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 하늘을 넘어(2)
새벽같이 일어난 우리는 빈속으로 우진 형에게 납치되다시피 끌려갔다.
졸려서 골골대는 우리 모양새가 꽤 안쓰러웠는지 안면 있는 스태프들의 눈빛이 애잔했다.
“찬아, 이리 와. 세빈이도.”
“경환아, 눈떠야지.”
그나마 멀쩡한 나와 준이 형이 멤버들을 질질 끌고 갔다.
영빈 형은 본인 몸을 추스르기에도 기운이 없어 보여 차마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었다.
“그러게, 어제 일찍 자자니까….”
“으어으엏….”
“그래, 이럴 줄 몰랐겠지.”
체념한 듯 찬이의 외계어를 해석한 준이 형은 눈을 거의 뜨지 못한 경환 형 등짝을 때렸다.
찰싹 소리가 꽤 매섭게 났는데도 우리 곰탱이, 아니 경환 형은 미동도 없었다.
되려 그 소리에 놀란 세빈이가 파드득 몸을 떨었다.
“막둥아, 형 팔 잡아.”
“네에….”
내 몸에 의지해서 걷던 세빈이가 비틀거려 팔을 내주자, 왜인지 찬이도 내 팔을 부여잡았다.
얘 깨어 있는 거 아냐?
합리적인 의심과 함께 팔에 매달릴 기세로 붙든 찬이를 흘겨봤지만, 이놈 뒤통수만 보였다.
“아이고, 제일 작은 애가 파묻혀서 보이지도 않네.”
“형….”
바쁘게 뛰어다니는 스태프들 사이에서 우리를 내려줬던 우진 형이 다가왔다.
나보다 큰 둘을 끌고 힘겹게 걸어오던 나를 말로 후려치더니, 형은 미안한 듯 찬이를 빼갔다.
처음에는 떼어놓으려는 우진 형을 적으로 인식한 건지 허우적대며 반항하던 애가 우진 형이라고 하자 얌전히 몸을 맡겼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리자 정신을 차린 영빈 형이 준이 형과 함께 경환 형을 챙기고 있었다.
제일 묵직한 사람이라 둘이 챙기기도 버거워 보였다.
겨우 대기실에 멤버들을 배달하고 나니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힘에 부쳤다.
“하. 진짜 이 인간들 가만 안 둘 거야.”
피곤한 몸을 달랠 겸 매고 온 백팩에서 홍삼 스틱을 꺼내 물고는 준이 형과 영빈 형 입에도 하나씩 꽂아줬다.
아직도 흐물거리는 두 좀비를 사뿐한 걸음으로 피한 뒤에는 우리 막내가 좋아하는 레몬 사탕을 꺼내 입에 물려주었고.
뭔가 뽕! 하는 효과음이 나야 할 것처럼 졸린 와중에도 야무지게 물더니 금방 오물오물 입을 움직였다.
“화니 형?”
“어. 우리 막내, 이제 일어나야지.”
“네에….”
귀여운 내 새끼, 몸 그렇게 키우지 말라고 했거늘 왜 이렇게 무겁냐….
얘도 압축형 근육인지 마른 몸에 비해 무게가 좀 나갔다.
맏형들이 말썽꾸러기 1, 2를 깨우고 정신 차리게 하는 사이 뭔 등짐장수마냥 한 짐씩 든 서포트 팀 분들이 들어왔다.
“얘들아, 어제 팩하고 잤지?”
“네에….”
영빈 형에게 등짝을 후드려 맞은 찬이가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평소 화장품을 잘 안 챙겨 바른다고 혼났던 찬이.
다행히 아직 피부 트러블은 없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한 명씩 붙들려가서 피부 톤을 정리하는 사이 아침부터 진을 뺀 셋은 나란히 대기실 소파에 기대있었다.
“진짜 약빨로 산다는 게 이런 건가?”
“이제 홍삼 짤로 안 놀릴게, 지환아.”
종종 멤버들만 있는 단체방에 홍삼 짤을 올려 놀리던 영빈 형이 사과했다.
그놈의 홍삼 짤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내 뒤통수를 후려쳐서, 후.
지난밤, 나란히 누운 김에 팩을 하자는 세빈이 말에 준이 형이 일어나 팩을 나눠줬다.
한 명씩 배급처럼 지급된 팩을 얼굴에 붙이고 다시 나란히 누운 우리.
눕기 전에는 그 모양새가 매우 흉해서 질색했지만, 막상 누우니 정말 뭔가 마음이 편안해졌다.
혀를 차던 포잉이 총총 움직이더니 아일랜드 테이블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기도 했고.
포잉은 종종 우리를 개그 프로 보듯이 구경하곤 했다.
숙소에서 빈둥대는 우리 모습이 하찮지만 재밌다는 평을 내게 남기기도 했다.
왜 굳이 내게 그런 사실을 말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포잉도, 나도, 우리 애들도 모두가 조금 풀어지고 평화로웠던 시간.
별다른 대화 없이 규칙적인 숨소리만 가득했던 공간이 한없이 노곤노곤했다.
깜빡 잠이 들뻔했던 나를 깨운 건 준이 형 목소리였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얘들아.”
“갑자기?”
어리둥절해 하는 경환 형의 목소리에 준이 형이 쑥스러운 듯 덧붙였다.
“그냥 우리 단콘 앞두니까 마음이 싱숭생숭하네.”
“여태까지처럼 열심히 구르면 되지, 뭐.”
영빈 형이 받아준 말에 다들 피식거리며 웃었다.
진짜로 열심히 연습했다.
콘서트 때 공개할 깜짝 이벤트와 셋 리스트, 그 안에 넣을 디테일까지 우리 손을 안 거친 곳이 없었다.
그동안 어쩌다 쉬는 날을 제외하곤 하루 평균 3시간밖에 못 잤던 나.
그리고 그런 나만큼이나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연습에 몰두했던 멤버들.
한 번씩 회사 분들이 그러다 뼈 삭는다며 우리를 억지로 숙소에 보내기도 했다.
컨디션 조절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소현 팀장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리기도 했고.
하루하루 줄어드는 시간이 너무 초조해서 숙소에서도 우리끼리 좁은 거실에 모여 연습하기도 하고.
층간소음 때문에 신고당할까 봐 까치발을 들고 대형을 연습한 건 지금 생각해도 웃겼다.
매일같이 서로를 격려했고, 가끔은 홀로 좌절에 빠지기를 반복했다.
극심한 기분 변화 때문에 서로 자잘한 말다툼도 제법 있었다.
너무 열정이 지나쳐서 생긴 충돌이라 다행히 별다른 감정 소모 없이 잘 풀 수 있었지만.
롤러코스터 타듯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날들을 가슴에 묻고 변신 중인 멤버들을 바라봤다.
후줄근하고 못생긴 좀비 같던 찬이가 아이돌 얼굴로 변해가는 과정을 직관하고 있자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누나들 없었으면 우리 어쩔 뻔했어….”
“우리 금손 님들!”
“어휴, 손에서 빛이 난다, 빛이나!”
입에 무언갈 하나씩 물린 후에야 조금 살아난 멤버들은 바쁘게 손을 놀리는 서포트 팀 누님들을 놀리느라 바빴다.
데뷔 때부터 함께해온 누님들은 이미 우리 애들한테 적응해버린 탓에 해탈한 듯한 얼굴을 했고.
얌전히 앉아서 그 광경을 구경하던 나까지 모두 메이크업하고 든든하게 배도 채웠다.
“어휴, 밥 먹으니까 살겠다.”
“너희는 죄다 충전식이니?”
든든하게 도시락을 해치운 경환 형의 얼굴이 평소처럼 돌아오는 마법.
언제나 밥을 먹이면 만사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 되는 우리 애들이었다.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팀장님은 푸념하면서도 자기 도시락에 있던 반찬을 멤버들에게 나눠주셨다.
정작 본인은 몇 수저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너무 못 드시는 것 같아 쳐다보니 팀장님은 속이 차면 되레 일하기 힘들다고 하셨다.
슬그머니 가방에서 홍삼을 꺼내 밀어드리니 이상한 얼굴을 하셨지만, 이내 수긍한 듯 주머니에 넣어두셨다.
왜지? 힘들 땐 약빨로 사는 게 최곤데.
하지만 쌩쌩해진 멤버들과 함께 본격적인 리허설에 돌입했던 나는 밥을 너무 열심히 먹은 걸 후회했다.
긴장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기어코 속이 불편해진 것.
이상할 정도로 긴장으로 몸이 자꾸 굳어 수시로 주물렀는데도 효과가 없었다.
오늘따라 왜 이러지?
오죽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 특성 스킬이 꺼진 건가 하고 사람들 몰래 확인하기도 했다.
“환이는 아무래도 몸이랑 안 친한 것 같아.”
“내 몸이랑 내가 안 친해?”
“어. 넌 뭐든 좀 무덤덤하게 넘어가는데 꼭 몸이 탈 나잖아.”
찬이는 손을 딴 내 옆에 앉아 엄지와 검지 사이를 꾹꾹 눌렀다.
“으…. 둘 다 감정 넣은 거 아니죠?”
“그럴 리가. 원래 체하면 아프다잖아.”
“약 먹고 손 따도 아픈 걸 보면 단단히 체한 것 같은데.”
좌 힘찬 우 경환.
양쪽에서 둘이 내 손을 꽉 잡고 주무르는 데 어찌나 힘이 좋은지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우리 막내가 불안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는 게 보여서 걱정되기도 했고.
다독여서 힘내게 해줘야 하는데 이런 약해빠진 몸뚱이.
막내를 달래야겠다 싶어 몸을 일으키던 순간, 준이 형이 불쑥 튀어나와 그대로 이마를 눌러 소파에 눕혔다.
“…?”
“잠깐 쉬고 있어. 한 이십 분 정도는 괜찮을 거야.”
“저 이제 괜찮은데요?”
준이 형 뒤로 가려진 세빈이를 찾아 눈을 굴렸더니 영빈 형이 세빈이를 다독이고 있었다.
그런 내 시선을 눈치챈 경환 형이 냉큼 몸을 움직여 시선을 차단했고.
아니, 님들 왜 이래요….
체하는 거야 종종 있었던 일인데.
목을 길게 빼서 간신히 막내를 찾아냈다.
영빈 형이 무어라 이야기한 건지, 세빈이가 나를 한번 바라봤다.
허공에서 마주한 시선.
나는 괜찮다고 최대한 다정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하지만 우리 막내는 비장한 얼굴로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끄덕였고.
…?
이거 왠지….
‘곧 세상 떠날 보호자를 위해 유지를 이어받겠다는 그런 상황.’
‘이상한 나레이션 깔지 마, 포잉!’
‘계약자 놈아, 네가 너무 비실비실하니 저 어린 게 힘내겠다고 저럴까.’
‘아니, 그래도 이건 좀.’
시종일관 우리를 쫓아다니며 상황을 점검하던 포잉은 오늘따라 유달리 까칠했다.
낯선 스태프들도 많았고, 공간도 낯설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경계심이 심해 보이는 느낌.
그치만, 그렇다고 이렇게 나를 보내버릴 필요는 없잖아….
한숨을 푹 내쉰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얌전히 누워 속을 달랬다.
북적거리는 대기실 소파에 누워 얌전히 머리를 비우는 사이에도 사방에선 온갖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대기실 문 너머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고함, 기계 소리, 익숙한 음악 소리.
대기실 안에서 바쁘게 오가는 서포트 팀분들과 우리 애들 목소리.
이런 상황이 낯설지 않은 걸 보니, 나도 이제 어지간히 익숙해졌구나 싶었다.
카메라도, 사람들의 시선도.
늘 나를 하찮게 보는 포잉은 주변을 둘러보는 것보다 내 곁에 있는 걸 택했다.
배 위에 올라와 체온을 나눠주고 있는 포잉.
‘에휴.’
‘한숨 쉬면 복 나간 데.’
‘님 만나면서 내 복은 끝난 듯.’
‘너무해….’
포잉은 틱틱거리는 말투와 달리 눈동자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불안한 듯 휙휙 거리던 꼬리도 어느새 내 배를 다독이고 있었다.
어쩜 내 요정님은 이렇게 한결같은지.
익숙한 온기와 규칙적인 다독임에 한껏 긴장했던 몸이 녹아내렸다.
그렇게 한결 평온해진 나는 오늘 사용할 스킬을 떠올렸다.
특성인 ‘죽기 살기’는 늘 내 멘탈을 부여잡고 있어 줬기에 걱정할 필요 없었다.
물론 이렇게 갑자기 체하는 걸 보면, 무작정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이미 현장의 주요 스태프들에게는 ‘내적 친분’ 스킬을 처음 소개받는 날 걸어놔서 지금은 다들 화기애애했고.
하지만 ‘독종’ 스킬이 문제였다.
처음, 스킬을 사용할까 하다 참은 건, 실제 공연 때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오늘 필요한 독종 스킬은 유지 시간이 6시간.
하지만 풀로 다 써버리면 무대에서 쓰러지기 딱이라 내일 공연에 지장이 생겼다.
당장 테스트한다고 썼던 때도 응급실에 실려 가 난리가 났었으니까.
내가 원래 이렇게 픽픽 잘 쓰러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해명 아닌 해명도 했었다.
하지만 워낙 극단적인 상황을 본 멤버들은 믿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 사이에 신뢰가 무너지고….
스킬 때문에 연습하다 쓰러졌던 그 날도 숙소에서 마주한 멤버들 얼굴이 더 환자 같았다.
하나같이 하얗게 질리고 핏기없어서 한 명씩 일일이 다독이느라 어찌나 힘들었던지….
두 번 다시 멤버들 앞에서 쓰러지지 않겠다고 이상한 다짐을 했던 날이었다.
그런 상황을 방지하려면 시간 분배가 중요했다.
앵콜까지 생각하면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 정도 잡아야 하니 콘서트 시작할 때쯤 사용해야 안전했고.
그렇게 나름대로 계산을 마친 상태였는데 이렇게 체할 줄은 몰랐지.
조금 쉰 덕분인지, 약 덕분인지, 아니면 민간요법 덕분인지 한결 나아졌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확 꽂힌 시선.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려 나를 바라보는 멤버들 시선이 무서울 지경이었다.
뭐야, 공포 영화 같잖아….
“이제 약빨 좀 도는지 괜찮아.”
“니가 말하는 괜찮아는 믿을 수가 없어.”
“아니, 저기요?”
“그래도 얼굴색이 돌아오긴 했네요.”
“열심히 눌러준 보람이 있네.”
“왜 내 말은 아무도 안 듣는 건데…!”
얌전히 쉬라고 해서 쉬기까지 했는데 이렇게까지 신뢰가 없다니.
‘님, 내가 늘 말했지?’
‘업보라고?’
‘잘 아네.’
‘내가 뭘….’
억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