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54)화 (354/456)

354. Chained Up(4)

“환이가 우리한테 쌓인 게 많았나 봐.”

“그럴 리가요.”

“아이고, 나이 먹었다고 이거 움직였다고 힘드네.”

그동안 괴롭힘당한 거에 비하면 새 발의 피만큼 되돌려준 건데, 형님들은 오해가 컸다.

스태프들은 촬영이 끝나고 하나둘 짐을 정리하더니 순식간에 돌아갔다.

힘들다고 악을 쓰면서도 꾸역꾸역 잘 버틴 형님들은 어째서인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물끄러미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안 가요?”

“왜 못 보내서 안달이야, 서운하게.”

짐짓 서운하다는 듯 하겸 형이 눈썹을 늘어트리며 불쌍한 척했지만, 거기에 속을 내가 아니었다.

그건 타임들한테나 해요, 이 사람아.

“바쁘잖아요. 자, 어서 가세요. 아, 바쁘다, 바빠.”

“영혼 1g도 안 섞인 목소리로 말하면 누가 믿냐.”

“환이가 이제 형들을 귀찮아하네. 얘들아, 어떻게 생각해?”

“공지환 변했네!”

촬영 중이라 다가오지 못했던 멤버들까지 옆으로 쫓아와서는 변했네, 변했어! 하고 노래를 불렀다.

주변을 둘러싸고 까르르 웃으며 놀리는 멤버들을 보고 있자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니, 왜 이럴 때까지 단합이 잘되냐고….

쓸데없이 화음 넣지 마요, 좀.

요새 우리 애들 너무 힘들었나? 왜 정신 연령이 퇴화한 것 같지.

한숨을 푹 내쉬며 손을 휘적거리는 내 옆으로 디아 형과 하겸 형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우리만 놔두고, 새벽 형들은 멤버들을 데리고 낄낄거리며 연습실을 나갔다.

자연스럽게 두 형님과 나만 남은 상황.

어쩐지 이 모든 게 미리 이야기된 것 같다는 촉이 왔다.

“환아, 잠깐 이야기할 수 있어?”

“저번에 전화하셨던 그 일 때문이죠?”

“응.”

능글맞게 웃던 얼굴은 어디 가고 어느새 그늘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디아 형.

그 옆에 하겸 형은 미묘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호기심을 감추려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몇 번 느낀 거지만, 하겸 형은 생각보다 더 단호하고 냉정한 사람 같았다.

“여기서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죠? 휴게실… 아니, 제 작업실로 가요.”

거긴 방음이 잘 되기도 했고, 일단 외부인이 드나들지 않는 공간이니까.

사람들을 물리고 이야기를 하려는 걸 보면 다른 사람이 들어서 좋은 이야기는 아닌 듯했다.

그렇게 둘을 데리고 작업실에 들어와 문단속까지 끝냈다.

그사이 두 형님은 목적을 잊은 건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작업실을 구경하고 있었다.

“제법 본격적이네. 오… 나도 언젠가는 환이가 가사 써주나?”

“그럼 난 곡 써주나?”

둘의 농담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나는 컴퓨터 의자를 당겨 앉았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 걸 보니 둘이 정말 닮았다 싶었다.

“장난 그만하고 이야기해봐요, 디아 형.”

“장난 아닌데.”

그 꾸물거리는 입꼬리나 어떻게 수습하고 말씀하시죠.

어휴, 진짜….

우리 애들이랑 새벽 형님들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다른 그룹까지 챙기고 있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이게 다 네 업보다, 계약자 놈아.’

복잡한 머릿속을 휘휘 흔들어 털어내는 내게 포잉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잠깐 요정계에 다녀온다고 자리를 비운 포잉.

평소에 하도 혼났더니 이제는 자동으로 머릿속에 재생되는 모양이었다.

“무슨 이야기가 궁금해서 이렇게 자리를 만든 거예요?”

“하하, 아니, 뭐….”

디아 형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오늘 방송의 MC가 그이지 않은가. 게스트로 하겸 형이 나온 것부터 수상했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연스럽게 접촉해서 남들 눈을 피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훤히 보였다.

스케줄이 아닌 개인적인 일로 숙소를 벗어나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멤버들이나 가까운 사람들은 알게 될 테니까.

둘 다 로드 매니저도 없이 직접 운전해서 온 걸 보면 확실해 보였다.

내 시선에 어색하게 웃던 디아 형은 이내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더니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에드가 갑자기 많이 달라졌어.”

“네. 저번에 연락했을 때 말씀드린 것처럼 저랑 만났고, 몇 가지 조언을 해줬어요.”

당시에는 자세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디아 형이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고, 나도 그러자고 답했다.

“중요한 이야기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아무래도 맞는 것 같아서.”

“물론 네가 거짓말을 한다거나 하는 그런 말은 아냐, 우리 병아리 오해하지 말고.”

둘은 사전에 이야기를 좀 나눴던 건 확실한 듯했다.

디아 형의 말에 하겸 형이 한마디 거들며 무겁게 가라앉으려는 분위기를 환기했다.

“알아요. 저도 대화는 직접 마주 보고 나누는 걸 더 좋아해요.”

두 사람이 내게 해로운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하겸 형은 그동안 쌓인 친분이 있으니 그렇다 쳐도, 디아 형은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한 사람.

무작정 신뢰를 주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아무리 날 좋게 본다고 해도, 디아 형의 바운더리 안에 있는 멤버들이 더 소중한 게 당연했다.

당장 나도 그러니까.

미래 일은 어떨지 모른다고 해도 항상 내게 중요한 건 우리 애들이다.

그렇기에 디아 형의 이런 태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당장 둘이 이야기하기엔 환이 네가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고운이도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내가 같이 가자고 했어.”

하겸 형은 오늘 쿠션 역할로 온 게 맞는 듯했다.

경중은 있을지언정 나와 디아 형 둘 모두를 걱정해서 그런 것 같았다.

“형들이랑 이야기하는 건데요, 뭐.”

둘 다 부담을 갖지 않았으면 해서 무해해 보이도록 최대한 부드럽게 웃었다.

준이 형의 미소나 세빈이 미소는 종종 사람들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 때문에 태생적인 날카로움을 지우고자 웃는 연습을 할 때 그 둘의 미소를 가장 많이 참고했다.

지금이야 웃는 게 꽤 자연스러워졌지만, 그전에는 무척 힘들었다.

비웃는다고 오해 사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웃음을 만드는 건 낯설고 어색한 일이었으니까.

연습하던 초반에는 자괴감이 드는 날도 있었다.

이제는 웃는 것까지 연습해야 하는 자신이 불쌍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하지만 덕분에 비즈니스용으로 잘 써먹고 있으니 다행이다.

“일단 그날 둘이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건지 알 수 있을까? 말하기 어려우면 형이 알아도 될 만큼이라도.”

“음, 제 개인 경험담도 조금 들어 있어서 대략적인 것만 말씀드릴게요.”

아무리 좋은 관계를 쌓아가는 사람이라고 해도 내 개인적인 부분까지 다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에드와 대화할 때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했지만….

아는 사람은 아는 내용이라고 해도 과거를 자꾸 헤집는 건 내 정신건강에 좋을 게 없다.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두 형님의 모습에 크게 숨을 내쉰 나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왜 에드와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는지, 그리고 만나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내밀한 내용을 제외한 대략적인 내용을 천천히 두 형님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후에 에드가 어떻게 했고, 내가 무엇을 했는지.

갑자기 바뀐 에드의 태도 때문에 멜트 형들도 생각이 많을 거라 짐작되었기에 조금 도와주자는 마음도 있었다.

연습장에 꾹꾹 눌러 담아 전하려던 그 투박하고 서툰 진심.

자기 잘못을 깨달아가는 과정에 눈물을 보인 모습 등.

침음성을 흘리는 디아 형과 담담한 얼굴의 하겸 형.

하겸 형은 무심한 듯 보이기도 했고, 무언가 못마땅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얼굴을 감싸 쥐고 고민에 빠진 디아 형.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지켜보길 몇 분.

디아 형은 깊은 한숨과 함께 고맙다는 말을 꺼냈다.

“내가 조금 더 잘 가르쳤어야 하는데. 애꿎은 네가 고생했네.”

자책하는 듯한 디아 형의 말에 하겸 형이 못마땅함을 감추지 못하고 툭 내뱉었다.

“네가 걔 부모야, 보호자야. 걔는 자기가 클 생각이 없었던 건데 그게 왜 네 책임이야.”

“그래도요. 말로는 맨날 우리가 키웠다고 했는데 정작 제대로 해준 게 없잖아요.”

“야, 너희도 애였어. 그렇게 따지면 다 걔처럼 개념 없어야 하게?”

하겸 형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디아 형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우리 준이 형도 늘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으니까.

준이 형은 경환 형, 나, 찬이, 세빈이가 혹시라도 혼자 힘들어하진 않는지 늘 걱정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앞장서서 해결하려고 했고, 자신이 리더고 형이니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음, 이건 그냥 제 생각인데요.”

타박하던 하겸 형도 침울해 보였던 디아 형도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는 리더도 아니고 동생인 입장이잖아요.”

내 눈앞의 두 사람 다 한 팀의 리더로 긴 시간 고생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리더가 아닌, 팀에 속해 보호받는 동생, 멤버의 입장에서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제가 잘못 컸으면 그건 제 잘못이 맞아요. 주변에서 아껴주지 않았던 것도 아니잖아요.”

“거봐.”

내 말이 끝나자마자 하겸 형이 툭 끼어들었다.

형, 좀….

“근데 사람이 감정에 휘둘리면 시야가 좁아지더라고요.”

나도 그랬고, 이전 지환이도 그랬으니까.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건만,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는 법을 몰랐다.

그냥 사람 자체가 너무 무섭고 어려웠으니까.

아프고 힘드느니 혼자가 되더라도 가만히 있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나를 밖으로 끄집어내 준 게 내 요정님, 포잉과 우리 애들이었다.

“당장 그냥 눈앞의 것만 보이고, 그걸 어떻게 해야 할 것 같고. 그러다 보니까 제대로 된 판단도 힘들고, 사고치고. 사고 치면 또 그 뒤가 무섭고요.”

멋쩍게 웃으며 말하는 내 모습에 둘 다 각자 무언가를 떠올린 건지 안쓰럽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럴 때 옆에 있는 사람들이 도와주면 그래도 빠져나올 수 있거든요? 뭐, 빠져나올 생각도 안 하는 사람이면 그냥 버리면 되겠지만요.”

넌지시 돌려 말한 내 뜻을 이해했는지 디아 형이 피식 웃었다.

에드가 반성하고 자기 죄를 뉘우쳤으니 기회 정도는 줘도 좋지 않겠냐는 의도였다.

“네가 형보다 낫네.”

“에이, 아니죠. 그냥 제가 오지랖이….”

이 오지랖 때문에 멤버들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던 게 떠올랐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연습… 힘들었지…. 하하.

“에드가 너한테 보냈다던 그 내용, 형한테도 보여줄 수 있어?”

“아, 네. 잠깐만요.”

에드와의 채팅방을 열어 형에게 내밀었다.

이미지만 보여주는 건 어쩐지 신뢰감을 주기 부족할 것 같아, 그냥 채팅방을 내밀었다.

핸드폰을 받아들고 한참 동안 화면을 들여다보던 디아 형은 핸드폰을 돌려주고는 마른세수를 했다.

“적어도 에드가 네게 제대로 사과하고 뉘우친 건 다행이네.”

“뭐, 사람이니까요. 살면서 잘못된 선택이나 실수를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잖아요. 하지만 그걸 수습하려고 움직이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요.”

어깨를 으쓱하며 난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는 걸 보여줬다.

“저한텐 우리 멤버들이 있어서 괜찮아요.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관심받고 있거든요.”

나는 정말 괜찮았다.

분명 또 삽질도 하고, 실수도 하고, 사고도 치겠지만, 멤버들이 잡아줄 테니까.

날 위해 화를 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든든한 기분이었다.

적어도 내가 잘못된 길에 들어선다면 멤버들이 화를 내고 걷어차서라도 바른길로 데려가 줄 테니까.

“그래서 형을 그렇게 홀대하는 거야?”

“홀대라뇨. 어허, 오해가 심하십니다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하겸 형이 또 툭 끼어들었지만, 훌륭하게 쳐냈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을 정했어. 고마워, 환아.”

내내 어두운 표정이었던 디아 형의 얼굴도 약간은 후련해졌다.

이제 멜트도, 에드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제가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말 곱게 하는 것 봐. 우리 집 새끼들이 이런 걸 보고 배워야 하는데. 하아.”

디아 형은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건지 평소처럼 가벼운 어투로 농담을 건넸다.

“환아, 진짜 형 동생 안 할래? 잘해줄게.”

“야, 너 순서 지키랬지?”

기운을 차리자마자 또 장난질이라니.

“둘 다 이제 좀 가요….”

이제 볼일 다 봤으면 둘 다 빨리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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