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 낙하(5)
“이것들은 하나 같이 진짜!”
소현은 지환을 통해 배우실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와 사무실 직원들의 이야기가 멤버들에게 미친 영향을 알았다.
가뜩이나 제일 조심해야 하는 시기에 까딱하다 팀의 분열을 일으킬 뻔했으니 확실히 문제 삼을만한 일이었다.
소현은 바로 정윤에게 이와 같은 일을 보고했고, 정윤은 자신이 안일했음을 시인했다.
조금 더 신경 쓰겠다는 말과 함께 배우실 일은 걱정하지 말라는 확답도 주었고.
그 후 소현이 한 일은 사무실 직원들의 단속이었다.
언래블의 활동이 늘어남에 따라 사무실 직원도 크게 늘었다.
그러다 보니 이후 입사자들은 멤버들을 대하는 게 처음부터 함께한 이들과 상당히 달랐다.
‘우리 애들’이라는 느낌보다 비즈니스로 대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소현은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사 구분이 확실한 건 좋은 일이고, 감정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의 구분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회사 업무에 지장을 주는 분란의 원인이 되는 것은 곤란했다.
사무실 직원을 모두 모은 소현은 단호하고 분명한 어조로 경고했다.
이 업계에서 업무의 비밀유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비밀유지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어떤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지 등.
ON 엔터는 일이 많은 만큼 대우가 좋았고, 복리후생도 좋은 편이었다.
회사 내에서 가벼운 생각으로 말을 흘렸다가 기자에게 들어갔을 때 생길 수 있는 파장 등을 예시로 들어 단속하자 다들 수긍했다.
소현은 언래블 멤버들이 받을 상처 등을 예로 들지 않았다.
멤버들을 언급해봤자 유대가 쌓이지 않은 사람들은 남의 일이었다.
가끔은 연예인이 벌어들이는 수익과 자신의 수익을 비교하며 불만을 품는 이들도 있었다.
무의미하다는 걸 알지만, 원래 사람은 남의 떡이 커 보이고 제 일이 제일 고되다고 생각하니까.
겨우 내부 단속을 한 번 더 끝낸 소현은 멤버들을 불러 다독이는 시간을 가졌다.
늘 고생하면서도 불평불만 하지 않는 내 새끼들.
고맙고 장하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소현은 멤버들을 하나하나 칭찬하고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북돋아 주었다.
덕분에 신난 찬이와 세빈이가 달려들어서 정신을 쏙 빼놓긴 했지만, 소현은 그것도 싫지는 않았다.
애를 낳아 본 적은 없지만, 애들을 키운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고.
다시 마음을 다잡은 소현은 콘서트 준비와 멤버들의 스케줄을 확인했다.
언래블 멤버들이고 자신이고 한동안 휴식은 그른 것 같았다.
“하…. 퇴사하고 싶다.”
언래블이 예쁜 건 예쁜 거고, 일은 언제나 일이었다.
* * *
정규 활동이 끝난 시점, 팬들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줄 공지가 연달아 올랐다.
본격적으로 멤버들의 개인 활동에 대한 스케줄 공지와 콘서트 일정 또한 공개한 것.
예약 일정에 대한 안내와 함께 회사와 멤버들이 고심했던 굿즈와 응원봉 또한 공개되었다.
이때 회사에서 내놓은 방법은 예약판매였다.
얼마나 팔릴지 모르니 현장 판매는 소량으로 준비하고, 예약 판매하여 현장에서 수령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다만, 현장 수령이 어려운, 그러니까 티켓팅에 실패한 이들은 택배 수령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비록 일정 금액 이상은 택배비가 들지만, 택배비가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내가 강력하게 주장해서 이룬 일이기도 했다.
콘서트 당일이면 굿즈 사려고 전날부터, 새벽부터 땡볕 아래서 줄을 서는 진풍경들.
그건 직접 경험해보지 못하면 알 수 없는 고충이니까.
사람들이 잔뜩 몰려서 줄을 선 모습을 홍보 기사로 뿌리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봤자 연예인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남의 일이었고, 물어뜯기 좋은 소재일 뿐이니까.
콘서트 당일은 보통 일찍부터 팬들끼리 모여서 개인 굿즈를 나눔 하기도 하고 친분을 다지기도 한다.
그 때문에 일찍 모여 축제 기분을 만끽하는 것도 있고.
물론 입장 시간 때문에 시작 시간보다 일찍 가야 하는 건 있지만, 그래도 새벽부터 줄 서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 고생을 해도 품절 때문에 사고 싶은 굿즈를 못사는 일도 허다했기에 차라리 예판과 현장 수령을 하자는 것.
대략적인 금액을 산출해서 굿즈 제작 업체를 찾는 게 일이긴 했지만, 남아돌아서 악성 재고 되는 것보다야.
굿즈 제작에도 멤버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굿즈는 이번 콘서트의 주제와 어울리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며 열심히 의견을 모은 것.
콘서트 주제는 ‘혁명(Revolution)’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내놓은 곡 중에서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선택했다고 했다.
이 부분은 회사에서 제시한 내용이었고 우리도 금방 수긍했다.
그렇게 준비된 여러 굿즈 중, 키링과 배지는 나도 따로 챙겨야겠다고 마음먹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사진집이나 포스터, 엽서 세트부터 반팔 티, 슬로건, 가방도 있었다.
그 밖에 많은 굿즈가 물망에 올랐다.
그중 일부는 나중을 위해 남겨두기로 하고 대표적인 것들이 준비에 들어갔다.
“이거 다 사면 솜뭉치들 통장 거덜 나겠는데….”
“회사는 이익을 내는 집단이야. 그러니 당연한 거지. 그래도 퀄리티 좋고 가격도 너무 후려치기 안 하면 팬들은 좋아할걸?”
아직 순진한 우리 찬이는 솜뭉치들 지갑을 걱정했다.
나도 굿즈에 앨범에 콘서트 DVD, 화보, 팬클럽 가입과 시즌 그리팅까지 다 사느라 허덕이던 때가 떠올랐다.
하지만 회사가 자선사업 하자고 우리한테 그렇게 투자하는 게 아닌 이상 그 분야를 우리가 말하는 것도 이상했다.
그저 제발 선을 넘지 않기를 바라면서 적당히 우리 의견을 내비치는 수밖에.
지금이야 아직 허니비 광고만 진행해서 크게 티 나지 않았지만, 곧 촬영이 시작되는 의류 광고는 조금 달랐다.
가격에서 아무래도 차이가 나니까.
그런 부분을 우리도 종종 이야기하곤 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돈만 보고 가다간 팬을 잃을 것 같다는 우려.
토대가 탄탄해야 그 위에 지어진 건물도 오래가는 법.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들어왔던 몇 가지 광고는 회의 끝에 거절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광고 제의가 들어왔다는 말에 마냥 기뻤지만, 당시 소현 팀장님의 설명이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광고 모델의 이미지도 제품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반대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야 다른 모델로 바꾸고 이미지 세탁이라도 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가 더 어렵다는 말도.
그 말을 들은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소현 팀장님에게 우리 결론을 이야기했다.
여태까지처럼 소현 팀장님이 먼저 잘 걸러주시길 부탁드렸고, 금액도 중요하지만, 제품도 잘 살펴달라고.
국민 정서에 반하는 제품이나 도덕적으로 애매한 건 좀 거르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물론 신인 주제에 가리는 것 자체가 헛소리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멀리 보기로 했다.
너희가 그렇게 생각해서 기쁘다고 말하는 소현 팀장님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우리가 직접 경험해보길 원하셨던 것 같았다.
수동적인 사람이 되기보다 우리가 당사자이니 더 많이 고민하고 옳은 것들을 찾아가라는 뜻이지 않았을까?
여러모로 ON 엔터도 특이한 회사긴 했다.
이래서야 우리 대표님 돈 벌고 있는 게 맞나?
여러 생각에 빠져있다 보니 현장에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오늘은 드디어 광고 촬영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영상 촬영은 내일부터였고 오늘은 홍보용 사진 촬영을 위한 자리였다.
덤으로 매장에서 팬분들에게 줄 포스터용 사진도 찍어야 했고.
“어서 와요!”
“안녕하세요, 언래블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환한 얼굴로 반겨주는 작가님과 스태프들의 모습은 늘 새로운 기분이 들게 했다.
우리 앨범 촬영을 위해 회사에서 고용했던 작가님들이야 대부분 친절했지만, 그 외에 촬영에서는 안 그랬으니까.
무시당하거나 물건 취급받기 일쑤였다.
그나마 우리가 잘하거나 좋은 이슈를 물어오면 PD님이 칭찬해주시는 정도.
그래도 꾸준히 예의 바른 모습을 보였고, 음악방송 1위도 하고 불러주는 곳도 많아지면서 대우가 좋아졌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환대하는 건 또 다른 경우라 의문이 생기긴 했다.
“갈아입고 봅시다!”
“넵!”
최대한 빠르게 의상을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손보는 동안에도 우리 애들 입은 쉬지 않았다.
“형, 오늘따라 얼굴이 더 부은 것 같은데.”
“아닌데? 어제랑 똑같은데.”
“그럼 어제도 얼굴이 컸나 보다.”
“아, 야!”
세빈이의 걱정인 듯 아닌 듯한 디스, 찬이의 반격은 늘 있는 일이었다.
“남자는 핑크라고 하더라고요.”
“그, 그래. 색이 잘 받으면 좋지 뭐.”
경환 형의 갑작스러운 연분홍 사랑도 웃음을 샀다.
우리 막내가 옷을 골라줬던 게 마음에 들었는지 연분홍색에 짙은 보라색 포인트 후드티를 마음에 들어 했다.
“단체 사진은 이거 입고 찍어요?”
“예쁘다….”
단체 사진용으로 준비된 의상 중에는 저지도 있었다.
가슴 쪽에는 회사 로고가 심플하게 적혀있었고, 등 뒤에는 멤버들의 생일이 넘버로 적혀있었다.
그 위에 언래블이라는 팀 이름까지.
이번 촬영을 위해 준비했다는 의상은 멤버들의 눈이 돌아가게 만들기 충분했다.
더불어 광고주님 측에서 넌지시 흘려준 말에 의하면 이 디자인은 한정판으로 판매할 거라 했다.
언래블 에디션으로 팀명과 넘버를 새긴 한정판이라니.
솜뭉치들의 지갑이 털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생일 날짜가 다 달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네. 날짜 겹쳤으면 그것도 곤란할 뻔.”
시답잖은 농담 하나를 주고받으면서도 멤버들 얼굴이 환했다.
무언가 우리를 기념할 수 있는 물건이 팔린다는 것도 기뻤지만, 어딘지 모르게 대우받는다는 기분.
언래블이 그래도 이제 무시당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멤버들을 기쁘게 한 것 같았다.
‘수상한 건 없으니까 안심해도 될 듯함.’
‘고마워, 포잉.’
포잉은 언제나처럼 현장에 오자마자 사방을 둘러보고 다니며 위험 요소를 확인했다.
현장을 확인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도 들으면서 여러 가지를 점검해본 것.
이런 포잉의 활약으로 ‘Origin’ 때도 잘 넘길 수 있었음을 알기에 늘 고마웠다.
“하준 씨부터 촬영 들어갈게요.”
“네.”
준비를 마친 우리 준이 형이 불려가고 그때부터 멤버들은 각자 포즈와 표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준이 형 사진도 찍고 놀리기도 하면서.
그동안 앨범 촬영과 방송 출연으로 카메라는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걱정은 줄지 않았다.
앨범의 컨셉 포토와 광고 사진은 또 다르니까.
“조금 더 자신 있는 얼굴로! 네, 지금 표정 좋아요. 옆에 걸터앉아볼래요?”
감독님의 지시에 따라 이리저리 쌓인 상자 위에 걸터앉기도 하고,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기도 하는 준이 형.
칭찬을 퍼부어주시는 작가님 덕분에 준이 형의 포즈와 표정도 한껏 자신감이 묻어났다.
“이렇게 보면 하준 형도 좀 잘생겼는데.”
“그 말 고대로 준이한테 전해주마.”
경환 형의 중얼거림에 진지한 얼굴로 준이 형의 모습을 지켜보던 영빈 형이 한마디 했다.
아무래도 형1, 형2 때의 일이 앙금으로 남은 듯했다.
‘영빈 형은 진짜 뒤끝이 좀 있나 봐.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여태까지 형을 놀렸던 일이나 장난쳤던 것들을 떠올리며 속으로 다짐하는 사이 포잉의 한숨이 들려왔다.
‘아무튼 너희는 정말….’
‘정말 뭐?’
‘쯧.’
이런 소소한 것들로 놀리고 장난치는 우리가 여전히 하찮아 보였는지 포잉은 가볍게 혀를 찼다.
포잉의 혀 차는 소리, 영빈 형에게 우는소리 하며 살려달라는 경환 형의 목소리.
찬이가 포즈를 취하면 세빈이가 비웃는 소리가 현장의 카메라 소리를 배경으로 어우러지고 있었다.
“다음은 영빈 씨, 준비해주세요.”
아, 일단 모르겠고 사진이나 잔뜩 찍어놔야지.
준이 형의 사진을 신나게 찍던 나는 마냥 행복했다.
이게 덕업일치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