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39)화 (339/456)

339. Daydream(4)

‘쓸데없는 짓 하지 마셈.’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눈빛이 불순함.’

까칠한 우리 포잉은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으름장을 놓으며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하다 하다 요정님한테까지 잔소리를 듣다니.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면 너무 위선적인 사람으로 비칠까?

다른 형들에게 다시 받아들여지는 건 에드와 형들의 몫이라는 걸 안다.

그 부분에 관여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내가 그들에게 귀염받는 동생이라 화가 나는 것과 형들이 느꼈을 배신감은 별개니까.

그렇지만 에드와 대화를 나누는 건 내 마음이지 않을까?

일방적인 상황이 아니었기에 훌쩍 다가가 말을 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냥 진솔하게 에드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졌다.

왜 그렇게 우리를 마음에 안 들어 했는지.

지금은 어떤지.

사람 대 사람으로 한번 부딪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맴돌았다.

당시에는 에드에게 신경 쓸 여력이 전혀 없었기에 크게 관심 두지 않았다.

우리 애들한테 자꾸 빈정거리니까 거슬리는 사람이었을 뿐.

나중에 에드가 말을 흘렸다는 걸 알았을 때는 바보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멤버들, 누나, 형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가끔 에드가 떠올랐다.

이런 내가 무르다고 포잉은 늘 타박했지만.

그때 에드가 내게 보였던 절박함이 거짓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람 욕심이 많은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지금 소중히 해주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상황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질식할 것 같다.

애정과 온기가 가득했던 시선에 경멸이 스미고 한 톨의 감정도 없어지게 된다니.

피부가 한 꺼풀씩 저며지면 그 통증이 비슷할까?

나는 에드가 촬영을 무사히 끝마친 데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장에 있다는 게 대단해 보였다.

나라면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을 테니까.

포잉에게 속마음을 들킨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하겸 형을 바라봤다.

느긋한 얼굴로 날 바라보는 형의 얼굴에는 에드에 대한 걱정이 단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하겸 형이 굉장히 단호한 사람이라는 건 전생과 현생의 경험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단호하기는 새벽 형들과 비등비등할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새벽 형들은 대놓고 칼 같은 사람들이었다.

니 건 니 거고 내 건 내 거. 이런 확연한 구분 선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반면, 하겸 형은 굉장히 사회화가 잘 된 가영 형 같다는 느낌이라는 게 달랐다.

그러게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는.

한겨울 벌판에 내던져진 사람처럼 몸을 덜덜 떨며 미안하다고, 그러려던 게 아니라고 하던 얼굴이 자꾸만 생각났다.

그는 손안에 가득 움켜쥐려던 모든 걸 놓친 후에야 가장 소중한 게 어떤 것들이었는지 깨달았다.

속마음 보지 말걸.

질척이고 진득하게 녹아나던 후회의 감정들.

너무 날것의 감정들은 이래서 되도록 보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시작된 두통이 영 가라앉질 않아 우진 형을 찾았다.

“또 머리 아파?”

“괜찮아요. 몸이 주인 안 닮아서 좀 예민해서 그래요.”

두통 때문에 약을 찾는 일이 늘었다.

맥없이 웃는 내 모습에 반듯했던 우진 형의 이마가 잔뜩 찌푸려졌다.

“형 자꾸 그렇게 인상 쓰면 주름 생긴다?”

“내 주름 걱정할 시간에 네 건강이나 더 신경 써라, 인마.”

우직한 얼굴에 분명하게 드러나는 걱정이라는 감정이 이상하게 달았다.

바로 직전 소중한 걸 놓쳤던 에드를 동정했던 주제에 내 것은 이렇게 귀했다.

절대로 손에 쥔 것들을 놓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큼’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곧 있으면 촬영 시작이었으니 그전까지 정신을 단단히 붙들어야 했다.

우진 형에게 쪼르르 달려온 시점부터 멤버들의 시선이 콕콕 박혀서 등이 따가워 죽을 것 같았다.

대화를 나누다 잠시 이탈했던 터라 우진 형이 건네준 생수와 약을 함께 들이켜고 다시 표정을 가다듬었다.

다시 멤버들 옆으로 복귀하자, 갑자기 디아 형이 다가와 이마를 짚었다.

“형?”

우리 멤버도 아닌 다른 팀 형이 갑자기 다가와 조금 놀랐다.

“너 열 있어. 괜찮아?”

“새끼 병아리, 아파?”

디아 형의 한마디에 힘찬이를 괴롭히느라 낄낄대던 얀 형까지 고개를 불쑥 디밀었다.

“야, 니네 그렇게 들러붙으면 쟤 놀라잖아. 못생긴 것들이.”

“제일 못생긴 사람 자기소개 잘 들었고요.”

그새를 못 참고 하겸 형과 단우 형이 서로를 디스하며 곁으로 다가왔다.

“형, 우리 찬이는 좀 놔주고….”

하겸 형은 옆구리에 찬이를 끼고 있었는데 날 보는 눈빛이 어찌나 애처로운지 순간 세빈인 줄 알았다.

“요새 바쁘다더니 무리했나 보네. 약은 잘 챙겨 먹어?”

“네. 저희 팀에서 제가 약은 제일 잘 챙겨 먹을걸요?”

“그건 인정. 쟤가 약은 잘 먹어요.”

“홍삼을 들고 다닐 정도면 그럴만하긴 하지.”

“아, 쫌 저리들 가요!”

걱정은 걱정이고, 이 사람들은 건수 하나 물면 자기들끼리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느라 버거웠다.

한숨을 푹 내쉬며 형들을 전부 밀어내고 나서야 한쪽에 있는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약도 챙겨 먹었고, 조금 있으면 가라앉는 신경성이라고 해명까지 하고 난 후에야 다들 떨어져 나갔다.

오죽하면 우리 애들이 형들 등쌀에 밀려서 내 곁으로 오질 못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애타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멤버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우리 애들이 주접으로 밀릴 애들이 아닌데, 허허.

골든아워고 멜트고 우리 애들을 한 명씩 끼고 무슨 할 얘기들이 그렇게 많은지.

특히 영빈 형은 사피 형과 언제 저렇게 친해진 걸까?

예전에 영빈 형을 무척 아껴주셨던 보컬 쌤이 지금은 멜트의 레슨을 봐주신다고 했던 게 겨우 생각났다.

처음 만나서 밥 먹던 날 그런 이야기가 오갔었다.

둘 다 메인 보컬이라는 자신의 포지션에서 더 동질감을 느낀 건지 내내 둘만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거기에 골든 아워 메보인 인하 형까지 한마디씩 거들고 있었고.

페리 형이랑 루 형은 세빈이를 가운데 두고 뭐라고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둘이 양쪽에서 계속 말을 거는 바람에 우리 막둥이 고개가 좌우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러다 목에 담 오겠네.

키는 훌쩍 컸는데 얼굴은 아직 아가라 마냥 귀여웠다.

잠깐 두통을 가라앉힌다는 핑계로 혼자 앉은 김에 바쁘게 돌아가는 세트장을 바라봤다.

데뷔 조 애들은 자기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귀엽네.

그들로서는 까마득한 선배인 골든 아워와 멜트여서 그런 걸까?

제법 긴 시간 함께 지냈는데도 여전히 어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같은 회사 직속 선배가 될 테니 더 어렵지 않겠어?’

‘그런 걸까?’

두통은 의자에 앉은 내 품으로 포잉이 안겨 오면서부터 급격히 가라앉았다.

역시 포잉 테라피가 짱이다….

데뷔조 멤버에는 역시나 주의 깊게 봤던 김유원과 이온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 주영욱 PD의 사주로 어그로 좀 끌어보려고 했던 강한규는 역시나 나가리된 모양이었다.

그러게, 줄을 탈 거면 잘 좀 타던가.

마지막 방송이니 탈락한 연습생들도 다 같이 찍지 않을까 했는데 따로 촬영 후 편집한다고 했다.

연습생끼리 한번 찍고, 될 애들만 빼서 선배들이랑 찐 막으로 한 번 더 찍고.

세트가 정돈되고 각 팀의 스타일리스트 분들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헤어와 메이크업, 의상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오리진 멤버들만 해도 7명.

거기에 골든아워 네 명, 멜트 다섯 명, 우리가 여섯 명이니 말 그대로 득실득실했다.

가희 누나가 멤버들을 챙기는 사이 희주 누나가 손짓했다.

“약은 좀 들어?”

“넵. 이제 괜찮아요.”

우리가 폭풍 같은 일 년을 보내는 동안 서포트 팀분들은 우리와 함께 고생해주셨다.

같이 고생했다는 동질감 덕분인지 우리는 서포트 팀분들과 꽤 잘 지내고 있었다.

종종 누나들이 안쓰러운 얼굴로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서 늘 더 환하게 웃었다.

빠르게 점검이 끝났고 준비된 세트장에 하나, 둘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한쪽에서는 오늘 진행을 맡은 단우 형이 PD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메이크업했는데도 핏기가 없는 에드의 얼굴이 또 눈에 들어왔다.

아, 난 진짜 등신인가.

결국 저 얼굴을 외면하지 못하리라는 걸 깨달은 나는 안 된다고 고개를 흔드는 포잉을 향해 웃었다.

내 눈빛을 읽은 포잉의 꼬리가 바짝 섰다.

‘이 계약자 놈아!’

‘포잉, 미안. 하하….’

하악질하기 직전의 화난 모습에 어설프게 미소를 짓던 나는 간신히 시선을 돌려 우리 막내를 바라봤다.

“형, 왜요?”

“아냐. 그냥 우리 막내 예뻐서.”

“네? 아니….”

갑자기 툭 던진 칭찬에 세빈이가 우물쭈물하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전히 칭찬 듣는 게 부끄러운 우리 막둥이.

“환아, 세빈이가 이뻐죽겠어?”

“그럼요. 말도 잘 듣지, 뭐든지 열심히 하려고 하지, 춤도 기깔나게 잘 추지. 얼마나 예뻐요.”

“세빈이만?”

“나는?”

“환아, 형은?”

오리진 멤버들이 제일 아래쪽에 쪼르르 앉아 있었고, 그 윗줄에 우리와 멜트 형들이 앉아 있었다.

우리와 비스듬하게 마주 보고 골든아워 형들이 앉아 있었고.

세빈이와 소곤거리는 내 목소리를 옆에서 들은 루 형이 느물거리며 장난을 걸어왔다.

이때다 싶었는지 얀 형이 추임새를 넣고 다시 자기들끼리 낄낄대느라 아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찬이는 옆에서 왜 세빈이만 예뻐하냐고 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투덜거리며 어깨를 툭툭 쳐왔고.

아, 넌 쫌 가만히 있어 봐!

하겸 형은 왜 끼어드는 거야, 도대체!

오리진 멤버들은 대놓고 웃지도 못하고 웃음을 참느라 어깨가 파들거리고 있었다.

얘들아, 웃어도 괜찮아….

생각해보면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도 있었다.

아무래도 후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데뷔조 멤버들은 이상하게 더 어리게만 보였다.

물론 얼굴만 따지면 형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멤버도 있긴 했지만.

“자, 슬슬 시작할게요.”

묵직한 목소리를 가진 PD님의 멘트에 다들 자세를 가다듬었다.

언제 장난쳤냐는 듯 멀끔한 얼굴을 한 이 인간들.

프로 방송인들이었다.

* * *

“윤혁아, 세율이는?”

가영은 작업하느라 밤을 꼴딱 새운 덕분에 한껏 후줄근한 얼굴이었다.

키스는 익숙하지만 별로 보고 싶지 않은 그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세비 형은 약속 있다고 나갔어.”

“언제 온대? 녹음해야 하는데.”

새 앨범에 넣을 곡 작업한다고 한동안 두문불출하더니 끝난 모양이었다.

“가사 끝났어?”

“어. 우리 병아리는 역시 행운의 부적이 틀림없다.”

“환이?”

히죽거리던 가영은 키스에게 손짓하며 옆으로 오라고 불러댔다.

“들어봐. 진짜, 옆에 있었으면 뽀뽀라도 씨게 해주는 건데.”

“니가 그러는 순간부터 언래블이랑은 연 끊길 거 같으니까 하지 마.”

손바닥을 비벼가며 만족스럽게 웃는 가영의 위험 발언에 키스는 정색하고 타박했다.

워낙 스킨쉽에 거리낌이 없는 가영은 공연하다 혼자 불붙으면 새벽 멤버들에게도 뽀뽀를 해댔다.

그 때문에 키스는 들고 있던 기타로 가영을 후려칠 뻔했고.

“일단 들어봐봐, 진짜 잘 나왔다니까?”

이번 앨범 가사 때문에 가영이 며칠 동안 머리를 쥐어뜯은 걸 알기에 키스도 궁금하긴 했다.

하도 바닥을 긁으며 숙소 안을 돌아다니길래 던진 말이었는데.

다른 작사가에게 의뢰할 것이냐 직접 쓸 것이냐를 고민하길래 언래블을 언급했었다.

그동안 언래블의 곡을 빠짐없이 챙겨 들었던 키스는 협업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해왔다.

자기들만의 서사를 구축해나가는 멤버들의 활동도 좋았고, 직접 곡을 쓰는 멤버들의 포텐도 훌륭했다.

가영도 에단과 종종 함께 작업하고 오면 작곡 멤버들의 이야기를 키스와 세비에게 늘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막힐 때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듯했지만.

이어폰 너머로 흘러들어오는 지환의 목소리와 중간중간 섞여 들어오는 힘찬의 목소리.

“이거 진짜 괜찮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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