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56)화 (356/456)

356. Chained Up(6)

* * *

방금 들은 말이 무슨 뜻인지 머리가 받아들이지 못해 멍하니 경환 형을 바라봤다.

그런 내 표정을 보고 피식 웃던 형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헝클었다.

“나도 뭐라 정확히 설명은 못 하겠는데 싫더라고.”

“싫다고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뒷말을 되묻자 경환 형은 몸을 의자에 깊이 묻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너, 처음엔 우리한테 무척 헌신적이었잖아. 우리가 걱정할 정도로 너 자신을 돌보지도 않았고.”

“어, 음. 네, 뭐….”

형이 말하는 처음이 연습생 시절이 아닌 교통사고 직후를 말한다는 게 이상한 기분을 들게 했다.

마치 그 사고를 기점으로 ‘공지환’을 분리하는 듯한 말투.

내가 그 지환이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 리 없는 데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때는 우리도 너나 할 것 없이 다 걱정했거든. 너무 그룹에만 몰두하는 것 같아서.”

확실히 그때는 마음가짐도 제대로 다잡지 못했고 갈팡질팡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나 자신을 챙기지 못했고.

“그러다 조금씩 너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중심이 생긴 것 같아서 좋았어. 뭐, 가끔 또 그룹 위주로 생각할 때도 있긴 했지만.”

“하하, 네. 그거 때문에 혼나기도 했죠.”

얼마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내가 무척 많이 바뀐 게 경환 형의 말을 듣는 동안 새삼 실감이 났다.

“그런데 네가 혼자서도 잘 서게 되니까 이상하게 자꾸 다른 사람들이 널 탐내는 거 같더라고.”

“에이, 그냥 제가 착하게 구니까 예뻐해 주신 거죠.”

손을 내저으며 웃었지만, 경환 형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처럼 너 자신을 돌보지 않는 그런 상황이 오길 바라는 건 아닌데. 그냥 희한하게 싫은 기분이 들더라.”

“음. 그럴 수도 있겠구나. 몰랐어요.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요, 형.”

한창 우리끼리 영차영차 하고 서로를 보듬고 있는데, 한 사람이 빠지면 싫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별 사건·사고 탓에 우리는 유독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우리끼리 결속력이 굳건한 건 좋지만, 이런 기분이 드는 건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 후 경환 형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데뷔 직전부터 지금까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때의 ‘나’를 듣는 내내 신기한 기분이었다.

나는 혼자 머릿속이 꽃밭이었는데, 그런 나를 보는 멤버들은 전전긍긍했었구나 싶고.

갑자기 하루아침에 바뀐 나.

당황스러운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냉기 풀풀 날리던 애가 갑자기 사근사근하게 굴었으니 멤버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그러더니 혼자 자꾸 뭘 한다고 나서고, 다치고.

아마 내가 멤버들 입장이었으면, 뭔가 꿍꿍이가 있는 놈이라고 의심하고 경계했을 것 같았다.

우리 애들이야 워낙 다들 착해서 좋은 쪽으로 생각해주고 받아들여 줬지만.

“그래도 난 너희가 다투기도 하고 해서 되려 다행인 것 같아.”

“솔직하게 부딪히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 그 순간에는 서로 기분 상해도, 묻어놓기만 하면 알 수가 없으니까.”

침착한 얼굴로 말하는 경환 형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형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 된 것 같아 이상하게 뿌듯했다.

표현이 적지만, 늘 나와 멤버들을 소중하게 여겨주는 형.

마찬가지로 표현이 적은 영빈 형과는 또 다른 느낌이라 불쑥 웃음이 튀어나왔다.

“왜 웃냐.”

“그냥, 형도 형이구나 싶어서요.”

“어쭈? 그럼 여태 난 형으로 안 봤냐?”

“에이, 설마요. 그냥 오늘따라 멋있어서 그러죠.”

발로 툭툭 건드리며 불퉁하게 말하는 경환 형의 얼굴은 또 평소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전에 형이 물었던 거 있잖아요.”

“어. 근데 말하기 힘들면 안 해도 괜찮아.”

그게 갑자기 불쑥 나온 질문이 아니란 건 알았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여태까지 피해왔던 거고.

당장 지금도 경환 형은 내가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늘 멤버들을 자기 눈 안에 두고 살피던 형의 모습이 떠올랐다.

전부 다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콘서트를 눈앞에 둔 상황이라 더 차분하게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다.

말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마음을 먹은 날부터 포잉과 열심히 이야기하며 고민한 결과였다.

콘서트가 우리에게 무언가 새로운 계기가 되어줄 거로 생각했다.

“음…. 그러니까 믿지 않는 건 아니에요, 형.”

오해가 있다면 풀고 싶었고, 걱정하고 있다면 덜어주고 싶었다.

포잉과 그토록 열심히 준비했던 말들이 정작 입 밖으로 꺼내려니 무척 무거웠다.

‘괜찮다, 계약자야.’

‘응….’

버거운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버릇처럼 포잉을 찾았다.

포잉은 경환 형 머리 위에 앉아 차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조그만 요정님이 얼마나 내게 큰 힘이 되는지.

힘겹게 헐떡이던 심장이 천천히 자기 속도를 찾아갔다.

“되게 힘들게 데뷔했잖아요, 저.”

원래는 탈락 멤버였을 내가 언래블이 되면서부터 한시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고, 엉망으로 얽혀있던 여러 일은 이제 정리가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버티고 싶었고 살아남고 싶었어요. 모를 때야 몰랐으니까 그렇다 쳐도 우리 멤버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이제는 너무 잘 아니까.”

경환 형은 느릿하게 이어지는 내 이야기를 한 번도 끊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었다.

형의 방식대로 정리된 작업실 안에 있는 우리 앨범, 멤버들 사진, 그리고 내가 선물한 디퓨저.

자신의 공간을 빼곡하게 우리로 채워둔 경환 형을 알아서 조금씩 내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앞으로는 다시 없을 기회일 것 같았다고.

이기적이라고 보일 수도 있고, 형이 여태까지 봐온 나와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놓치면 안 될 기회일 것 같아서 꼭 잡고 싶었다고 가감 없이 말했다.

그래서 욕심만 넘치는 상태로 움직이다 보니 나 자신을 도외시한 것처럼 보였을 것 같다고.

모든 진심을 다 말해줄 수는 없었다.

이 기회를 놓쳤을 때, 되살아난 내가 어떻게 될지 무서웠다는 말.

언래블로 살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세계라 선택지가 없었다는 말.

이런 말은 절대 누구에게도 꺼낼 수 없었다.

포잉에게 말하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최대한 진심에 가까운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 형에게 넘겼다.

그리고 덧붙였다.

지금도 열심히 멤버들과 친해진 많은 사람을 통해 인간관계를, 사회를 배우고 있다고.

형들이 자라는 만큼 자라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라고.

걱정했던 것보다 자연스럽게 말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고,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고맙네, 이렇게 다 이야기해 줘서.”

묵묵히 말을 듣고 있던 경환 형은 잠시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이내 부스스하게 웃었다.

“그동안 가끔 하준 형이랑 이야기했거든. 네가 걱정되니까.”

무뚝뚝해 보이던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머물러있었다.

밖에서 보이는 형의 모습과 우리와 있을 때의 모습은 무척 다르다.

겉모습보다 훨씬 장난을 좋아하고 유쾌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종종 이렇게 형으로서의 면모를 보일 때면, 이상하게 더 쑥스러웠다.

“형이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잖아. 넌 워낙 혼자서도 잘 해내니까.”

“아뇨! 형이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데요!”

그래서 그럴까.

약간은 자조 섞인 형의 중얼거림이 더 크게 다가와서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 외쳤다.

너무 큰소리로 외쳤다 싶어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포잉은 한숨을 푹 내쉬며 앞발로 자기 이마를 꾹 눌렀다.

그런 나보다 더 놀란 얼굴을 하던 경환 형은 이내 소리 내 웃더니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아, 진짜 너한테는 못 당하겠다. 그래, 우리 화니는 형이 그렇게 든든했어?”

“하, 진짜….”

조금 전까지 묵직하고 훈훈했던 분위기는 어디 가고, 놀리는 기색이 역력한 우리 경환 형님.

“아무튼 형은 네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잘하고 있지만 조금 더 널 잘 챙겼으면 해서 물었던 거고.”

“네….”

더 놀리면 내가 복수할 걸 알았는지, 경환 형은 적당히 놀리더니 그 뒤로는 최근 곡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내가 작곡을 한다는 것조차 무서웠는데.

준이 형과 경환 형에게 작업실을 꾸릴 장비를 묻던 날이 떠올라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어렵지 않게 작곡에 관해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해서.

이만하면 우리는 꽤 기특하고 순조롭게 잘 걸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 * *

- 덕질하다 현타온 뷰어의 한탄

안녕, 뷰어들아?

그냥 다른 건 아니고ㅠ….

나 세빈이꺼 그 맨투맨 샀거든?

우리 애기 입었을 때는 그렇게 예뻤는데ㅋㅋㅋㅋㅋㅋㅋ…휴.

우리 엄마가 나 그거 입은 거 보고 동생 옷 뺏어 입은 거 같다고 뭐라 함.

아니, 분명 세빈이 입었을 때는 이렇게 짧단 느낌 없었는데 내가 입으니까 왤케 짧지?? 우리 애는 다리가 얼마나 긴 거야? ㅅㅂ 오징어 같은 내 몸뚱이….

(농구공 들고 환하게 웃는 세빈이 사진)

ㄴ ㅋㅋㅋㅋㅋ아 뭔지 알 거 같아서 너무 슬픔… 난 찬이 티 샀는데 내가 입으니까 너무 과하더라ㅠ

ㄴ 얘들아, 우린 옷을 사러 간 게 아니라 포스터 사러 갔다가 옷을 받은 거잖아. 힘내자….

ㄴ 난 한정판 사고 싶었는데 못 샀어ㅠㅠㅠ 너네 왤케 빠르냐?

앙퀴라의 광고는 언래블 멤버들의 걱정과 달리 호평을 받았다.

광고 공개와 함께 공개된 새로운 라인이 언래블의 10대와 20대 초반의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

입소문과 유행에 민감한 그 나이대의 일반인들에게도 광고, 의상 모두 좋은 평을 받았다.

평소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비친 언래블이었기에 일상 같은 광고가 잘 들어맞았다.

광고가 풀리면서 각 매장에는 포스터 증정 이벤트에 대한 문의와 한정판 문의가 빗발쳤다.

특히 여러 의상 중, 농구 광고 영상의 의상에 대한 문의도 많았다.

솜뭉치들은 그걸로 그치지 않고 리얼리티에서 멤버들이 편하게 입은 옷도 같은 브랜드 제품이라는 걸 찾아냈다.

- 우리 애들 의류 광고 많이 했으면 좋겠다!

우리 곰돌이가 검은색 말고 다른 옷을 입었어! 세상에ㅠㅠㅠㅠㅠ

그동안 맨날 검정티만 입어서 걱정했는뎈ㅋㅋㅋ앙퀴라 돈쭐내줄테다!!

ㄴ 그런 이유냐곸ㅋㅋㅋㅋ 아닠ㅋㅋ경화나.ㅠㅠ

ㄴ ㅋㅋㅋ아 근데 나도 진짜 신기하다 싶었는데 역시 광고의 힘은 위대했다.

ㄴ 물론 우리 곰돌이 검정티 입어도 잘생겼지만, 다른 색도 진짜 찰떡이야….

ㄴ 남자는 역시 핑크지 ㅋㅋㅋ 연분홍 잘 받는다고 뿌듯해하는 거 너무 졸귀 아니냐 ㅠ

광고가 본격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하자, 팬들은 이전 영상을 뒤지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앙퀴라 옷을 입은 영상이 무엇인지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어코 뾱뾱 소리가 나는 운동화를 신고 달리던 영상이 업로드된 그 날이라는 것도 찾아냈다.

- 이날 자기들끼리 꼬까옷 입고 자랑하려고 방송 켠 거 아니냐고….

우리 애들 왜 이렇게 귀엽지?ㅠㅠㅠ

ㄴ 하지만 이 못된 뷰어들은 꼬까옷보다 멤들 놀리기에 진심이었다고 한다.

ㄴ 얔ㅋㅋ넌 안놀린 척하지 마로라!

ㄴ 헷, 들킴?ㅋㅋㅋㅋㅋㅋㅋ

ㄴ 애들 말도 못 하고 ㅋㅋㅋㅋ쩔쩔매다 도망가는 거 진짜 너무 기여워서 심장아프뮤

팬들은 그제야 언래블이 예고 없이 방송을 켠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새 옷 입고 자랑하려고 했던 거라는 추측이 정설로 자리 잡았다.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당시 GIVE 앱과 벌칙 영상이 솜뭉치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팬들은 흡족한 얼굴로 영상을 재탕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영상의 뷰수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역시 누구 팬덤인지 행동력과 단결력이 끝내주는 솜뭉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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