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448)화 (448/456)

448. 어디서 뭐해(3)

솜뭉치들은 공식 SNS에 올라온 짧은 네 개의 영상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직원이 몰래 찍는 콘셉트인 듯, 첫 번째 영상은 살금살금 움직여 열심히 머리를 맞대고 회의 중인 멤버들을 비췄다.

무언가 진지하게 논의 중인 멤버들은 다행히 다친 곳 없이 건강해 보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메모하기도 하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지환이 획 고개를 돌려 반쯤 가려진 창문을 바라봤다.

찍던 직원이 급히 카메라를 내렸는지 갑자기 시야가 뒤집히며 영상은 끝났다.

평소에도 촉도, 운도 좋다고 멤버들이 입을 모아 말하던 지환.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 애가 한 건 했구나 싶어서 솜뭉치들은 자기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다음 영상들은 멤버들이 둘씩 짝을 지어 노래 연습하는 모습이었다.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무언가 메모하더니 노래를 시작 힘찬.

그리고 그런 힘찬을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며 다정하게 웃는 하준.

그 모습을 몰래 찍던 카메라는 다음 장소로 방향을 틀었다.

다음 영상은 영빈과 경환이었다.

영빈은 침착한 얼굴로 경환에게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경환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가 끄덕이더니 장비를 조작했다.

경환의 진중한 얼굴이 영빈의 목소리에 조금씩 피어난다.

끝에는 다가온 영빈의 어깨를 툭 치면서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영빈도 마주 웃으며 경환에게 주먹을 내밀었고, 경환이 주먹을 마주 부딪쳤다.

만족스러운 듯한 얼굴이었다.

마지막은 지환과 세빈이 나타났다.

붉은 얼굴로 지환에게 무어라 종알거리는 세빈과 활짝 웃으며 세빈의 어깨를 토닥이는 지환.

평소와 같은 모습이라 새삼스러울 것 없다 생각할 수도 있다.

평소에도 지환은 멤버들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으니까.

특히나 하준과 막내를 무척 아낀다는 건 팬들도 다들 아는 사실.

평소와 같은 지환의 모습에 솜뭉치들은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큰 사고가 있었다.

어디 호텔은 갑자기 폭발이 있었다고 했고, 어느 병원에서는 방화범이 있었다.

둘 다 뉴스에 나올 정도로 큰 사건이었지만, 처음에는 ‘오늘도 별일이 다 있네’ 정도의 감상이었다.

사상자가 없었으면 좋겠다든가 하는 생각도 잠깐씩 했을 거고.

그러다 방화 사건이 벌어진 병원에 우리 애들이 있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솜뭉치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데뷔한 지 얼마 안 돼서 시사 프로그램에 나오더니만 이번에는 뉴스라니.

한 번도 사고 친 적 없는데 늘 사고에 휘말려 솜뭉치들은 속이 탔다.

방화 사건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처음 올라온 기사에 아이돌 멤버들이 입원한 병실이라는 언급이 있었다.

회사에서 조치한 건지 그런 내용의 기사들은 금방 사라졌지만, 이미 박제되어 볼 사람은 다 본 상황.

그때부터 회사 전화통이 불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가 공식 채널을 통해 멤버들의 무사함을 알리긴 했다.

그러나 방화 사건에 휘말린 멤버들의 무사함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많이 놀라고 무서웠을 멤버들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솜뭉치들도 많았다.

왜 우리 애들에게만 세상이 이렇게 가혹하냐며 신을 원망하는 이들도 있었다.

최대한 안정을 취하고 쉬었으면 하는 마음과 당장 무사한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의 싸움이 정점을 찍었던 순간.

ON 엔터가 멤버들의 짧은 영상과 함께 곧 멤버들이 팬들에게 인사할 거라는 글을 공식 SNS에 남겼다.

이 글에도 멤버들을 무리하게 하지 말라는 쪽과 어서 무사한 모습을 보고 싶다는 쪽이 팽팽하게 맞섰다.

그리고 얼마 후.

차례대로 세 개의 영상이 올라왔다.

편안한 얼굴의 하준과 긴장한 듯 연신 침을 삼키는 힘찬.

작은 무대에 걸터앉은 둘은 무선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솜뭉치들. 여러분의 리더 하준입니다.

- 솜뭉치들 저희 무사해요!

조바심이 났던 건지 차분하게 인사한 하준과 달리 힘찬은 손을 흔들며 괜찮다는 말부터 했다.

그 모습에 짧게 웃은 하준이 부드럽게 타이른다.

- 찬아, 인사부터 해야지.

- 아 참, 안녕하세요! 언래블 힘찬입니다!

당황한 기색도 없이 씩씩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평소와 다를 바 없어서 솜뭉치들도 웃었다.

- 많은 분이 걱정하셨다고 들었어요.

하준은 힘찬의 어깨를 다독여준 후 천천히 눈을 깜박이며 말을 이어갔다.

- 다행히 빠르게 도와주신 분들 덕분에 저희는 무사히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많이 놀라긴 했지만, 다친 곳은 없어요.

평소라면 중간에 끼어들어 까불거렸을 힘찬도 진지한 얼굴로 얌전히 있었다.

- 살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들을 사고라고 하잖아요? 저희에게도 그런 사고가 일어났었던 거니까 과도한 추측이나 다른 분들에게 피해가 갈만한 행동은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일부 성급한 이들이 사고가 발생한 병원의 정체를 캐고 전화 테러나 별점 테러 등을 하고 있다는 걸 그들도 아는 것 같았다.

하준은 침착한 얼굴로 과격해진 솜뭉치들을 다독였다.

- 저희는 가수니까 여러분들에게 무사하다는 것도 노래로 알리고 싶었어요.

- 급하게 준비하느라 연습 많이 못 했지만, 예쁘게 봐주세요~!

하준의 말이 다 끝나자 힘찬은 쾌활하게 외치며 찡긋 윙크해 보였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노래.

[봄의 따사로움, 여름의 바다, 가을의 풍요, 겨울의 첫눈까지]

[내가 사랑한 모든 계절을 함께하고픈 사람이 있어요]

힘찬의 단단한 저음과 하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요란한 기교 없이 담담히 흘러내렸다.

[그해 첫 새싹과 마지막 낙엽을 함께 바라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부풀어 오른 마음은 갓 구워낸 식빵처럼 포근해졌는데]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 이 노래뿐이라 이렇게 노래를 불러요.]

[어설픈 내 손을 잡아주세요, 그대여.]

[그대가 없다면 바보가 돼버리는 어리석은 나를 안아주세요.]

둘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로 꼭 닮은 미소를 머금고 카메라 너머의 팬들을 바라보았다.

원곡은 가난한 가수였던 이가 연인에게 고백하기 위해 만든 곡이었다.

하지만 오늘 하준과 힘찬은, 앞으로의 사계도 지금까지처럼 함께 보내자고 손을 내밀고 있었다.

자신들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러니 어서 손을 잡아달라고.

둘의 노래를 시작으로 뒤에 이어진 영빈과 경환의 노래도, 지환과 세빈의 노래도 같았다.

비록 세 곡 모두 다른 노래였지만, 하나같이 몽글몽글하고 포근한 노래였다.

도저히 화를 낼 수조차 없게 만드는, 잔뜩 삐죽삐죽 가시를 세웠던 마음을 어루만지는 노래들.

우리 괜찮으니까, 서로 의지하면서 다시 평소처럼 일상을 살자고 했다.

언제나 언래블의 행복을 빌었던 팬들은 달콤하게 달래오는 언래블의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저 못 이긴 척, 그들이 내민 손을 꼭 쥐고 두 번 다시 놓치지 않도록 조심하는 수밖에.

이렇게 언래블은 다시 한번 팬들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이 똥강아지들 진짜.”

영상을 확인한 소현 팀장은 기특한 마음에 촉촉해진 눈가를 휴지로 콕콕 찍어냈다.

언제나 멤버들을 믿었지만, 이렇게 훌륭하게 해내는 건 몇 번을 보아도 기특하다.

“안 되겠어.”

오늘은 멤버들에게 외식을 허락하기로 마음먹은 소현이 우진에게 연락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팬들도 달래고 맛있는 것도 먹게 된 언래블은 행복했다.

* * *

키스는 가스레인지를 노려보았다.

그저 평소처럼 라면이나 하나 끓여 먹을까 하고 일어났던 참이다.

배달시키기도 귀찮고, 배는 고팠고 세비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진도 없는 걸 보니 아마 다진을 끌고 외출한 모양이었다.

가영은 방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알 바 아니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가스레인지 앞에 선 키스는 끝내 버튼을 돌리지 못했다.

버튼을 돌리면 불꽃이 튀어나오는 게 당연하고, 물을 끓이려면 당연히 불을 켜야 했다.

하지만 가늘게 떨리는 팔이 그 간단한 행동을 거부하고 있었다.

“젠장.”

짧게 욕을 중얼거린 키스는 차라리 라면을 포기하기로 했다.

지금 억지로 불을 켜면 라면을 끓이기는커녕 냄비를 태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너무 놀라서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커다란 불을 본 건 키스도 처음이다.

캠프파이어도 아니고, 불이 있을 곳이 아닌 병실을 가득 채운 불꽃.

불이 위험하다는 건 누구나 어릴 때부터 배우지만, 그게 언제고 본인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건 간과하고 산다.

키스는 떨리는 팔을 다른 팔로 움켜쥐고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바로 도망갈 수 있는 안전한 위치에 있던 자신도 이 정도인데, 그 안에 갇혔던 더 어린 동생들은 어떨까.

지환은 취미가 요리일 정도로 자주 음식을 만들었고,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걸 좋아했다.

그랬던 애가 이제는 불을 다루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잠잘 때는 악몽조차 꾸지 않고 잠들었기에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가스레인지 불도 못 켤 정도로 겁먹은 자신을 깨닫자, 기분이 저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뭐야, 서서 뭐 해?”

“아무것도 아냐.”

온갖 생각에 좀먹혀가던 키스는 늘어지게 하품하며 방에서 나오는 가영 덕분에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청승 떨지 말고 앉아.”

“뭔 청승.”

가영의 눈길이 키스의 팔에 닿았다 떨어졌다.

황급히 팔을 뒤로 감춘 키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깊이 숨을 내쉬며 가영의 맞은편에 앉았다.

“율이 금방 올 거야.”

“형 어디 갔는데?”

그러고 보니 어디 간다고 보통 메모를 남기던 세비가 아무런 말도 없이 외출한 게 이상했다.

소파에 드러누운 가영은 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가스레인지 인덕션으로 바꾸자더라. 그거 알아보러 나갔어.”

“갑자기 왜?”

“그게 더 편하잖아. 겸사겸사 먹을 거 사 온다더라.”

키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가영은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답했지만, 그게 자신을 위한 배려임을 알았다.

자존심이 강한 키스가 가영에게 불이 무섭다고 말할 리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그저 일상 이야기를 하듯, 아무렇지 않게 전한 것.

키스는 아주 가끔 이럴 때마다 가영이 자신보다 연상이라는 걸 느끼곤 했다.

가영과 세비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들도 키스 못지않게 놀랐을 테고 두려웠을 터.

하지만 키스 앞에서는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키스는 그런 그들의 반응에 안도하면서도, 그만큼 자신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요정이 있었으니, 장로인 히노였다.

대부분 요정은 뒷수습에 투입되거나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포포와 히노는 잠시 이쪽 세계에 남아 사건 현장에 있었던 인간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었고, 그 경험이 각자의 삶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그 점을 염려한 포포와 히노는 그들이 괜찮아질 수 있도록 한동안 지켜보기로 했다.

머리 깊은 곳에 자리 잡았을 불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지워주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장로들의 능력으로도 순식간에 멀쩡하게 만들 수는 없다.

지성체의 정신은 무척이나 섬세하고 까다롭게 이루어져 있기에 섣부르게 건드리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부작용이 나타난다.

그래서 시간을 조금 들이더라도 천천히, 꼼꼼하게 어루만져 주는 게 안전하다.

얼마 후, 나머지 두 명이 집으로 돌아왔다.

먹을 것을 펼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인간 아이들.

그들을 지켜보던 히노는 앞발을 들어 허공을 콩콩 두들겼다.

히노의 털빛처럼 황금빛이 도는 갈색 방울이 허공에 마구 생겨나더니 멤버들의 머리에 닿아 녹아내렸다.

히노는 각자가 두려움을 이겨내려 애쓰는 아이들이 기특했다.

책임져야 할 일은 책임지고, 기특한 아이들에게는 상을 주는 것도 어른이 해야 할 일인 법.

트라우마가 사라질 때쯤이면, 아마 이들은 더는 감기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해지리라.

새벽을 그렇게 잠시 지켜본 히노는 금방 허공에 녹아 사라졌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윤혁아, 왜 그래? 입에 안 맞아?”

“아니, 그냥.”

갑자기 허공을 바라보는 키스 모습에 세비가 걱정스럽게 물어보았다.

“밥 먹어서 그런가, 기운이 좀 나서.”

돌아본 허공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키스는 갑자기 따뜻한 느낌이 든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이겠거니 하고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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