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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9화 (9/200)

나만 1회차 009화

보스 몬스터(Boss monster).

이름과 지성조차 없는 일개 잡졸들과 달리 강력함을 겸비한 몬스터.

동굴, 폐광, 유적 같은 소굴을 독차지한 주인이며 사냥 보상도 크다.

“저건…… 찌질이 코볼트로군.”

지금껏 사냥한 개체보다 키가 작고 볼품없는 코볼트가 멀찍이 보인다.

“캬록! 캬록!”

지독히 못생긴 코볼트가 뭉툭한 코를 킁킁대며 배회했다.

높은 죽마를 타고 긴 망토를 늘어뜨린 탓에 형체가 부풀어 보였다.

누가 보더라도 허세로 덩치만 불린 잡졸 몬스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회귀자들의 평가는 달랐다.

“생각보다 쉽지가 않겠는데요.”

“전생에 저놈한테 죽은 적 많죠. 마법도 멋대로 차단되어버리고.”

“회차 초반에는 버거운 놈이잖아. 방심하고 싸우다간 쉽게 당해버려.”

내가 의아스러운 표정을 짓자 카티에가 몰래 다가와서 속삭여주었다.

“찌질이 코볼트는 상처를 입고 빈사상태 되면 웨어울프로 변해요.”

웨어울프라면 황소 대가리도 찢어 버리는 상급 몬스터로 유명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싸웠다간 묵사발 되기 십상이었겠군.

“사냥하며 찌질이 코볼트가 웨어울프로 변신할 틈을 줘선 안 돼요.”

레네타가 먼저 의견을 말했고, 다른 회귀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보스 몬스터에게 섣불리 접근하지 않고 바위 뒤편에 매복했다.

랑크가 미끼가 되어 코볼트의 주의를 끌자, 놈이 멍청하게 다가왔다.

“지금이다!”

베덴스가 가장 먼저 뛰쳐 나갔다.

후방에서 카티에는 마법을, 레네타는 비수를 던져 전투를 보조했다.

“코록! 코로록!”

찌질이 코볼트가 상처 입고 죽마에서 떨어지자 몸집이 커지기 시작했다.

[찌질이 코볼트가 처절한 시련을 딛고서 진화를 시작합니다!

주위의 마력이 매섭게 흡수됩니다.

토굴에서 반나절 동안 1서클 이하의 마법이 차단됩니다.]

놈이 이족보행 하듯 일어나더니 바닥을 내리찍어 지면을 진동시켰다.

“으억! 저, 저놈이!”

토굴이 흔들리고 크고 작은 종유석이 낙하하며 회귀자들을 강타했다.

베덴스, 디일, 랑크가 차례로 쓰러졌고 후방지원도 기대할 수 없었다.

“캬아아악!”

코볼트의 몸체가 갈수록 불려진다.

시간을 더 주면 안 된다!

나는 종유석을 피하며 뛰어올라 세찬 칼질로 놈의 목을 꿰뚫었다.

“캬…… 악!”

[토굴의 주인을 죽였습니다!]

[토굴 보상함을 열 수 있는 권한을 획득했습니다.]

나는 종유석에 처맞고 나동그라진 베덴스의 손을 잡고 일으켜줬다.

“의외로 굉장히 싱겁게 끝났군요.”

“……싱겁기는 무슨! 자칫하면 뇌진탕으로 회귀할 뻔했구만.”

베덴스가 머리에서 흐른 피를 매만지며 신경질 내자 나는 혀를 찼다.

“전생에 여기를 와봤다면 어떤 환경인지 미리 알았을 것 아닙니까?”

“그, 그건 그렇지만 기억하는 것만큼 몸이 잘 따라주질 못해서……. 원래 대부분의 회귀자가 그렇잖아?”

“난 처음 보고도 다 피했는데요.”

“…….”

그제야 베덴스는 새빨개진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영리하게 종유석이 닿지 않는 자리로 피신했던 카티에가 다가왔다.

“이리로 와요. 치유해드릴게요.”

“아, 난 괜찮아요.”

레네타는 별로 다치지 않았지만 세 남자는 모두 머리에 피를 흘렸다.

다행히 종유석이 그리 크질 않아 죽진 않았지만, 부상이 꽤 심했다.

“후우. 다행히 밴시는 안 나왔네.”

“밴시 소리 꺼내지도 마. 그 끔찍한 것들 생각하면 지긋지긋하다고.”

“어찌 됐건 이번 보상도 기대된다. 어떤 아이템이 나올까?”

보상을 확인하기 전, 우리는 잠시 쉬면서 몸을 회복하기로 결정했다.

어두운 토굴에 램프로 불을 환히 밝히고, 휴식하며 시간을 보냈다.

카티에는 휑한 얼굴로 하품을 하며 치유를 끝마쳤다.

“피곤해요. 나도 좀 쉬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끔하게 치유해 주실 줄은 몰랐어요.”

소녀는 레네타가 내민 수통으로 목을 축이곤 구석에서 금세 잠들었다.

한편 나는 가장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여러분은 120회차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레네타 일행, 네 사람을 돌아봤다.

내가 이들과 함께 토굴에 들어선 이유는 회귀자의 싸움법을 직접 보고, 보상을 얻기 위해서긴 했지만.

윤회수뇌부가 포기한 회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의구심을 느꼈다.

왜 이들은 죽지 않고 살아갈까?

랑크가 아문 흉터를 긁적였다.

“애당초 나는 회차목표를 달성하길 포기했어요. 수없이 사니까 귀찮아졌달까. 내가 원하는 대로만 살 거예요. 세상에 시체는 넘쳐나지만, 뭐 그런 걸 그다지 신경 쓰진 않아서.”

디일은 단호하게 말했다.

“20번의 인생 동안 함께해 온 의동생이 있어요.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르니까 만나러 가려고 합니다.”

베덴스는 호기롭게 가슴을 쳤다.

“포기한 회차라는 건 경쟁자가 적단 걸 의미하지. 그러니 이번 삶에 더 많은 걸 얻고 경험해야 한다고.”

나는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120회차 세상이지만 저마다 살아 가는 이유가 있군.’

이들은 최소한 자살한 자들보단 사람 냄새가 풍긴다고 할 수 있었다.

세 남자는 질리는 기색 없이 집중하는 내 태도가 신선한지 웃어 보였다.

“허! 우리도 회차 초반에 잠깐씩 만나고 헤어져 각자마다 이런 삶의 목표가 있었는지 전혀 몰랐구만.”

“그러게요. 레네타, 너는 어때? 왜 120회차 세상에서 살아가는 거야?”

레네타는 손을 쥐었다가 폈다.

“이번 삶에서는 나 혼자 독식할 거니까.”

그 대답을 들은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칼을 뽑아서 그녀를 내찔렀다.

그러나 레네타의 반응은 민첩했고 칼날은 머리칼 끝만 스치고 말았다.

“아니, 당신 지금 무슨 짓거리야!”

베덴스가 나를 보며 버럭 화를 냈고, 그것이 그의 유언이 되었다.

레네타가 날린 비수가 그의 옆통수 중앙에 정확히 꽂혔기 때문이다.

“억!”

“레네타?”

디일의 깜짝 놀라 커진 동그란 눈알에 비수가 꽂혀 뇌를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두 명이 쓰러지자 랑크가 이를 갈며 칼을 뽑았다.

“빌어먹을 년! 토굴 안에서는 절대 우리끼리 죽이지 않기로 했잖아!”

“뭘 새삼스레. 회귀 한두 번 해?”

레네타는 능청스레 말하곤 비수를 날려 램프를 깨부쉈다.

토굴 안은 칠흑에 휩싸였고 랑크는 미친놈처럼 허공에 칼을 휘저었다.

“꺼져! 저리 꺼지라고…… 어억!”

곡소리와 동시에 랑크의 거친 숨소리가 완전히 잦아들었다.

사방은 완연한 어둠.

시야가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1서클 이하의 마법이 차단되어 화염구로 주위를 밝히는 것도 불가능.

난 한숨을 쉬며 눈살을 찌푸렸다.

“뭐하는 짓이지?”

“그야 의문이 들어서지. 어째서 내가 남들과 함께 보상을 나눠야 해? 나만을 위해 사는 것이 회귀자야.”

보이지 않는 눈앞에서 들려오는 것은 오직 레네타의 목소리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온 감각이 예민하다.

언제, 어디서 비수가 날아들지 예상할 수가 없어 긴장감은 극한에 이른 상태.

“아니, 배신할 거면 보스를 쓰러뜨린 직후가 낫다는 뜻이야. 우리가 회복하기 전에 일찍 배신했어야지.”

“나도 숨은 돌려야 하지 않겠어? 어차피 나는 어둠에 익숙하거든. 지금 네놈이 또렷이 보일 만큼.”

레네타가 탐욕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네가 낀 건틀릿, 아주 쓸 만해 보이던걸. 밴시 퇴치용으로 그만이겠어.”

“아가리 싸움은 키스만 환영해.”

쐐액!

내 귓불 아래로 비수가 스쳤다.

목을 타고 흐르는 피를 느끼며 나는 눈썹을 뒤틀고 칼을 꽉 쥐었다.

레네타가 불쌍하단 투로 비웃었다.

“이 어둠 속에서 나를 칼로 베시겠다고? 네가 무슨 범철이라도 돼?”

돼, 등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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