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 아껴줄게(2)
이야기로만 듣다 처음 경험하는 홍보대사.
나와 멤버들 모두가 가는 차 안에서는 전전긍긍하고 어쩔 줄 몰라 했다.
홍보대사라니!
그건 정말 잘나가는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닌가?
우리끼리 걱정과 기대라는 상반된 기분을 느끼며 쉴 새 없이 수군거렸다.
그렇게 호들갑 떠는 우리 모습에 운전자석과 조수석의 매니저 형들이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 너무 하찮아 보였나…?
“좋아하든지 걱정하든지 하나만 해, 이 녀석들아.”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셨어. 얘들아. 괜찮을 거야.”
우진 형은 종범 형님이 서포트로 붙고 나서도 운전대는 직접 잡았다.
다른 사람에게 운전을 맡기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오들오들 떠는 우리가 너무 긴장한 듯 보이자, 우진 형은 주차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우리를 돌아봤다.
“너희,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인기 많아. 너희가 외부에 잘 안 나가서 모르나 본데.”
우리가 많이 성장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우진 형의 입으로 듣는 건 또 느낌이 달랐다.
우리 눈빛이 초롱초롱해지자 종범 형님은 피식 웃었고, 우진 형은 늘 그렇듯 푸근하게 웃었다.
우리끼리 몇 번 이야기 했던 주제이긴 했다.
우리가 지금은 계단의 어디쯤까지 올라왔을까?
이제 첫 번째 계단은 끝난 걸까?
이 계단의 끝은 어디쯤이지?
우리는 어디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
그런 대화를 무겁지 않은 선에서 가끔 늘어놓으며 각자의, 혹은 우리의 목표를 생각하곤 했다.
그럴 때면 ‘우리 좀 큰 거 같아!’ 라는 기분이 들어서 바보같이 웃었다.
하지만 남에게는 물어보기 힘든 일이기도 했다.
건방져 보일까 봐.
가끔 회사 분들이 너희 정말 잘되고 있어, 잘하고 있어 하고 말을 해주긴 했다.
분기 결산 때마다 우리에게 보여주는 숫자들이 확확 뛰는 것도 생소한 기분이었다.
다만, 숫자는 숫자여서 실감하기 힘들었고, 웃으며 건네는 격려를 모두 진실이라고 받아들이기도 힘들었다.
그렇지만 우진 형은 우리에게 의미가 달랐으니까.
형이 말해주는 것들은 신뢰할 수 있었다.
“실적만으로는 잘 체감이 안 되지? 너희 지금 러브 콜 들어오는 광고도 프로그램도 ‘Pluto’ 때보다 두 배 이상 늘었어.”
“진짜요?!”
화들짝 놀란 찬이 외침에 형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가장 크게 관심받는다고 생각했던 시기가 그때니까.
“방향이 맞지 않아서, 너희 스케줄이랑 겹쳐서 대부분 우리 선에서 정리하고 있는 것뿐인데.”
잠시 고민하듯 턱을 문지르던 우진 형이 덧붙였다.
“너희가 행사를 잘 안 뛰잖아.”
“네.”
인기의 지표라고도 할 수 있는 행사 횟수.
우리는 행사 참여 횟수가 많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요청 들어온 건 꽤 많거든? 너희가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으면 팀장님한테 말하면 되는데.”
잠시 말을 끊은 우진 형이 기특하다는 듯 우리를 바라보다 씩 웃었다.
“너희는 행사보다 음악에 몰두하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회사에서 넘긴 게 많아. 급하게 움직여서 몸값을 낮출 필요도 없으니까.”
회사에서 우리를 존중해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배려를 해주고 있다는 세세한 사정은 몰랐다.
눈이 휘둥그레진 우리를 따뜻하게 바라보던 우진 형은 절대 회사는 짧은 계산을 한 게 아니라고 했다.
더 많이, 더 먼 미래를 보고 있기에 쉽게 소비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하나씩 선택하고 있다고.
어쩐지 찡해진 기분이 들어 눈을 깜박거리자, 원래 몸값은 적당히 거절할수록 올라간다고 놀리듯 말했다.
그 발언에 하늘 높이 치솟던 감동이 파삭하고 부서졌지만 더 안심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손해를 감수하지는 않을 테니까.
우리를 ‘26주 단기 적금이 아닌 10년 만기 장기 적금으로 생각하는 거다’하고 이해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멤버들 얼굴에 웃음이 어리자 그제야 홍보대사에 관해서도 짧게 말해주었다.
별거 아니라고.
그냥 기관에서 자기들 홍보하고 싶어서 연예인을 쓰는 것뿐이라고.
일종의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라고 했다.
연예인도 이미지 구축에 도움 되기도 하고 하니까 서로 윈윈인 그저 일의 하나라고 설명해주었다.
우진 형은 가서 인사 잘하고, 임명장 받고 기자들 앞에서 관계자들이랑 웃고 사진 찍으면 된다고 했다.
그 외에는 대부분 미리 상의가 되어있어서 어려운 것 없다고 말해주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더불어 회사에서 기부한 자세한 내용은 팀장님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그제야 소심한 우리 애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접해보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이라 걱정했지만, 광고는 이미 경험해보았고 일은 늘 하고 있는 거니까.
“자, 이제 가자.”
우진 형 덕분에 가벼워진 마음으로 차에서 내린 멤버들은 어느새 아이돌로 변신해 있었다.
아까까지 차 안에서 자기들끼리 오들오들 떨면서 어떡하냐고 징징대던 사람들은 없었다.
우리 애들도 참 많이 컸네.
* * *
우진 형이 별거 아니라고 말해준 덕분일까?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기자가 모여있어도 당황하지 않았고, 표정 관리도 잘 해냈다.
이동하기 전에 교육받은 대로 착실하게 행동하며 주변도 잘 살폈다.
수줍은 듯, 쑥스러운 듯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카메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시선을 맞추고.
가장 신기한 건 준이 형이었다.
형은 평소 팬들에게 보여주던 다정함과는 조금 다른 표정이었다.
온화하고 다정한 얼굴이지만 조금은 쑥스러운 듯 눈을 깜박이기도 하고.
그걸 지켜보던 찬이 얼굴이 일그러질뻔해서 옆구리를 콱 찔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곤조곤 기관 관계자들과 이야기도 어찌나 잘하던지.
짧게 진행된 인터뷰 때도 종범 형님의 눈이 두 배쯤 더 커질 만큼 술술 풀어나갔다.
“저희는 운이 좋아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으니, 나누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과 나눈다고 줄어들거나 모자라지 않으니까요.”
낯간지러운 말을 저렇게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하다니.
여태까지 알고 있던 준이 형이 아닌 다른 사람 같기도 했다.
역시 리더는 얼굴 가죽이 가장 두꺼운 사람이 할 수 있는 건가?
사람은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새로운 생물이라는 걸 실감한 나는 감탄했다.
저렇게 대처 잘하는 방법도 공부해야겠다는 다짐도 하면서.
한편, 이번 행사와 관련 없는 질문도 몇 가지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다음 시즌 고정이라는 말이 사실인가요?”
라든가.
“요리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는데 김치를 정말 직접 담근 건가요?”
하규원 PD님이 워낙 인기 있는 PD다 보니 그가 하는 프로그램에 관한 관심도 지대했다.
회사에서 논의 중이며 요리는 열심히 공부했다고 중간 짜리 답변하면서도 속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왜 사람들은 나를 오지에 처박을 생각뿐인가.
왜 나는 가순데 자꾸 밥을 시키는가.
오늘은 기부 관련 내용이 오가야 하지 않나? 등등
그룹이 아닌 내게 질문이 온 것도 조금 당황스러웠다.
연기에 관한 질문도 몇 개 있어서, 질문의 덫을 요리조리 열심히 피해가느라 힘들었다.
기관 관계자들은 기자들 앞이라 그런지 내내 친절했고, 우리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기자들이 떠난 후에는 요청받은 사인을 해주고 오느라 생각보다 긴 시간 잡혀 있었다.
그들이 호기심에 던지는 질문은 다행히 우진 형이 잘 막아주었다.
우리를 불러놓고 다른 연예인 질문은 왜 하는 것이며, 우리 사생활은 왜 궁금해하는 거야?
정작 행사는 짧았지만, 여러모로 진이 빠지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처음 우진 형에게 말했던 대로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회사로 복귀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우리를 반겼다.
현실을 마주한 우리는 아주 잠시나마 숙소로 돌아갈 걸 그랬다는 후회를 했다.
나와 멤버들은 짧은 휴식을 가진 뒤 더 처지기 전에 움직이자며 부산스럽게 돌아다녔다.
직접 안무에 참여하고 싶었던 세빈이와 찬이는 소 연습실로, 나머지 넷은 경환 형 작업실로.
메인 곡은 경환 형의 곡으로 하기로 이미 정해졌다.
경환 형은 동양풍의 부드러운 곡이라는 콘셉트가 정해지자마자,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샘플 곡이 이틀 만에 나왔고, 듣자마자 이거라는 느낌이 왔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가사는 좀처럼 못쓰겠다며 경환 형은 머리를 쥐어짜다 우리를 불렀다.
외부 작사가에게 의뢰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경환 형은 고집스레 우리가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평소 무언가에 대해 호불호를 잘 입에 담지 않던 경환 형의 반응에 모두 조금 놀라기도 했다.
그런 우리 모습에 잠시 주저하던 경환 형이 털어놓은 이유를 듣고 나서는 이해할 수밖에 없었지만.
과거 경환 형은 곡을 빼앗긴 경험이 있다고 했다.
아마추어들끼리 곡을 올리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던 카페에서 생겼던 일이었다.
그때 올렸던 곡 중 하나를 다른 프로 작곡가가 훔쳐서 자기 곡으로 팔았다는 걸 연습생 때 알았다고.
그때는 경험도 없고, 회사 사람들도 믿지 않았던 터라 혼자 속을 삭이며 흘려보냈다고 했다.
워낙 교묘하게 코드를 바꿔놓아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고.
하지만 본격적으로 회사에서 작곡과 작사에 관한 교육을 받으면서 깨달았다고 했다.
그런 방식으로 도둑질하는 사례가 제법 많다는 것을.
그 수업은 기본적으로 전부 들어야 하는 내용이었기에 우리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절대 원본 곡을 인터넷에 올리거나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게 염치없고 몰상식한 인간들일수록 뻔뻔하기 그지없어서 우기기 시작하면 힘들어진다는 말과 함께.
그래서 아예 외부 곡을 사 오는 거면 모를까 자신의 곡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건 불안하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나는 전생의 언래블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전생에도 형이 다른 사람들이랑 교류를 잘 안 하고 혼자 작업했구나.
그렇게 또 형의 또 다른 일을 알게 된 우리는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이상한 간질거림을 동시에 느꼈다.
남에게 맡기는 건 싫다면서 우리를 부른 건, 우리는 남이 아니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생각해보면 우리끼리는 곡을 쓰거나 가사를 쓰면서 그것들을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의견을 묻는 일은 늘상 있는 일이기도 했고.
더군다나 그렇게 경계하고 상처받았던 형이 최근에는 다른 아티스트들과 교류하고 있다는 것도 떠올랐다.
우리 경환 형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거구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한 걸음씩 차분하게 걷고 있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이런 표현이 조금 우습긴 했지만, 잘 자라고 있어 줘서 기특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상하게 웃지 않으려 표정 관리하던 나는 다 같이 해보자는 말을 꺼냈었다.
우리가 부를 노래니까 ‘Pluto’ 때처럼 함께 머리를 맞대면 또 좋은 가사가 나올 수도 있지 않겠냐고.
경환 형은 평소보다 조금 더 이상하게 웃으면서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였었다.
다른 날에는 막내들도 같이 곡을 듣고 고민했지만, 오늘은 생각난 안무를 해보고 싶다고 연습실로 갔다.
“이게 참, 어렵네.”
“그러니까요.”
콘셉트에 맞게 가사도 순수 한글로 그 감성을 살려보자는 이야기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했었다.
여태까지 우리가 함께 쓴 곡에도 영문 가사는 많지 않았으니까.
“곡은 고풍스럽고 몽환적인 느낌이니까 그걸 살리고 싶은데, 그게 참 힘들어.”
“왜 곡을 듣는데 간질간질한 것들 말고 어두운 이야기들이 먼저 떠오를까요….”
영빈 형이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두덩이를 꾹꾹 눌렀다.
우리가 쓰려던 건 달콤하고 조심스러운 느낌의 사랑 이야기였다.
밝은 곡을 만들자는 다짐을 해왔으니까.
하지만 곡을 반복해서 계속 듣다 보니 떠오르는 이미지가 완벽히 달라졌다.
“들을수록 정말 마음에 드는데.”
힘겹게 입을 연, 준이 형의 말에 경환 형이 뒷말을 이었다.
“들을수록 예쁜 사랑 얘기랑은 거리가 멀어지지?”
“끄응….”
“우리는 사랑 노래가 안 맞는 게 아닐까요…?”
앓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쥐어뜯던 준이 형.
아무래도 달달한 것과는 우리가 거리가 많이 먼 모양이라는 내 중얼거림에 우리 애들은 슬픈 얼굴을 했다.
누구도 반박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슬퍼졌다.
“하늘에서 가사가 떨어졌으면 좋겠다.”
진심을 담아 경환 형이 중얼거렸다.
그거보다 로또 당첨이 빠를 거 같아,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