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444)화 (444/456)

444. BEcause(4)

열과 성을 다해 설명했지만, 이 관리자라는 꼬맹이는 제대로 이해한 기색이 아니었다.

시종일관 머리 위에 떠 오른 물음표와 갸우뚱거리는 작은 머리통.

보기에는 무척 귀엽고 친절하게 대해주고 싶어지는 외형이었다.

물론 그보다 천만 배쯤 더 귀여운 포잉이 함께하는 나는 그런 겉모습에 속지 않았지만.

[질문해도 괜찮습니까?]

“네.”

‘덕질’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가 그 보상을 원하지 않는다는 건 이해한 듯했다.

얌전히 앉아있던 관리자는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커다란 안경알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는 지나치게 투명했다.

그런 아이의 눈동자가 나를 슬프게 했다.

황금이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색이었지만, 그 찬란한 색 위로 아무것도 비추지 못하는 탓이다.

바로 맞은 편에 있는 나조차 아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도 살 수 없다던 말이 생각났다.

[사용자의 설명은 객관적 지표로 삼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각각의 개체가 품은 감정은 통계 범위 내에서만 판단 가능합니다.]

나는 왜 소원 요정들이 지성체와의 여정을 중요시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나, 그게 사람이든 사람이 아니든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은 제대로 알기 어렵기 때문이리라.

간접 경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나는 따뜻한 온수 풀에서 내리는 눈을 맞으며 즐거워했던 멤버들이 떠올렸다.

적당한 온도로 데워진 물 덕분에 몸은 온기에 녹아내릴 것 같았다.

장난치느라 난장판이 된 우리를 피해 소파에서 혀를 차던 포잉이 기억난다.

항상 잔소리를 늘어놓던 포잉조차 그 순간에는 웃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에서는 한겨울 내뱉은 숨을 닮은 눈이 톡톡 떨어져 쌓인다.

하늘이 내쉬는 한숨 같다던 세빈이 표현이 무척 잘 어울리는 밤이었다.

그때의 행복은 어떤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경험한 사람만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다.

믿을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행복한 순간을 어떤 단어를 끌어와 적어 내린다고 알 수 있을까.

안타까운 마음을 꾹 누르고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내 얼굴을 바라보던 관리자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작은 입을 아주 잠시 열었다가 천천히 닫았다.

[본 관리자는 사용자가 만족할만한 보상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원합니까, 사용자.]

은은하게 반짝이던 금안이 뜻 모를 반짝임을 피워냈다.

“말하면 다 해줄 수 있어요?”

[대부분 가능합니다.]

관리자라는 이 아이는 어느 부분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즐거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용자가 다른 육체를 원한다면 변경해줄 수 있습니다. 전생의 삶을 이어가고 싶다면, 어렵지만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보란 듯이 관리자의 등 뒤로 여러 개의 스크린이 떠올랐다.

그 안에는 여러 모습의 내가 있었다.

실제 내가 아닌 ‘만약에’의 모습이.

실로 고약한 꼬맹이다.

남의 애라 때릴 수는 없지만, 머리통에 꿀밤 한 대 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표정에 변화가 없음에도 즐거워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장난치지 말고요.”

[본 관리자의 능력을 인지할 수 있도록 안내드린 예시입니다.]

곧 죽어도 지가 잘못했다는 말은 안 할 것 같은.

아, 진짜로 뒤통수 한 대만 때리고 싶다.

단순히 예시가 아니다.

어쩌면 간절할지도 모를, 머리 한구석에 꽁꽁 숨겨놓았을 그런 가정을 고약한 방법으로 찌른다.

“됐고. 내가 원하는 건….”

처음 보상 어쩌고 할 때부터 떠오른 건 단 한 가지였다.

“키 좀 크게 해주세요.”

자기가 벌인 장난질에 반응하지 않는 내 모습에 삐진 것 같았다.

은근슬쩍 입술 삐죽거리는 거 다 봤다.

[육체 변경을 원합니까?]

“아뇨, 제가 키가 너무 안 커서 그게 고민이거든요. 어떻게 된 게 우리 막둥이보다 작을 수가 있는지. 제가 지금 177cm인데….”

[사용자의 신체 측정 결과 176.8cm로 확인됩니다.]

“아, 진짜! 반올림 몰라요? 프로필 키랑 실제 키 다른 건 다들 그렇게 하는 거거든요?”

나도 모르게 발끈했지만, 다행히 금방 진정할 수 있었다.

이전보다 조금 더 자란 것 같다는 말을 듣고 기뻐서 키를 재봐도 내 키는 늘 고만고만하다.

약간이지만 근육이 붙고, 자세가 더 반듯해지면서 키가 큰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을 뿐이었다.

가뜩이나 덩치도 작아서 멤버들 사이에 있으면 내 키보다 더 작아 보인다.

억울했다.

왜 안 크는데? 근육은 왜 안 붙는 거야?

포잉에게 하소연해봤자 하찮다는 시선으로 보기만 할 뿐.

그렇다면 이런 기회가 왔을 때, 키라도 커야 할 것 아닌가.

[사용자는 과도한 충격 탓에 불안 증세가 생긴 것으로 판단됩니다. 충분히 고민 후 답변 부탁드립니다.]

꼬맹이가 진지하게 나보고 미친 거냐고 물었다.

“나 되게 정상이고, 지금 엄청 진지하게 말하는 건데요?”

[생명체가 불에 공포를 가지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본 관리자는 이해합니다.]

“아니라니까요?”

[30일의 생각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고민 후 관리자 호출 부탁드립니다.]

이 빌어먹을 꼬맹이는 나를 좀 모자란 사람 취급하더니,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아니…!”

[사용자의 정신적 안정을 위해 수면 상태로 되돌립니다.]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

꼬맹이는 자기 할 말만 하더니 불쑥 손가락을 뻗어 내 이마를 톡 쳤다.

깊은 구덩이로 빨려 들어가듯 순식간에 의식이 멀어졌다.

욕을 한 바가지 쏟아주고 싶었건만, 이렇게 아픈 사람 취급받고 쫓겨나다니.

그렇게 죽은 듯한 잠에 빠진 내 기억의 마지막은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는 꼬맹이의 입술이었다.

무척 즐거운 듯 보여서 더 얄미운.

* * *

“지환이는 왜 안 일어나요?”

지환이 꿈속에서 모자란 사람 취급받는 사이, 현실에는 난리가 났다.

처음에는 멤버들 모두가 죽은 듯이 한참 동안 잠들어 있었기에 괜찮았다.

다들 몇 시간 동안 자더니 하준부터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깊게 잠들었을 즈음, 좁은 침대에서 낑겨자던 멤버들을 우진과 종범이 새벽의 도움을 받아 옮겼다.

제일 마지막에 눈뜬 건 역시나 경환과 세빈.

힘찬은 일어나자마자 배고프다고 도시락을 먹어 치우더니 어슬렁거리며 맏형들을 괴롭혔다.

지켜보던 사람들도, 일어난 사람들도 그 사건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멤버들을 흘깃거리며 바라볼 뿐.

하지만 평소라면 금방 일어났을 지환이 모든 멤버들이 일어난 후에도 눈뜨지 않았다.

이상함을 감지한 우진이 곧바로 의사를 불렀지만, 잠들었을 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외부 대응으로 혼이 나갈 정도로 바쁜 와중에도 소현과 정윤은 틈틈이 병실을 확인했다.

멤버들이 눈뜨면 배고플 거라고 미리 도시락을 챙기도록 한 것도 소현이었다.

그러나 저녁 시간이 되어도 눈뜨지 않는 지환의 모습에 병실 분위기는 점점 무거워졌다.

“원래도 저질 체력이라 많이 자나 봐. 그동안 못 잤잖아.”

세비가 애써 멤버들을 다독이며 불안을 걷어보려 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멤버들 눈에는 조금씩 두려움이 고이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몇 번이나 지환이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지금 잠들어 있는 모습이 마치 그날 같아서.

그날.

지환이 무단 외출했다가 교통사고 났던 그 날.

그때는 다행히 하룻밤 후에 눈을 떴다.

이번에도 그렇게 조금 더 많이 자고 일어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불안했다.

“쟤는 배도 안 고픈가.”

“자는 동안에 배고픈 걸 어떻게 알아, 인마. 일어나야 배고픈 걸 알지.”

“아닌데? 난 자다가도 배고프면 눈이 번쩍 떠지던데?”

힘찬은 부러 툴툴거리며 침대 주변을 기웃거렸다.

“피곤했을 거야. 차라리 푹 자게 두자. 환이는 쉴 시간이 필요했을 거야.”

하준은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멤버들을 다독였다.

그런 하준조차 지환이 덮고 있는 이불을 보고 있었다.

이불이 미미하게 오르내리는 아주 작은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새벽 멤버들은 그제야 흘려들었던 교통사고를 떠올렸다.

그들의 기억 속 지환은 늘 눈을 반짝거리는 작은 병아리였다.

함께하는 동안 꽤 여러 가지 일이 있었고, 그때도 늘 크게 걱정했다.

다만, 전해 듣기만 했던 일을 두 눈으로 보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일어나면 가만 안 둔다, 병아리.”

“아서라. 가뜩이나 곯았는데 더 살 빠지면 진짜 뼈밖에 안 남겠어.”

“누가 굶긴대? 못 먹는다고 울 때까지 고기 먹일 거야.”

“형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로 살이 빠지지 않을까?”

가영이 복잡한 마음을 숨기며 투덜거리자, 세비와 키스가 평소처럼 그런 가영을 툭툭 건드렸다.

그렇게라도 평소와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늘 뽀짝거리던 병아리들조차 분위기가 더 어두워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하물며 자신들은 그들보다 형이다.

“얘들아, 너희도 오늘 하루 정도는 병원에서 자는 게 어때. 내일 검사도 받고.”

지친 얼굴로 소현이 병실로 돌아왔다.

내내 기자들에게 시달렸을 게 뻔했다.

정윤은 병실로 오지도 못했다.

대외적인 일을 처리하느라 지금은 사무실에서 옴짝달싹 못 한다고 들었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요. 애 일어나는 건 봐야죠.”

“간병은 우리가 돌아가면서 할 테니까 가서 좀 쉬어. 너희도 놀랐을 텐데.”

소현은 불타던 그 현장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매니저들과 새벽은 불구덩이에서 나오지 못하는 애들을 직접 두 눈으로 봤다.

그건 단시간에 잊힐 기억이 아니다.

정윤은 그들을 위한 상담도 준비해야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뜻을 소현에게 전하기도 했다.

소현은 당장 달려오려는 멤버들의 가족을 일일이 찾아가 진정시키고 다독이느라 진이 다 빠졌다.

사방에서 기자들이 숨어있는 상태라 병원에 오시면 무척 귀찮게 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애써 납득시켰다.

모두가 무사함을 충분히 설명했고, 일어나면 바로 연락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몇 번이나 약속했다.

눈을 뜬 멤버들은 우진에게 상황을 전해 듣고 바로 가족에게 무사함을 알리기도 했고.

그나마 이 상황에서 좋은 소식이라고 할 만한 건, 세빈이 아버지와 통화했다는 것이다.

세빈의 아버지는 애써 침착하게 ‘무사하면 됐다’고 했지만, 목소리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그런 아버지를 처음 본 세빈이 횡설수설하고 당황한 건 덤이고.

그렇게 조금씩 시간이 흘러 별이 높게 뜬 시간.

하나, 둘 다시 잠든 멤버들과 옆 병실에서 잠자리에 든 새벽 멤버들.

다른 병실을 내어준다고 했지만, 극구 간병인 침대에서 잠을 청한 매니저들.

병간호를 자처하던 소현조차 피로에 찌들어 의자에 기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계약자야, 언제까지 잘 참이냐.’

기운을 모두 회복하고 깨어난 포잉은 여전히 잠들어 있는 지환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지환의 꿈속으로 들어가 보려다 막힌 포잉은, 곧 그것이 시스템의 개입임을 알아챘다.

지환만 무사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했지만, 가슴 한쪽에는 미약한 불안감이 남아있다.

이제는 지환이 자신의 시야에서 벗어나면 불안하다.

시스템에 관해서는 포잉도 아는 게 드물다.

배우는 건 사용법뿐.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건지 제대로 알려진 것들이 없다.

극히 일부의 존재들만이 개발자를 알고 있다지만, 전에는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어차피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계약자와 함께 지내는 동안 시스템이 얼마나 불친절하고 제멋대로인지 포잉도 느꼈다.

그러면서 개발자에 대한 불신도 점점 높아져만 갔고.

그래서일까, 이제 와서 시스템이 개입한다는 게 못마땅하다.

이럴 거면 그 전에 지환이 고생할 때나 도와주든가.

게다가 자신의 계약자인데 자신 모르게 둘이 이야기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잔뜩 불퉁해진 포잉이 앞발로 잠든 지환의 팔을 톡톡 치면서 투덜거렸다.

‘네 놈은 나를 두고 도대체 얼마나 신나게 수다 떨고 있는 거임? 빨리 일어나라, 이 계약자 놈아.’

포잉도 지환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척 많은데, 한참 동안 눈뜨지 않는 계약자가 못마땅하다.

반듯하게 눕혀진 지환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포잉은 다시 이불 속으로 꾸물꾸물 파고들었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지환의 팔 사이에 억지로 몸을 비집고 누웠다.

그때, 지환의 팔이 자연스럽게 포잉의 몸을 감쌌다.

‘님, 일어남?’

반가운 마음에 외쳐보았지만, 무의식중에 한 행동이었다.

아직 잠들어 있다는 걸 확인한 포잉은 한숨을 폭 내쉬며 팔에 머리를 기댔다.

‘이번은 봐주겠음.’

잠결에도 포잉을 찾아 끌어안는 점이 기특했으니 용서하기로 했다.

깊은 밤은 유유히 흘러갔고 새로운 아침이 조용히 밝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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