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67)화 (367/456)

367. 외전 -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오늘은 추석맞이 전통 놀이 대결을 할 겁니다.”

PD님 목소리에 정신을 바짝 차린 우리는 긴장을 감출 수 없었다.

또 무슨 짓을 할지 예상이 안 되는 상황.

전통 놀이라고 해놓고 그게 어떤 무시무시한 놀이로 탈바꿈해서 우리에게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늘 그렇듯이 가장 많은 점수를 획득한 팀이 승리합니다! 차례대로 먹을 수 있는 밥상이 달라집니다. 힘내주세요!”

PD님의 외침과 함께 공개된 오늘의 메뉴.

소복하게 쌓인 한우 갈비찜,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각종 전, 잡채, LA갈비, 버터를 넣어 구운 전복 등

무시무시한 음식들이 한가득 적혀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바라본 옆에는 패자의 밥상이 있었다.

삼색 나물과 전 몇 가지, 밑반찬이 전부.

강경 육식파인 멤버들 눈에 그 상이 찰 리 없었다.

아침에 샐러드와 주스 한잔으로 허기를 채우고 잡혀 온 스튜디오.

당연히 멤버들의 눈이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악랄한 방법으로 우리를 괴롭힐지에 대한 걱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누가 보면 평소에 굶긴 줄 알겠음.’

‘내가 그렇게 밥을 해 먹여도 그때뿐이야….’

한숨을 푹 내쉬는 포잉의 얼굴은 내 얼굴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 애들 성장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걸까.

“첫 번째 게임은 팀전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활쏘기와 가마싸움 같은 놀이로 서로의 용맹함을 겨루곤 했는데요.”

“아….”

PD님의 게임 설명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사이, 옆에 있던 영빈 형의 입에서는 탄식이 흘렀다.

오늘도 어김없이 몸을 혹사해야 하는 상황.

늘 몸 쓰는 게임에서는 막내 라인에게 져야 했던 영빈 형이기에 얼굴에는 그늘이 내려앉았다.

물론 나도….

오늘은 준이형, 영빈 형, 경환 형이 한 팀이었고, 나와 막내 라인이 한 팀이었다.

팀명은 형라와 막라.

“막내 라인에 니가 있으니까 이상해.”

“나도 이상한데 원래 이게 맞잖아.”

“이상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이상하잖아, 얘들아.”

엄밀히 따지면 나이대로 잘 나뉜 팀이지만, 평소 경환 형이 막내 라인에 속했기에 다들 어색해했다.

뭔가 뿌듯하고 행복한 얼굴을 한 건 경환 형뿐.

그렇게 막내 라인 아니라고 우기더니 오늘은 형 라인에 속해서 기쁜 모양이었다.

“첫 번째는 활쏘기입니다! 여러분들의 실력을 고려해서 거리를 조절해놨습니다.”

PD님은 언제나 그렇듯 우리를 괴롭히는데 진심이었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안달복달하는지 너무 잘 알았다.

연습 시간으로 주어진 시간은 30분.

실제 양궁용 활이 아닌 어린이 장난감 활이었지만, 연습하는 멤버들의 얼굴은 진지했다.

이 한발 한발에 갈비찜이 달려있다고 생각해서일까.

조준하는 팔도, 집중한 얼굴도 모습만은 국가대표에 뒤지지 않았다.

물론 결과까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단 원 안에 넣는 것만 생각하자.”

“나중에 진짜 활 쏘는 거 배울 거야.”

과녁으로 날아가 콕하고 박히는 화살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평소 조금 더 차분한 맏형들이 유리하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짧은 연습 시간이 끝난 후, 자신 몫의 활을 꼭 쥔 멤버들.

‘누가 보면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들인 줄 알겠음.’

‘저렇게 활을 애틋하게 쥐고 있을 일인가….’

애병을 쥔 화랑들이 이랬을까.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멤버들의 태가 오늘따라 더 고와 보였다.

손에 쥔 게 장난감 활이 아니라 진짜 활이었으면 더 멋진 그림이 됐을 테지만.

한복도 멤버마다 조금씩 달랐다.

준이 형과 영빈 형은 조선 시대 선비, 양반 느낌의 한복이었다.

영빈 형은 도포까지만 입었고, 준이 형은 그 위에 쾌자라는 것까지 걸쳤다.

서포트 팀 누님들이 입는 걸 도와주면서 설명해주셨는데 한복도 이렇게 종류가 많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짙은 남색과 옅은 회색의 색 배열도 예뻤고, 오래된 고목처럼 짙은 고동색에 흰색도 잘 어울렸다.

경환 형과 찬이, 세빈이는 검은색과 붉은색이 주를 이루는 무사들 복장이었다.

소매와 테두리의 문양이 서로 다르고 색 조합이 조금씩 다른, 퓨전 사극에서 나올 것 같은 복장들이었다.

내가 입은 한복은 사실 어디에 속하는지 잘 모르겠다.

막내 라인이 입은 것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어딘가 조금 더 차분한 느낌.

저고리와 바지, 그 위에 치마 비슷한 걸 하나 더 둘렀다.

답호라는 옷까지 모두 검은색.

그 위에 하얀색 옷을 하나 더 겹쳐 입고 검은색의 폭넓은 끈으로 묶고 노리개로 포인트를 주었다.

한복이 신기했던 건, 여러 겹을 겹쳐 입는데도 생각보다 덥지 않았고, 조금씩 길이가 달라 색이 섞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요새는 생활한복으로 조금 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한복이 많이 나오니까.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멤버들도 금방 익숙해져서는 금방 평소처럼 뛰어다녔다.

어쩌면 저렇게 체력들도 좋은지.

진지했던 분위기와는 달리 경기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과녁은 더 멀리 있었고, 생각보다 맞추는 게 어려웠다.

“이번 게임의 승자는 형라! 1점 차의 막상막하 경기였습니다!”

“하하! 갈비찜은 우리 꺼야!”

“아직 안 끝났거든?”

호쾌하게 승자를 발표하는 PD님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굉장히 신나 보였다.

분한 기색을 드러내는 찬이.

자신에게서 고기를 빼앗아 갈 수 없다며 이를 갈았다.

아니, 내가 너 굶겼냐고!

어쩐지 그동안 먹인 게 무색할 만큼 멤버들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다음 경기는 가마싸움이었다.

전통처럼 짚으로 된 가마가 있는 게 아니라 두 명이 한 명을 들어 올려 머리에 쓴 두건을 뺏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도 쉽게 가진 못했으니, 둘이 한 명을 들어 올리고 자유롭게 움직이려면 무게 배분이 중요했다.

경기 방법을 설명 듣자마자 우리 팀에서 막내 둘이 나에게 덤벼들었다.

올라가기 싫다고 버텼지만, 애석하게도 내게는 그들을 이길 힘이 없었고.

형라 팀에서는 그들 중 가장 가볍고 체력이 약한 영빈 형을 태웠다.

“순순히 내놓으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야.”

“형, 팀 내 최약체가 누구인지 가릴 때가 된 것 같네요.”

밑에서 가마 역을 맡은 멤버들은 자기들끼리 치열하게 눈치 싸움을 벌였다.

폭력은 쓸 수 없으니 서로 뭉개고 미는 게 전부였지만, 고기 앞에서는 형이고 동생이고 없었다.

“이 무서운 인간들….”

처음에는 나보다 팔이 긴 영빈 형이 유리했다.

팔다리가 길쭉길쭉한 영빈 형은 어느 정도 거리를 벌려도 나에게 닿았지만, 난 안 닿았으니까….

하지만 3판 2승제로 치러진 경기는 첫판에서 패배한 우리 막라 팀의 최종 승리로 끝났다.

신체조건에서 불리함을 깨달은 내가 두 번째 판부터는 무조건 저쪽 팀에 붙어달라고 둘에게 부탁한 것.

다치지 않게 최대한 조심했지만, 승리욕에 눈먼 가마꾼들이 우리를 바닥에 떨굴 뻔했을 때는 아찔했다.

그 덕에 경기가 끝나자마자 가마꾼 역을 했던 경환 형, 찬이, 세빈이는 끝까지 말리던 준이 형에게 혼났고.

그사이 후줄근하진 나와 영빈 형은 서로에게 기대 힘겨운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우리 밥 먹기 전에 쓰러지는 거 아냐?”

“저도 그 생각 했어요….”

밥 한번 먹으려다 먼 길 갈 수도 있겠다는 슬픈 생각.

최약체고 뭐고 우리는 일단 살아남기 위해 최대한 서로를 피해주자는 밀약을 나눴다.

그다음 우리에게 주어진 건 바둑판이었다.

바둑은 둘 줄 아는 사람이 없을 텐데, 오목을 두려나 했더니 알까기가 등장했다.

“이게 전통 놀이라고요?”

“여러분은 바둑 둘 줄 모르니까 현실과 타협한 거죠. 바둑 둘 줄 알아요?”

“….”

언제쯤 PD님을 말로 이길 수 있을까?

다시 한번 패배한 우리는 얌전히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어차피 이기지 못할 거 낭비할 힘이 없었다.

이미 앞의 두 가지 경기 때문에 체력이 간당간당한 상황.

차라리 앉아서 할 수 있는 알까기가 백번 나았다.

하지만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아! 형! 살살하라니까!”

“미안, 힘 조절이 잘 안 된다….”

화들짝 놀란 찬이의 외침과 시무룩한 경환 형의 대답.

“세빈아, 형이 뭐 잘못했니…?”

“그건 아니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해요, 형.”

조심스럽게 막내에게 서운한 게 있냐고 묻는 준이 형.

경환 형이 센 건 그러려니 했는데, 세빈이도 손가락 튕기는 힘이 강했다.

알까기는 바둑알을 맞추는 거지 상대방을 바둑알로 구타하는 게임이 아니라는 걸 가르쳐야 했다.

적당히 바둑알만 밀어내야 하는데 밀어내다 못해 사방으로 바둑알이 튕겨 나가니 원.

저러다 멍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을 가득 담아 우진 형에게 미리 메시지를 보내두었다.

멍 빼는 연고 떨어졌다고….

미운 일곱 살도 아니고 멤버들 챙기느라 늙는 기분이었다.

에휴, 내 팔자야.

그렇게 멤버들의 비명과 함께 치열한 전투가 끝났고, 최종 승리는 결국 막라 팀에게 돌아갔다.

“고기! 고기!”

“한우! 한우!”

“훗.”

고기와 한우를 외치며 서로를 얼싸안고 자리에서 폴짝거리는 찬이와 세빈이.

그리고 그 사이에서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내가 있었다.

승부의 세계는 이렇게나 냉정했다.

세상을 잃은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경환 형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도 그때.

“PD님, 진짜 저희 풀만 먹어요?”

“이번 기회에 우리 씨아이 건강해지겠네!”

“전 고기 못 먹으면 힘이 안 나서 안 되는데….”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승자들의 밥상이 들어오자 형라 팀의 사람들은 모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단짠단짠의 최고봉 갈비찜 냄새와 전복 버터구이에서 나는 향이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

사실 차려진 양은 셋이 먹기에는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눈치챈 경환 형이 누구보다 빠르게 PD님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기 시작한 것.

준이 형과 영빈 형도 슬그머니 PD님께 다가가더니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미션 촬영을 한두 번 하는 것이 아니기에 벌칙 미션을 수행하면 고기를 먹을 수 있음을 눈치챈 것.

평소에 늘 여유롭고 차분한 모습만 보이려 노력하던 맏형들의 이런 모습이 무척 색달랐다.

덕분에 찬이와 세빈이 눈이 톡 떨어질 것처럼 커다래졌고.

“음. 그럼 이렇게 할까요?”

아니나 다를까 PD님은 싱긋 웃으며 절충안을 내놓았다.

공기놀이해서 점수별로 반찬을 더 덜어오자는 것.

멤버들에게 맛있는 걸 먹이는 건 반길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진 추가 조건을 듣고는 불퉁한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전 우승팀인데 제가 왜요!”

“화나, 형이 고기 먹는 게 싫어?”

“아니, 그게 아니잖아요….”

“우리 환이 덕에 반찬이 더 푸짐해지겠네.”

“영빈 형, 왜 평소보다 다정하게 말하는데!”

PD님의 조건은 나와 세빈이가 검무 추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

그 선제조건을 완수하면 공기놀이로 점수를 획득해서 반찬을 나눠 가지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겼지만, 이기지 않은 듯한 기분.

여기서 싫다고 했다가는 형들의 불쌍한 눈빛을 견뎌야 했다.

나와 세빈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우리가 준비하는 동안 형라 팀은 공기놀이를 시작했다.

음식이 식기 전에 빨리 끝내자는 굶주린 멤버들의 요청이 있었다.

어휴, 어디서 또 검무 관련 얘기는 들어서는….

아무래도 이번 추석에 개봉할 영화 홍보를 겸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침 둘 다 너무 예쁜 한복 입고 있잖아요. 얼마나 좋아.”

“네에….”

이런 결과를 예상했던 건지 가검까지 미리 준비해둔 제작진.

그 철저함에 치가 떨렸다.

어느 쪽이 이겼든, 우리에게는 이걸 시킬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나와 연습할 때 해 보고 그 후로는 안 해서 잊어버렸다던 세빈이는 몇 번 같이 움직이더니 금방 감을 찾았다.

같은 동작으로 움직이는 편이 더 멋있고 안전했다.

상황을 조율해줄 안전요원이 없으니 세빈이와 내가 칼을 부딪치는 건 무리였고.

몇 번 맞춰 보고 의견을 나눈 우리는 간단한 몇 가지 동작만 하기로 했다.

“크, 색 대비도 멋지네요. 역시 둘이 딱이네.”

검붉은 색의 무사복을 입은 우리 막내와 검은색이 주고 흰색이 포인트로 들어간 나.

공기놀이를 전투적으로 하고 있던 형들도, 구경하던 찬이도 눈을 반짝였다.

“이거 보면 솜뭉치들이 좋아할 것 같긴 해요.”

“좋아하면 다행이지 뭐. 추석 선물이 되려나?”

소곤거리는 세빈이를 향해 웃어준 나는 제작진이 준비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에 맞춰 표정을 바꿨다.

이 영상으로 솜뭉치들이 기쁠 수 있다면, 우리도 그만큼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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