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456)화 (456/456)

외전. 우리의 새벽은 낮보다 뜨겁다

“해 뜨는 거 보러 가자!”

“뭐라고?”

“설날이니까 해를 보러 가는 거야!”

우리 찬이는 오늘도 어디가 아픈 모양인지 헛소리를 하고 있다.

“그건 보통 새해 첫날 보러 가지 않아?”

어디서부터 지적해줘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일단 찬이의 이야기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요새 너무 애를 들들 볶았나?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서 솔로곡을 발표하는 우리 최 모지리.

곡 달라고 징징거려서 줬더니 이번에는 가사 쓰자고 쫓아왔다.

니가 쓰라고!

왜 이렇게 찰싹 들러붙어서 칭얼거리는지.

다른 그룹은 연차가 차면 각자 생활하느라 바쁘다던데, 우리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인 듯하다.

여전히 우리는 한 숙소에서 머물고 있고, 다 같이 공연하는 게 가장 즐겁다.

가끔 개인 스케줄 때문에 몇 명만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되도록 시간을 맞춰서 같이 움직이려고 하니까.

그건 그거고…. 지금은 가사 쓰자고 쫓아온 찬이를 옆에 앉혀놓고 지금까지 나온 가사를 고르며 고민하던 중이었다.

난 자기 곡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한다는 소리가 해 보러 가자는 소리라니.

평소처럼 걷어차야 하나 고민했지만, 일단 확인 먼저 하기로 했다.

어디가 아픈가 싶어서 이리 오라고 부르자 쪼르르 온다.

고개 숙이라고 손짓했더니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이마에 손을 대보고 ‘열은 없는데’하고 중얼거리자, 그제야 불퉁한 얼굴을 하는 찬이.

“우리끼리 해보러 가자고. 가본 적 없잖아.”

“굳이?”

“새해 첫날은 사람 많으니까 힘들잖아. 남들이 가지 않을 때 가야 여유롭게 보고 오지.”

찬이는 답지 않게 논리적인 척 말을 하며 같이 해를 보러 가야 하는 이유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집에 안 가?”

“갈 거야. 다녀와서 가면 되지.”

명절 전에는 여러 프로그램 출연과 인사 영상 촬영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나마 회사에서 당일 출연해야 하는 프로그램은 거절하는 편이라 망정이지.

연차가 차고 나니 이런 부분은 편하다.

우리는 조금씩 방송 출연 욕심을 버리고 각자를 갈고 닦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다고 아예 방송을 모두 놓은 건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했어?”

“아니, 이번에는 우리 둘이 가자.”

“우리 둘이서만?”

“응. 우정 여행!”

미심쩍은 얼굴로 찬이를 바라보던 나는 찬이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나중에 뒷감당 자신 있어?”

“…….”

워낙 우리끼리 뭉쳐 다녔다.

특히나 그중에서도 이 녀석은 멤버들이 자기를 빼놓고 무언가 하는 걸 가만두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나랑 힘찬이 둘이서 해보러 다녀온다?

당연히 멤버들 몰래 다녀오기도 힘들뿐더러, 다녀와서도 무사할 리 없다.

같은 숙소에서 사는데 그걸 숨길 수 있을까?

“난 형들이랑 세빈이 등쌀을 버틸 자신이 없다. 넌 가능해?”

“당연히! 불가능하지….”

기운차게 외치려던 힘찬은 금방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그건 자신이 쌓아온 업보를 떠올리는지 얼굴색이 점점 핼쑥해졌고.

“정 가고 싶으면, 네가 멤버들한테 허락받아와.”

“내가? 혼자?”

“난 안 가도 그만이고, 다 같이 가도 상관없어.”

담담한 얼굴로 냉정하게 현실을 꼬집어주자, 어떻게 친구를 버릴 수 있냐고 궁시렁거렸다.

단우 형에게 배운 대로 애당초 줍지 않았다고 말하자, 정말 울 것 같은 얼굴이 돼버려서 달래줘야 했지만.

그렇게 해돋이 보러 가자는 무모한 여행은 물거품이 되나 했는데….

“가서 일박하고 올 거지?”

“어디로 갈 건데?”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도대체 이야기가 어디까지 흘러간 건지 커피 마시자며 찾아온 새벽 형들이 날 붙들고 묻기 시작했다.

키스 형은 턱을 괴고 피식거리고 있었고, 다진 형은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팅팅 부은 얼굴이었다.

“반다진은 신경 쓰지 마. 나랑 여행 가는 게 싫어서 저래.”

“한가영 빼고 나랑 갈래?”

“둘 다 꺼져줬으면 좋겠어, 진짜.”

“윤혁아, 애들 앞에서 말조심하기로 했잖아.”

모두가 한마디씩 하는데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찬이랑 이야기하시라고 한 발짝 물러나려 했더니, 이번에는 진우 형에게 전화가 왔다.

“진우야?”

“네. 어떻게 아셨어요?”

“뻔하지, 뭐.”

키스 형은 ‘넌 좋으면 숨기질 못해’라며 웃었다.

- 환아, 여행 간다며!

“형, 안녕하ㅅ… 네…?”

- 형이 이번에는 스케줄 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그렇지?

도대체 이 해돋이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걸까.

생각하기를 멈춘 나는 그저 ‘하하’하고 웃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포잉은 ‘쯧’하고 혀를 차더니 가영 형의 머리 위에서 한가롭게 꼬리를 살랑였다.

이번에는 좀 한가로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포잉과 오붓하게 쉬려 했거늘, 망한 듯했다.

모르겠다, 난 모르겠어….

* * *

“이렇게 된 이상, 아예 크게 지르는 거야.”

힘찬은 멤버들과 주변 지인들에게 은근슬쩍 해돋이 여행을 흘렸다.

처음에는 정말 지환과 소박하게 단둘이 여행 가고 싶었다.

둘이서만 여행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거기에 휴이는 동갑이니 불러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고.

하지만 지환의 말을 듣고 난 후에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준의 잔소리와 세빈의 눈치는 버티기 힘들다.

여태까지 자신이 한 행동을 기억하고 있는 힘찬은 목숨은 하나뿐이라고 중얼거렸다.

물론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면 나중에 지환이 멱살을 잡을 테지만, 그건 그때 생각할 일이다.

“우리 해보러 간 적 없으니까 같이 해보러 가요.”

“아니, 왜 굳이 자꾸 어딜 나가려고 해.”

영빈은 곤란하다는 듯 힘찬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환과 영빈은 외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멤버들과 단체 여행을 가려면 가장 먼저 설득해야 할 게 이 두 명일 정도로.

대부분 다 같이 무언가 하고 싶다고 조르면 해주는 편이지만, 그래도 집을 나서는 걸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힘찬에게는 최후의 방법이 있으니.

“형이랑 해돋이 보러 가고 싶어.”

“아니, 찬아….”

“우리가 언제 다 같이 가서 해도 보고 맛있는 거 먹고 그래, 응?”

“다 좋은데 명절에 굳이?”

“그때 아니면 언제 시간 되는데!”

일명 떼쓰기.

찬이는 영빈을 붙들고 한참 동안 칭얼거렸다.

영빈은 동생들이 조르기 시작하면 위험한 일이 아닌 이상 허락하고 만다.

잠깐 사이에 몇 년은 늙은 듯 지쳐버린 영빈을 두고 힘찬은 다음 공략 대상을 찾아 떠났다.

경환과 세빈에게는 해보러 가자고 한마디 하자 바로 허락이 떨어졌다.

하준에게는 모든 멤버가 가고 싶어 한다고 세빈과 경환을 끌고 가서 말했다.

하준도 영빈과 비슷했다.

동생들이 하고 싶다는 거는 위험한 게 아닌 이상 대부분 따라준다.

“그럼 회사에는 형이 말할게.”

“우왕!”

“최고다!”

“역시 리다님이시다!”

휴일을 어떻게 쓰든 회사에서 터치하지 않지만, 성실한 하준은 미리 회사에 공유하곤 했다.

그래야 무슨 일이 생겨도 빠르게 대처가 가능하다면서.

동생들이 한껏 신난 목소리로 하준을 칭찬하며 폴짝거리자, 하준의 귀가 붉어졌다.

20대 중반이 돼서도 동생들에게 약한 리더 하준.

힘찬은 속으로 손가락을 세어가며 할 일을 하나씩 지워갔다.

무인도 패밀리에게도 전했으니, 이제 남은 사람은 누가 있던가.

힘찬은 골든아워와 멜트, DCL에게도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아마 각자 스케줄이 있을 것 같아서 함께하지 못하겠지만, 말조차 안 하는 건 배신하는 기분이라 찝찝하다.

마음을 굳힌 힘찬은 세 그룹의 멤버들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설날에 해보러 갈 사람!]

새벽에게 시달리고 있던 지환이 봤다면 뒷목을 부여잡고 뒤로 넘어갔겠지만, 당장은 모르는 이야기였다.

* * *

“이 인원이 다 같이 움직인다고?”

“이거 안 걸리는 게 더 신기한 일 아냐?”

“내가 숙소 잡아놨어. 거기서 모이는 거로 하면 될 거 같은데.”

“어딘데?”

“형, 오랜만에 봬요.”

“휴이, 요새 힘들어? 왜 이렇게 겉늙었어!”

“넌 왜 애 기를 죽이고 그러냐.”

넓은 숙소로 옮겼건만, 이 인간들이 전부 모이니 거실이 좁아 보일 지경이었다.

새벽 멤버 전부, 진우 형, 하겸 형과 인하 형, 단우 형, 리우 형과 휴이.

얀 형과 자인, 레노는 오랜만에 본가에서 푹 쉴 예정이라고 했다.

DCL 멤버들은 처음에는 무인도 패밀리와 골든아워 형들을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우리랑 놀다 보니 형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고, 이제는 도망가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멜트 형들도 오고 싶어 했지만 새벽 형들이 무서워서 빠진다고 했다.

에드가 아직 새벽 멤버들을 무서워한다고.

찬이 연락을 받은 멜트 형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멤버들끼리 해외로 나간다고 했다.

오랜만에 친목도 다질 겸 기강도 잡을 겸.

왜 찬이가 연락했는데 디아 형이 내게 상황을 설명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생각할수록 내 머리카락만 빠질 것 같으니까.

소중한 러그를 잠시 치워둔 거실에 각자 편한 자세로 앉은 인간들.

아찔해질 만큼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럼 각자 집에서 출발해서 목적지에서 만나면 되는 거죠?”

“아니면 사다리 타기해서 팀 짤까?”

“그거 재밌을 것 같은데?”

“난 환이랑 같이 가고 싶은데.”

한마디 하면 열 마디가 돌아오는 상황이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가영 형과는 절대 같이 여행 안 갈 거라고 버티던 다진 형은 의외로 얌전했다.

옆에 앉아서 싱긋 웃고 있는 세비 형의 작품인 것 같았지만, 캐묻지 않기로 했다.

때로는 모르는 게 나은 이야기들도 있는 법이니까.

처음 가영 형과 하겸 형은 서로가 간다는 사실에 못마땅해했지만, 그럼 둘 다 빠지라는 나머지 멤버들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키스 형과 단우 형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그래, 형들이라도 행복하면 됐어….

가장 이상한 건, 여행 가자고 말을 꺼낸 건 찬인데, 자꾸만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댔다.

“지환아, 고기 얼마만큼 사?”

“환아, 형이랑 차 탈래?”

“숙소 배정은 어떻게 할까, 지환아.”

그냥 누나랑 둘이 여행 간다고 할걸.

때늦은 후회를 해보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하나씩 해요! 숙소 배정은 준이 형, 세비 형, 단우 형이 하고, 장 볼 물품은 정리해서 나눠서 사 오는 걸로 해요.”

각자 맡아야 할 일을 나눠주고 나니, 침대에 눕고 싶어졌다.

너덜너덜해진 나를 측은한 눈으로 보는 휴이와 활짝 웃고 있는 찬이.

동갑끼리 여행은 이미 어디에도 없었다.

* * *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동해안의 어디쯤.

처음 하겸 형은 각각 팀끼리 사용할 독채로 방을 잡았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우리 숙소에 모일 거 아니냐는 경환 형의 발언에 커다란 별장을 빌려왔다.

작은 해변이 붙어있는 바닷가 바로 앞의 근사한 건물.

도대체 이번에는 누구한테 빌린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관리해주시는 분이 따로 있으니 쓰레기만 한군데 모아놓고 그냥 가면 된다고 했다.

“와, 국내에도 이런 곳이 있네.”

“외부 신경 안 쓰고 놀아도 되니까 그건 좋은 거 같아요.”

아직 봄이라 부르긴 이른 날씨라 바닷물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평소라면 이 인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

방을 정하고, 짐을 풀고, 고삐 풀린 짐승들이 사방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누구는 책을 읽기도 했고, 누구는 온수 풀에서 첨벙거리기도 했고, 또 누구는 술부터 꺼내 들었다.

한 공간 안에 있었지만, 누구도 서로에게 강요하지 않았고 그저 하고 싶은 걸 하며 쉬었다.

이번 여행이 ‘쉼’이 되기를 모두가 암묵적으로 바랐던 덕분이다.

한껏 하고 싶은 대로 시간을 보내고 배 터지게 저녁을 먹고 나니 한밤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바닷가에 모여앉았다.

불을 마주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불을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여전히 불꽃이 우리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면, 이렇게 근사한 캠프파이어를 즐길 수 없었을 테니까.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진 곳에 세어볼 수 없을 만큼 많은 별이 춤추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보내온 시간을 떠올리며 홀린 것처럼 그 광경을 눈에 담았다.

고개를 돌리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었고, 눈앞에는 솜뭉치들을 닮은 별이 있다.

물론 오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고, 형들에게 치여서 드러눕고 싶어졌지만, 눈앞의 풍경이 근사해서 용서하기로 했다.

“해돋이 보러 온 건데 밤이 더 예쁘네.”

“그래도 해 뜨는 건 볼 거예요.”

“그래야지. 안 일어나면 물 부어서라도 깨울 거야.”

서로 던지는 농담 같은 진담에 히죽거리며 우리는 오래도록 평소보다 넓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고생 많았다, 니들 다.”

“그러게요. 진짜 고생 많았지.”

“올해는 좀 순탄하게 가자!”

“새해 복도 많이 받아요!”

“아니, 이건 내일 해 뜨는 거 보면서 해야 하는 이야기들 아냐?”

“아, 몰라, 초 치지 말고 그냥 해!”

여전히 우리는 엉망진창이지만 혼자가 아니기에 더 크게 웃을 수 있었다.

사람들 많은 걸 질색하는 포잉도 오늘만큼은 조금 떨어져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도대체 너희는 언제 철들 거냐며 혀를 차는 포잉.

이 자리에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부디, 앞으로도 이렇게 행복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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