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59)화 (359/456)

359. 하늘을 넘어(3)

포잉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간들을 구경하다 자신의 계약자에게 시선을 두었다.

저 철없는 인간은 무대 위에서는 마냥 행복해 보였다.

평소에는 한없이 흐물거리는 슬라임 같은 인간이지만, 이럴 때는 무척 진지한 얼굴이 되곤 했다.

허공에서 자신과 시선이 마주치자 찡긋, 윙크하더니 빙그르르 돌아 다음 자리로 뛰어갔다.

“쯧.”

못 볼 꼴을 봤다 싶어 휙하고 시선을 돌려 공연장 내부를 훑어보았다.

포잉이 보기에도 꽤 큰 공연장 같았다.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여기는 작은 공연장에 속한다던데 큰 공연장은 도대체 얼마나 큰 걸까.

해외에는 스타디움이라고 불리는 더 커다란 공연장도 있다고 했다.

포잉은 타박타박 걷다가 귀찮아져서 허공을 밟고 뛰어올랐다.

무대 정면의 카메라 위에 올라앉으니 조그만 아이들이 잘 보였다.

미리 연습하는 걸 리허설이라고 한다는 걸 포잉도 이제는 알았다.

음악방송 때도 했던 거니까.

어제 무대를 가늠해보고 벌벌 떨던 조그만 것들이 이제는 제법 진지한 얼굴로 공연 순서를 되새기고 있었다.

중간중간 마이크 음량을 조절하기도 하고, 무대에서 효과가 나오면 어떤 동선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확인했다.

가볍게 몸을 풀면서 확인한다고 했지만 생각보다 본격적이었다.

본무대에서는 100% 이상을 끌어낸다고 하면, 지금은 80% 이상을 쓰는 듯했다.

“저러고 또 앓아눕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한숨을 푹 내쉰 포잉은 두꺼운 화장으로 창백한 얼굴을 가린 계약자를 다시 확인했다.

콘서트라는 이 행사에 몰두하느라 인지하고 있지 못한 건지, 아니면 두려움에 묻어둔 건지.

아무리 이 세계의 공지환 몸이라지만 들어 있는 건 자신의 계약자였다.

영혼도 육체도 서로 영향을 주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계약자는 콘서트 현장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가장 들뜨고 행복했던 순간에 들이닥친 거대한 공포가 쉽사리 사라질 리 없다.

그러니 이런 곳이 알게 모르게 극심한 스트레스일게 당연했다.

그때 공연장과 이곳은 다른 곳이지만 그렇다고 특유의 분위기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포잉은 계약자가 걱정되어 굳이 이 사실을 끄집어내지 않았다.

그저 긴장해서 체한 거로 알고 있는 게 당사자의 정신건강에도 이로울 테니까.

아직 무대 복장이 아닌 편한 옷을 입고 땀을 쏟아내는 언래블.

요정인 자신이 보아도 순해 빠져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나 싶은 애들.

늘 걱정하게 만든 저 조그마한 인간들이 오늘은 아주 조금 기특해 보였다.

‘밖에 나갔다 옴.’

포잉은 계약자에게 짧게 한마디 남기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이미 한차례 둘러보긴 했지만, 이 특유의 분위기가 포잉은 꽤 흥미로웠다.

가장 흡사한 분위기를 꼽자면 축제 정도일까?

이 주변에 득실득실한 인간들 모두가 기대감이 가득 들어찬 솜사탕 같았다.

달콤하고 몽실몽실한 기분에 행복한 기운을 뿜어대고 있는, 매우 즐거워 보이는 그런 향기.

마주하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기분 좋은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간간이 물건을 파는 인간과 스태프인 듯한 인간들이 보였다.

사방에 휘날리는 깃발에는 언래블 멤버들의 개인 사진과 이번 콘서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Revolution.’

강한 느낌을 주는 글씨체로 휘갈겨 쓴듯한 모양새였다.

깃발에 프린트된 멤버들도 어딘지 낡은 듯한 느낌을 주는 제복을 입고 있었다.

얼굴엔 결연한 의지로 가득 차 있었고, 렌즈를 낀 눈동자는 한없이 빛나고 있었다.

반드시 가슴에 품은 뜻을 이뤄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

하지만 저 촬영 당시 현장에 있었던 포잉은 사진을 보고 코웃음 쳤다.

사진에는 그럴싸하고 멋있게 나왔지만, 당시 현장에서 자기들끼리 깔깔대고 웃던 모습이 워낙 강렬했던 것.

구석에서 전쟁놀이라며 투덕거리는데 평소에는 얌전하던 맏형들까지 가세해서 꼴이 제법 웃겼다.

포잉이 보기엔 아기 고양이와 강아지가 서로를 바라보며 ‘우와앙!’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가끔은 모르는 게 약이라 했지.’

팬들이 가득 몰려있는 커다란 사진.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걸려있는 사진만 찍어가기도 했다.

포잉은 잠시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고풍스럽지만 낡은 기색이 역력한 작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계약자와 세빈이 정면을 보고 앉아있었다.

그 뒤에는 제복 차림의 나머지 멤버들이 서 있었고, 하준과 영빈이 앉아있는 둘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가족사진 같기도 하고, 전쟁에 투입되기 전 마지막 사진을 찍은 것 같기도 했다.

앉아있는 둘은 천진하게 웃고 있었으나 뒤에 서 있는 인물들은 진지한 얼굴이라 분위기가 더 극명했다.

‘아깽이 같은 것들이 열심히 한단 말이지.’

계약자가 들었다면 좀 더 칭찬하라고 방방 뜰만 한 중얼거림이었다.

계약자는 자신을 칭찬하는 것보다 자신의 그룹 멤버들을 칭찬하는 걸 더 기뻐했다.

여러모로 신기한 인간이었지만, 포잉은 이제 조금은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자신도 다른 요정들이 자신의 계약자를 칭찬하면 기분이 좋아졌으니까.

이번 콘서트 사진은 포잉이 보기에도 제법 괜찮아서 옥사에게 보냈었다.

옥사가 그동안 계약자가 궁금하다고 여러 번 사진을 보여달라고 졸랐던 탓이었다.

무척 멋있다며 칭찬하던 옥사가 떠올라 잠시 부끄러워졌다.

흠칫거리던 꼬리를 앞발로 탁탁 때려 진정시킨 포잉.

가끔은 꼬리가 자신의 것이 아닌 듯 자기 맘대로 춤추곤 해서 곤란했다.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자신이 어린 계약자를 잘 이끌어야 하는데 이성을 지키는 게 점점 힘들었다.

애를 키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말이 절실히 공감되었다.

한껏 흥분한 인간들 사이에 있어서 그럴까? 덩달아 포잉까지 분위기에 휩쓸려 들뜨는 기분이었다.

* * *

“나희, 세영이, 기영이, 찬영이 다 왔네!”

“형아, 오랜만!”

“안녕하세요….”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망졸망한 꼬맹이들이 대기실을 신기한 듯 둘러보다 우리를 보고 활짝 웃었다.

처음 방송국에서 봤을 때는 낯가리고 뒤에 숨었던 아기들인데.

‘아이 콘택트(Eye contact)’에서 마주한 뒤, 종종 연락하고 지냈던 꼬맹이들이었다.

이번에 콘서트 하면서 나희랑 세영이가 아이돌을 꿈꾸고 있다는 걸 떠올린 찬이가 팀장님께 말씀드렸다.

혹시 어린 친구들이 오고 싶어 한다면 초대해도 괜찮냐고.

다행히 흔쾌히 허락해주셨고, 오늘 다시 얼굴을 보니 무척 들뜬 듯했다.

“찬이 형아 오늘은 멋있다!”

“오늘만 멋있냐? 요 녀석이?”

“나희랑 세영이는 진짜 많이 컸네.”

내년에는 중학생이 된다고 얌전을 떠는 세영이를 보고 있자니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중간에 연락하면서 지냈지만, 실제로 만난 건 너무 오랜만이었다.

우리도 우리지만 애들도 워낙 바빠야지.

“자, 너희도 의상 갈아입자.”

“으, 진짜 잘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 연습 열심히 했다며. 잘할 거야.”

찬이가 던진 작은 공이 팀장님 손에 들어가면서 눈덩이처럼 커다랗게 변해왔다.

사람을 대하는 게 익숙한 아이들이니 한번 무대에 서보겠냐고.

함께 맞춰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지만, 이미 대중의 시선에 익숙한 아이들이니 믿었다.

떨린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들의 눈은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아무래도 이 애들은 천상 무대 체질인 듯했다.

가희 누나가 들고 온 의상을 본 아이들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의상을 받아들고 메이크업을 받으니 정말로 실감이 나는 모양이었다.

“저희 진짜 잘할게요.”

“저희끼리 연습 정말 많이 했어요.”

특히나 아이돌을 꿈꾸는 나희와 세영이는 조금만 톡 건드리면 하늘도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막내들은 그런 아이들이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하고, 나는 그냥 저 한 덩어리가 귀엽고.

그런 나를 보는 우리 형들은 이제 그러려니 웃고.

어디선가 포잉의 한숨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빠르게 준비를 마친 아이들과 손을 잡고 세팅된 무대로 나갔다.

눈이 휘둥그레진 꼬맹이들.

“준비할까?”

곧 축제가 시작할 시간이니까.

* * *

빼곡하게 사람이 들어찬 콘서트장 안은 에어컨이 틀어져 있음에도 후끈거렸다.

메인 무대와 ‘V’자로 만들어진 돌출 무대.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과 좌석을 빼곡하게 채운 사람들.

모두가 들뜬 얼굴로 양쪽에 준비된 커다란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뮤직비디오를 따라불렀다.

손에 꼭 쥔 응원봉을 흔들기도 했고, 옆 사람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폭풍전야’의 뮤직비디오가 끝나고 예고된 시간에 도달한 그때, 모든 조명이 내려갔다.

드디어 시작한다는 기대감과 흥분을 감추지 못한 솜뭉치들이 콘서트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라도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표출해야 할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메인 무대 뒤, 커다란 스크린에 ‘Revolution’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봤던 휘날리는 깃발에 새겨진 그 단어였다.

심장을 바닥으로 내던지는 듯한 거친 기계음이 ‘쿵’하고 울리며 음울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울음을 닮은 소리를 따라 메인 스크린이 출렁거리며 그 안에 있던 글자들이 흔들리기 시작한 그때.

돌출 무대의 한쪽에서 검은 로브를 둘러쓴 작은 아이 둘이 손을 꼭 잡고 걸어 올라왔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 조심스러운 동작.

그리고 반대편 무대 아래에서 허름한 복장을 조금 더 큰 아이들이 올라왔다.

어딘가 다친 건지 한 명이 쩔뚝거렸고, 다른 아이가 부축하고 있었다.

서로를 발견한 아이들은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크게 숨을 삼키고는 빨리 발을 놀렸다.

힘들게 본무대 앞에서 마주한 아이들은 서로를 얼싸안으며 서로의 무사함을 기뻐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걸까?

출렁이던 글자가 기어코 새빨간 꽃잎으로 변해 허공에 흩날렸고, 그와 동시에 스크린 밖 메인 무대에도 꽃잎을 닮은 붉은 종잇조각이 휘날렸다.

쿵쿵거리며 울려대는 소리 때문에 흩날리는 꽃잎이 좋은 뜻은 아니라는 걸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새하얀 로브 자락을 휘날리는 사람들이 ‘V’자형 돌출 무대의 앞에서부터 이 열로 나란히 걸어왔다.

공포에 질린 아이들은 주춤주춤 본무대 뒤쪽으로 물러났고, 어느새 경건한 분위기의 멜로디가 무대를 울리기 시작했다.

귀를 틀어막고 서로의 몸에 기대 숨죽이는 아이들과 그들을 둘러싼 하얀 로브의 사람들.

분명 신성하고 경건한 분위기의 멜로디가 흐르고 있었지만, 하얀 옷의 어른들이 좋은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도리어 남루하고 상처투성이로 보이는 작은 아이들을 핍박하는 듯 보였다.

그때 솜뭉치들에게 익숙한 멜로디가 흘렀다.

[Are you ready to be surprised?

기억해? 대혁명은 언제나 가장 밑에서 시작됐어!]

- 와아!!

- 언래블!!

사방에서 쏟아지는 함성.

그 함성을 뚫고 메인 스크린이 갈라지며 철근으로 만든 듯한 구조물 위에 선 언래블이 등장했다.

짙푸른 밤을 휘감은 듯한 제복, 조금씩 다르지만, 뒤로 넘겨 깔끔한 머리.

언제 등장한 건지 언래블이 서 있는 주변을 검은 복장을 한 댄서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날아오를 수 없으면, 기어 올라가면 돼,

어차피 한 번 더 떨어지는 것뿐이야.]

마이크를 강하게 움켜쥔 경환은 매서운 눈초리로 하얀 로브의 댄서들을 바라보며 랩을 시작했다.

유쾌한 악동 느낌의 ‘Confusion’이 아니었다.

‘폭풍전야’에서 느낄 수 있었던 거칠고 묵직한 느낌의 곡으로 바뀌어 있었다.

경환의 곁에 선 하준이 명령을 내리듯 높이 치켜든 팔을 아래로 힘차게 내리며 외쳤다.

[A revolution has begun, 바로 지금부터!]

하준의 목소리와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한 언래블과 검은 옷의 댄서들.

그리고 바닥에서 터져 나오는 불꽃에 주춤하는 하얀 로브의 댄서들.

그때, 구조물의 높은 곳에 있던 힘찬과 세빈이 준비된 로브를 붙들고 구조물 아래로 뛰어내렸다.

사방에서 비명을 닮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가뿐한 걸음으로 무대를 밟는 두 사람

그 뒤에서 영빈과 지환이 걸어 나오며 소리 높여 노래를 시작했다.

[내가, 우리가 바라던 미래는 이런 게 아니었어!]

[애쓰는 만큼 움켜쥐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애절하게 외치는 영빈과 슬픈 얼굴로 호응하는 지환.

어느새 조그만 아이들은 무대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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