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445)화 (445/456)

445. BEcause(5)

‘계약자야, 언제 일어날 참이냐.’

잠결에 들린 포잉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더 가라앉아있었다.

포잉도 자다 이제 깬 건가?

눈을 뜨기 아쉬운 마음에 포잉을 꼭 끌어안고 꿈지럭거렸다.

‘조금만 더….’

‘깼으면 냉큼 일어날 생각은 안 하고!’

갑자기 쏟아진 포잉의 호통에 찔끔해서 눈을 뜬 순간.

낯선 천장과 낯선 촉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어제 병원에서 잠들었지.’

‘아이고, 내가 이런 놈을 계약자라고!’

놀라서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앉았더니 포잉의 한탄이 쏟아졌다.

쫑알거리는 포잉의 잔소리에도 잠기운에 파묻힌 정신이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비몽사몽 눈만 깜박이며 병실을 돌아보던 그때.

한쪽에 모여있던 우리 애들과 새벽 형들, 매니저 형들까지, 모두의 시선이 한 번에 꽂혔다.

어우씨, 무슨 공포 영화 같잖아….

뭐에 그리 놀란 건지 눈만 끔벅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그 시선에 눌린 나는 이불 속에서 손을 꼼지락거렸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 잘 잤어요?”

‘이, 이런 놈을 계약자라고….’

얼빠진 내 목소리에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신세 한탄을 하는 포잉.

무언가 울컥한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키스 형과 영빈 형.

빛이 들어온 것처럼 밝아진 찬이와 세빈이 얼굴 등.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온갖 표정이 떠올랐다.

필름이 느리게 돌아가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그 순간을 깨트려 모두를 현실로 불러온 건 역시나 우리 찬이였다.

“이놈시키야!”

“지환아!”

“야 이, 병아리야!”

“왜 이렇게 늦게 일어났어!”

잠시 침묵에 잡아먹힌 것 같았던 병실이,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지면서 생기가 가득 찼다.

어딘가 원망이 섞인 외침에 머쓱해져서 웃었다.

내가 그렇게 많이 잤나?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멤버들이 걱정한 것 같아 미안해졌다.

아무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이제 막 잠에서 깨서 그런지 기운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 공간 안에 모든 사람이 나를 기다렸다는 게 기분 좋아서 웃었다.

“저저, 일어나자마자 바보같이 웃는 거 보니까 멀쩡하네.”

“어휴, 저걸 내가 왜 걱정해 가지고.”

“저 오래 잤어요?”

가영 형과 찬이 투덜거림에 준이 형에게 물었지만, 형은 그저 웃기만 했다.

기껏해야 이제 밤이 됐을까 싶어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밖에는 해가 쨍쨍했다.

“아직 밝은데… ?”

멍청하게 중얼거리는 내 곁으로 잽싸게 다가온 세빈이.

우리 막둥이가 많이 놀랐나 싶어 다독여주려고 했지만, 세빈이가 더 빨랐다.

“형, 꼬박 하루 동안 잤어요. 괜찮아요?”

“하루?”

“그래, 인마.”

“무슨 잠을 그렇게 오래 자, 큰일 난 줄 알았잖아.”

순식간에 침대 주변을 둘러싼 모두가 한마디씩 내뱉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포잉, 내가 그렇게 오래 잤어?’

‘그래, 이 모자란 계약자 놈아.’

아직도 머리가 멍했다.

꿈에서 이상한 책을 좀 읽었고, 잠깐 건방진 꼬맹이랑 이야기했을 뿐인데.

멍하니 멤버들 얼굴을 바라보다 불현듯, 그 일이 떠올라 침대에서 내려가려 몸을 움직였다.

“너희 괜찮아? 형들은요? 안 다쳤어요?”

정신이 조금 돌아오자 당장 멤버들과 형들의 상태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어제 그 난리 통에 다친 사람은 없는지, 다들 많이 놀랐을 텐데 괜찮은지.

포잉과 포포가 잘 해결했다는 것도, 모두가 침착했던 덕분에 멤버들이 다치지 않은 것도 안다.

다만,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눈으로 확인해야 이 불안감이 사라질 것 같았다.

더군다나 반대쪽에 있었던 형들의 상태도 확인해야 했다.

먼저, 가장 가까이 있는 세빈이 얼굴을 붙들고 이리저리 확인하고는 한번 꼭 안아주었다.

제일 어린 우리 막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렇게 사람들을 확인하기 위해 주섬주섬 침대에서 내려가려던 나를 제지하는 손길이 있었으니.

“아서라. 얌전히 있어.”

이불을 치우려던 손길 그대로 키스 형에게 붙들려 다시 자리에 다시 주저앉혀졌다.

그 옆에서는 경환 형이 이불을 다시 끌어오려 내 품에 안겨주었고.

“형, 팀장님한테 연락드렸어요?”

“응, 바로 메시지 보냈다. 어휴, 이제야 한숨 놓겠네.”

아니, 왜들 이러는 거야?

어리둥절한 얼굴로 준이 형을 바라봤지만, 준이 형은 우진 형과 대화하고 있었다.

그저 하룻밤 푹 잤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조금 과했다.

그때 찬이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네 폰 여깄어.”

“그래, 누님한테 연락드려야지.”

“그새 기사 나갔어요? 누나 놀랐겠네….”

회사에서 잘 말해줬을 거라 믿지만, 그것과 별개로 누나가 많이 놀랐을 게 걱정스러웠다.

이제는 정말 사고뭉치로 낙인 찍혀도 할 말이 없다.

정작 내가 사고 친 건 없었지만.

일단은 푹 자고 일어났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전화할까 했지만, 끝내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하지만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핸드폰이 울기 시작했다.

“받아봐. 많이 걱정하셨을 거야.”

방금까지는 나를 둘러싸고 꼼짝도 못 하게 하겠다는 듯 굴었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흩어졌다.

“…허?”

사실 바로 통화하는 건 조금 부담스럽다.

이게 부담스러운 건지, 미안한 건지, 그도 아니면 아직도 어려운 건지 모르겠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아직 정리되지 않아서, 목소리를 들으면 울컥할 것 같아서.

그렇게 잠시 핸드폰을 내려다보다 조심스럽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 다 잤어?

대뜸 들려온 누나의 한마디에 와글와글 떠올랐던 온갖 단어들이 모두 깨끗하게 비워졌다.

한정식집에서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던 누나가 생각났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고자 긴 시간 애썼던 누나는 나보다 작았다.

그래, 누나는 내 가족이잖아.

애써 어떤 말을 꾸며내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인데, 나는 아직도 이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한 모양이었다.

“응. 푹 잤어. 이렇게 푹 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 어디 다친 데는 없다고 들었어.

“응. 조금 놀라긴 했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아무렇지도 않아.”

- 그래, 밥은?

“아직. 지금 눈떠서 입맛은 없는데….”

- 그래도 거르지 말고 밥 챙겨 먹어. 애들이랑 같이 있는 거지?

“응. 다 같이 있어.”

- 알았어. 나중에 또 통화하자.

담담한 목소리로 내 상태를 확인한 누나는 밥 챙겨 먹고 쉬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물끄러미 손안의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밥 굶지 말라고 말하는 누나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누나는 언제나 지환이에게 눈물을 감추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때보다 훨씬 더 자란 내 앞에서도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멤버들이나 회사 사람들 눈치 볼까 봐 서둘러 전화를 끊었을 누나가 눈에 훤했다.

미안하고 고맙고, 조금은 슬픈 기분이 들어서, 무어라 더 말할 수조차 없었다.

다음번에 만날 때는 꼭.

그래, 꼭 누나한테 고맙다고 말해야겠다.

먹먹한 기분을 꾸역꾸역 속으로 누르는 사이, 찬이가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왔다.

“이제 더 안 잘 거지?”

“응?”

“다 잤으면 밥 먹자. 누님도 밥 먹으라고 하셨잖아.”

편하게 통화하라고 떨어져 줘놓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나 보다.

누나가 밥 얘기한 걸 눈치챈 거 보면.

얼굴 가득한 걱정과 달리 말투는 투박했다.

나를 걱정해서, 그리고 누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아서.

방금까지 울렁이던 마음이 이렇게 또 한 꺼풀 가라앉는다.

기특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다가온 찬이 머리를 마구 헝클어주는 것으로 답했다.

“아, 왜 또!”

“그냥.”

통화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침대 옆으로 하나, 둘 다가온 멤버들과 새벽 형들.

평소처럼 찬이에게 장난치는 내 모습을 보고 난 후에야 다들 안심한 듯 표정이 밝아졌다.

‘포잉.’

‘왜 부름?’

‘나 진짜 많이 사랑받는 거 같아.’

‘그걸 이제 깨닫다니 역시 네놈은.’

퉁명스럽게 툴툴대면서도 꼬물꼬물 내 품 안으로 들어오는 포잉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쭈, 온종일 걱정이란 걱정은 다 시켜놓고 웃어?”

“그냥 좋은가 보지. 웃으니까 좋기만 하네, 뭐.”

가영 형이 툴툴거리며 내 뺨을 잡아 늘였고, 세비 형은 다정하게 말하면서도 가영 형을 말려주진 않았다.

“아흔데… 여?”

“늦게 일어난 벌이야.”

눈동자를 도르륵 굴려 멤버들을 바라봤지만, 누구도 나를 도와줄 생각은 없는 듯했다.

왜지…?

큰 사건을 잘 넘기고 푹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뭔가 억울했지만, 본능이 지금은 얌전히 있으라고 속삭였다.

아무래도 나도 모르게 잘못한 모양이다.

* * *

하준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을 깜박이는 지환의 모습에 속으로 혀를 찼다.

멍한 얼굴로 눈만 끔뻑거리는 걸 보아하니, 우리가 왜 이러는지 이해 못 하는 듯했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 없이 일이 잘 마무리되었다.

지환에게 처음 ‘각얼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각오했던 것에 비하면 무척 잘 정리된 편이다.

하지만 하준도 멤버들도, 다른 형들도 병실에 누워있는 지환의 모습이 싫은 거라는 걸 지환만 몰랐다.

다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데.

이 순해 빠진 동생은 그 문제만큼은 어떻게 안 되는 건가 싶어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우리가 타박하니까.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쩔쩔매면서도 그 투정을 다 받아주고 있었다.

어쩌면 고작 하룻밤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 시간 동안 속을 끓인 걸 생각하면 괘씸하기도 했다.

하지만.

약속하고 조심하겠다고, 몸을 아끼겠다고 다짐한 대로 이번에 얌전히 있었으니 슬슬 도와주기로 했다.

“자, 이제 그만하고 밥부터 먹죠. 환이도 슬슬 배고파질 텐데.”

사실 하준은 알고 있다.

이런 타이밍에 중재해줘야 지환이 더 자신에게 고마워한다는 것을.

가영은 눈치챈 듯 조그맣게 혀를 찼지만.

“역시 우리 준이 형밖에 없다….”

아무리 가영 앞이라 해도 하준은 동생들에게 자신이 가장 믿음직한 형이고 싶다.

지환뿐만 아니라 동생들 전부에게.

별거 아닌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처럼 보는 동생들.

가끔은 버겁다가도 결국엔 그 믿음에 응해주고 싶게 만든다.

뚱해진 가영을 은근슬쩍 세비에게 밀어버린 하준은 동생들에게 하나씩 할 일을 쥐여주었다.

이대로 가만히 뒀다가는 지환이 동생들에게 깔려서 찌그러질 것 같으니 뭐라도 시켜야 했다.

“세빈이는 환이랑 같이 이불 정리하고. 찬아, 너 간식 먹은 거 정리해야지.”

막내 둘에게 해야 할 일을 안겨주자, 경환은 어딘가 기대하는 눈으로 하준을 바라보았다.

“어, 음. 우리 경환이는 가서 마실 거라도 사 올래?”

“나랑 같이 가자.”

사실 경환에게 마땅히 시킬 게 없었지만 저런 눈을 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으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영빈이 나서서 경환을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

동생들 키우는 게 이렇게 쉽지 않다며 한숨을 내쉰 하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키스는 다른 사람들 몰래 웃었다.

그런 하준의 모습이 몹시 깜찍하지 않은가.

세비나 키스가 보기에는 하준도 아직 어리다.

그런데도 늘 동생들 앞에서는 듬직한 형처럼 보이려 애쓴다.

아마 하준도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는 굳이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될 터.

그때까지는 동생들의 귀여운 재롱을 즐기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신기한 기분이었다.

지환은 그저 잠들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하룻밤 사이 자신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가 잔뜩 날카로워져 있었다.

하지만 지환이 눈을 뜨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여태까지 알고 지낸 사람 중 이런 영향을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나 되짚어봤지만, 역시 지환뿐이다.

‘여러모로 신기한 애라니까.’

“내 새끼! 일어났다며!”

키스가 묘한 감상에 빠진 사이, 벌컥 병실 문이 열리며 소현이 뛰어 들어왔다.

“팀장님!”

달려 들어오는 소현을 향해 활짝 웃는 지환.

지환은 자기 사람에게는 미소도, 표현도 아끼지 않는다.

언제나 정말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온몸으로 힘껏 애정을 보여준다.

아마 저렇게 웃어주는 애라서.

그래서 다들 지환에게는 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게 아닐까 하고 키스는 생각했다.

‘정말 보고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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