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003화
내가 마법에 재능 있다고?
지나가던 개가 비웃겠는데.
나는 괜스레 뺨을 긁적였다.
“아니. 그런 건 관심 가져본 적 없는데.”
“…….”
부사범 구울들을 뚫어지게 보던 카티에는 화난 얼굴로 날 올려다봤다.
“그럼 이거 어떻게 한 거예요?”
“그냥 한 거야. 손에 힘주고 네가 맺은 수인 따라 하다 보니…….”
카티에는 내 말을 딱 잘랐다.
“마나는요? 지금 안 힘들어요?”
“전혀. 지치거나 한 거 없어.”
“됐으니까 다시 한번 해봐요.”
나는 아까 했던 수인을 따라 하며 수련생 시체를 몇 구 더 바라봤다.
보랏빛 마력이 내 양손에서 튀어나가 시체들이 족족 구울로 일어난다.
나는 좀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카티에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
소녀는 입술을 꼭 씹으며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진짜…… 말도 안 돼. 이렇게 쉽게 시체를 부리는 검사가 어디 있어.”
카티에는 중얼거리다 갑자기 원수라도 진 양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야,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냐?
“…….”
카티에는 말없이 혼자서 가버렸다.
내가 당황해 소녀의 뒤를 잡았다.
“야, 야! 너, 어디 가?”
탁!
카티에는 내 손을 뿌리치며 울먹이는 눈동자로 앙칼지게 소리쳤다.
“됐어요! 그냥 혼자서 하시죠! 대장은 나도 질투 날 만큼 천재니까!”
허 참.
저 녀석, 방금까지 사막처럼 삭막하던 그 여자애 맞아?
연무장 뒤편으로 가버리는 카티에를 바라보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이놈들을 어떻게 한다…….”
부사범 구울 10마리와 수련생 구울 3마리가 크륵거리며 서 있었다.
나는 시험 삼아서 말해봤다.
“수련생 세 놈. 꿇어봐.”
“쿠뤄어억.”
수련생 구울들이 무릎을 꿇었다.
“수련생 세 놈. 절해봐.”
“쿠뤄어어억.”
수련생 구울들이 머리까지 숙인다.
그럼 이건 어떨까?
“수련생 세 놈. 너희도 자살해 봐.”
“쿠뤄어어어억!”
수련생 구울들이 자기 머리를 움켜쥐어 터뜨리곤 잿더미가 되었다.
하, 세상에.
내가 일으킨 구울은 주인의 명령을 착실하게 이행하는 하수인들이었다.
나는 부사범 구울 10마리를 봤다.
무슨 말이든 들어?
그럼 내릴 명령이야 간단하지.
나는 착 달라붙게 검을 쥐었다.
“너희, 나를 죽여 봐라.”
***
공격하라고만 명령할 수도 있었다.
다만 그건 실전이라고 볼 수 없다.
칼을 거머쥐자, 자연스러운 자신감이 흘러넘친다.
‘왠지…… 이것들이 죄다 죽이려고 달려들어도 해볼 만할 것 같아.’
나는 10마리의 구울에 둘러싸였다.
“쿠뤄어엇!”
부사범 시체가 밑바탕이니 되살아나는 구울도 품질이 확연히 높았다.
수련생 구울과 달리 몸집도 컸고 보호색이 있어 회피율이 끝내줬다.
날 둘러싼 구울들은 온몸에 보호색을 펼쳐 언뜻 보면 베기 쉽지 않다.
내가 평범한 초보였다면 말이다.
서걱!
“쿠뤗!”
썩은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수련생 구울이 맨밥이었다면 부사범 구울은 눌은밥 정도는 되었다.
눌은밥은 딱딱하고 탄내 나서 먹기만 힘들지 그냥 밥이긴 매한가지다.
‘보호색을 펼쳐도 그림자는 있네.’
발소리, 울음소리까지 추정하면 한쪽 눈을 감고도 벨 수 있겠다.
나는 9마리의 부사범 구울들을 하나씩 상대해 가며 몰살했다.
수련생 구울보다 10배는 강해서 나도 왼쪽 팔뚝에 상흔을 입었다.
‘그리 심하진 않아.’
난 피가 흐르는 상처에 침을 발랐다.
몇 시간이나 검을 휘둘렀는데 나의 정신은 아직도 굉장히 맑았다.
나는 허공에 검을 한 획 그었다.
부웅!
‘확실히 예리해졌어.’
수련생 구울 100마리 죽였을 때와 부사범 구울 10마리 죽였을 때, 칼의 결에서 느껴지는 레벨이 다르다.
나는 검술에 천부적 재능이 있음을 실감했고 그랬기에 지금보다 강하게 성장해 재능을 터뜨리고 싶어졌다.
‘하여간, 아직 여기에 있으려나?’
나는 연무장 뒤편으로 걸어갔다.
양팔로 얼굴을 가두고 고갤 처박아 쪼그려 앉은 백발 소녀가 보였다.
안 그래도 여린 몸이 더 가녀려 보이고 어깨가 흠칫흠칫 들썩인다.
“언제 그치냐?”
“다…… 닥쳐요. 훌쩍!”
우는 것도 체력을 요하는데, 카티에는 그쪽 방면에선 천하장사가 틀림없다.
나라면 절대 2시간이나 못 울거든.
나는 우물에서 떠온 수통 물을 마시며 소녀의 곁에 털썩 앉았다.
“너, 정신병 있지?”
카티에의 숨소리가 잠깐 멎는다.
나도 눈치라는 게 있다.
정상인이라면 단순한 감정 기복만으로 저렇게 오래 울어댈 리 없다.
“부, 불안증…… 있어…… 훌쩍!”
그것으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 눈앞의 소녀는 119번의 회귀로 어긋나 버린 정신병자였다.
‘하기야 120번이나 살고 있는데 정신이 멀쩡하면 그게 이상한 거겠지.’
어찌 됐건 카티에가 마냥 메마른 성격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마, 말…… 걸지 마……! 훌쩍!”
그러곤 싶은데 내가 배고파.
나 혼자 밥 먹을 순 없지 않겠니.
난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고개 좀 들어봐라. 꼴이 뭐냐.”
“훌쩍…….”
나는 카티에의 눈물, 콧물로 젖어 버린 얼굴을 살살 닦아줬다.
그러자 카티에는 울먹이며 분하게 뺨을 붉혔다가 갑자기 내게 와락 안겼다.
“으아앙!”
이것 참, 묘한데.
100번도 넘게 살았을 어르신께서 부모 잃은 아이처럼 엉엉 울어댄다.
“대, 대장 같은 천재가…… 이젠 마법까지…… 부, 불공평해요……!”
카티에는 내가 마법에도 재능이 넘친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던 것 같다.
보기보다 열등감 넘치는 회귀자군.
나는 카티에의 등을 토닥여줬다.
“진정해 봐. 21회차부터 나랑 계속 함께했다며? 그럼 100번이나 같이 다니는 건데, 내가 마법에 재능 있단 사실을 모르고 있었단 말이야?”
“나, 나도…… 몰라요. 지금까지…… 훌쩍! 대장이 비범했던 분야는…… 훌쩍! 칼싸움뿐인데……!”
잠깐만.
이건 그냥 흘려듣고 넘겨선 안 될 정보 같은데.
나는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그럼 지금까지 지나온 삶에선 내가 마법에 재능이 없었단 말이냐?”
“전혀…… 요. 훌쩍! 기본적인…… 기초마법도…… 못했죠…… 훌쩍!”
지금, 중대한 의문점이 생겨났다.
지난 삶까진 기초마법도 쓸 줄 몰랐다는 내가 어째서 120회차에 들어서 갑작스레 새로운 재능이 생겼을까?
어쩌면 120회차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이변일지도 모른다.
하여간 일단 우선은…….
“배고파요…… 대장……. 훌쩍!”
……밥부터 먹자, 젠장.
***
우린 수련관 창고에 있던 값비싼 쌀가마니로 무려 흰 쌀밥을 해먹었다.
황색대륙에선 밥 지어 먹는 게 여간 사치가 아닌데 간만의 호강이다.
나는 소녀 몫의 밥을 듬뿍 퍼줬다.
“많이 먹어라. 울면 더 배고파.”
“……투정부려서 미안해요.”
카티에는 어느새 메마른 표정으로 돌아와 내 눈을 자꾸만 피했다.
불안증세가 얼마나 심한지 감정선이 자주 오락가락하는 모양이다.
‘어찌 됐건 정신병자랑 같이 지내면 지루할 일은 전혀 없겠네.’
카티에는 밥그릇에 시선을 처박고 나지막이 말했다.
“대장이 해준 밥은 늘 맛있어요.”
“밥이야 맛나겠지. 시체만 없다면.”
이 맛좋은 쌀밥을 시체들 사이에서 먹어야 한다는 게 천추의 한이다.
배를 채운 나는 다시 검을 잡았다.
수련생, 부사범 구울도 잡았으니 이젠 드디어 대사범 하나만 남았다.
“내가 해줄게요, 대장.”
방금 전 일이 창피해서인지, 미안해서인지 카티에는 자신이 직접 대사범 시체를 구울로 만들겠다고 고집했다.
쓸데없이 힘쓰게 하기 싫나 보다.
나는 귀찮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래라.”
그렇게 날이 저물고 난 뒤.
“됐어요!”
마침내 카티에가 구슬땀을 닦으며 말했다.
“쿠우루어억!”
평범한 구울의 2배 크기는 될 법한 대사범 구울이 내게 돌진해 왔다.
옆으로 피하면서 허벅지를 베려던 나는 구울의 발차기에 막혔다.
“쿠뤄어얼!”
언데드 주제에 엄청나게 민첩하다.
밤의 어둠과 보호색이 더해져서 구울의 몸놀림을 종잡기도 힘들었다.
그런 강하고 무지막지한 대사범 구울의 위용에 나는 정말 경악했다.
‘떡진 밥 수준이네.’
떡져서 밥알 불어난 밥처럼 저놈은 위용만 요란하지 실속이 없었다.
언데드답게 멍청해서, 싸우다 보니 대충 어떻게 해야 할지 파악됐다.
20분쯤의 싸움 끝에.
대사범 구울의 머리를 갈라낸다.
[대사범에게서 승리했습니다.]
[초심 수련관 도장 깨기 성공!]
[힘이 3 올랐습니다.]
[싸움의 명예가 올라서 상위 수련관에 도전할 권한을 얻었습니다.]
[대사범 허리띠를 얻었습니다.]
세찬 빛이 일어났고 내 손아귀 위로 피가 묻은 하얀 띠가 내려졌다.
평범한 무기나 물품들과는 다르게 상태창이 엿보였다.
『대사범 허리띠(하양)』
5년간 검만 휘둘러온 대사범의 허리띠. 불길한 혈흔이 남아 있다.
+검술의 성장도를 1.1배 높여준다.
*대사범의 칼과 공명(악력 1.2배)
‘퀘스트처럼 보상도 주어지는군.’
오늘 하루 총 111마리의 구울을 사냥했는데 얻은 것은 단순한 숫자뿐이 아니었다.
누구도 내게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난 검술의 원리를 상당히 깨우쳤다.
내가 가꾼 화초를 사 가던 퇴역 용병은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칼은 사람을 쉽게 집어삼켜 죽여.
오늘, 그 말을 유심히 되새겨 본다.
카티에가 다가와 수인을 맺고 주문을 외우며 내 상처를 치유해 줬다.
소녀는 밑에서 나를 올려다봤다.
“이제 뭐 하고 싶어요?”
나는 칼질에 꽤나 재미가 붙었다.
좀 더 강한 존재들을 베어보고 싶다.
몬스터 가득한 사냥터나 검술 비기를 익히기 위한 곳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법.”
지난 삶에서 내가 갖추지 못한 힘.
버림받은 120회차 세상에서 살아 가야 하는 내게 주어진 새로운 재능.
나는 확실하게 결심을 굳혔다.
“마법을 배우고 싶어.”
***
카티에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대답조차 하지 않고 바로 돌아섰다.
난 시체한테 뺏은 배낭에 식량(특히 쌀)을 가득 채워 어깨에 멨다.
“지금 어디로 가려는 거냐?”
“마탑이요.”
여기서 가장 가까운 마탑이라곤 도회지 밖의 작은 떡갈나무 탑뿐이다.
나는 피곤해서 하품을 해 보였다.
“거기면 오늘 밤 내로 도착하겠네.”
“아뇨. 숨겨진 마탑으로 갈 거예요. 오늘은 가택침입을 해야겠어요.”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가택침입? 여관들 놔두고?”
“네. 여기 여관에서 자면 대장은 전생의 원수들에게 습격당해요.”
지난 삶에선 그런 일도 있었구나.
길잡이로 회귀자는 최고구만.
카티에는 안락한 여관들은 내버려 두고 허름한 판자촌으로 내려갔다.
그중에서도 소녀는 가장 누추한 집으로 들어가 문고리를 쥐어 잡았다.
덜커덕!
집 자체가 아예 버려졌는지 녹슨 문고리는 잠겨 있지도 않았다.
외관만큼 허름한 실내에서 그녀는 널브러진 모포를 대충 덮고 누웠다.
나도 꽤 피곤해서 곧바로 누웠지만 쉽사리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오늘 있던 일이 전부 꿈만 같군.’
회귀자 천지에.
어린 제자가 죽고.
세상은 미쳐 버렸으며.
나는 칼의 재능에 눈을 떠서.
정신병자인 여자애와 한데서 잔다.
‘망할, 이게 뭐람.’
나는 양손으로 머리를 잔뜩 헝클어트리고 오른편으로 몸을 뒤척였다.
카티에는 아직 깨어 있었다.
“야.”
“왜요?”
그녀는 전혀 졸린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전생에 관해 물었다.
“지난 삶에서 난 어떻게 죽었냐?”
“우리랑 다 함께 청색대륙 백룡을 사냥하려다 전멸당하고 말았어요.”
청색대륙이라…….
옛 동양과 유사한 환경의 대륙이란 것만 알고 있을 뿐 가본 적은 없다.
다만 그곳 사람들은 검은색의 머리칼과 눈동자를 지녀서 나도 자주 청색대륙 출신이라고 둘러대곤 했다.
“나는 지나온 삶에서 주로 어떻게 살았었냐? 행복했어?”
“회귀자에게조차 과감했고, 칼에 도전하며 살았어요.”
심하게 간략한 설명이군.
하기야 미래를 알면, 살아갈 재미가 없겠다.
“아, 그런데 난 결혼은 했었냐?”
아무리 그래도 평생 홀아비로 살진 않았겠지?
역시 자식도 낳았었을까?
“내일을 생각하면 빨리 자는 게 좋아요.”
카티에가 모포를 끝까지 덮었다.
“야, 인마.”
“대장은 회차목표를 이루게 되면, 어떤 숙원을 이루고 싶어요?”
저게 갑자기 딴소리를 하네.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그걸 지금 너에게 가르쳐줄 이유는 없지.”
“그게 제 대답이에요.”
……할 말이 없게 만드는군.
어느새 소녀는 잠이 들었는지 숨소리만 조그맣게 들려왔다.
슬슬 나도 졸음이 쏟아져 온다.
나는 눈을 감으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언제까지고 전생의 원수들을 피해만 다닐 순 없어.’
회귀자가 주인인 세상.
혼자서만 회귀하지 못하는 나라면.
호구가 아니고야, 내가 가야 할 길은 당연하다.
‘사냥당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너희 회귀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