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 하늘을 넘어(1)
톡톡톡 바닥을 두드려보는 발짓이 자못 진지했다.
멤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전부 바닥을 두드려보고 전체 크기를 가늠해보느라 바빴다.
그런 우리를 스태프분들과 우진 형, 팀장님이 구경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몸이 먼저 움직였다.
한 번도 무대를 소홀히 한 적은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동안 죽을 둥 살 둥 연습실 붙박이로 버티면서 그려왔던 그 날이 되었으니까.
“진짜 이날이 오긴 오네요….”
“그러니까. 가능하긴 할까 했는데.”
어딘가 물기가 묻어나는 찬이와 영빈 형의 중얼거림.
주변의 공간을 꼼꼼히 확인하던 멤버들이 하나, 둘 둘 주변으로 모였다.
텅 빈, 그러나 한눈에 다 담기 어려울 만큼 많은 좌석.
“여기에 우리 솜뭉치들이….”
“여기 다 채우는 거예요? 진짜로?”
직접 피켓팅을 시도해봤지만, 그것과 현장을 직접 보는 건 하늘과 땅 사이처럼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매진되었다는 말을 들었어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 우리.
여태까지는 ‘그래도 우리 애들인데 그 정도는 당연하지!’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직접 내가 설 무대로 올라와 공간이 주는 박력부터 달랐다.
- 언래블, 준비됐으면 시작할까요?
어딘가 웃음기가 묻어나는 감독님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우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쪽을 바라봤다.
그 모습을 지켜본 팀장님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고, 우진 형 머리 위에 포잉도 똑같은 동작을 했다.
아니, 포잉….
넌 내 요정님이잖아, 우리 팀장님 요정 아니고….
역시 믿을 건 우리 우진 형뿐인가 보다.
우진 형은 팀장님 옆에 서서 언제나처럼 푸근하게 웃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준비됐습니다.”
우리를 한번 스캔한 준이 형이 대표로 대답했고, 그때부터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본 리허설은 내일 진행이지만, 우리는 첫 콘서트니 무대를 한번 경험해볼 수 있는지 팀장님께 여쭤보았다.
그래서 풀 타임으로 연습해보진 못하더라도 주요 무대의 대형과 소리를 점검할 수 있었다.
연습실에서 무대에서 오갈 크기를 미리 그리고 연습했지만, 느낌이 너무 달랐다.
발을 내딛는 느낌마저 다르다고 하면 유난일까?
통통 튀기듯 바닥을 확인한 우리가 감독님의 지시에 맞춰 박자를 세며 대형을 점검했다.
토, 일 양일 콘서트니 오늘은 목을 아끼라던 팀장님의 지시가 있었다.
처음 하는 콘서트다 보니 우리가 너무 흥분해서 체력 분배를 못 할까 걱정하신 것.
몇 가지 무대를 체크해본 우리는 가장 많은 인원이 움직이는 폭풍전야에서 삼사라로 이어지는 부분을 되짚었다.
처음, 회사에서는 그동안 편곡했던 무대를 써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신인상 무대 때 호응이 좋았으니 거기서 조금 바꿔보자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만으로 만족하기 어려웠다.
이미 한번 보여준 무대였으니까.
게다가 누구보다 우리 무대를 열심히 봐왔을 팬들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고 말했다.
몇 번씩 무대를 돌려보며 감상했을 팬들이 비슷한 무대를 보면 실망하지 않겠냐고.
한번 콘서트에 올 때면 십만 원이 넘는 돈이 든다.
공연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단돈 백 원을 쓰더라도 소비자이자 팬인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모든 멤버들의 의견이 확고한 걸 확인한 회사 분들은 우리 예상과 달리 기분 좋게 웃었다.
건방지게 군다고 혼나면 어떡하나 했는데 예상과 다른 반응에 얼떨떨해하던 우리.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 우릴 향해 A&R팀의 주영 팀장님이 말했다.
조막만 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진짜 아티스트 같아져서 기특하다고.
일 년 사이 잘 컸다며 뿌듯함이 가득 담긴 얼굴로 우리를 칭찬해주셨다.
옆에 있던 소현 팀장님이 왜 네가 뿌듯해하냐고 한 소리 하셨지만.
이것조차 일종의 테스트였다는 걸 깨달은 우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회사는 점점 우리에게 더 많은 선택권과 자율권을 주고 있었다.
작사, 작곡, 프로듀싱뿐만 아니라 앨범의 컨셉, 제작과 스케줄 등.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해야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소현 팀장님.
경험이 조금씩 늘면서 우리는 그 말을 절실히 실감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챙겨준 덕분에 스케줄 갈 때마다 톡톡히 이득을 봤다.
주요 스태프들과 PD, 작가 등 사람들에 대해 모은 정보를 알고 있었던 덕분에 대응이 편했던 날도 많았다.
그리고 그런 교육이 충분히 되지 않은 다른 아이돌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도 보았고.
정답을 말한 덕분에 우리는 콘서트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회의에 참석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이상과 현실의 거리감을 잘 몰랐던 우리는 비용적인 한계선을 몇 번이나 느꼈다.
특히나 나는 그동안 봐왔던 콘서트 무대들을 떠올리며 신기하거나 멋있었던 효과들을 물었다.
하지만 그런 효과들에 들어가는 비용을 듣는 순간 얌전히 입을 다물어야 했다.
짠 내 나는 회의 시간을 떨쳐내고 현실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든 건, 찬이의 외침이었다.
“리프트! 오오오!”
“진짜 창피하니까 조용히 좀 해요…!”
콘서트의 꽃, 리프트를 보고 목줄 풀린 멍멍이가 된 우리 찬이.
그리고 그런 찬이가 창피한 우리 사춘기 세빈이.
기계장치는 늘 조심해야 한다고 준이 형이 막내 라인을 붙들고 몇 번이나 주의를 준 덕에 다행히 얌전히 있었다.
그저 신기한 듯 바닥을 만지며 들뜬 목소리로 소리 지를 뿐.
하필이면 세빈이와 찬이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라 엮여버린 세빈이만 목덜미가 빨갛게 물들었다.
우리 세빈이는 점점 더 대외적인 이미지를 챙겼다.
이미 틀렸으니 포기하면 편할 텐데….
경환 형의 말에 의하면 부쩍 몸을 만드는 운동에도 관심을 보인다고 했다.
이미 키도 나보다 큰 막내가 몸까지 만드는 건 허락할 수 없었던 나는 결사반대를 외치며 막았다.
어릴 때는 어릴 때의 귀여움과 풋풋함을 남겨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어차피 나이는 먹을 거고 그러면 그때는 지금의 분위기를 살릴 수 없다며 세빈이를 붙들고 주입했다.
팬들도 지금의 풋풋하고 아련한 분위기를 가진 세빈이가 너무 좋을 거라고.
옆에서 영빈 형이 쟤는 사이비 교주 했어도 대성했을 애라며 혀를 찼지만, 세빈이 귀를 막았다.
적어도 내가 조금 더 키가 클 때까지만이라도 몸을 만드는 건 말리고 싶었다.
어차피 포잉의 하찮다는 표정은 이제 내게 일말의 타격도 주지 못하니 괜찮다.
사실 비단 찬이뿐만 아니라 모든 멤버들이 들뜬 기색을 다 숨기진 못했다.
준이 형은 동선을 점검한다는 핑계로 몇 번이나 무대를 오가면서 애국가를 중얼거렸다.
비록 가사만 애국가고 옆에서 슬쩍 들었을 때는 전쟁터 나가는 군인이 된 것처럼 비장함이 가득한 랩이었지만.
전에 한우를 벌어왔던 ‘이승탈출‘ 때, 형은 많이 긴장하면 애국가를 부른다고 했었던 걸 기억했다.
고개를 돌려 영빈 형을 보고 있자면 표정 관리는 무척 잘했다 싶었다.
평소처럼 담담하고 차분한 얼굴을 한 영빈 형.
하지만 흥분과 기대감 때문인지 귀만 빨갛게 변해있었다.
음량 테스트한다고 목을 몇 번 풀다가 ‘아, 아, 아아!’ 하고 갑자기 쭉 고음을 뽑아내 현장 분들의 눈동자가 커지기도 했다.
평소보다 더 시원시원하게 쭉쭉 뻗는 목소리가 허공을 가를 것처럼 위풍당당했다.
“저 형, 신났네. 신났어.”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저런 우리 메보 님과 합을 맞춰야 하는 나만 등골이 오싹했다.
다행히 내 목 상태도 괜찮았다.
그동안 열심히 목에 좋다는 거 찾아 먹으면서 관리한 덕을 좀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경환 형은 의외로 평온해 보였다.
큰 무대를 뚜벅뚜벅 한 바퀴 걸으며 평소 표정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저 형은 긴장도 안 하나?”
“긴장 안 한 것처럼 보여?”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멤버들을 살피던 내 옆으로 불쑥 준이 형이 다가왔다.
“네?”
“쟤 지금 바짝 얼어있잖아.”
방금까지 애국가로 랩 하던 준이 형은 효과를 본 건지 한결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평소였으면 그냥 여기 가만히 서서 우리 하는 거 구경하고 있었을걸. 곡 쓰다가도 막히면 산책 나가는 애잖아.”
“아….”
경환 형은 산책할 수 없으니 무대를 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자세히 보니 걷다 한 번씩 멈칫하고 있었다.
“…지금 저 형, 오른팔, 오른 다리가 같이 나가려고 한 거예요?”
“응. 아까부터 자꾸 멈칫거리길래 뭐지 했더니 저러고 있더라.”
계속 쳐다보면 아무리 경환 형이라도 힘들 것 같아 슬며시 고개를 돌렸더니, 막내 둘이 몸을 풀고 있었다.
“진짜 기운 넘친다.”
서로 어깨를 붙들고 쭉쭉 몸을 늘어트리던, 엿가락 같았던 애들 몸이 갑자기 허공으로 솟구쳤다.
“…?”
“백 텀블링…?”
깔끔하게 허공을 가르는 한 쌍의 제비 같은 막내 놈들.
옆에 있던 준이 형은 입을 벌리고 막내들의 기인열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러다 다칠까 싶어 말려야 하나 싶어 손이 달달 떨렸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이번에는 옆돌기.
이것들이?!
성공을 자축하기라도 하듯 하이파이브하며 시시덕거리던 그때, 팀장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적당히 안 해, 이것들아!”
“팀장님, 나이스!”
자기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외친 준이 형.
이 형도 나 못지않게 막내들의 신남이 걱정됐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팀장님 외침 후 다들 멈칫했던 상태라 준이 형의 외침이 너무 적나라하게 들렸다.
순간의 정적 후 쏟아진 피식거리는 웃음소리.
나, 이거 어디서 본 적 있어….
“풉!”
“우리 형아, 걱정해써요?”
“아이구, 우리 형님 보기에는 쫌 과격했져?”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멤버들은 히죽거리며 ‘다다다’ 소리가 날 것처럼 형의 옆으로 다가왔다.
암담한 미래를 예감한 준이 형이 주춤거리며 도망가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무대 끝부분이라 더 도망갈 곳이 없었다.
“진짜, 그만해라. 이 웬수들아…!”
“웬수들!”
“우리가 형을 위한 웬수들!”
형을 둘러싸고 막내 라인이 둥기둥기 하기 시작했고, 수치심을 이기지 못한 준이 형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까 오른팔 다리가 같이 나가던 경환 형은 어디 갔는지, 준이 형의 실수 한 번에 흥이 살아났다.
신나게 폴짝거리는 찬이 옆에선 스웩 넘치게 웬수들로 랩을 하는 경환 형.
아, 혼란하다, 혼란해….
* * *
우리는 막내들의 재주넘기와 흥겨운 리더 몰이로 웃으며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물론 희생자가 있었지만, 그건 늘 있었던 일이니 별수 없었다.
누구든 하나 후줄근해질 때까지 놀리고 놀림당하는 꼬리물기 같은 것.
하지만 덕분에 다들 한껏 긴장했던 몸이 풀렸고, 얼굴에는 혈색이 돌았다.
“오늘은 꼭 일찍 자고 야식 먹으면 안 된다. 붓기라도 하면 진짜 망하는 거야. 알지?”
“그럼요! 저희가 아무리 망나니같이 굴어도 그 정도는 알죠.”
“하준아, 애들 단속 잘해야 한다?”
“네. 걱정 마세요, 팀장님.”
찬이가 씩씩하게 대답했지만, 그 대답은 신빙성이 없었는지 팀장님은 리더님을 콕 집어 확답을 받았다.
불퉁한 얼굴로 찬이가 궁시렁거리자, 옆에 있던 우진 형이 찬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독였고.
우진 형도 우리랑 지낸 세월이 있다 보니 멤버들 다루는 게 아주 수준급이었다.
찬이는 틈틈이 놓치지 않고 다독여주고 기운을 북돋아 줘야 쳐지지 않으니까.
평소처럼 씻는 순서로 투닥거리고 뽀송뽀송한 모습으로 러그 위에 펼쳐진 멤버들.
오늘따라 김밥 속 재료처럼 얌전히, 그리고 가지런히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우리, 잘할 수 있겠지?”
“잘해야지. 그냥 무조건 잘할 거야.”
평소에는 각자 편한 자세로 쉬었지만, 오늘만큼은 서로의 체온이 절실한 날이라 나란히 누운 모양이었다.
씻고 나와 얌전히 누워 배 위에 손을 얹고 있는 멤버들을 보고 있자니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었다.
서로 떨리는 마음을 속닥거리며 체온으로 위안을 나누는 건 잘 알겠다.
“화나, 여기 네 자리야!”
“….”
“요기 딱, 네 자리가 있네!”
하지만 저 한가운데에 몸을 누이고 싶진 않았다.
“왜 내가 가운데야?”
“네가 우리 걱정 인형이니까?”
“소원 부적이잖아요!”
“토템 같은 거지.”
“밥 주는 소중한 사람이니까?”
“최약체니까 가운데서 소중하게 보호해줄게.”
갑자기 급격하게 피곤해졌다.
“적어도 호칭이라도 하나로 통일해요,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