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38)화 (338/456)

338. Daydream(3)

“화나.”

“어?”

“너 오늘 되게 못생긴 거 같아.”

멍하니 러그 위에 퍼져있던 나는 갑자기 말로 후드려 맞았다.

최찐빵 주제에…?

평소보다 얌전히 널브러져 있길래 쟤도 사람이구나 싶었다.

연습이 그만큼 고됐으니까.

아닌 게 아니라 체력 좋기로 소문난 경환 형도 오늘은 나무늘보처럼 바디 필로우 위에 널려있었다.

그런 경환 형 다리를 베개 삼아 세빈이가 누워있었고.

영빈 형은 벽에 기대 골골대는 중이었고, 하준 형은 영빈 형 허벅지를 베개 삼으려다 걷어차였다.

무슨 영문인지 제영 쌤이 점점 빡세게 연습을 굴리는 터라 하루하루가 바짝 마른오징어 신세였다.

그렇게 김치통에 차곡차곡 쌓인 파김치처럼 거실에 누워있던 차에 갑자기 찬이가 내 얼굴을 짜부라트린 것.

“갑자기?”

“이게 무슨 헛소리야?”

“쟤 뭐 잘못 먹었어?”

너무 지쳐서 잠깐 애가 미쳤나 싶은 눈으로 쳐다봤더니 혼자 비실비실 웃고 있었다.

뭐야, 얘 진짜 미쳤어?

평소에 뭔가 사고 치기 전에 짓던 빙구웃음이랑은 약간 달랐다.

나사가 두어 개쯤 빠진 듯한 웃음이었다.

“쟤 우리 몰래 술 마셨어? 왜 저래?”

“저 형은 술을 안 마셔도 늘 이상했어.”

“일단 너희는 술 마시면 안 되는 나이다만….”

숨만 쉬고 있던 경환 형까지 찬이를 이상하게 봤다.

누구 하나 입을 여니까 거실이 시끌시끌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다들 한마디씩 아무 말이나 뱉기 시작했고, 내 얼굴을 쿡쿡 찌르던 찬이를 밀어 넘어트려 깔고 앉았다.

“찬아, 이 엉아랑 놀고 싶으면 순순히 놀고 싶다고 하렴.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너보단 낫지.”

“우리 엄마는 내가 제일 잘생겼다고 했거든?”

다들 지쳐서 아무 말 없이 드러누워만 있는 분위기가 싫었던 건가?

찬이가 시작한 헛소리 덕분에 지쳐있던 멤버들이 피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하루 종일 보는 얼굴들이건만, 아직도 우리는 우리끼리 노는 게 제일 재밌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헛소리로 시시덕거리다 어느새 최근 회사 분위기로 주제가 넘어갔다.

“요새 팀장님이 뭔가 숨기는 거 같은데 뭘까?”

“어, 형도 느꼈어요? 몬가 이써….”

스케줄이 늘고 연습이 버거워지기 시작하자 멤버들 볼이 점점 홀쭉해졌다.

덕분에 우리 찐빵의 볼을 잡아당겨도 이전처럼 찰진 느낌이 줄어서 슬펐다.

얌전히 숨만 쉬면서 체력도 어느 정도 챙겼겠다, 찬이가 스타트도 끊었겠다 우리는 슬금슬금 가운데 모였다.

“우진 형도 우리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거 같아. 그 형 진짜 거짓말 못 하는데.”

“자꾸 뭔가 말할 듯 말 듯 조심하는 게 티나. 그치?”

최근 회사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평소랑 달랐다.

연습이 점점 더 빡빡해졌고, 소현 팀장님뿐만 아니라 사무실 직원분들이 부쩍 바빠 보였다.

무언가 시작되기 직전의 어수선한 냄새가 폴폴 풍겼다.

찬이 말처럼 무언가 있는데 아직 계획 단계인지 우리에게는 오픈하지 않고 있었고.

“혹시….”

“혹시?”

경환 형을 마음껏 깔고 뭉갠 세빈이가 또르륵 굴러와 내 무릎을 베고 누웠다.

무언가 짐작되는 게 있는지 입술을 오물거리던 세빈이가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우리 콘서트 하는 거 아닐까요?”

“콘서트?!”

“우리도 드디어?”

어느새 우리 활동도 1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세빈이 추측이 몹시 그럴싸하다고 생각하며 동그랗고 귀여운 머리를 마구 헝클어주었다.

덩달아 흐느적거리던 찬이까지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콘서트라니, 우리가 벌써?

“아, 설마.”

“왜? 뭐 들은 거 있어?”

세빈이와 내가 김칫국을 사발로 마시던 그때, 경환 형이 무언가 생각난 듯 몸을 돌려 누웠다.

“최 대리님이 급하게 통화하면서 지나가는 걸 뵌 적 있는데. 그때 얼핏 대관… 어쩌고 했던 것 같아.”

대관?

“이거 거의 빼박 아냐?”

“뭐야, 나 지금 심장 떨어질 뻔했어. 진짜? 형, 대관이라고 했어?”

“그렇게 들은 것 같은데.”

급 흥분한 막내 둘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어쩔 줄 몰라 했다.

정작 폭탄을 던진 경환 형은 그때의 기억을 더듬는 건지 연신 고개를 기우뚱거리고 있었고.

“얘들아, 진정해.”

“진짜 콘서트면 회사에서도 당연히 우리한테 말해주실 거야.”

이미 콘서트 하기로 확정된 것처럼 들떠있는 둘을 나와 준이 형이 잡아 앉혔다.

이러다 콘서트 아니라고 하면 또 한껏 실망할 게 뻔했기에 어느 정도 눌러줄 필요가 있었다.

“우리 곡 수가 그렇게 돼요?”

“데뷔 앨범이 정규라 곡 수는 되지.”

겨우 둘을 진정시키면서도 우리는 약간의 가능성을 생각했다.

언젠가는 우리도 하겠지 하고 생각만 했었다.

상상 속에만 있어야 할 유니콘이 갑자기 눈앞에 튀어나오면 이런 심정일까?

콩닥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현실적인 가능성을 점쳐보기 시작했다.

데뷔 앨범에 수록된 곡만 10곡이었다.

인트로 아웃트로 제외하고도 8곡을 꽉꽉 채워놨으니까.

졸업식에 팬 송, 여로 앨범은 타이틀만 두 곡이었고 히든 트랙까지 하면 두 곡이 플러스 된다.

거기에 Pluto와 이번 앨범 EL DORADO까지 하면 충분히 콘서트도 노려볼 만했다.

아직 멀기만 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보니 못할 것도 없겠다 싶어졌다.

“근데 우리 솜뭉치들이 콘서트 와줄 만큼 많아졌나?”

“엄청나게 늘었지. 이번 음방 때 들어온 수만 봐도 확 다른데.”

1위 가수라는 타이틀을 달았던 덕분일까?

방송국에서는 우리 팬들 인원을 이전보다 훨씬 많이 배정해주었다.

앨범 하나, 하나 낼 때마다 마주할 수 있는 팬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니 현실감이 떨어질 지경.

많이 봐서 좋은데 정말 이 사람들이 전부 우리 팬인가 싶은 그런 마음들.

언래블에서 이성을 담당하는 나조차도 콘서트라는 세글자에 심장이 뛰었다.

오늘 밤도 감시의 끈을 놓을 수 없다며 외부에 나가 있는 포잉을 불러다 캐묻고 싶을 정도였다.

포잉은 분명 회사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가 있을 테니까.

아니, 근데 정말 그런 얘기가 있었다면 포잉이 들었을 텐데.

콘서트가 아닌가?

아니면 포잉이 듣고도 나 놀린다고 말을 안 해준 건가?

쿵쿵대던 심장이 점차 돌아오는 이성 덕분에 한결 차분해졌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준이 형이 던진 한마디.

“근데 경환이 카더라라서 약간 신뢰도가 떨어지는데.”

“솔직히 나도 제대로 들은 거라고 장담은 못 하겠다.”

잔뜩 들떠있던 찬이는 준이 형과 경환 형의 말에 순식간에 세상을 잃은 얼굴이 되었다.

경환 형은 가는 귀가 어두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주변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건지 주변 소리를 잘 못 들었다.

그러면서도 곡 쓸 때나 먹는 얘기할 때는 그렇게 귀신같이 잘 알아들었다.

자기 필요한 것만 잘 듣는 신기한 귀를 가진 형이랄까.

준이 형의 한마디에 순식간에 차분해진 거실.

언제 신났냐는 듯 찬이는 다시 거실 바닥의 껌딱지가 되었다.

세빈이는 어딘지 모르게 원망이 느껴지는 시선으로 경환 형을 힐끔거렸고.

그런 막내들 모습이 귀여웠지만, 대놓고 웃으면 삐질 게 분명했다.

“어쨌든 우리가 알아야 할 때가 되면 회사에서 말해줄 테니까 김칫국은 그만 마시자.”

방금까지 잔뜩 흥분해서 방방 뛰던 막내들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간신히 채웠던 체력이 모두 소진된 것.

별다른 말 없이 우리 삽질을 지켜보고 있던 영빈 형도 그런 막내들이 귀여웠는지 웃었다.

영빈 형은 내게 가려져 언급되지 않을 뿐이지 나 못지않은 저질 체력이다.

늘 내가 형보다 먼저 뻗어버려서 덜 눈에 띌 뿐.

열심히 운동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저질 체력 타이틀을 영빈 형에게 물려주는 게 내 목표였다.

“자, 그만 떠들고 슬슬 자자.”

늘 그렇듯 마무리는 준이 형.

평소보다 조용히 흘러가나 했지만, 어김없이 소란스럽고 평화로운 밤이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 * *

“디아 형!”

“오야.”

“안녕하세요!”

“병아리들 오랜만!”

프로젝트 ‘Origin’의 마지막 촬영 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터라 우리끼리는 아마 우리를 안 부르지 않을까 했었다.

우리가 잘못한 건 없었다.

하지만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JC엔터는 속이 쓰릴 테고, 방송국 쪽에서도 껄끄러워할 것 같았으니까.

처음에는 꽤 많은 관심을 받았던 대형 엔터의 새로운 프로젝트 아이돌.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고 밥상을 뒤엎은 이들은 이제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다행히 관짝으로 들어가려는 이 방송을 새로운 PD님이 잘 이끌어주셨다.

골든 아워와 멜트 형님들이 고생하기도 했고.

다만, 그 덕분에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아야 했을 연습생들은 비교적 언급이 적었다.

그 때문에 연습생들에게는 괜히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아직 정식 이름이 붙기 전이라 데뷔조 멤버들은 오리진이라는 프로그램명을 썼다.

‘설마 저 이름으로 진짜 데뷔하진 않겠지?’

‘별별 이름이 다 있던데 뭐 어떰.’

‘하긴. 우리도 이상한 이름으로 데뷔할 뻔했지….’

초월수니 파이니 비상이니 하는 이름이 적혔던 종이가 떠올랐다.

그게 꿈에 나올까 무서워진 나는 황급히 고개를 흔들어 잡생각을 털어냈다.

“안녕하세요, 오리진입니다!”

“안녕하세요, 언래블입니다. 축하해요!”

형님들과 인사하던 우리 곁으로 확정된 데뷔조 멤버들이 다가와 씩씩하게 인사했다.

아직 신인 마인드가 충만하게 남아있던 우리도 같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황하는 연습생들과 뭐가 잘못됐나 싶어 눈치를 보던 우리.

그래도 나름대로 선배임을 자각하고 있었던 터라 공식 멘트로 인사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있던 형님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깔깔대며 웃느라 숨이 넘어가게 생겼다.

“뭐요, 왜 웃어요!”

“아냐, 너희도 아직 물이 덜 빠졌구나 싶어서.”

“저희 아직 1년도 안 됐거든요!”

내가 불퉁한 얼굴로 하겸 형에게 투덜거렸더니, 옆에 다소곳하게 서 있던 연습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사람들한테는 골든아워가 하늘 같은 선배님이지만, 우리한테는 동네 백수형 같은 형님들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돼버린 걸까….

“얘들아, 너희는 나중에 막 쟤네처럼 형들 무시하면 안 된다? 우리 병아리들이 좀 컸다고 아주 형들을 잡아먹으려고 해.”

“와, 이렇게 우리를 나쁜 사람 만든다고요?”

“헐…. 이제 완전 비즈니스로 대할게요, 선배님.”

과장되게 어깨를 들썩이며 한숨을 내쉬던 얀 형의 모습에 찬이가 기가 막힌다는 듯 외쳤다.

“형님들 때문에 저분들이 진짠 줄 알면 어떡해요.”

“아냐, 우리 세빈이 예의 바르고 착하고 귀여운 거 다 아는데.”

세빈이가 근심·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걸 또 어떻게 들은 루 형이 세빈이 어깨를 토닥이며 씩 웃었다.

그걸 어떻게 들었냐며 눈이 휘둥그레진 세빈이 모습에 사피 형이 슬쩍 옆으로 붙었다.

“쟤가 무서울 정도로 귀가 밝아. 그래서 다른 애들도 그냥 대놓고 욕해. .”

“김지헌이 똥멍청이 새끼야!!”

“이렇게.”

친절한 사피 형의 설명과 페리 형의 시범.

그사이에 끼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오리진 멤버들과 우리들.

이마를 부여잡은 디아 형의 모습까지 아주 가관이었다.

‘저 인간은 왜 이걸 흐뭇한 얼굴로 보고 있는 거임?’

‘인하 형? 그냥 둬…. 여긴 정상이 없어.’

한껏 떠들썩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다들 훈훈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끼지 못하고 혼자 구석에서 핸드폰만 보고 있는 에드.

시선을 그쪽으로 주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저렇게 세상 모든 걸 잃은 사람처럼 하고 앉아 있으니 자꾸만 힐끔거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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