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48)화 (348/456)

348. 너나 해(3)

에드라는 폭탄을 멜트에 던진 후, 나는 멤버들의 극진한 사랑에 몸살을 앓았다.

극진한 사랑이라고 쓰고 연습 폭탄이라고 읽어야 할 그런 사랑.

찬이랑 세빈이가 들러붙어 춤 연습을 닦달했고, 영빈 형은 보컬 레슨에 소홀하면 안 된다며 붙잡았다.

덕분에 내 뼈가 물렁뼈였던가, 성대는 유리 성대였던가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왜 저 사람들은 되는데 나는 안되는 걸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준이 형과 경환 형은 돌아가면서 작곡과 프로듀싱, 작사를 놓고 들들 볶기 시작했다.

에단 쌤과 AR 팀은 어디서 소문을 들은 건지 적극 환영하며 한 손 보탰다.

차분하게 웃으며 ‘다시 해보자’를 연발하는 준이 형과 ‘이건 어때?’하면서 계속 턴을 넘기는 경환 형.

이러다 내가 먼저 죽겠다 싶었지만, 아무래도 멤버들이 서운해서 그런 것 같아 싫은 내색할 수도 없었다.

아니, 그런데 얘들아,

나 하고 싶은 거 하라며….

안에 담아두지 말고 하고 싶은 건 해도 된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나. 어, 크흠….

거기에 그치지 않고 포잉은 그 후로 한참 동안 자기 직전에 날 붙들고 혹독한 정신 무장을 시켰다.

아이돌이 아니라 상담사가 되고 싶은 거냐는 폭풍 같은 타박에 악몽까지 꿀 정도.

거대해진 포잉 앞에 무릎을 꿇고 혼나는 나와 주변에서 잘한다고 응원하는 멤버들.

꿈속에서도 열심히 빌었건만, 우리 포잉은 자비가 없었다.

거대해진 포잉이 나를 깔고 식빵을 구웠고, 옴짝달싹 못 하게 된 내 얼굴에 멤버들이 낙서를 해댔다.

겨우 꿈에서 깨어난 나는, 얌전히 자는 포잉을 바라보며 식은땀을 닦아야 했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는 사이 영화 마지막 분량을 찍기 위한 날이 다가왔다.

“오늘도 다치지 말고 잘하고 와.”

“조심할게.”

멤버들의 걱정 가득한 얼굴에 나는 최대한 조심하겠다고 그들을 다독일 수밖에 없었다.

추격전을 찍던 날, 처음 하는 액션 신에 여기저기 타박상을 달고 온 터라 멤버들 걱정도 이해됐다.

그날 파스를 붙여주던 세빈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경환 형과 찬이는 진우 형을 원망했고, 준이 형과 영빈 형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겨우 멤버들을 다독였고 최대한 조심했지만, 익숙지 않다 보니 자잘한 타박상은 피할 수 없었다.

이런 부상에는 내가 몸 쓰는 일이 익숙지 않다는 것도 한몫했다.

진우 형은 가볍게 날 듯이 뛰어다니는데 쫓기는 나는 너무….

몸무게가 가볍다고 몸도 가벼운 건 아니라는 걸 이렇게 몸으로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더 연습에 매진했지만, 쉽사리 늘지 않았다.

“환아,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알지?”

“네, 형. 진짜 조심해서 할게요.”

“제발 다치지 마라. 애들 난리 난다….”

우진 형이 지친다는 듯 푸념에 가까운 이야기를 흘렸다.

점점 활동적으로 변하는 멤버들을 단속하느라 우진 형도 힘든 것 같았다.

그 적극적인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준 나로서는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도망가는 수밖에.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화끈하게 갑시다!”

“두 번 화끈했다가는 우리 다 죽겠네!”

씩씩하게 인사를 건네자 제법 친해진 현장 스태프들과 감독님이 환영해주셨다.

감독님은 이상하게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강렬한 무언가를 원하듯 배우들을 쥐어짰다.

평소보다 더 눈이 돌아갔다며 진우 형이 혀를 내두를 정도.

그사이에 낀 나는 고래 싸움에 낀 플랑크톤의 마음이 되어 힘겹게 한 컷, 한 컷 넘어갈 뿐.

오늘도 짜부라지지 않고 잘 버티길 바라며 나, 한겸이 등장하는 마지막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ㅆ…. 후.”

한겸은 영화와 현실이 많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총을 맞아도, 맞는 부위에 따라 잘 죽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영화에서는 저격으로 그렇게 쉽게 정적을 처치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보다 잠입이 편하다는 것도.

통증이 심해질수록 한겸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고통을 참는 걸 어릴 때부터 훈련받았지만 늘 녹록지 않았다.

한밤중인 게 다행이었다.

대낮이었다면 핏자국 때문에 쉽게 잡혔을 터.

양부, 아니 그 빌어먹을 새끼를 이기는 건 한겸에게도 요원한 일이었다.

그저 지금 한겸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멀리 도망가는 척 유인하는 게 전부였다.

종현에게는 약속된 암호를 발송해두었으니 운이 좋다면 살 수도 있겠지.

설종현과 얽히는 게 아니었는데.

처음 만난 그 골목에서 차라리 죽었으면, 이렇게 복잡한 마음 같은 건 가지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한겸은 종현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그때 겨우 도망친 한겸은 양부의 지시에 따라 한동안 피해 있기로 했다.

거주지를 벗어나 서울로 숨어든 한겸은 우연히 마주한 은설이 꿈속에 울던 여자아이라는 걸 깨닫는다.

홀린 듯이 은설의 뒤를 밟던 한겸.

은설이 반대쪽의 누군가를 향해 행복한 듯 웃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본다.

사람이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한겸의 주변엔 늘 표정 없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적으로 마주한 사람들은 언제나 악을 쓰거나 자포자기했고 한겸을 원망했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사람 중 언제나 웃는 건 양부뿐이었다.

그래서 한겸은 양부가 좋았다.

유일하게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사람.

그런데 은설은 여태까지 보아온 어떤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

여린 꽃봉오리가 피어나듯.

여전히 손은 작았다.

자기 손을 내려다본 한겸은 굳은살 박이고 하얗기만 한 자기 손이 낯설었다.

햇빛 아래서 살아갈 수 없었기에 한겸의 피부는 창백했다.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 은신처로 돌아온 한겸은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에는 창백하고 음울한 표정을 한 앳된 얼굴이 있었다.

나이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작고 창백한 얼굴.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만 보던 한겸은 거울을 향해 웃었다.

비죽 올라가는 한쪽 입꼬리.

태어나서 한 번도 웃어본 적 없는 사람의 웃음처럼 조잡하고 어색했다.

순식간에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미소라는 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 은설의 미소를 떠올린 한겸은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 후 한겸은 버릇처럼 은설의 주변을 맴돌았다.

꽃집에서 일하는 은설을 본 한겸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걸로 먹고 살 수는 있는 거야?”

세상 물정 모르는 한겸이 봐도 밥은 먹고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장사가 잘 안되는 곳이었다.

그렇게 주변을 맴돌던 어느 날.

한겸은 은설이 기다리던 남자가 자신을 뒤쫓던 종현이라는걸 깨달았다.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다시 종현을 마주하게 되고, 은설이 자기 친동생이라는 걸 알게 된 그 날.

한겸은 자신이 그들을 위해 죽게 되리라는 걸 깨달았다.

왜 우는지도 모르고 한참을 울었다.

혈육을 찾았다는 안도의 눈물인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자신도 사람이라는 걸 깨달아 흐른 눈물인지.

양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이 버석거리던 메마른 심장을 적셨고 그제야 몸에 피가 도는 게 느껴졌다.

얽히고설킨 매듭은 섣부르게 풀려고 애쓰기보다는 잘라내고 새로 감는 게 나았다.

겨우 마주한 혈육을 위험하게 하느니 자신이 죽는 게 낫다.

그렇게 마음먹은 한겸은 그날부터 조금씩 준비했다.

양부와 조직의 눈을 피해 조금씩 내부 정보를 빼돌려 종현에게 찔러넣어 주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잡아 처넣을 거라고 으르렁거리던 종현은 어느새 친형처럼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 등신같이 혼자 삽질하지 말고 꼭 기다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양부와 그 조직의 소탕 계획을 세웠고, 종현은 한겸을 붙들고 다그쳤다.

동생, 그러니까 은설을 위해서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살아남으라고.

상부와 협상이 끝났고 살길을 마련해두었으니 단독행동하지 말라고.

입안에 핏물이 고이는 와중에도 그런 종현과 은설을 떠올리니 웃음이 흘러나왔다.

자신이 살아있다면 종현에게도 은설에게도 짐이 된다.

차라리 깔끔하게 사라지는 게 낫다.

한결같이 무른 사람들 같으니라고.

어느새 한겸의 얼굴에는 시원시원한 미소가 떠올랐다.

거울에 비쳤던 어색한 웃음이 아닌 편안한 미소였다.

그렇게 겨우 목적지였던 장소에 도착하자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겸아, 이제 그만 포기하지 그러냐.”

묵직하면서도 다정했던 그 목소리에 욕지거리가 치밀었다.

“이 아비가 기어코 너를 치워야겠냐.”

“답지 않은 연기 집어치워요, 어차피 아들로 여기지도 않았잖아!”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숨이 모자랐지만, 평온한 저 얼굴을 보자마자 분노가 치밀었다.

저 얼굴로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을 뺏었던가.

아마 자신을 치울 때도 저 얼굴이겠지.

양부의 뒤를 캘수록 그가 했던 어떤 말도 진실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자신이 어리석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어차피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또 바보처럼 저 사람의 손을 잡겠지.

“너는 아직 내게 배울 게 많아. 그러니 때늦은 사춘기는 그만두고 말 들어.”

기가 막혔다.

그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한겸을 하나의 장기 말로밖에 보지 않았다.

온순하게 길든 개를 보는 듯한 얼굴.

왜 여태까지는 몰랐을까.

저 시선은 사람을 보는 시선이 아니라 기르는 짐승을 보는 눈인데.

군용 나이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몇 명이나 숨겨놨을까.

본능적으로 여태까지 몸에 차곡차곡 박아둔 무수히 많은 계산이 오갔지만 이내 머리를 흔들어 털어냈다.

어차피 목적은 시간을 끄는 것뿐이니까.

한겸이 혈육인 은설과 형제처럼 자신을 아껴준 종현에게 줄 수 있는 건 고작 자신의 목숨뿐이었다.

* * *

“꽤 좋아졌죠?”

“어. 진짜로. 기백이 부족했는데 이제는 아주 제법이야.”

김찬성 감독은 흡족한 얼굴로 이제 막 입가에 묻은 가짜 피를 닦아내는 지환을 주시했다.

처음에는 너무 호리호리하게 생긴 애라 전투 장면의 맛이 덜했다.

종잇장처럼 나풀거려서 박진감 넘쳐야 할 액션 신에 긴장이 떨어졌다.

묵직한 맛을 살리기엔 부족하니 차라리 속도전으로 방향을 바꾸자는 무술 감독의 조언이 옳았다.

허덕이며 간신히 쫓아오는 듯하던 지환은 연습을 열심히 한다더니 확실히 좋아졌다.

좀 헤매나 싶더니 갑자기 확 좋아져서 무술 감독이 칭찬하면서 물었다.

그러자 지환이 멋쩍은 얼굴로 웃으며 답하길 멤버들 덕분이라고.

검무 영상을 공부해온 막내가 들들 볶았고, 격투 신을 공부한 힘찬과 경환이 열심히 굴렸다고 했다.

유단자라던 팀의 매니저도 지환이 몸 쓰는 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김 감독은 도대체 저 팀 애들은 어떻게 된 애들이냐고 어리둥절해 할 정도.

게다가 여진우와도 틈만 나면 합을 맞췄고, 스케줄이 빠듯할 텐데도 촬영장을 자주 찾았다.

다른 선배님들 하는 걸 보고 많이 배워야 한다고 어찌나 열심히 하던지.

액션 신은 대부분 나이프로 이루어졌지만, 지환이 검무를 배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감독은 그 컷도 하나 찍었다.

갑자기 터져 나오는 진실에 정신 못 차리는 도한겸이 잠시 현실도피로 조직의 본거지에 처박히는 장면이 있었다.

마침 산속이니 짧게라도 검무를 넣자고 지환을 꼬드긴 것.

지환의 본업이 아이돌이니 그런 팬들을 위해 서비스 컷이라고 생각하고 넣자고 열심히 약을 팔았다.

갑자기 무슨 검무냐고 기함하던 박수영도 김 감독의 설득에 넘어갔다.

풍경도 좋고, 슬픔에 허덕이는 지환의 얼굴도 괜찮았으니 감정 정리하는 차원에서 넣어도 괜찮겠다고 합의 본 것.

곤란한 얼굴로 잘 못 한다고 뒤로 빼던 지환은 진우와 다른 배우들까지 눈을 빛내자 결국 승낙했다.

현장에 있던 무술 감독의 도움을 받아 즉석에서 몇 가지 동작을 골라낸 후 시작된 촬영은 예상보다 훌륭했다.

이러려고 비싼 카메라 샀지, 하면서 신나던 김 감독.

촬영하면서 있었던 여러 에피소드를 떠올린 김찬성 감독의 얼굴에는 진한 만족감이 떠올랐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촬영을 마친 마지막 신에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인사를 나눴다.

전체 촬영도 이제 막바지였고, 이제 남은 건 편집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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