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72)화 (372/456)

372. Sixth Sense(4)

그동안 나름대로 방송가에서 이미지 관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 형들 때문에 망했다.

분명 처음에는 카리스마 있고 멋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내 주변에 선배들이라고는 전부 이런 인간들만 있는 것 때문일까?

손이 달달 떨릴 뻔했지만, 잘 감추고 세빈이 손을 잡았다.

“오랜만에 보네요. 잘 지냈어요?”

태연한 척 얼굴을 꾸며내고 우리 준이 형을 흉내 냈다.

그런 내 옆으로 언래블 멤버들이 다가왔다.

미리 인사를 나눴던 모양인지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는 형들의 모습이 어쩐지 편안해 보였다.

쭈뼛거리던 찬이와 세빈이도 금방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더니,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선배’라는 단어는 얼마나 꿈의 단어였던가.

그동안 촬영을 몇 번이나 했는데도 좀 안 봤다고 낯을 가리던 우리 애들은 금방 후배님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네!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함께 할 수 있게 돼서 너무 기뻐요.”

김유원이라고, 촬영 당시에도 굉장히 씩씩했던 게 떠올라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었다.

단정하던 얼굴이 그래도 카메라 마사지 좀 받았다고 조금 더 뚜렷한 이목구비가 되어 있었다.

아직 우리 애들한테는 안되지만, 그래도 제법 훈훈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대형 출신인 덕분인지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이지만 여기저기 얼굴을 비추고 다니는 걸 알았다.

좋은 일이지, 불러주는 곳 없어서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보다는 바쁜 게 나으니까.

약간이지만 우리와 연이 있는 애들이 잘 돼 가는 것 같아 다행이다.

게다가 대선배들인 새벽이나 골든아워보다는 우리가 더 편했는지 오리진 멤버들 얼굴이 더 환했다.

막 왔을 때는 자기들끼리 뭉쳐있어서 펭귄 무리 같았던 애들이 지금은 산책 나가는 강아지들 같았다.

“세빈 선배님, 고맙습니다….”

“네?”

연습생 중 유난히 낯을 가리고 조용조용했던 이온이 세빈이 옆에 다가와 조그맣게 인사를 건넸다.

아직 선배님 소리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 막내는 화들짝 놀라 되물었고.

난 입을 꾹 깨물고 웃음을 참았지만, 새벽 형들은 실패한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웃음소리가 들리자 세빈이가 불퉁한 얼굴로 형들을 바라봤다.

가영 형이 양손을 들어 보이며 항복을 표하자 한숨을 폭 내쉬는 내 새끼.

“대단한 걸 알려준 것도 아닌데요. 뭐. 그래도 도움이 됐다니, 저도 기뻐요.”

쑥스러워하던 세빈이는 그래도 의젓하게 이온에게 답했다.

어느새 우리 애들은 오리진 멤버들에게 붙들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느 프로에서 언래블 이야기를 했다, 콘서트 포스터를 봤다, 어느 분이 언래블 칭찬하더라 등등.

그러다 멤버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씩 웃기도 하고.

우리 애들이 벌써 선배님 소리 들으면서 저렇게 다른 애들한테 이런저런 조언을 줄 수 있게 되다니.

새벽 형들이나 골든아워 형들처럼 여유로운 모습은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반짝반짝한 아가들에게 둘러싸여 어색한 얼굴로 대답해주는 우리 애들이.

어쩐지 뭉클한 마음이 들어 이야기 중인 멤버들을 바라봤다.

내 인상이 나쁜 탓인지 다른 멤버들에게 하듯 내 곁으로 적극적으로 오는 사람은 없었다.

유원이 다가와 말을 걸긴 했지만, 금방 준이 형이랑 얘기하느라 바빠졌고.

약간은 서운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멤버들이 선배 대접받는 걸 보는 게 더 좋았다.

‘님, 표정 관리.’

‘아, 응.’

오자마자 이번에도 현장을 확인한 포잉이 어느새 다가와 나를 툭 쳤다.

나도 모르게 풀어져서는 또 못생긴 얼굴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화나.”

“네?”

이유 모를 뿌듯함을 느끼던 나는 인하 형의 부름에 그쪽으로 발을 옮겼다.

“너네가 DCL 애들이랑 친하다며?”

“네. 플라이하이나 드리밍 분들이랑도 종종 대화 나누긴 하는데 친한 건 DCL이랑 제일 친해요.”

“걔네 성격 어때?”

“성격이요?”

갑자기 DCL에 관해 물어보는 인하 형을 왜 그러냐는 듯 바라봤더니 단우 형이 다가왔다.

“또 제대로 설명 없이 대뜸 결론부터 물어봤지?”

“아, 맞네. 미안미안.”

어리둥절한 상황이긴 했지만, 곤란해지기 전에 단우 형이 정리해줬기에 그냥 웃었다.

“아무래도 하겸 형한테 옮은 것 같다니까.”

“내가? 그럴 리가. 난 전후 과정 상세하게 말해준다?”

“방송용 말고.”

“아, 그럼 인정.”

그 틈을 못 참고 끼어들어 킬킬거리던 하겸 형은 준비가 한창인 현장을 바라보며 내 머리를 헝클었다.

“근데 DCL은 왜요?”

“아, 이번에 인하가 새 예능 MC로 가게 됐는데, 서브 MC로 추천할 사람 있냐고 물어봤대.”

“말 잘하는 사람, 아니면 리액션 좋은 사람?”

“조리 있게 말하면서 리액션도 좋은 애.”

내 질문을 듣자마자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인하 형이 씩 웃으며 답했다.

이 욕심도 많은 사람 같으니라고.

“리우 형은 인하 형한테 휘둘릴 것 같고 차라리 휴이가 나을 것 같아요. 적당히 말도 잘하고 반응도 나쁘지 않으니까. 레노랑 자인이는 인하 형이랑 붙으면 둘이 얘기하다 끝날걸요?”

내가 아는 DCL을 솔직하게 알려주자 인하 형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인하 형 어깨에 턱을 걸친 채 늘어져 있던 단우 형이 물었다.

“안 서운해?”

단우 형의 물음에 왜 서운하냐는 듯 멀뚱멀뚱 바라보다 곧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랑은 스케줄이 안 맞으니까 추천 안 하는 거잖아요.”

“오, 역시 우리 화니는 똑똑해.”

손뼉까지 치면서 똘똘하다고 끄덕이는 인하 형이 부끄러웠지만 잘 참았다.

장하다, 나야.

“원래 일에는 사감 넣는 거 아니라고 했어요. 그리고 좋은 기회 있으면 형들이 저희 꼭 챙겨주려고 하는 거 모르지도 않고요.”

“우리 화니가 이렇게 기특하고 똑똑하고 말도 잘하지.”

“으휴, 놀리지 말고요.”

자기들끼리 무언가 대화를 나누던 새벽 형들까지 곁으로 다가왔다.

“일 얘기는 끝났어?”

“어. 끝났어.”

스스럼없이 하겸 형과 가영 형이 대화를 나누는 걸 보고 있자니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둘은 굉장히 상극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잘 맞는 걸까?

둘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자 키스 형이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왜요?”

“저긴 그냥 신경 꺼. 어차피 저러다 싸우다 자기들끼리 난리야.”

“어, 음. 사이 좋아진 게 아니에요?”

제법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둘을 바라보다 키스 형에게로 시선을 옮기자, 옆에서 인하 형이 불쑥 끼어들었다.

“좋겠냐?”

“그러니까. 둘 다 미친 잔데 자기가 제일 미친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잖아.”

태평한 얼굴로 자기 팀 리더를 평가절하하는 형님들 모습에 그렇구나 하고 납득해버렸다.

어차피 저 사람들이 뭘 하든, 내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일인걸.

포기하니 역시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병아리는 쟤네랑 안 놀아?”

“아, 제 인상 때문인가 옆에 안 오더라고요. 무섭게 안 굴었는데.”

“응?”

단우 형이 이상한 소릴 들었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날 쳐다봤다.

이 형님이 이렇게 후배들 마음을 모르네.

아무리 선배라지만 사건·사고 많고, 말 많았던 어려운 사람이랑 말하고 싶겠어요? 에휴.

아직 순진한 단우 형을 이해한단 눈으로 바라봐준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전, 뭐 형들이랑 노는 게 더 좋으니까.”

“우리 화니한테는 형들이 있지. 그럼.”

“그럼 편 가르기 할 때 형이랑 편할까?”

뭔가 형님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시선이 오갔다.

나를 짠하게 생각하는 건가 싶었지만, 형님들을 위해 티 내지 않기로 했다.

난 진짜 괜찮은데.

이야기는 곧 있으면 촬영할 프로그램으로 튀었다.

* * *

키스는 오늘도 어김없이 보호자처럼 자기 멤버들을 싸고돌던 지환의 모습에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늘 만사태평해 보이는 주제에 누구보다 예민한 지환은 항상 물 흐르듯 상황을 확인하곤 한다.

오는 길에도 찬이와 세빈이에게 안전 벨트 매라고 잔소리를 하더니 기어코 가영에게도 눈을 치켜떴다.

안전 벨트 안 할 거면 내리라고.

기죽은 가영이 순순히 안전 벨트를 매는 꼴도 재밌었지만, 매자마자 잘했다고 방긋 웃는 지환도 재밌었다.

이번이 몇 번째 납치더라.

어딘지 익숙한 듯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던 지환이 상황을 캐물었다.

설명을 듣더니 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얘는 정말 안전에 무관심한가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우리를 믿는 건가 싶어 어쩐지 으쓱하는 기분도 들었다.

가영의 눈빛이 불길하다며 몸을 부르르 떠는 걸 보면 촉이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늘 이렇게 끌려다녀주는 걸 보니 그렇게 싫지는 않은 것 같았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자기 팀 사람들에게 달려가 여기저기 뜯어보고 안전을 확인하는 모습도 꽤 즐거웠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형들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뜯어보더니 매니저까지 확인한 후에야 안심한 얼굴을 하는 19살.

보통 저게 저 나이의 소년이 할만한 행동인가는 제쳐두더라도 재밌는 생명체인 건 틀림이 없으니까.

여태 우리 앞에서는 쭈뼛거리던 오리진 멤버들은 지환이 오자마자 눈을 빛냈다.

지환이 오기 전까지는 오리진 멤버들에게 다가가지 않던 언래블 애들도 지환이 움직이자 따라 움직였고.

대화의 중심이 우리에게서 자연스럽게 지환으로 이동하는 모습은 몇 번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디를 가도 대화나 분위기를 주도해야 하는 하겸이나 가영이 순순히 지환에게 주도권을 넘기는 것도 신기했다.

자존심 강한 두 사람이 더운 날 손에 쥔 초콜릿처럼 흐물흐물 해지는 모습이 제법.

요새 애들답지 않게 순박한 언래블과 달리 오리진 애들은 눈치가 빨랐다.

이슈화되는 가장 가까운 줄이 언래블이라는 걸 본능처럼 아는 듯 굴었다.

기본적으로 그들도 언래블에게 무척 호감이 있어 보이기도 했고.

지환과 힘찬, 세빈이 등장하자 그쪽으로 쏠린 시선과 힐끔거리며 계속 그쪽을 바라보는 눈빛들이 그랬다.

뭐라도 말을 붙여보고 싶어서 눈을 반짝거리는 모습들이라니.

키스는 역병 혹은 태풍의 눈처럼 취급되는 새벽을 알고 있기에,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언래블이 좋았다.

순수할 정도로 동경을 담은 그들의 눈빛을 보게 되면, 누구라도 좋아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만큼 언래블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건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

자신이나 새벽처럼 좁은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 더 멀리, 더 넓은 세상을 배워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무관심한 새벽이 수시로 언래블을 찾아가는 것도 어쩌면 불안감 때문이리라.

친구를, 동생을 뺏기는 듯한 처음 겪는 이 감정은 그다지 유쾌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물론 골든 아워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어디까지나 새벽이 먼저였으니까.

얄팍한 우월감을 느끼며 지환의 어깨에 턱을 걸치자 조그만 병아리가 무겁다고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밀어낼 생각을 하지 않는 게 기특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람들을 홀리고 다니는 주제에 정작 자신만 모르는 것도 꽤 재밌었고.

비틀리고 비비 꼬인 사람들이 한가득한 이곳에 대나무처럼 곧은 애들이 등장했으니까 관심이 안 쏠릴 수가 있나.

비틀리기를 바라는 사람이든, 비틀리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든.

태연하게 자신의 인상 때문에 사람들이 곁에 안 온다고 말하는 지환의 말에 인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언래블 애들은 애들대로 지환이 자꾸 밖으로 돈다, 다른 사람들이 왜 우리 멤버를 탐내냐 하면서 애타 하고 있는데.

당장 오리진 멤버들을 언래블 멤버들이 전부 막고 서있는데도 그것도 모르고 잘 지낸다고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도대체 이 녀석은 어떻게 생긴 생물인 걸까?

키스는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흥미로운 동생의 뺨을 쭉 잡아당겼다.

“아, 애혀!”

“그냥. 살 좀 붙었나 검사?”

“아하여!”

“아프긴. 엄살이 심하네.”

세상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은 지환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듯 바라봤지만, 다들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내 그 눈빛을 읽은 지환은 체념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애 할자야(내 팔자야)….”

“쪼끄만 게 벌써 팔자타령은.”

이번 촬영도 꽤 재밌게 흘러가리란 생각에 키스는 지환을 놔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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