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84)화 (384/456)

384. Desperate(1)

공식 카페에 공개된 하나의 공지에 솜뭉치들은 오랜만에 가슴 속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평소에는 언래블 멤버들이 놀랄까 봐 고이 잠재워두었던 흉포한 솜인형들이 번쩍하고 눈을 떴다.

평가지는 멤버들이 직접 작성했다는 설명과 함께 첨부된 두 개의 이미지 파일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눌러본 첫 번째 이미지 파일은 그동안 제법 익숙해진 멤버들의 손글씨로 작성되어 있었다.

한 문제, 한 문제 정성을 담아 꾹꾹 눌러쓴 건지, 줄 맞춰 예쁘게 적혀있었다.

총 스무 개의 문제로 구성된 시험지를 받아든 솜뭉치들의 마음이 요동쳤다.

“미쳤나 봐, 얘네는 왜 이런 것까지 귀여워….”

내 아이돌이 그린 어설픈 하트에 솜뭉치들의 입에서는 앓는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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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뭉치 덕력 테스트♡

이름 :

1. 언래블 미니미 첫 공개 영상에서 각 멤버들의 머리카락 색을 적어주세요.

- 하준:

- 히스:

- C.I:

- 환:

- 힘찬:

- 세빈:

2. 멤버들 개인 텀블러 색을 적어주세요.

- 하준:

- 히스:

- C.I:

- 환:

- 힘찬:

- 세빈:

3. 현재 숙소에서 사용하는 방의 짝꿍을 적어주세요

(현관에서 가까운 쪽부터 A. B, C 순서입니다!)

A :

B :

C :

4. 데뷔 앨범의 앨범명과 타이틀곡 제목, 멤버들의 자작곡 제목을 적어주세요.

5. 데뷔 앨범에서 멤버들이 각자 맡은 두려움을 적어주세요.

- 하준:

- 히스:

- C.I:

- 환:

- 힘찬:

- 세빈:

….

예전 영상들도 열심히 뒤져봐야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멤버들이 열심히 머리를 맞대고 궁리한 듯한 문제들이었다.

뒤로 갈수록 점점 문제가 어려워지는 걸 보니, 솜뭉치들을 골려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후후, 이 정도에 지지 않는단다, 얘들아.”

하는 행동들이 어쩜 이렇게 귀엽기만 한지.

시험지를 한번 쭉 훑어본 후 두 번째 이미지를 열었다.

그곳에는 문제 풀이에 관한 주의 사항과 이후 접수 방법에 관해 기재되어 있었다.

게시글 메인에 첨부된 이미지와 같은 내용이었다.

해외 팬들을 위한 영어, 일본어, 중국어 해석본이 각각의 이미지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국내 솜뭉치는 그 내용을 확인하고는 이상하게 심장이 팔딱거렸다.

우리 애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도 사랑받고 있다는 이상한 자부심.

안 그래도 해외 활동에 관한 내용이 팬들 사이에서도 점쳐지던 중이라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기재된 메일주소로 개별 발송하되, 메일 제목은 정해진 제목으로 발송해야 했다.

[사랑하는 언래블에게]

라니.

팬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싶다는 언래블의 마음이 잘 반영된 제목이었다.

추첨은 팬클럽에 가입된 만점자를 대상으로 하며, 이메일 주소 중 무작위로 뽑는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니 당첨자 발표가 있을 때까지 이메일을 유지해달라는 당부의 메시지도 적혀있었다.

대상자에게는 개별 연락이 될 것이니 추후 발송되는 메일을 꼭 확인해달라는 말도.

팬클럽 가입 한정이라는 걸 못마땅해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불만이 크지는 않았다.

일주년 축제를 기대하는 팬들의 마음도, 준비하는 언래블 멤버들도 모두가 두근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자고로 축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들뜨고 신나는 것 아니겠어?

* * *

“만점자가 몇 명이나 나올까?”

“우리 솜뭉치들은 다 만점 받지 않을까?”

“확실한 건 솜뭉치들이 우리보다 똑똑하다는 거야.”

공지가 올라가고 솜뭉치들 몰래 팬카페를 기웃거리던 우리는 빠르게 올라가는 뷰 수에 히죽거리느라 바빴다.

솜뭉치들이 모두 만점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과 조금은 틀려줬으면 하는 이상한 마음.

“그래도 글씨 연습을 다시 하길 잘했다.”

“맞아. 잠깐 쉬었다고 또 삐뚤삐뚤해질 줄은 몰랐지….”

프린트된 종이를 건네주며 직접 적어보라던 팀장님의 사악한 얼굴이 떠올랐다.

딱딱한 텍스트보다는 직접 손글씨로 적은 게 팬들에게 더 기쁘게 할 거라는 그 한마디에 지고 말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글씨 연습을 쉬었더니 다시 연필을 잡은 손이 부들거렸다.

점점 누우려는 글자들을 바라본 우리는 패잔병의 마음으로 팀장님께 협상을 요구했다.

다시 연습 시간이 필요하다고.

얄밉게도 팀장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주셨다.

그사이 우리는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 끊임없이 노트에 무언가를 적었고.

다시 펜에 손에 익고, 글자가 드러눕지 않게 되기까지는 다행히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제를 내느라 머리를 쥐어짜고, 글씨 연습하고, 사진을 고르는 등.

바쁘고 열심히 준비했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남았다.

“다음에는 해외 솜뭉치들 것도 우리가 직접 쓰도록 노력해봐요….”

“영어까진 어떻게 될 것 같았는데.”

외국어를 말하는 것과 직접 쓰는 건 너무 큰 차이가 있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꾸준히 공부하고 있으니 간단한 회화를 하는 건 가능했지만, 쓰기가 안됐다.

그나마 영어는 준이 형과 경환 형이 해보겠다고 했지만, 일본어와 중국어는 그려야 하는 지경이었고.

팀장님은 해외 팬들 사이에서도 서로 속상해할 수 있으니 한글만 직접 쓰는 거로 하자고 하셨다.

어느 나라는 직접 쓰고, 어느 나라는 안 쓰면 차별이라고 느낄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첫 번째 콘서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던 터라 회사에서는 해외 활동을 넌지시 우리에게 언질을 주었다.

외국어 공부는 얼마나 하고 있는지, 여권은 다들 가졌는지 등.

말만 들어서 가슴 떨리는 일이라 우리끼리 입을 틀어막고 연습실 바닥을 콩콩콩 뛰기도 했다.

비행기 타본 사람이 영빈 형뿐이라는 것과 해외에 가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생각해보면 전생에 나도 한국 땅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가족 여행으로 제주도에 갔을 때도 배를 타고 갔으니까.

“아, 준이 형, 영빈 형 괜찮아요?”

“응? 뭐가?”

“왜?”

다 같이 회의실로 향하던 그때, 문득 어제 일이 떠올랐다.

“가영 형 얼굴 되게 무서웠는데….”

“하겸 형도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지, 아마.”

하늘이 도운 건지, 포잉이 도운 건지 복작복작했던 파워아이돌게임은 분홍 팀의 우승으로 끝났다.

현장 스태프들과 출연진 모두의 투표로 우승이 결정되었다.

우승팀으로 분홍 팀의 이름이 불리던 그때, 키스 형과 인하 형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웃던 두 형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각 팀 리더들을 바라봤다.

가영 형은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충격에 빠져있었고, 하겸 형은 볼썽사납게 입이 벌어졌다.

제작진에게 이건 음모라며 항의하던 가영 형과 투표지를 확인하고 싶다고 따박따박 따지던 하겸 형.

키스 형과 인하 형은 그 뒤에서 상큼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다니, 구차하다. 한가영.”

“남자답게 결과를 받아들이지?”

키스 형이 그렇게 상큼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싶어서 멍하니 바라보던 나.

나뿐만 아니라 우리 애들과 오리진 멤버들은 하나같이 멍청한 얼굴로 가영 형과 하겸 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같은 팀이란 게 창피하니까 그만들 해….”

“애들이 보고 있다, 리더 형님아.”

세비 형과 단우 형의 만류에 정신을 차린 리더 형들은 울적한 얼굴을 했다.

왜 저렇게 결과를 두고 난리들인가 싶었는데, 촬영이 모두 끝난 후에야 세비 형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자기들끼리 또 누가 이기는지를 두고 내기했다고….

내기를 주도한 건 가영 형과 하겸 형이었고, 단우 형은 별 관심을 안 줬다고 했다.

키스 형과 인하형은 그런 리더들 몰래 칼을 갈고 있었고.

무슨 내기인지 물어봤지만, 세비 형은 곧 알 수 있을 거라는 말만 남기며 새벽 형들을 끌고 사라졌다.

“뭐… 일단 난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까.”

“별일이야 있겠어?”

워낙 자유분방한 두 리더 형님들이 우리 애들을 괴롭힐까 걱정됐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체념한 듯싶었다.

“그 형들은 뭐랄까, 자연재해 같은 거잖아?”

“사람이 태풍이나 지진을 이길 수 없는 거랑 같은 거야.”

맏형들의 입에서 나오는 내용이 어쩐지 너무 슬퍼서 별다른 말 없이 형들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숙소에 돌아가면 안마라도 해줘야지 하면서.

“얘들아, 안 들어오고 뭐 해?”

“아, 깜짝이야!”

“지금 들어가요!”

회의실 앞에서 잠시 맏형들을 위로하느라 지체했더니 팀장님이 문밖으로 불쑥 얼굴을 내미셨다.

“내 얼굴 보고 그렇게 놀라기 있어?”

“갑자기 얼굴을 들이미시니까 그렇죠!”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얼굴에 화들짝 놀랐던 찬이가 팀장님에게 항의했다.

물론 그런 소소한 반항에 연연할 소현 팀장님이 아니었지만.

“자, 그만 까불고 이제 앉아.”

한 손을 휘적이며 가볍게 찬이를 물리친 팀장님은 우리에게 착석하라고 하셨고, 우린 얌전히 따랐다.

회의실 안에 낯선 사람이 앉아있어 더 떠들 수가 없었으니까.

“인사해, 얘들아. 앞으로 우진 매니저 일을 도울 박종범 씨야.”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려요!”

팀장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멤버들의 인사가 우르르 쏟아졌다.

새로운 매니저가 투입될 거라는 말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긴 시간 우진 형 혼자 우리를 보살폈다.

정윤 실장님이 직접 면접을 보고 골랐다는 설명은 소현 팀장님을 통해 미리 들었다.

더불어 그 면접 날, 포잉이 직접 가서 얼굴을 보고 확인하고 오기까지 했고.

포잉의 평가는 ‘잘 모르겠지만, 나쁘진 않은 것 같다’였다.

워낙 사람에게 점수가 짠 포잉이기에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가 더 잘 부탁드려야죠. 앞으로 많이 배우고 잘 서포트하겠습니다.”

우진 형이 푸근하고 서글서글한 느낌이었다면, 종범 매니저는 다부진 느낌이었다.

각이 잡혀있고, 공사 구분 확실할 것 같은 차분한 분위기의 사람.

어딘지 모르게 경호원 일을 하시는 분들이 떠올랐다.

서로 조심스러운 인사가 끝나자 소현 팀장님은 종범 매니저에 관한 내용을 이야기해 주었다.

우진 형의 후배이기도 하고, 경호학과를 졸업했다는 말과 이어진 여러 평가.

그리고 종범 매니저에게는 우리에 관해 짧게 설명해주셨다.

자세한 내용은 우진 형에게 인수·인계받으라는 말을 남겼고.

사실 우리는 오늘 소개받기 전 이미 소현 팀장님과 정윤 실장님, 우진 형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설명을 들었다.

아무래도 워낙 여러 일이 있다 보니 회사에서는 보안과 안전에 민감했다.

칼부림이 날 뻔했고, 회사 앞으로 이상한 사람들이 찾아오고.

집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은 아마도 사생이겠지.

직원분들이 사생이 보낸 물건에 관해 한숨 쉬며 이야기한 것도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회사에서는 우리 시야 안에 최대한 사생이 들어오지 않도록 보호해주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 선 안의 이야기만 전해주었고.

악플러 사건 때도, 콘셉트 회의 때도 회사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아예 모르고 당하느니 조금이라도 제대로 배워서 올바르게 대처해라.

덕분에 우리는 늘 보호받는 기분을 느꼈고, 서로에 대한 신뢰는 나날이 자라났다.

종범 매니저뿐만 아니라 몇 명의 사진과 이력서를 보여주며 이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지도 물어보셨다.

최종 후보들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렇게 여러 방면으로 고심 끝에 함께 하기로 한 사람이라 그런지 우리도 더 잘 지내고 싶어졌다.

“우진 형처럼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는 우진 형.

우리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우진 형도 씩 웃었다.

“우진 씨, 인수인계하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요.”

“네. 아주 잘 가르쳐놓겠습니다.”

소현 팀장님의 대답에 우진 형은 어딘가 장난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답했고, 새 매니저 형은 움찔했다.

“자, 그럼 병아리들은 나랑 이동하자.”

“네!”

“매니저님, 조금 이따가 봐요!”

앨범 콘셉트 회의에 가기 위해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찬이가 씩씩하게 인사를 남겼다.

‘나도 지켜보다 가겠음.’

‘응. 포잉, 좀 이따 봐!’

회의실을 나서며 흘깃 바라보니 한 마리의 고양이 요정과 사람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새 매니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쪼록 도망가지 말고 잘 살아남아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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