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31)화 (331/456)

331. 세계가 불타버린 밤, 우린(1)

최근 형들 사이의 알 수 없는 분위기가 무척이나 걱정됐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무척 깊은 곳에서 무언가 밖으로 튀어나오기 위해 웅크리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작은 불티 하나면 쾅! 하고 거대한 폭발이 생길 것 같은 긴장감.

하지만 형들에게 되물어봤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것도 알았다.

그 긴장감의 시작은 힘찬 형과 환이 형이었다.

모두가 기대했던 것처럼 이번 앨범은 무척 사랑받았다.

무척 감사하게도 1위도 했고, 다행히 울지 않고 또박또박 소감도 말했다.

영빈 형은 언래블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눈물이 그렁그렁해졌지만, 모른 척해주었고.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곳에서 언래블을 찾았고, 더 많이 무대를 할 수 있었다.

개인 활동을 하느라 각자 흩어지는 경우도 많았고, 환이 형은 더 바빠 보였다.

환이 형이 촬영장에 간 어느 날.

어김없이 하루 루틴을 마치고 힘찬 형과 호흡을 맞추던 중이었다.

힘찬 형도 나도 춤을 좋아했기에 함께 연습하는 날이 많았다.

서로 다른 분야를 파고들었던 사람들이라 이야기를 나누며 배우는 것도 많아서 좋았다.

하지만 그날따라 형은 집중하지 못했고, 결국 연습실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정면의 거울에 훔쳐본 형의 얼굴에는 이유 모를 그늘이 있었다.

“막내야.”

“왜요.”

“이리 와 봐.”

평소 형답지 않게 힘이 빠진 목소리로 자신의 옆자리를 통통 두드리며 불렀다.

약간의 걱정이 치밀었지만, 티 내지 않으려 혀를 살짝 씹었다.

너무 티 내면 또 말 안 하고 혼자 시름시름 앓을 게 뻔했으니까.

연습하고 난 후에는 언제나 몸에 남은 열기 때문에 옆에 있기 싫었기에 맞은 편에 앉았다.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게 더 좋기도 했고.

연습실의 텁텁하고 먼지 냄새나는 공기를 얼마나 들이켜고 있었을까?

긴 시간 주저하고 고민하던 힘찬 형이 입술을 깨물었다.

“형, 입술.”

“아, 어.”

다른 형들이 힘찬 형이 무언가 깨물면 못 하게 했기에 자연스럽게 나도 그렇게 됐다.

한동안 안 물더니 또….

평소의 형답지 않게 어깨에는 힘이 잔뜩 빠져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있잖아, 지환이 말이야.”

“응.”

몸의 열기가 한 꺼풀 가라앉고 노곤해지려던 찰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둘 사이의 공기가 최근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이어질 말에 집중했다.

“좀 이상하지 않아?”

“이상하다고?”

“그러니까 내 말은….”

한참을 기다려줘도 제대로 말하지 않아 조금 심통이 났던 터라 나도 모르게 불퉁하게 답해버렸다.

한숨을 푹 내쉬던 힘찬 형은 오해하지 말라고 손을 내밀더니 근래 자신이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지환 형이 어딘지 모르게 초조해 보이고,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말.

그리고 최근에는 묘하게 자신에게 강압적인 듯한 느낌이 든다고.

그러면서 C 본부에서 1위 했던 날의 일을 이야기했다.

컴백 다음 주 네 번째 음악방송에서 다시 1위를 거머쥔 날.

다들 팔딱거리는 활어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닐 만큼 무척 기뻐했다.

팀장님의 배려로 치킨과 피자를 시켜 배부르게 먹고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좋은 일만 있었던 것 같았는데 둘이 언제?

“재활용 버린다고 우리 둘이 나갔었잖아.”

“아, 그때….”

원래 쓰레기는 경환 형과 힘찬 형이 버린다.

하지만 그날은 힘찬 형과 지환 형이 같이 나갔던 게 기억났다.

“그때 잠깐 이야기하자고 하더니 요새 억지로 텐션 올리는 거 아니냐고, 좀 걱정하면서 말하더라.”

이야기의 시작은 늘 그렇듯 지환 형의 걱정이었다.

하지만 힘찬 형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아직 우리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들이 남아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다들 조금 더 말이나 행동을 조심했고.

다만, 보통 그 화살이 지환 형에게 집중되기에 우리는 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우리 팀 최약체면서 항상 우리보다 한발 앞에 서려고 하는 지환 형은 여러모로 걱정이었으니까.

촬영 중에 농담처럼 가볍게 형의 과거사를 묻는 일도 빈번했다.

그때마다 형의 팔이 딱딱하게 굳는데 당사자만 그걸 몰랐다.

늘 아무렇지 않은 듯 도리어 농담처럼 마주 웃으며 넘겨버렸다.

그 상황을 늘 지켜봐야 하는 우리 마음도 한시도 편하지 않았다.

그즈음부터 힘찬 형은 더 리액션도 크게 하고 말썽꾸러기처럼 굴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 시선이 자신에게 몰리니까.

그걸 또 지환 형만 몰랐다.

가장 막내인 자신도 아는 것을.

“나도 내 몫을 해야 하지 않냐고, 예능에서는 그런 게 좋지 않냐고 했어. 그런데….”

힘찬 형은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이상한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미 충분히 우린 각자 몫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너무 억지로 그러면 되레 반감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좀 욱했거든.”

점점 더듬더듬 말하던 목소리가 빨라졌다.

“왜 자꾸 우리 엄마처럼 굴려고 하냐고, 좀 적당히 하라고 해버렸어.”

힘찬의 얼굴에 가득한 얼룩덜룩한 감정이 도무지 무엇인지 세빈은 읽어내기 힘들었다.

죄책감을 닮기도 했고, 분노인 것 같기도 했지만, 실망인 것 같기도 했다.

“엄청… 상처받은 얼굴이었어. 근데 그게 또 너무 싫은 거야. 우린 서로 동등한 위치 아니냐고, 왜 자꾸 가르치려고 드냐고 했어.”

“왜 그렇게 말했어! 이 멍청이야!”

말하지 않은 감정을 상대가 알아차려 주는 건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서로 이해하기 힘든 것도 감정이었다.

불과 얼마 전 하준 형과 영빈 형에게 그것으로 혼나기도 했는데.

이 멍청한 형이 또 욱해서 입에서 나오는 아무 말이나 해버린 것 같았다.

상처받았을 형의 얼굴을 떠올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가뜩이나 지환 형은 자신의 속 깊은 감정을 멤버들에게 털어놓지 않았다.

아마 이번에도 그렇게 할 테고.

“나도 알아! 내가 잘못한 거! 근데 내가 이해 안 되는 건 지환이가 화를 안 냈다는 거야….”

“응?”

“화를 안 내고 갑자기 혼자 횡설수설하더니 갑자기 미안하다고 웃으면서 들어가자고 하더라.”

세빈은 그게 왜 이상하냐는 듯 힘찬을 바라봤다.

“세빈아, 너 지환이랑 싸운 적 있어?”

“아니. 난 형 말 잘 들으니까.”

“너 지환이 말고 다른 사람들이랑은 말다툼한 적 있지?”

힘찬 형의 말에 대답하려던 세빈은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우리가 전혀 싸우지 않는 건 아니었다.

말다툼은 수시로 있었고, 가끔은 유치한 이유로 감정이 상해서 으르렁거리기도 했다.

서로에게 제일 소중한 친구라는 하준 형과 영빈 형도 종종 말다툼했다.

심지어 얼음 때문에도 둘이 싸운 적도 있었으니까.

물론 모두 얼마 가지 않아 풀어져서 또 금방 다 같이 웃고 떠들었다.

하지만 지환 형과는 그런 기억이 없었다.

의견이 충돌해서 서로 조금 감정적으로 말하는 경우는 아주 가끔 있었다.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환이 형이 늘 져주거나 적당히 웃어넘겼다는 것만 떠올랐다.

이게 보통 할만한 반응인 걸까?

“걔는 너무 숨기는 게 많아. 점점 더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다른 형들이랑 말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늘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하준 형이 떠올랐다.

“말하기 조금 그렇지 않아?”

“근데 얼마 전에 준이 형이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뭐라고 했잖아.”

“그도 그렇긴 한데…. 아, 모르겠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가 싶기도 하고.”

푸념처럼 중얼거리던 힘찬 형은 그대로 연습실 바닥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하루 이틀 고민하다 말하는 게 아닌 것 같은 모습이라 덩달아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했다.

이렇게 복잡한 일들은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텅- 하고 몸이 바닥과 부딪히는 소리가 연습실을 울렸다.

명확하게 뭐가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안 싸우면 좋은 거 아냐?

그냥 환이 형이 인내심이 좋은 게 아닐까?

찬이 형이 요새 예민한 건?

복잡하게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뛰어다녔다.

문제는 문제로 인식하기 전까지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 떠올랐다.

한번 생각의 물꼬가 트이자 온갖 생각이 뒤섞여 머리가 지끈거렸다.

“안 되겠어. 이건 하준 형이랑 말하는 게 맞는 거 같아.”

혼자 끙끙대봤자, 제대로 된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결론이 난 즉시 힘찬 형을 잡아끌었다.

형은 내켜 하지 않았지만, 혼자 가서라도 이야기할 거라고 하자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준 형이라면 여태까지처럼 올바른 방향을 알려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 * *

‘님, 괜찮음?’

‘응. 괜찮아.’

‘물어본 내가 멍청이지, 쯧.’

포잉은 눈가가 까맣게 죽은 내 얼굴이 무척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하지만 그런 포잉의 반응에도 웃어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최근 찬이와 데면데면해져서 자꾸만 속에는 새까만 감정이 고여갔다.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활동하면서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 제지했었다.

괜히 악마의 편집이라도 당해서 밉상 캐릭터로 이미지가 붙으면 곤란했으니까.

적당히 얄미운 캐릭터는 나쁘지 않지만, 그럴수록 이유 없이 찬이를 비난하는 사람도 많아진다.

개인적인 욕심이기도 했다.

잘하면 정말 좋겠지만,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그냥 활달하고 재밌는 애 정도로만 남아줘도 좋은데.

아니, 이 모든 게 그저 내 욕심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내가 뭐라고 멤버들이 자기 자리 찾아가겠다는 걸 막겠어.

그 후로 괜히 말 걸기 어려워서 은연중 피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날이 선 찬이 반응은 처음이라 놀라기도 했고.

침착하게 대응한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찬이 자존심을 건드렸던 건가 싶기도 했다.

상황을 설명하려 했고, 왜 행동을 바꿨으면 좋겠는지 이유도 어느 정도는 말했다.

하지만 내 말이 찬이에게는 조언이 아니라 간섭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던 걸 간과한 걸까?

나와 찬이 모습을 멤버들에게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형들은 간혹 곤란하다는 듯 나와 찬이를 바라보았고, 세빈이는 눈치를 보고 있었고.

차라리 크게 싸웠다면 붙잡고 서로 앙금을 털어내자고 하겠는데 이건 다시 말을 꺼내기 애매했다.

나는 정말 멤버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나 때문에 여러 가지로 손해를 본 애들이었다.

더 잘되게 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어느새 내 말이나 행동은 욕심이 묻어났던 것 같았다.

먹은 것도 없는데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가서 먼저 사과할까?’

‘뭘 잘못했다고 할 건데?’

‘…내가 너무 잔소리해서 미안하다고?’

‘차라리 스킬을 써보는 게 낫지 않음? 왜 화가 났는지도 잘 모르면서 무턱대고 사과하는 건 더 기분 나쁘잖아.’

포잉은 참다 참다 속이 터졌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내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될 수 있으면 멤버들에게는 스킬을 쓰고 싶지 않았기에 여태 망설였다는 걸 포잉도 알았다.

가장 최근에 멤버에게 스킬을 썼던 게, 찬이가 찾아와 울면서 자기 이야기를 했을 때였다.

한편으로는 내게 날을 세운 찬이에게 무척 서운했다.

내가 과했다는 건 알겠지만, 그렇게까지 날을 세울 필요는 없잖아….

여태까지 누군가와 싸워본 일이 거의 없던 터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다투면서 감정 소비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피하며 살아왔다.

적당히 흘려버리고 모른 척하고 그렇게 살아왔는데.

차라리 아예 공정한처럼 적이라는 게 분명하면, 나도 온 마음을 다해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친구, 지인과의 감정싸움은 너무 무서웠고 힘들었다.

더 틀어져서 잃게 되면 어떡하지?

그냥 내가 잘못했다고 하고 넘어가는 게 낫지 않나?

여태 그렇게 살아왔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숨통이 꽉 틀어막힌 듯한 어지러움이 점점 심해져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게실에 가서 잠깐이라도 누워야 할 것 같았다.

“지환아, 너 괜찮아?”

등을 돌려 바라본 곳엔 놀란 얼굴을 한 하준 형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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