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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10화 (10/200)

나만 1회차 010화

나는 스스로에게 한탄하였다.

어째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일까.

회귀자란 저런 놈들이란 것을.

‘함께 싸운 동료를 토사구팽하고, 자기 혼자서만 보상을 독식한다.’

전형적인 회귀자의 패턴 아닌가.

그러니 이것은 대가이다.

예정된 회귀자의 배신을 눈치채지 못한, 나의 실수에 대한 대가.

‘사냥당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내가 등 뒤로 칼을 곧게 뻗어 긋자 묵직한 쇳소리가 울렸다.

캉!

칼에 막힌 비수가 떨어졌다.

“……방금 그걸 어떻게 쳐냈지?”

나는 레네타의 물음을 무시했다.

다만 목소리의 근원지로 걸어간다.

당황한 그녀가 던진 비수들이 죽음을 휘감은 장맛비처럼 나를 덮쳤다.

캉! 캉! 캉! 캉! 캉! 캉!

칼을 휘저어 비수를 가른다.

보이지 않았으나 레네타의 동요가 이곳까지 전해져 오고 있었다.

“너, 너, 어떻게, 무슨 수로……?”

그토록 오만하던 그녀가 경악에 휩싸여 제 할 말조차 찾지 못하였다.

나는 말없이 그녀에게 다가선다.

지니고 있던 비수를 전부 소모했는지 그녀가 악을 쓰며 소리쳤다.

“오지 마. 나한테 다가오지 마!”

하나 이미 그녀는 구석에 몰렸다.

단검으로 추정되는 날붙이가 목을 노려왔으나 나는 칼을 내려쳤다.

“아악!”

슬슬 어둠에 적응됐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레네타가 잘린 손목을 감싸 쥐며 무릎을 꿇었고 이빨을 덜덜 떨었다.

“어떻게…… 이런 칠흑 속에서…… 회귀했을지라도 할 수가 없는 검술을! 제길, 너는 도대체 뭐야……!”

나는 짧게 답하였다.

“1회차.”

나의 정체를 고백하자 레네타의 얼굴이 소스라치며 공포로 물들었다.

“서, 설마 네, 네가 그 범철……?”

대답할 가치조차 찾을 수 없다.

칼끝이 그녀의 가슴을 찔렀다.

“아악!”

레네타가 피를 토했고 나는 자비심 없는 눈동자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회귀자는 평범히 죽여선 안 된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지 못할 만큼 괴롭게 죽여야만 한다.

“폐를 얄팍하게 찢었다. 네 삶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천천히 뒈져라.”

“끄…… 끄윽……!”

피거품을 물고 쓰러진 그녀는 충혈한 눈으로 숨을 씩씩거리다 죽었다.

‘끝났군.’

깨진 램프에서 양초 심지를 꺼내 불을 붙이는데, 카티에가 깨어났다.

“하암.”

“이제야 일어났냐.”

소녀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곤 회귀자들의 시체를 둘러보았다.

“네. 레네타가 몰래 수통에 넣은 약 덕분에 짧지만 푹 잤어요. 제가 잠든 사이 그녀가 배신했나 보죠?”

나는 기가 막혀 인상을 구겼다.

“수면제 든 걸 알고도 먹었다고?”

“대장이 저딴 잔챙이들한테 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히 아니까요.”

“너, 불안증 있지 않았냐. 혹시나 내가 죽어 있으면 어쩌려고 했어?”

“살 이유가 없으니 자결했겠죠.”

카티에가 나의 귓불 아래를 쓰다듬자 가벼운 상처가 말끔히 나았다.

하여간 회귀자들의 사고방식은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시체를 살피며 여정에 필요할 만한 물품을 주저 없이 강탈했다.

‘나의 행동에 죄책감을 가질 여유는 전혀 없다. 방해만 될 뿐이니까.’

이런 자신이 나는 익숙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안한 일상만을 지향하던 나였으니까.

1회차인 내가 사람을 죽이고도 차가운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

[SSS급 회귀자 살해재능이 살인 이후의 죄책감을 완화시킵니다.]

[냉철한 판단력을 되찾습니다.]

‘회귀자 살해의 재능.’

전생의 내가 가지지 못했던 재능.

그 재능이 나의 죄책감을 덜고 냉정함과 침착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다시금 여정의 목표를 되새겼다.

‘회귀자들보다 강해져야만 해.’

그들보다 먼저 성장하고, 앞서 나가서 황색대륙의 아크리치를 죽여야 한다.

이 역겨운 사망회귀의 악순환을 끊어버리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그러면 보상을 확인하러 가볼까.”

***

토굴 마지막 층 끝자락에는 덩그러니 놓여 있는 보상함이 있었다.

보상함 테두리에 손을 대자마자 을씨년스러운 한기가 느껴졌다.

끼익.

그곳에는 1미터는 넘을법한 장검과 낡고 초라한 반지 하나가 있었다.

『저주 서린 영혼의 플랑베르쥬』

한 서린 원혼의 숨결이 담긴 차가운 검. 오싹한 장신구와 잘 맞는다.

+힘 8 증가.

+일정 확률로 베어낸 적을 빙결시킨다.

+저주 서린: 모든 성능이 크게 증가하나 매 순간 불행이 들이닥친다.

『밴시 대모의 반지』

수수께끼의 반지. 어느 밴시가 이 반지를 애타게 찾아다닌다고 한다.

+밴시 대모의 쉼터를 찾는 단서.

+투명화(0.5초당 마나극대량 소모, 대기시간 반나절, 제한횟수 4회).

저주 서린 검, 투명화 가능한 반지.

저번 삶에선 순간이동 장화가 전부였다던데 두 개나 보상이 주어졌다.

그만큼 지난번에 비해 이번 삶의 토굴이 난이도가 높았다는 거겠지.

“칼과 반지 모두 대장이 가져요.”

“그러면 너는?”

“앞으로 식사준비는 대장이 해요.”

“…….”

치밀한 협상가로군.

밴시대모의 반지는 투명화 마법을 쓰게 해줄 만큼 훌륭한 아이템이다.

그러나 플랑베르쥬는 강력해 보이지만 저주가 서려 있어 꺼림칙했다.

나는 우선 반지를 착용하고 조심스럽게 플랑베르쥬를 거머쥐었다.

지이잉!

그런데 갑자기 내 손에서 칼과 반지가 서로 한기를 뿜으며 떨렸다.

[밴시대모의 반지가 영혼의 플랑베르쥬와 공명합니다.]

[무기의 성능이 변화했습니다.]

성능이 변화했다고?

나는 플랑베르쥬를 살펴봤다.

방금 전과 다르게 아이템 명칭이 바뀌고 맨 밑에 두 줄이 추가됐다.

『강인한 영혼의 플랑베르쥬』

…….

+강인한 공격력 증가, 무게 감소.

*밴시대모 반지와 공명(무기의 접두사가 ‘강인한’으로 바뀜.)

‘상당히 괜찮은 보상이군.’

무기의 옵션이 바뀌자 원래 있던 단점이 사라지고 장점만 덧대졌다.

서로 공명하는 아이템을 착용하니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게 된 것이다.

나는 만족하고서 채비를 갖추었다.

“몬스터도 다 해치웠으니 들어왔던 입구도 열렸겠지. 슬슬 나가자.”

***

밤이 어느덧 깊어져 있었다.

토굴을 나와 숲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서로 잡담을 나누었다.

“대장. 나는 보름날이 지나야만 온전히 기적을 발휘할 수가 있어요.”

“기적?”

“성녀만의 힘이에요. 그러니 언젠가 때가 되면 대장을 지켜줄게요.”

“기적으로 쌀 없이 밥할 수 있냐?”

“……말 안 할래.”

오래 걷기에는 너무 날이 늦어 나는 길가에 멈춰 노숙 준비를 했다.

카티에도 마른 장작을 가져와 내 곁에서 마법으로 불을 지폈다.

밤 구름에 반달은 가려져 오로지 모닥불만이 우리 주위를 밝혀준다.

도시를 떠난 지 첫날밤, 우리는 숲 속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다.

보글보글!

나는 냄비에 적당량의 쌀과 물을 넣고 담아서 모닥불 위에 올려놨다.

밥 짓는 냄새가 구수하니 좋다.

카티에도 멍하니 불가를 바라본다.

내가 한마디 내뱉었다.

“기분이 참 묘해.”

“그러면 안아줄까요?”

“…….”

나는 철저히 맥락을 파괴한 대화를 진행하는 소녀를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으로 보다가 결국 웃고 말았다.

“대장은 왜 가끔 그렇게 웃어넘기나 모르겠어요. 난 항상 진지해요.”

카티에는 어째서 비웃느냐는 표정을 지었고 난 실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대장이 싫어지려 해요.”

“난 반대야. 네가 꽤 마음에 들어.”

“흥. 그래 봤자 이미 늦었어요.”

카티에가 토라졌지만 나는 싱긋 미소 지어 보였다.

“오늘 말이야. 내가 정말 버림받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실감했어.”

“도시들에서 자살자들 봤잖아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거랑은 달랐지.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회귀자들과 얘기하고 직접 죽여 보니까…… 뭐라 해야 할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죽이지 않았다면, 죽었을 테니까.

나는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끓어오르는 냄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불에 삼켜져 소멸됐다.

“회귀자는 나와 정말 다르더라고.”

“그게 대장만이 가진 장점이에요.”

카티에는 불가를 나뭇가지로 콕콕 쑤셨다.

“첫 삶이니까 전부 맑잖아요. 그래서 수많은 회귀자들이 1회차인 대장에게 이끌리는 것일지도 몰라요.”

“난 별로 이끌어가고 싶지 않다.”

난 입맛을 다시며 냄비를 열었다.

뜨끈한 김이 확 피어오른다.

쌀밥은 고슬고슬하니 잘됐다.

조금 더 냄비를 달구면 따닥따닥한 누룽지를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물이 많으면 숭늉도 해먹을 텐데.

나는 소녀에게 먼저 밥을 퍼줬다.

카티에는 쌀밥을 후후 불었다.

“많이 먹어둬요. 밤이 늦으면 원수들이 대장을 죽이려고 올 거예요.”

“뭐?”

나는 카티에가 원수들이 올 타이밍을 짐작하는 것에 놀라지 않았다.

그렇다고 원수들에게 내가 죽을까 봐 기겁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내가 얼굴을 찌푸린 이유는 간단했다.

누룽지를 먹을 수 없단 말인가?

***

‘쉴 틈을 안 주는군.’

과연 카티에의 말대로였다.

어두운 숲길에 로브를 입고 말을 타고 온 회귀자들이 다급히 외쳤다.

“여기서 불을 피운 흔적이 있다!”

“제기랄! 또 한발 늦었군!”

“멀리 못 갔다! 말을 묶어두고 숲길 주위부터 정찰용 마법을 써라!”

“저번이나 지지난번 회차처럼 놈들이 나무 위에 숨었을 공산이 크다!”

놈들의 예상과는 반대로 우리는 땅 밑에 숨어 있었다.

카티에가 마법으로 구덩이를 파고 위장해 놈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까치발을 들어서 땅 위의 회귀자들을 살펴볼 수가 있었다.

‘꽤 많은데.’

카바인 때와는 달리 날 노리고 온 전생의 원수는 한 명이 아니었다.

무려 14명.

120회차 회귀자들끼리 합심해서 1회차인 날 죽이러 오다니, 눈물겹군.

카티에가 속삭였다.

“우선은 도망쳐요. 지금 저 많은 회귀자들을 상대하기엔 고되니까.”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장?”

소녀가 팔을 잡아당겼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내 시선은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찾아다니는 회귀자들에게 고정돼 있었다.

[살의를 가진 회귀자 다수포착.]

[회귀자 살해 재능 개안開眼!]

[하루에 1회, 반경 500미터 내에서, 지정한 회귀자가 ‘기피하는 변수’를 무작위로 5개 창출합니다.]

나는 한쪽 눈썹을 올리며 떠오른 글귀를 읽다가 픽 웃고 말았다.

그래.

눈앞에서 날 죽이려는 자식들을 멀쩡히 살려둘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미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선책은 역시 회귀자 사냥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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