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434)화 (434/456)

434. 한 발짝 두 발짝(4)

“둘, 셋! 안녕하세요! 함께 풀어나갈 미래 언래블입니다.”

“언래블입니다!”

잠옷을 입고 팀 구호를 외치는 건 카메라가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나로서도 쑥스러웠다.

우리 솜뭉치들이 이 광경을 보고 있을 텐데.

괜히 열이 오르는 것 같아 뺨을 문질렀다.

“언래블과 함께하는 파자마 파티! 다들 파티 준비했어요?”

“저희는 각자 좋아하는 과자랑 치킨을 준비했어요!”

“치킨!!”

한 마리 짐승과 우리 애들이 신나서 외치고 있었다.

치킨 앞에서 자꾸만 짐승이 되는 찬이를 어쩌면 좋아, 진짜.

화사하고 노랑노랑 한 잠옷을 입은 찬이는 부끄럽다고 가희 누나한테 땍땍거리던 모습은 없어졌다.

신나게 먹을 생각에 들떠있을 뿐.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저 허허 웃는 사이 준이 형이 난장판을 뚫고 오늘 콘셉트를 설명하고 있었다.

“미리 말씀드렸던 것처럼 다 같이 웃고 떠드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준비했어요.”

이전 영상과 잠옷이 다르다며 새로 산 건지, 아니면 이것도 새벽 형들의 선물인지 묻는 말도 있었다.

“형들 선물은 아니고요. 네, 새로 장만했습니다. 저희 잠옷 엄청 많아요.”

이상한 부분에서 뿌듯해하는 경환 형.

솜뭉치들에게 자랑하듯 자기 잠옷을 들고 팔랑거렸다.

들썩이는 옷자락 너머로 살이 보이기에 살포시 옷을 눌러주었다.

내 손을 떼 달라는 말이 채팅창으로 올라왔지만, 우리 형을 지키기 위해 방긋 웃고 말았다.

이 곰돌이 형아는 그런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며 무슨 일이냐고 되물었고.

그사이 영빈 형이 다른 질문을 찾아 읽었다.

“잠옷 색이요? 아, 네 맞아요. 저희 저번 미션 영상 룰렛이요….”

지난번 미션 영상 촬영 막판에 갑자기 감독님이 우리에게 룰렛 판을 내밀었었다.

그게 뭐냐는 우리 질문에 다음에 입을 의상 색이라길래 그러려니 했는데 잠옷일 줄은 몰랐다.

내가 상상한 최악의 결과물은 전대물 같은 전신 타이츠 의상이었으니 이 정도면 선빵한 셈.

그래도 나는 무난한 흰색이라 다행인데, 찬이는 정말 노랑 병아리 같았다.

경환 형은 분홍색 잠옷을 마음에 들어 했으니 벌칙이라 보기 어려웠고.

“우리 세빈이 보라색도 잘 받죠? 애가 귀하게 생겨서 이런 색도 잘 어울리나 봐요.”

“형, 그런 말 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경환 형을 마크하고 나서 쿠션을 껴안고 채팅창을 멍하니 보던 세빈이.

내가 슬그머니 옆에 다가가 와락 껴안으며 말하자 얼굴을 붉혔다.

평소 다른 프로그램 촬영 때는 부끄러운 것도 잘 버티면서 꼭 솜뭉치들이랑 마주할 때는 부끄러워했다.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만 더 쑥스러워하는 막내라니.

활짝 웃으며 세빈이를 예쁘다 예쁘다 우쭈쭈하는 사이 준이 형이 찬이 뒷덜미를 잡아끌고 왔다.

“원래 숙소에서라면 침대에서 뭐 못 먹게 하는데, 오늘은 그런 분위기니까 그냥 먹는 거예요.”

어떤 솜뭉치가 평소에도 침대에서 자주 노냐는 질문을 했고, 준이 형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러그에 과자 부스러기 흘리는 것도 질색했고, 같은 의미로 침대에서도 무언가 먹는 건 용서할 수 없었다.

준이 형도 잠자리에서는 뭘 못 하게 하는 편이고.

덕분에 우리는 과자 먹을 때도 전부 거실에 모여 상을 펴고 거기서 먹었다.

“여러분, 침구류나 피부에 닿는 것들은 청결하게 유지해줘야 해요. 여러분의 건강과도 연결되는 일인걸요.”

진지한 얼굴로 솜뭉치들에게도 아프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했지만, 어째서인지 다들 흐린 얼굴을 한 것 같았다.

얼굴이 보일 리 없는데 이상하게 텍스트에서 솜뭉치들의 표정이 보인 것 같았다.

“얘 잔소리 너무 심해요….”

“그건 네가 자꾸 몰래 침대에서 과자 먹다가 부스러기 다 흘려서 그렇잖아.”

“아니야!”

찬이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불쌍한 척해보았지만, 우리 모지리의 불쌍한 척에 속는 건 솜뭉치뿐이었다.

조목조목 최근 우리 찐빵의 실수를 틀어놓기 시작하자 이상한 비명과 함께 귀를 막으며 바닥을 굴렀다.

“바닥이 푹신해서 다행이네요.”

“좀 덜 푹신해도 괜찮을 뻔했어요.”

경환 형이 꿈틀거리는 찬이를 발로 슬쩍 밀어버리자, 세빈이가 냉정하게 평했다.

저 형은 좀 아파봐야 한다면서.

말은 저렇게 해도 찬이가 아팠을 때 얼마나 안절부절못했는지 아는 나는 그저 흐뭇하게 웃었다.

“자, 이거 먹으면서 하자. 얘들아.”

“네엡!”

“얍! 치킨!”

언제 바닥을 굴렀냐는 듯 준이 형이 먹을거리가 차려진 상으로 부르자 벌떡 일어나서 옆에 앉았다.

그 모습을 어처구니없다는 듯 지켜보던 세빈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솜뭉치들, 봤죠? 찐빵 형이 저래요.”

“나 이제 찐빵 아니야! 볼살 다 빠졌어!”

치킨 닭 다리에 손을 뻗던 찬이는 냉큼 세빈이 말에 반박하며 얼굴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꽃받침을 했다.

“여러분, 이럴 때 하나라도 더 먹는 게 이득이에요.”

막내들의 고군분투를 흘려보내며 자리에 앉은 내가 솜뭉치들에게 속삭였다.

“형, 그거 퍽퍽 살이야.”

“아, 감사.”

“애들이 닭가슴살에 지쳐서 그런가 퍽퍽 살을 별로 안 좋아해요.”

경환 형이 집으려던 부위를 대신 가져오고 형에게는 날개를 넘겼다.

그런 우리 모습에 준이 형이 피식거리며 솜뭉치들에게 설명해주었다.

“전 퍽퍽 살 좋아해요. 그래서 저희는 닭 다리로 싸울 일은 없어요.”

“저도 아무거나 그냥 집히는 대로 먹는 편이거든요.”

“얘들아, 그만 싸우고 와서 이거 먹어.”

순살을 좋아했지만, 이번에는 뼈가 있는 치킨이었다.

그 사실이 조금 슬펐지만, 닭 다리를 들고 좋아하는 찬이를 보니 좋은 게 좋은 거로 생각하기로 했다.

“늘 이런 난장판을 솜뭉치들에게 보여줘서 어떡해요.”

세빈이가 내가 쥐여준 닭 다리를 들고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괜찮아. 솜뭉치들은 이런 우리도 좋아해 줄 거야.”

어디 치킨이냐는 질문과 어떤 모습이든 좋다는 말이 뒤섞여 채팅창에 올라왔다.

메시지 사이에 회사 괜찮은 거냐는 질문도 있었지만, 우리 모두 그 질문은 못 본 척했다.

소현 팀장님에게 최근 안팎으로 회사 관련해 여러 루머가 돌고 있지만, 믿지 말라는 설명을 이미 들은 터였다.

화재 사건, 교통사고, 갑작스러운 몇몇 직원의 퇴사와 그 외 여러 트러블.

갑자기 몰아치듯 생기는 사건·사고에 다른 분들 얼굴에 다크서클이 진해졌다.

더불어 우리는 그 일이 ‘각얼음’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누가 장난질 쳐놓은 것처럼 갑자기 일이 몰아친 거니까.

얼마 전, 멤버들에게 그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모두가 진지한 얼굴로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던 그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상하게 우리 애들 앞에서는 자꾸만 울게 됐다.

긴장을 조이며 살다가도, 자꾸 옆에 붙어서 같이 살아가자고.

우리 다 같이 힘든 것도 슬픈 것도 다 이겨내고 함께 행복해지자고 하는 통에 버틸 재간이 없었다.

무작정 쏟아지는 애정에 기대고 싶고, 상처 주기 싫어서,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싶어진다.

이렇게 약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사람을 믿다가 배신당한 것도 여러 번이었고, 때로는 간신히 용기 내 건넨 신뢰가 먼지보다 가볍게 취급되기도 했었다.

그때부터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믿지 않으려 했는데.

좋아하는 것과 이것은 별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일을 겪었다는 말에 세빈이는 잔뜩 울상이 되어 말했다.

‘형은 무서운 거 못 보는데 그런 거 때문에 힘들어서 어떡해요….’

같이 본 첫 영화를 공포 영화로 골랐던 막내가 이런 말을 했다.

준이 형과 영빈 형은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혼자 끙끙거리느라 고생했어. 이제 괜찮을 거야.’

나랑 비슷한 수준으로 공포물을 싫어하는 두 형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건 두려움보다는 슬픔이었다.

사실 이제는 그들의 정체를 알기에 무섭지 않았다.

포잉이 지켜줄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하지만 갑자기 터져 나온 눈물에 그동안 혼자 무서워했다고 생각한 멤버들은 모두가 허둥지둥 내 곁으로 붙어왔다.

커다란 강아지들이 주변을 맴돌며 낑낑거리는 것 같아서 눈물이 쏙 들어갈 정도였다.

계속 괜찮을 거라고, 다 같이 어떻게든 해보자고 이야기해줬다.

경환 형, 찬이와 세빈이는 자신들은 귀신 안 무서우니까 대신 싸워주겠다고 했다.

귀신을 어떻게 때리냐는 영빈 형의 타박에도 자기들이 본 영화 얘기를 하는 막내 라인 때문에 결국 마지막에는 웃어버렸다.

우리 애들이 이런 애들이었다.

한없이 자기 사람에게 약하고 다정한 사람들.

포잉은 그것 보라며, 자기 말이 맞지 않냐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렸지만, 그것만은 또렷하게 보였다.

이번에도 우리 요정님의 말이 옳았다.

우리 애들은 이런 나라도 한결같이 믿고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앞으로 그런 일이 있으면 절대 숨기지 말고 다 말해달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하던 멤버들.

그리고 다음 날은 우진 형에게 불려가 혼났다.

왜 형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느냐고.

종범 형이 다 말한 듯해서 슬쩍 흘겨봤지만, 자기는 어쩔 수 없었다며 모른 척을 했다.

몇 번이나 우진 형에게 앞으로는 꼭 다 말하겠다고 약속을 한 다음에야 풀려났다.

과분할 정도로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는 건 무거운 만큼 아늑했다.

내가 무엇을 해도 이해해줄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니까.

“왜 먹다 말고 그렇게 웃어?”

경환 형이 치킨을 먹다 말고 피식거리며 웃는 나를 바라봤다.

“그냥요. 우리 멤버들이 좋아서요.”

“나도! 나도 우리 형들 좋아요.”

내가 말하자마자 냉큼 자신도 우리가 좋다고 말하는 세빈이.

“얘들아, 솜뭉치들이 자기들도 좋아한다고 따돌리지 말아달래.”

“왜 솜뭉치 따돌리고 그러냐!”

“최찐빵, 너는 조용히 해.”

너무 우리만의 세계에 빠졌는지, 준이 형이 채팅창의 메시지를 읽어주었다.

“우리는 당연히 솜뭉치들 엄청 엄청 좋아하죠! 경환 형!”

“응.”

사전에 짜기라도 한 건지 둘이서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카메라를 향해 애교스럽게 흔들었다.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드는 세빈이 옆에 희미하게 웃으며 하트를 만드는 경환 형.

내게는 혼란한 조합이었지만, 솜뭉치들은 기쁜 모양이었다.

“여러분이 좋으면 됐어요…. 하하.”

“환아, 대사에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1g쯤은 들어있을걸요?”

영빈 형의 장난을 잘 넘기고 혼란스러운 상 위를 주섬주섬 치웠다.

방송 중에도 이렇게 잘 먹는 우리 애들이라니.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치킨은 이미 뼈만 남기고 대부분 사라졌다.

“솜뭉치들이 오해하겠다. 우리 못 먹고 다니는 줄 알겠어.”

“여러분, 절대 저희가 평소에 굶는 건 아니에요.”

라이브는 이전과 달리 특정 내용을 정해두고 진행하지 않았다.

정말 평소 저녁 시간처럼 누구나 말을 하고, 장난치고, 먹고, 바닥을 굴렀다.

그 와중에 용케 오디오가 덜 겹치도록 서로 조절하고 있는 게 기특했다.

우리 애들도 이제 방송인이 다 됐구나.

흐뭇한 마음에 물티슈를 챙겨서 멤버들 손에 쥐여주었다.

“자, 다들 깨끗하게 닦고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세빈아, 거기 말고 손등에.”

이미 말끔해진 맏형들이 손을 닦는 막내 라인을 도왔다.

덕지덕지 양념을 묻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튄 건 어쩔 수 없었다.

“누워도 돼요?”

“먹고 바로 누우면 위에 안 좋아. 안돼.”

찬이 질문은 준이 형의 단호한 답에 가로막혔다.

그 옆에서 슬그머니 누우려던 경환 형도 몸을 일으켰다.

영빈 형은 그 모습에 이마를 감싸 쥐었다.

이런 난장판조차 좋은 건지 솜뭉치들의 채팅창은 ‘ㅋㅋㅋ’으로 도배되고 있었다.

“내가 다 부끄러워서 진짜.”

내 옆에 얌전히 앉은 세빈이의 말에 갑자기 나까지 부끄러워졌다.

솜뭉치들, 미안해요. 이런 애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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