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55)화 (355/456)

355. Chained Up(5)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에드에게 전화가 왔다.

그동안 메시지로만 대화를 나눠서 조금 편해졌나 했는데, 덤덤했던 나와 달리 에드는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조심스럽게 정말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언제고 자기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돕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조그만 목소리로 말하던 사람이, 점점 흥분해서는 말이 빨라지고 단어가 과격해졌다.

무슨 사이비 교주에게 미친 신도처럼 전부 내가 알려준 대로 됐다며 엉엉 울기까지 했다.

제발 울지마라, 좀….

나보다 덩치도 큰애가 휴대폰 너머로 울고 있을 광경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내 부채감을 덜고 싶어서 개입한 거기도 하고.

완벽하게 용서받은 건 아니지만, 멜트 형들이 앞으로 지켜보겠다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런 에드를 향해 그만 울고 앞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잘하라고 했다.

엄밀히 따지면 에드에게 실망한 건 멜트 형들뿐인 게 아니니까.

그가 그토록 좋아하던 골든아워 형들도 에드에게 적잖게 실망한 상태였다.

에드는 알았다면서 자기가 더 잘하겠다고 했다.

그러다 혼자 또 감정이 격해졌는지 울먹이면서 내가 자기를 다시 살게 했다며 선물을 보내겠다고 했다.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거절하고는 앞으로도 좋은 선후배로 지내자고 말하고 끊었다.

처음이랑 지금 모습이 너무 달라서 어느 게 본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더는 내가 멜트 형들에게 죄책감은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그것으로 만족했다.

이왕이면 앞으로도 에드랑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았고.

솔직히 나 개인은 에드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다.

내게 ‘박화영’이라는 사람은 그저 좀 모자라고 사회성 부족한 그런 사람으로 남아버렸다.

하지만 우리 애들은 에드에 대한 적개심이 강했다.

아무래도 에드가 못마땅한 것 같았기에 괜히 마주쳐서 스트레스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멜트가 중요하듯 내게는 언래블이 가장 중요하니까.

에드가 계속 시선에 걸렸던 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러다 크게 사고 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어리석은 사람이지만 악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고, 혹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도 않았다.

이걸로 정리됐다고 생각하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우리 애들 챙길 시간도 부족한데 다른 사람 뒤치다꺼리는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아직 나는 할 일이 많았으니까.

소소하게는 이제 일상 같은 언래블 스토리 촬영이 있었다.

새 앨범을 위한 준비도 시동을 걸고 있었고, 매일 매일 빠듯할 정도로 시간이 부족했다.

톡톡 두드려 휴대폰 화면을 불러오니 찬이와 연습할 시간이었다.

“공지환, 엉아 왔다!”

이 양반은 못될 놈….

“또 까분다.”

씩씩하게 작업실 문을 활짝 여는 찬이 모습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흘러나왔다.

연습실에 도어록이 달려있으면 무얼 하나.

이놈 시키는 허구한 날 노크도 없이 들어오는 것을.

“연습 가자. 오늘 마무리 지어야지.”

듀엣곡이라 서로 쏟아내야 할 감정선과 곡 자체의 정비로 꽤 오랜 시간을 들였다.

처음에는 쭈뼛거리던 찬이도 금방 자기 페이스를 찾았다.

‘함께 부르고 싶은 노래.’

이번에 내가 만든 곡은 그런 마음을 담았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편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

그래서 혼자는 완성할 수가 없었다.

멤버들을 생각하며 조금씩 만들던 조각난 그림이 찬이와의 다툼 후 색이 바뀌었다.

이 곡은 내게 첫 번째 친구가 되어준 힘찬의 생각과 색을 듬뿍 담고 싶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찬이는 노래와 내 생각을 듣더니 이내 진지하게 임했다.

차마 낯부끄러워서 사실대로 말하진 못했다.

그걸 들으면 이 망나니 같은 놈이 어떻게 날뛸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폴더 안에 잠자고 있는 곡을 불러오기 전, 만들고 있는 다른 곡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색을 다 입히지 못한 다섯 곡.

처음 멤버들을 떠올리며 만들었던 곡이 찬이와의 관계로 색이 바뀌면서, 그 주변으로 떨어져 나간 조각들이 다섯 곡의 시작이 되었다.

우리 준이 형, 영빈 형, 경환 형, 막내, 그리고 포잉.

그 조각 하나하나가 짜기라도 한 듯 너무 우리 애들이었고, 그 안에는 포잉도 있었다.

뭉뚱그려 우리 멤버들, 하고 생각할 때는 눈치채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지금 곡이 끝나면 나머지 곡들도 시작해볼 생각이었다.

“지환아?”

“아, 응. 잠깐 생각 좀 하느라.”

기운차게 들어왔던 찬이는 잠깐 내가 멍하니 있자, 조심스럽게 되묻는 찬이.

날 부르느라 가까이 다가온 찬이 얼굴을 손끝으로 밀어버렸다.

“이게 걱정해줬더니?”

“그래, 어구, 착하다. 우리 사고뭉치.”

“아오! 너 진짜.”

“걱정은 고맙지만, 네 얼굴이 가까우면 때리고 싶어지니까 거리 유지해.”

방긋 웃으며 말하자, 찬이는 속이 터진다는 듯 가슴을 두드린다.

뭐 어쩌겠어, 사실인걸.

* * *

경환은 뻑뻑해진 눈을 몇 번 깜박이다 결국 인공 눈물로 손을 뻗었다.

눈이 자주 뻑뻑해져서 눈을 문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느 날, 그 모습을 본 영빈이 한숨을 푹 내쉬며 인공 눈물을 한 통 사다 줬다.

가뜩이나 혹사당할 눈에 그러지 말라며.

그 뒤로는 의식적으로 눈을 문지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지켜주고 싶었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 톡톡 잘도 흘려 넣던데 결국 오늘도 한 통을 다 쓴 후에 눈이 시원해졌다.

일회용이니 한번 쓰고 버리라고 잔소리하던 막내가 경환이 넣는 걸 보며 한숨 쉬던 게 생각나 피식 웃었다.

작업용 모니터 옆에는 가느다랗고 작은 화병에 튤립 한 송이와 막대가 꽂혀있었다.

처음에는 뭔가 싶었다.

꽃 선물이라니 생소해서 선물한 지환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디퓨저라고 했다.

은은하게 퍼지는 향이라 평소에는 모르다가도 한번 자각하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작업실은 밀폐된 공간이라 답답한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공기청정기를 돌려도 사라지지 않는 그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하지만 지환이 선물해준 디퓨저 덕분에 가끔 이렇게 기분 전환이 가능해졌다.

- 원래 캔들을 선물할까 했는데 형은 안될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형, 튤립 좋아하잖아요.

하준에게는 향초를, 자신에게는 디퓨저를 선물한 지환이 했던 말.

가끔 지환은 이렇게 자잘한 선물들을 멤버들에게 안겼다.

숙소에 이것저것 사놓을 때도 있었다.

지저분하게 얽힌 멀티탭을 갑자기 정리한다거나, 메모할 수 있는 도구를 여기저기 챙겨두기도 했다.

평소에 불편하지만, 그냥 대충 적응하고 살던 것들을 하나씩 더 편하게 바꿔놨다.

경환은 아직도 슬금슬금 자신의 눈치를 보는 지환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아직 지환은 경환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 뒤로 워낙 바쁘기도 했고.

답하기 어려우면 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놈은 지나치게 성실했다.

팔을 위로 쭉 뻗어 뻐근했던 근육을 이완시킨 경환은 폴더 안에 가득한 파일들을 바라봤다.

‘Pluto’로 신입에서 기대주로 내디뎠고, ‘Samsara(輪廻)’로 자리를 공고히 했다.

그러면 이제는 더 위로 올라가야 할 차례였다.

언래블은 다음 앨범으로 대세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느냐, 그냥 아이돌그룹이 되느냐가 갈릴 것.

개인 작업물을 세상에 내놓고, 그룹을 위한 곡을 쓰고.

“다음은 뭐로 하지?”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은 없었지만, 경환은 무척 즐거웠다.

다음 앨범을 위한 곡을 슬슬 준비하자는 말에 하나씩 파일을 넘겨보던 그는 어머니와의 통화가 떠올랐다.

어머니는 늘 메마른 경환을 염려했다.

경환이 메마른 게 본인의 탓이라며 눈물을 보이는 날도 있었다.

이전까지의 경환은 무척 단순했다.

분노하거나 무관심하거나.

음악에 몰두할 때면 그래도 행복해 보여서 막지 않았다는 어머니의 고백은 경환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무척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라고 하셨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꼭 멤버들에게 직접 한 밥을 먹여주고 싶다는 말을 덧붙이셨고.

아들이 많아져서 너무 든든하다는 말에 경환은 울컥 눈물이 차올랐지만, 다행히 잘 눌러 담았다.

그제야 하준과 영빈, 지환이 서로의 부모님들께도 연락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동생들에게 든든한 형이 되고 싶었던 경환은 그날부터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다.

멤버들이 형제라면 형제의 가족 또한 자신에게 가족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관계의 확장.’

생각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단수였던 ‘나’에서 ‘우리’라고 불리게 된 지금까지의 무수한 일들.

‘언래블’이라고 하나로 묶여서 불리는 멤버들 한 명, 한 명으로 생각이 가지를 뻗어나갔다.

순간의 감정을 메모하는 경환의 손이 머릿속만큼이나 바빠졌다.

예전의 C.I라면 하지 못했던 더 다양한 주제의 음악이 언래블의 C.I가 되면서 가능해졌다.

경환은 자기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멤버들과 있을 때면 매일 매일 새로워서 이제는 어지간한 일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무관심했던 자신이 변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스스로가 거부감 한번 느끼지 않은 것도 신기했다.

“죄다 어디 하나 나사 빠진 것처럼 굴더니.”

힘찬의 생일날, 하준이 했던 말이 아무래도 사실인 듯했다.

다 어디 한구석 모자란 데, 우리는 겹치게 모자라지 않아 다행이라는 그 말.

당시에는 그냥 웃고 말았던 말인데 그 말 만큼 멤버들을 잘 표현할 문장이 없을 것 같았다.

똑똑.

“네.”

노크 소리에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나니 문 너머로 빼꼼 작은 머리통이 튀어나왔다.

“형, 바빠요?”

“아냐. 왜?”

“물어볼 게 있어서요….”

멤버 중 가장 예측 불가능한,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정석 같은 동생이 등장했다.

“뭔데?”

“그게….”

우물쭈물하던 지환은 경환이 맞은편 의자를 툭 하고 두드리자 금방 거기에 앉았다.

“음, 방금 찬이랑 좀 말다툼이 있었거든요?”

“찬이랑?”

경환이 되묻자 지환은 어색하게 웃었다.

“네. 그… 이번에 제가 혼자 잠깐 나갔다 왔었잖아요.”

“아, 에드.”

경환은 자기도 모르게 못마땅한 기색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눈이 댕그래진 지환이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바라봤지만, 슬며시 눈을 굴리며 모른척했다.

멤버들끼리 말을 꺼내지 말자고 이야기는 했어도 못마땅한 건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자꾸 주변에서 지환을 탐내는 것 같아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내 동생인데.’

경환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짧게 욕설을 내뱉었다.

하물며 좋은 일도 아니고 우리 적이었던 상대까지 챙기는 건 경환의 이해 범위 밖이었다.

하지만 당사자는 지환이었기에 별말 없이 넘어갔다.

“하, 하하…. 네, 그 선배님이요.”

“아무튼 그 사람이 왜?”

경환은 동생 앞에서 유치한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지만, 싫은 걸 감추는 건 못하는 사람이었다.

곤란하다는 듯 웃으며 뺨을 긁적거리던 지환은 힘찬과의 말다툼을 설명했다.

듀엣곡을 다듬고, 픽스된 곡을 맞춰보면서 둘이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벌어진 상황.

힘찬은 지환에게 자꾸 밖으로 돌지 말라고 했고, 지환은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자 힘찬은 다른 사람들한테 자꾸 시선 돌리지 말고 우리에게 집중하자고 했고 그제야 이해했다고.

“크게 싸운 건 아니에요! 찬이 잘 다독였고, 이야기도 잘했어요. 음, 근데 혹시 찬이 말고 다른 사람들도 서운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힐끔거리며 눈치를 보던 지환이 조심스럽게 방문 목적을 밝혔다.

평소에는 날카롭거나 나른해 보이던 눈매가 오늘따라 축 처져 있었다.

팔짱을 끼고 지환의 말을 경청하던 경환은 잠시 고민했다.

사실 그대로 말할 것인지 아니면 안심시킬 것인지.

고민은 짧았고, 경환은 거짓말보다는 침묵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서운한 것도 있는데, 음. 정확히는 뺏기는 기분이라 싫었어.”

“네?”

툭 내뱉는 경환의 대답에 지환의 표정이 고장 난 것처럼 희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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