을 다물었다.

그는 짜증을 식히며 생각해 보았다.

‘이 수준의 혼란을 줄 만한 마법이라면…… 그 성녀 년이겠군.’

범철과 가장 오래 함께했다는 5인.

그중에서도 완전기억능력을 가진 백발 머리 성녀는 까다로웠다.

‘이번 회차는 버렸을 거라 예상했는데, 범철 곁에 한 놈쯤 남았나?’

브레나딘은 인중을 두드렸다.

그에겐 20번이나 복수에 실패를 거듭하며 외워둔 전생지식이 있다.

‘범철은 마법을 쓰지 못한다. 저쪽은 성녀 년이 파놓은 계략이겠지.’

저쪽의 성녀는 쉽사리 마법의 흔적을 노출할 만큼 멍청하지 않으니까.

지금의 그는 4서클 마법사.

하지만 수적으로 우세하니 성녀와 맞붙어도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

‘보름날이 안 지났으니 아직 성녀 년이 기적을 크게 쓰진 못할 거다.’

예상해 볼 수 있는 전략은 하나.

폭발음으로 시선을 끈 뒤에 다른 쪽으로 도망치려는 것이리라.

“정찰마법 시야를 넓혀라! 특히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을 공산이 크다.”

정찰 계열 마법을 담당한 회귀자 둘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의 목이 잘려 나가떨어졌다.

투둑. 투둑.

순간 정적이 흘렀다.

다들 잠깐 사이에 땅바닥에 나동그라진 두 명의 머리를 내려다보았다.

“뭐야……?”

한 회귀자가 중얼거리는 동시에 가슴 왼편에 피가 터지며 구멍 났다.

“아아악!”

또 한 명이 죽자 그제야 회귀자들의 얼굴에 당황이 깃들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순식간에 세 명을 죽였어!”

“어디냐! 어디서 노려오는 거야!”

그때 브레나딘은 곧바로 외쳤다.

“멍청한 것들, 당황하지 마라! 딱 보면 알잖나? 투명화 마법이다!”

회귀자들은 그 소리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주위를 계속 살폈다.

브레나딘은 일부러 크게 비웃었다.

“어째 얕은수를 쓴다 싶었지! 투명화 마법으로 접근해 온 건가? 방금 폭발음은 기습을 위한 위장이었군!”

그는 허공을 세차게 노려보았다.

주위엔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몇 초 만에 셋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귀재.

투명화한 범철이 어디선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투명화는 습득하기 굉장히 어려운 종류에 속하는 마법이지! 1회차 주제에 비싼 아이템을 얻었군그래.”

본인이 마법을 썼을 리는 없을 테니 진귀한 아이템의 성능일 것이다.

다만 투명화에는 큰 약점이 있다.

시간당 마나 소모량이 끔찍해 마법사도 투명화 10초를 넘기지 못한다.

“말하는 새 시간이 꽤 지나가 버렸군. 내 앞에 모습을 보여라, 범철!”

브레나딘이 양팔 벌리며 소리쳤다.

그러나 주변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고, 바람만이 휑하게 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고요할 뿐이다.

“어, 이게 어떻게 된…….”

브레나딘이 당혹하며 말하던 순간.

서걱!

주위에서 경계하고 있던 회귀자 하나의 목이 가뿐히 날아가 버렸다.

“흐억!”

하마터면 날아든 머리와 입술을 맞출 뻔한 브레나딘은 얼굴을 숙였다.

등에서 식은땀이 확 흘렀다.

보이지 않는 칼질은 끝이 없었다.

“끄아악!”

또 회귀자 하나의 미간이 갈렸다.

벌써 죽은 숫자만 다섯.

“범철, 범철이 어딘가에 있다!”

“그놈 위치부터 찾아!”

“마법으로 태우고 뭉개 버려!”

사실 이들은 120회차 회귀자답게 투명화 대처법을 정확히 알고 있다.

투명해도 그림자는 남으며 진흙, 모래를 묻히면 형태가 있고 족적과 발소리를 추격하면 위치가 보인다.

그러나 이들을 학살하는 자에겐 전생의 이론과 경험이 통하질 않았다.

달에 가려져 그림자 없고 흙을 걷어차도 허공만 지나며 족적은 바닥 어디에도 찾을 수 없기에 고요하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베인 것이 아니라 피가 터져 죽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 어느 곳에 있어도 죽음이 다가오는 느낌.

이쯤 되자 120번을 살아온 회귀자라도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 지금까지 회귀하면서 이런 일은 한 번도 못 겪어봤다고, 망할!”

“도대체 누가 어디서 베는 거야!”

“오, 오지 마! 제발 죽이지 마!”

지겹도록 반복한 회차에 난입한 변수는 회귀자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거의 미쳐 버려 아무도 없는 허공에 마법을 퍼붓는 회귀자도 있었고, 심지어 복수조차 포기하고 은신마법을 쓰며 도주하는 자들까지 있었다.

그러나 실체 없는 칼날은 도망치는 회귀자들까지 선처 없이 처형했다.

“으아악!”

“끄아아악!”

회귀자의 보호마법까지 무참히 깨 버리고 뒤통수가 파이는 광경은 공포스러웠다.

차라리 어떤 무서운 외견이라도 적이 보였다면 훨씬 나았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미지의 적은 사방 모든 것이 위험요소로만 느껴졌다.

“이, 이런……!”

브레나딘은 거의 땅바닥에 주저앉을 만큼 양다리를 후들거렸다.

보통 투명화는 오래되어도 몇 초.

그런데 놈은 벌써 4분이 넘게 칼질을 하며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다.

‘버, 범철이 아닌 건가?’

공포심에 판단력이 흔들렸다.

이젠 보이지 않는 존재가 인간이 맞는지조차 의심이 들었다.

가장 멀리 도망친 회귀자조차도 몸체가 두 쪽으로 갈라지며 사망했다.

그렇게 총 13명이 죽어버렸다.

남은 것은 브레나딘, 그 혼자였다.

“오, 오지 마! 불태워 버리겠다!”

브레나딘은 정신병자처럼 암적색 팔찌에 손바닥을 올리고 아무도 없는 허공을 미친 듯이 두리번거렸다.

언제 어디서 적이 튀어나와 그를 베어버릴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심장박동은 요란하고 숨소리가 거칠어서 긴장이 목 끝까지 죄어온다.

완전히 궁지에 몰리고 만 것이다.

‘제기랄!’

식은땀에 따가워 눈을 깜빡일 때.

그곳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브레나딘은 숨이 멎을 뻔했다.

그 사내가 어느새 나타났는지 어떻게 다가왔는지 기척조차 못 느꼈다.

그러나 사내의 인상을 알아보는 순간 그는 전생의 죽음들을 떠올렸다.

밤 구름을 들이밀고 내리쬐는 달빛.

핏자국이 진한 칼을 어깨에 얹고 까치발로 뛰는 밤색 머리칼 사내.

브레나딘의 눈동자가 따라오는 것을 보고 사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보이냐?”

“뭐, 뭐?”

“별 민망한 꼴 다 보였군. 세상사 다 그런 거니 괜히 눈 닦진 마라.”

마성의 재능을 겸비한 1회차 검사.

범철은 못마땅한 얼굴로 탄식했다.

“아, 망할. 겨우 6분이 한계네.”

브레나딘은 복수할 대상을 눈앞에 두고도 자기도 모르게 질문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냐?”

“6분 투명인간 됐다. 행복하던데.”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360초의 투명화?

그것이 대마법사도 아닌, 일개 검사의 마나로 가능한 행위란 말인가?

“카, 칼잡이인 네놈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마나가 넘쳐날 수가 있지?”

“120번 살았다며. 그것도 모르냐?”

순간 브레나딘은 울컥해 버렸다.

“이전 삶까지만 해도 네놈은 기본적인 기초마법조차 못 하는…….”

“아니까 됐고, 뭐 하나 물어보자.”

말조차 그냥 끊어버리니 브레나딘은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범철은 자신에게 정말로 궁금한 게 있는지 진지하게 물어봤다.

“너는 또 나한테 뭐 하다 죽었냐? 너희 때문에 누룽지도 못 먹었네.”

별것 아닌 일상적인 농담조.

범철 본인은 전혀 몰랐겠지만, 그 한마디가 최악의 도발이었다.

브레나딘의 눈동자에 실핏줄이 서면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누룽지!’

초월체가 됐지만 허무히 사망했던 100회차 때의 원한이 선명해졌다.

잠시나마 식었던 전의가 타오른다.

자길 가볍게 죽이고 누룽지나 씹던 과거의 범철이 눈앞에 겹쳐 보였다.

“범철! 너만은 죽여 버리고 만다!”

브레나딘은 괴성을 지르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격노를 쏟아냈다.

“갑자기?”

범철이 의아해하는 순간, 브레나딘의 팔찌가 달궈져 문양이 떠올랐다.

아무도 해석 못 하는 불타는 글귀.

사방에 증기가 퍼져서 뜨거워진다.

그리고 엄청난 광경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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