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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6화 (6/200)

나만 1회차 006화

회귀자回歸者.

인생 중후반부에서 죽어 회귀 시점으로 돌아온 사람을 일컫는다.

회귀자의 대체적인 특징은 전생지식으로 성장해 강해지고, 인격적 결함을 가진 인성 파탄자란 것이다.

‘특히나 과거로 돌아왔다고 아주 저만 잘난 줄 알지.’

놈들이 회귀한 지 고작 며칠이지만 난 벌써 회귀자가 싫어졌다.

붉은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청년은 호전적인 차림새였다.

적당한 키에 반듯한 철갑옷을 입었고 수염만은 지저분하게 길렀다.

20대 초반의 외모지만 실제 나이는 엄청 많겠지.

놈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동자는 광인狂人처럼 깊게 충혈되어 있다.

“이제야 찾아냈군. 밤새 이 주위를 미친 듯이 쏘다녔어. 수십 번의 삶 동안 관찰만 해오며 첫 복수를 준비 해왔지. 120회차, 네 주변의 동료들마저 자살한 이번 삶을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를 거다.”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은 처음이다.

후, 긴장될 때는 역시 입을 털어줘야지.

나는 마주 보고 웃어주며 물었다.

“이름이 뭐냐? 너는 날 아는데 나만 널 모르니 너무 불공평하잖아.”

“카바인 레차. 전생의 네놈에게 당해 하반신불수였던 용병대장이다.”

“이봐, 내가 아무 죄 없는 놈을 불구로 만들진 않았을 것 같은데?”

“같잖은 야유는 관두지그래.”

놈이 눈썹을 찡그렸지만 난 오히려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넌 전생에 뭘 하고 다녀서 나한테 당했을까. 내가 하반신 고자로 만들었으니 여자를 후리려 했던 건가?”

카바인의 얼굴이 화나 일그러졌다.

백 번을 넘게 살아 피폐해진 주제에 도발에는 잘도 걸려드는군그래.

나는 보란 듯이 킬킬 비웃어줬다.

“하, 진짜인가 보네?”

스르릉.

카바인은 장검을 뽑았고, 나는 약간 의아해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나를 상대로 칼을? 배려 고맙군.”

놈도 알다시피 전생의 나는 소드 마스터도 농락하는 검의 강자였다고 한다.

어지간해선 기습을 노리는 게 정상일 텐데 정면에서 칼싸움을 걸다니.

“어차피 뭘 해도 네놈한테 이길 테니 무기 따윈 상관이 없지.”

카바인은 거만하게 관자놀이를 툭툭 치면서 웃어 보였다.

“나는 회귀를 해오며 네놈의 검술 패턴을 모조리 암기해 두었다.”

아하, 내가 뭘 해도 막고 피할 자신이 있으니 칼싸움으로 덤비는 거로군.

나를 얕보며 턱을 높이 쳐든 녀석은 오만한 회귀자 그 자체였다.

“범철, 네놈이 아무리 잘나도 회귀할 수 없다면 약자 수준이다. 고작해야 한 번 사는 일반인이 전생을 겸비한 회귀자에게 이길 턱이 없지.”

절대 자신이 질 리 없다는 태도다.

하여간 저 빌어먹을 회귀자 놈.

나는 느릿하게 칼자루를 쥐었다.

“얘기만 할 거면 술집에 가셔야지?”

카바인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네놈의 척추를 끊어서 반신불구로 만들어주마.”

놈이 칼을 들며 달려든 순간, 나는 검을 뽑지 않고 빈손을 들어 올렸다.

이글거리는 불꽃이 안개를 빛냈다.

화락!

카바인은 얼어붙듯이 멈춰 섰다.

내 손에서 뿜어져 나간 화염구가 귓가를 태우면서 날아간 것이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놈은 귀를 감싸며 경악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뭐야! 네놈이 전생에서 마법을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마법 대책은 전혀 안 세웠나 보군.

나는 양손에 넘실거리는 화염구들을 만들어내며 회귀자를 비웃었다.

“왜, 전생지식 없이는 못 이기냐?”

***

나는 어젯밤 카티에와 나눴던 대화를 더듬어봤다.

‘모든 회귀자들에겐 공통적으로 가장 큰 약점이 존재해요.’

‘약점? 어떤 거?’

‘변수.’

카티에는 유독 강조하며 말했다.

‘회귀자는 변수를 가장 싫어해요. 자기가 기억하는 전생과 다르니까.’

‘하지만 내가 짜둔 변수마저도 회귀자는 이미 겪어봤을지 모르잖아.’

카티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든 돌발변수를 예측하고 대응하려면 일천 번은 회귀해야 할걸요?’

회귀자는 변수에 약하다.

그리고 내가 쓰는 마법은 놈에게 있어 최악의 변수나 마찬가지였다.

이전 삶까지의 나는 기초마법조차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하니까.

설마 칼의 최강이던 범철이 마법까지 쓰게 됐으리라 누가 예상할까.

화르륵!

초보 마법사는 한 손에 화염구 하나를 만드는 것도 오래 걸린다.

그러나 나는 한 손가락에 화염구 하나씩, 양손에 총 10개의 화염구를 생성해 카바인을 향해 쏘고 있다.

화륵! 화르륵! 화르륵!

“크흣!”

카바인은 낭패한 기색으로 화염구를 상대하고 있었다.

놈은 상황을 장기전으로 몰고 가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렇게 마법을 남용하면 나의 마나가 금방 다할 것이라 생각한 거다.

그런데 이걸 어쩌냐.

‘전혀 힘들지 않아.’

마탑주는 내게 일반 마법사의 수십 배나 되는 마나가 잠재되어 있다고 했다.

실제로 나는 화염구를 무지막지하게 날릴지라도 전혀 지치지 않았다.

‘한 200개 더 던질 수 있겠는데?’

결국 카바인은 지쳐 느려졌고 철갑옷에 몇 번 화염구가 적중했다.

“크헉!”

평범한 화염구는 야구공만 한 크기지만 내 화염구는 농구공보다 컸다.

한 번씩 맞을 때마다 철갑옷 일부가 날아가거나 잔뜩 찌그러졌다.

전신이 뜨겁게 달궈진 카바인 또한 죽을 맛일 것이다.

‘꽤 재밌는데?’

검만큼은 아니지만 마법도 나름의 쾌감이 끝내줬다.

검처럼 통으로 썰어버리는 손맛은 없어도 멀리서 적을 쉽게 해치운다.

화염구가 적에게 적중해 태워 버릴 때마다 꽤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제기랄! 이건 아껴둔 거였는데!”

카바인이 이를 악물며 주먹을 움켜쥐자 건틀릿이 희푸르게 빛났다.

히이이잉!

반투명한 철갑옷 기사들이 유령마를 타고 붉은 안개 속에 도래했다.

순식간에 소환된 유령기사 다섯!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과연 회귀자는 회귀자다.

놈은 쉽사리 구할 수 없는 비장의 아이템을 착용해 두고 있었던 것이

“유령기사들이여! 저놈을 죽여라!”

싸움은 6대1로 변모했다.

유령마의 기동력이 무시무시해 기사들은 순식간에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빠르게 칼을 꺼내며 유령마의 앞다리를 베었지만 스쳐 지나갔다.

‘어라?’

베는 감촉도 없이 칼은 허공만 지났고 유령기사의 검이 근접해 왔다.

나는 허리가 부러질 것처럼 다급히 얼굴을 낮춰 칼날을 겨우 피해냈다.

윽, 자칫하면 코가 날아갈 뻔했다!

‘유령이라서 물리력은 통하지 않는 건가? 그렇다면…….’

나는 왼손을 펼쳐서 기운을 모아 푸른빛의 마력을 내뿜었다.

그러자 내 주변을 제외한 바닥에 꺼먼 기름칠이 드넓도록 칠해졌다.

히이이잉!

유령마들이 내게 달려들다가 미끌미끌한 바닥 때문에 발을 헛디뎠다.

나는 그 광경이 웃겨 미소 지었다.

‘유령은 마법으로 상대해야 하는군.’

1서클 마법, 기름 바닥!

비좁은 부지에 기름칠을 하는 허접한 마법이지만 난 운동장 규모까지 기름 바닥을 생성해낼 수 있다.

더군다나 기름칠도 무척 진해서 미끈거렸고 유령마들은 자꾸 넘어져 금방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중급 유령마들은 하늘도 난다고 하던데, 저것들은 하급인가 보군.’

그 순간 뒤통수에서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고 그 순간 뒤로 돌아 칼을 휘둘렀다.

챙!

“죽어, 죽으라고!”

어느새 내게 근접해 온 카바인이 장검을 폭풍처럼 몰아치며 휘둘렀다.

내 검술패턴을 외웠다고 한 게 허세는 아니었는지 내가 대처하기 힘든 코너에서만 칼날이 몰려왔다.

그래, 내 패턴을 외웠단 말이지.

챙! 챙! 챙!

짧은 새에 수어 번의 합을 나눴고 어느 쪽도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나는 적이 너무 가까이 있는 데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칼에 감히 마법을 사용할 여유가 없었다.

카바인은 지금 기회가 아니면 나를 영원히 몰아넣을 수 없다고 여겼는지 그야말로 온 체력을 다 짜냈다.

챙! 챙! 챙! 챙! 챙!

서로 열 번이 넘게 칼을 맞대고 나서야 이상한 점이 점차 드러났다.

카바인은 점점 지쳐가는 반면 나는 움직임을 절제하며 여유를 찾았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놈의 칼은 눈에 띄게 느려졌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확실히 놈은 나의 검술패턴을 악착같이 외워 덤비고 있음이 틀림없다.

다만 난 도리어 놈의 검을 보며 전성기 검술 패턴을 익힐 수 있었다.

그것은 답안지를 보고 문제를 유추하는 것처럼, 쉽고 간단한 행위였다.

“제기랄, 왜! 도대체 어째서!”

나는 놈의 칼을 두어 번 받아주면서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네 칼은 참 정직해. 왼쪽에서 올 것 같으면 왼쪽에서 와. 그래서야.”

“입 닥쳐!”

설명을 해줘도 놈은 악을 쓰며 쓸데없는 힘까지 실어서 휘둘렀다.

아이고, 멍청아.

칼은 그리 쓰는 게 아니란 말이다.

나는 칼을 딱 한 번 세게 휘둘렀다.

챙!

카바인의 장검이 날아가 허공을 반 바퀴 그리며 바닥에 꽂혔다.

힘이 빠진 손목을 늘어뜨리며 카바인은 날 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려운 눈으로 보았다.

“으으…… 으!”

손목인대가 끊어진 모양이군.

나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물었다.

“너, 진짜 120회차 동안 뭐했냐?”

진지하게 궁금해서 물은 질문이었는데 카바인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다, 닥쳐라!”

나는 착한 사람이라서 그 말대로 얌전히 놈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어어억!”

카바인은 복부를 움켜쥐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다만 동정심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내가 놈을 이기지 못했다면 내가 지금 저 꼴이 되어 있었을 테니까.

놈의 뒤통수를 잡아서 올렸다.

“야.”

“왜, 왜…….”

짜악!

나는 놈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놈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자 나는 손을 활짝 펴서 내밀었다.

“건틀릿 벗어.”

“이, 이건 지하사원에서 어렵게 구한……!”

짜악!

“귀머거리냐. 벗으라고.”

“지, 진짜 회귀자들 사이에서도 얻기 힘든 진귀한 장비……!”

짜악!

놈은 이제 눈물까지 글썽였다.

“안……!”

짜악! 짜악! 짜악! 짜악! 짜악…….

한쪽 고막이 터졌는지 카바인의 귀에서 피가 난다.

“드, 드리겠습니다!”

놈이 건틀릿을 벗어서 내게 소유권을 넘기자 유령기사들이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 기름 바닥도 지워졌다.

카바인은 엎드려서 통곡까지 했다.

“왜 내가 지는 거야……!”

“복습만 많았지, 응용은 개똥이군.”

이게 놈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다.

솔직히 칼을 나누는 와중에도 난 놈의 목을 벨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설령 내 패턴을 외웠어도 소용이 없는 것이 나는 기분마다 전부 변칙적으로 칼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칼싸움만 하면 재미없잖아?

내가 잠시 한눈을 팔았을 때.

카바인이 벌떡 일어나서 뒤돌아보지도 않고 내게서 황급히 도망쳤다.

나는 굳이 놈을 잡지 않고 팔짱을 낀 채 뒷모습을 바라봤다.

놈은 내게서 충분히 멀어지고 나서야 가운뎃손가락을 확 쳐들었다.

“오늘은 내가 봐줬다, 개자식아!”

저게 아주 돌았군.

하지만 확실히 지금 화염구를 쏴도 닿지는 못할 만큼 놈과 멀어졌다.

쫓아가도 회귀자라 주변 지리를 잘 알 테니 나도 쉽사리 잡을 수 없다.

카바인은 뛰어가면서 서투르지만 왼손만으로 환약을 꺼냈다.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다른 회귀자들이 저것과 똑같은 환약을 먹고 자살하는 걸 본 적 있다.

편히 즉사하는 독약이 분명하다.

놈은 다음 삶으로 넘어가 회차 초반의 나를 또 습격하려는 것이다.

“이래서 내가 너 같은 회귀자 놈들을 역겨워하는 거야.”

나는 중얼거리면서 마력을 펼친 손을 땅을 향해 내뻗었다.

일대에 갑자기 기름이 칠해진다.

“으억!”

달리던 카바인은 기름칠 된 바닥에 미끄러져 환약을 놓치고 넘어졌다.

천천히 발에 힘을 주고 일어났지만 주변 일대는 전부 기름 바닥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운동장 규모까지 기름 바닥을 생성해낼 수 있다.

순간 카바인이 덜덜 떨면서 겁먹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서, 설마!”

“사람은 불타 죽을 때 가장 고통스럽다더군. 회귀자라 잘 알고 있지?”

나는 내 앞쪽까지 이어진 기름 바닥에 이글거리는 화염구를 쏘았다.

카바인은 창백해진 얼굴로 도망치려 했지만 기름칠된 바닥 전체가 순식간에 화염바다가 되어버렸다.

화르르륵!

“아아악!”

고기 타는 냄새가 코에 스친다.

불길에 집어삼켜진 카바인의 형체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다만 회귀자의 소름 끼치는 비명만은 내 귓가에 아주 잘 들려왔다.

“아아아악! 과거로 되돌아가서…… 네놈만은 꼭…… 쳐죽인다, 범철!”

“네게 다음 삶이 있다면 말이지.”

나는 불바다를 뒤로하고 걸었다.

사람 죽는 꼴은 이미 많이 봤고 날 죽이려던 놈이라 죄책감도 안 든다.

‘후, 시원하게 싸웠네.’

손을 털고 걷다가 문득 멈춰 섰다.

“…….”

불현듯 아주 천천히, 이상하다는 생각이 뒤늦게야 들었다.

지금 내가 한 행동들이 낯설었다.

회귀자를 죽일 때 거부감은커녕 시원한 쾌감까지 들었던 것은 왜일까.

‘내가 왜 이러지?’

나는 분명히 1회차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새로웠다.

그러나 나는 방금 첫 살인을 하고도 가슴이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심지어 회귀자를 내 손으로 죽여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했잖아.’

전생의 원수를 처단하고 싸움경험을 쌓기 위해서라는 명분은 있었다.

그러나 불과 며칠 전까지의 나라면 실행에 옮기지도 못했을 살인이다.

회귀자 살해가 생존에는 필요하겠지만, 나는 처음치고 너무 능숙했다.

‘어째서 회귀자를 죽였는데도 별다른 저항감이 들지 않는 것일까.’

고민해 봤자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휘젓고 손등을 봤다.

카바인에게 뺏은 건틀릿을 착용해 옵션을 확인하려던 찰나.

[회귀자를 죽였습니다.]

[세계 유일의 소질, 회귀자 살해 재능이 SSS급으로 발현됐습니다!]

……내 고민에 해답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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