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411)화 (411/456)

411. 괜찮아도 괜찮아(1)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배 도착일.

당일 출고라고 쓰여 있던 문구에 걸맞게 새벽에 주문하자 그날 바로 출고됐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택배 기사님 연락을 기다리다 물건이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상자를 뜯었다.

“뭐야? 뭐 시켰어?”

“또 홍삼이야?”

“아니야!”

워낙 홍삼을 물처럼 들이켜며 버티는 삶을 살다 보니 멤버들은 내 택배가 다 홍삼인 줄 알았다.

“웬 고양이 간식이야?”

“가끔 산책할 때 보니까 근처에 예쁜 고양이가 있더라고. 나중에 만나면 주려고.”

사생들의 위험 때문에 잘 나가지 않는 내가 그런 말을 하니 찬이가 의심스럽다는 듯 바라봤다.

찐빵 주제에 예리하기는.

“너 잘 나가지도 않잖아.”

“가끔 나가.”

러그나 침대를 벗어나면 녹아버리는 거 아니었냐며 쿡쿡 찔러대는 찬이를 발로 밀어버렸다.

그런 내 편을 들어준 건 경환 형.

준이 형이나 경환 형은 내가 가끔 생각 정리한다고 외출하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는 되도록 홀로 움직이지 않았고, 외출해도 꼭 서로에게 움직임을 다 알렸다.

숙소를 습격당했던 사건과 늘 우리를 지켜보는 진득한 시선들을 알기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망둥이의 난동은 우리에게 큰 상처를 남겼지만, 다행히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런 일들이 있다 보니 회사도 형들도 꼭 우리 위치를 확인했다.

“뭐 그리 고민이 많아서 혼자 산책하러 나가, 위험하게.”

“보통 10분 이내로 돌아오니까.”

찬이는 답지 않게 진지한 얼굴로 되도록 혼자 나가지 말라고 했다.

그런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머리를 헝클어주었다.

물론 당사자는 애 취급하지 말라고 구시렁거렸지만.

그러면서도 손은 쳐내지 않고 얌전히 쓰다듬을 받는 게 또 찬이 다웠다.

워낙 사람의 온기를 좋아하는 애니까.

세빈이가 저도 쓰다듬어 달라고 매달려와서 또 쓰다듬어주고, 경환 형이 쳐다보길래 경환 형도 쓰다듬어주고.

그걸 지켜보던 영빈 형이 너네 뭐하냐고 어이없어하길래 우리가 모두 달려들어 영빈 형을 쓰다듬어줬다.

그 꼴을 지켜보던 준이 형은 영빈 형을 향해 다정하게 웃으며 ‘바보’라고 중얼거렸다.

발버둥을 치다 찬이한테 깔려서 허우적거리는 영빈 형이 불쌍했지만, 오늘은 모른 척하기로 했다.

그 와중에 경환 형은 세빈이 뺨을 조물딱거리려다 등짝을 얻어맞고 얌전해졌다.

오늘도 참 평화로운 시간이라 ‘하하’하고 웃고는 유유히 간식을 챙겼다.

그 몰골을 전부 지켜보던 포잉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그러면서도 간식에 시선이 꽂혀있는 걸 놓치지 않았다.

간식을 고르면서 포잉에게도 의견을 물었던 보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혀를 차던 포잉.

하지만 다채로운 간식의 바다를 구경하더니 조금씩 옆에서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비린 것보다는 고기가 좋다는 말을 덧붙이거나, 아무래도 씹는 맛이 있는 게 좋지 않겠냐는 둥.

생각보다 우리 요정님은 까다로운 기준을 갖고 있었다.

포잉에게 사람의 음식도 먹어도 되는지 물었더니 전혀 상관없다고 했다.

어차피 영양분을 섭취해서 유지하는 몸이 아니니 음식을 먹는 건 그저 하나의 유흥이라고.

중급 이상의 요정들은 여러 차원을 돌아다니며 각 차원의 별미를 맛보는 낙을 가지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 것과 비슷한 연계로 단순한 인간계의 독은 통하지 않는다고.

그런 몸인 덕분에 계약자를 대신해 음식을 기미 하기도 한다고 했다.

다만, 정령에게도 통하는 독에는 어느 정도 영향이 있다고.

포잉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걱정된 내가 그런 독이 이 세상에도 있는지 물었다.

그때 포잉은 골똘히 고민하다 어렵사리 대답을 내놓았다.

사실 독이라기보다는 연금술이나 마법, 주술 등의 방법이라고 했다.

그게 물질에 깃들어 독처럼 역할을 하기에 독이라 부를 뿐.

그러면서도 그런 상황의 대처도 배우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했다.

인간이고 요정이고 배움에는 끝이 없다 싶어 포잉과 나란히 한숨을 내쉬었었다.

이놈의 공부 그만하고 싶다….

그렇게 포잉과 오붓한 지름의 시간을 보낸 후 미리 멤버들에게 할 거짓말을 준비해두었다.

포잉 간식을 위한 변명거리와 상황.

갑자기 나간다고 하면 멤버들이 걱정할 테니 적당한 핑계도 필요했고.

거짓말을 한다는 건 조금 미안했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를 달랬다.

포잉과 미리 말을 맞춘 덕분에 간식 일은 그렇게 별 탈 없이 흘러갔다.

“근데 어떻게 생긴 고양이야? 나도 고양이 보고 싶은데 사람 잘 따라?”

간식을 잘 넘겼다 했더니 영빈 형이 포잉에게 관심을 가졌다.

본가에서도 반려묘를 키우고 있다 보니 여러모로 관심이 생긴 듯했다.

처음에 세비 형과 친해진 것도 반려묘 덕분이었으니까.

“잘 따르진 않는 것 같아요. 가끔 간식을 챙겨주긴 했는데 모르겠어요.”

“간식보다는 밥이랑 물을 챙겨주는 게 낫지 않아?”

“주변에 캣맘, 캣대디 있는지 근처에 급식소 몇 군데 보이더라고요.”

내가 고양이에 관심을 보이자 형들은 근본적인 문제들을 걱정했다.

간식보다는 밥이 낫지 않겠냐고.

영빈 형뿐만 아니라 준이 형도 본가에서 반려견을 기르고 있다 보니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미리 준비한 대답으로 겨우 형들의 걱정을 달래준 후, 간식을 챙겨 방으로 옮겼다.

“저 한 바퀴 둘러보고 올게요.”

“나도 같이 가.”

“안돼. 냥이가 다른 사람 오면 자꾸 도망간단 말이야.”

“너무해….”

간식 몇 개를 챙겨 바지 주머니에 챙기자 찬이가 들러붙었다.

눈빛을 보아하니 세빈이도 나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준이 형과 경환 형은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

“너무 늦어서 위험해. 나중에 나가.”

“늦었으니까 사생이 없지 않을까요? 잠깐 한 바퀴만 둘러보고 올게요.”

아주 가끔 우리끼리 편의점을 간다고 나가긴 했다.

그런 것들을 고려해도 형들은 불안한 눈치였다.

“조심해서 나갔다 올게요.”

내가 물러설 기미가 없자, 맏형들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흐물흐물하지만, 내가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

그렇게 작은 승리를 얻어낸 나는 모자를 눌러쓰고 씩 웃었다.

“금방 올게요.”

“핸드폰 챙겼지?”

“그럼요.”

걱정을 놓지 못하는 준이 형은 핸드폰을 물었고, 난 주머니를 툭툭 쳐 보였다.

“그래, 조심히 오고. 혹시 이상한 낌새 보이면 바로 연락해.”

핸드폰에는 특정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지정 상대에게 메시지가 전송되는 기능이 있다.

짧은 녹음본을 포함해서.

우진 형은 그 기능을 우리에게 알려주며 미리 번호를 등록해두도록 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미리 대비해둬서 나쁠 건 없다면서.

그걸 염두에 둔 반응이라는 걸 알기에 가만히 웃으며 현관문을 나섰다.

그리고 그런 내 뒤를 따라 걸어 나온 포잉.

사실 내가 믿는 건 포잉이었다.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포잉은 알 수 있으니까.

‘포잉, 근처에 사람 없는 곳으로 가자.’

‘차라리 옥상이 낫지 않음?’

‘고양이가 이 건물 옥상에 들어올 수가 없으니까 그렇지.’

투덜거리며 주변을 살피던 포잉이 숙소 건물에서 가까운 골목을 가리켰다.

가로등이 있으니 많이 어둡지도 않고, 거리도 저쯤이면 괜찮을 것 같다고.

그렇게 종종걸음으로 들어간 골목.

기대에 찬 눈으로 포잉을 바라보자 가볍게 혀를 차던 포잉이 실체화를 사용했다.

갑자기 나타나면 혹시라도 누가 보고 이상하다 여길 거라며 조금 떨어진 곳에 숨어서.

그렇게 실체화한 포잉이 내 쪽으로 타박타박 걸어왔다.

정말 이상한 광경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 곁으로 다가오는 포잉의 모습에 조금씩 무게감이 느껴졌다.

평소 포잉은 투명하진 않지만, 어딘가 색이 옅은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눈동자의 또렷함이나 은하수 같은 색채에 비하면 털빛이 옅다는 느낌을 내내 받아왔다.

그런 포잉의 색이 진해지면서 몸에 분명한 선이 생기는 것 같았다.

몸을 둘러싸고 한층 진한 경계선이 그려지는 것처럼 털빛이 짙어졌다.

짧은 찰나의 순간, 요란한 빛이나 소리 없이 그렇게 또렷해진 포잉이 내 앞에 앉아있었다.

‘포잉?’

‘오냐, 계약자 놈아.’

이 미묘하고 이상하게 벅찬 기분을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웠다.

찬이 놀릴 때는 그렇게 매끄럽게 굴러가던 혓바닥이 뻣뻣하게 굳은 느낌.

‘포잉, 그냥 울어보면 안 돼?’

일반 고양이처럼 울어보면 안 되냐는 말에 포잉의 조그만 얼굴이 왈칵 찌푸려졌다.

‘뭐?’

‘아니, 그냥. 뭔가 기분이 이상해서.’

우물쭈물하는 내 모습이 못마땅했던 포잉이 제대로 말하라며 타박했지만, 설명이 어려웠다.

그냥, 정말로 그냥 포잉이 이대로 고양이가 돼서 훌쩍 떠날 것 같은 불안감을 어찌 말해야 하나.

여태까지 단단하게 안정적이었던 마음이 또 사정없이 흔들린다.

이렇게 하찮고 볼품없는 마음을 어떻게 포잉에게 말할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냥이라고 말하고 웃어버렸다.

‘간식이나 내놓아라, 계약자 놈아.’

불만스럽게 꼬리로 바닥을 탁탁 두드리는 게 영락없는 자신의 요정님이었다.

그제야 한결 놓인 마음으로 포잉 앞에 쪼그려 앉았다.

“포잉.”

‘왜.’

조그맣게 소리를 내 포잉을 불렀다.

들려오는 대답은 여전히 머릿속을 울리는 소리였지만, 도리어 그게 마음 놓였다.

눈앞의 고양이는 낯선 고양이가 아니라 여전히 내 요정님이니까.

“포잉, 이거 맛있는 거래.”

누군가 보았다면 정말 볼품없어 보인다고 할 것 같았다.

고양이 앞에 쪼그려 앉아 혼잣말하며 주머니를 뒤지고 있었으니.

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간식들을 포잉 입가에 대주니 짙은 분홍빛의 작은 혀가 날름거렸다.

“귀엽다….”

‘멋진 거다, 이 모자란 계약자 놈아.’

포잉은 챱챱거리며 야무지게 받아먹으면서도 나를 타박하는 걸 잊지 않았다.

이 요망하고 귀여운 요정님을 정말 어떡하면 좋지?

* * *

실체화한 포잉과 보낸 시간은 무척 흡족했다.

포잉은 이전에 내게는 실체화하든 하지 않든 다를 게 없을 거라 했지만 느낌이 달랐다.

이상하게 더 설레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멤버들이 걱정할 걸 생각해 외출은 짧았다.

중간에 메시지도 보냈고.

포잉은 질색했지만, 멤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사진도 찍었다.

포잉이 보내지 말라고 하도 타박해서 혼자만 간직하기로 했다.

앞으로 열심히 꾀어서 멤버들에게도 보여줘야지.

그렇게 행복한 밤을 보낸 다음 날.

우리는 출근하자마자 회의실로 불려갔다.

일본 앨범 발매 때문에 그러나 하고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다 평소처럼 노트를 챙겨서 얌전히 앉았다.

사실 일본 앨범은 이미 대부분 논의가 끝났다.

콘셉트도 들어갈 곡도 정해졌고, 뮤직비디오와 콘셉트 포토 촬영일도 받아놨다.

우리는 열심히 가사를 외우는 중이었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싶어 걱정이 몽글몽글 떠오르기 시작했다.

반면 세빈이는 무언가 학교에서 기분 좋은 일이 있었는지 얼굴이 밝았다.

조금 있다가 물어봐야지.

우리 막내가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한 것 같아서 괜히 코끝이 찡했다.

“얘들아, 다 왔어?”

“넵.”

“그럼요.”

“얍, 보스!”

소현 팀장님이 회의실을 들어오며 활짝 웃었고, 막내 라인은 흥겹게 반겼다.

평소처럼 활기찬 인사가 다 끝나기도 전,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이 친구들이 언래블인거죠? 씩씩하고 서글서글한 게 참 좋네요.”

팀장님께 장난을 걸려던 찬이는 그대로 굳었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해졌다.

“정 PD님, 뭐가 그렇게 급하세요.”

“하하, 이 친구들 노래를 듣고 홀딱 반해서 기다릴 수가 있어야 말이죠.”

그렇게 불쑥 고개를 들이민 예민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쉰 소현 팀장님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그 사람을 우리에게 소개해주었다.

“얘들아, 인사드려. 정기운 PD님이야.”

소현 팀장님이 그렇게 욕하던 그 사람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대략적인 상황은 다른 멤버들도 알고 있지만, 이렇게 갑자기 만난 줄은 몰랐다.

하지만 우리도 그동안 놀고만 있었던 게 아니니까.

재빨리 몸가짐을 수습한 우리는 얌전히 인사하고는 소현 팀장님을 바라봤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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