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30)화 (330/456)

330. Lonely(5)

“진짜로 이걸 신고하라고요?”

“네. 지난번 미션에서 언래블이 제작진과 내기에서 졌잖아요. 그 벌칙입니다.”

감독님은 평소처럼 태연한 얼굴로 우리에게 답했다.

“아니, 그래도 감독님… 이건 아니지 않아요…?”

세상을 잃을 듯 망연자실한 얼굴로 되묻는 세빈이 손에는 한 켤레의 운동화가 들려있었다.

파스텔 톤의 알록달록한 운동화.

겉모습만 보기엔 좀 많이 밝아 보였지만, 그냥 미션할 때 한번 신기에는 무리 없는 정도였다.

물론 앞에 동물 캐릭터가 그려져 있어 무척 유아틱했지만, 그 정도야.

하지만 우리가 결사반대를 외치는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 뾱!

“아, 쫌!”

- 뾱! 뾱! 뾱!

“누가 찬이 좀 잡아서 매달아주세요….”

울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날 위해 경환 형이 달려갔고, 곧 찬이 비명과 함께 투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없고 거슬리는 걸 치우고 난 내가 두통이 인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끔찍한 무언가를 본 것처럼 하얗게 질린 세빈이 어깨를 토닥토닥해주면서.

애들이 이거 신고 뛰어다니면 되게 웃기긴 할 거 같은데, 그걸 내가 하고 싶지는 않다, 진짜로.

“역시 힘찬 군이 제작진 마음을 잘 안다니까. 잘 어울리지 않아요? 특별히 멤버들을 위해서 주문 제작한 물건입니다.”

정말, 무척 얄밉게도 감독님은 서운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특별주문’을 강조했다.

세상에 유아용 운동화를 특별 주문해서 제작해올 건 또 뭔데?

처음 촬영을 위해 세트장에 도착한 우리는 유독 환대하는 제작진을 보며 불길함을 감지했었다.

이렇게 평소보다 더 환영해주시는 건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는 걸 이제는 모두가 알았다.

그동안 제작진과 방송으로 단련된 언래블이었다.

처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뒤통수 맞기를 여러 번.

이제는 멤버들도 눈치란 게 생겨서 자기들 나름대로 쑥덕거리며 경계했다.

그런 멤버들에게 제작진이 준비한 선물이라며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건네주셨을 때는 조금 감동하기도 했다.

우리가 괜히 의심병이 돋아서 의심부터 하고 봤구나,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는 분들인데.

인자한 얼굴을 하고 어서 뜯어보라는 제작진의 말에 신나하며 찬이가 먼저 상자를 풀었다.

그 후에 하나둘 상자를 열기 시작했는데, 그 안에는 과하게 깜찍한 운동화가 들어있었다.

“어… 운동화가 너무 깜찍한데요?”

“그러게. 음, 많이 귀엽네.”

아동용같이 다양한 색으로 아기자기하게 칠해진 운동화를 보며 간신히 말을 고른 그때.

- 뾱!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듯한 소리가 들렸고, 우리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찬이가 다시 한 발을 내딛는 순간.

- 뾱!

“설마, 이거….”

운동화를 갈아신고 발을 내딛으려던 우리는 어딘가 익숙한 소리에 몸이 굳었다.

‘설마’하는 멤버들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히던 그때, 경환 형이 조심스럽게 발을 내렸다.

- 뾱!

소리는 우리 운동화에서 나고 있었다.

그제야 운동화의 정체를 깨달은 우리는 급히 신을 벗고 제작진에게 달려갔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게 맞냐고. 

양발 바람으로 뛰어온 우리에게 제작진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말했다.

이전 미션 실패하지 않았느냐고, 그 벌칙이라고.

그때 벌칙 내용을 알려주지 않아 수상하다 했더니 이런 걸 준비하고 있었다.

“자, 그러면 전부 운동화 갈아신어 주세요!”

바로 전, 벌칙으로 실제 등산을 다녀와야 했던 멤버들은 이번 벌칙도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것도 촬영해서 솜뭉치들에게 보일 걸 생각하니 갑자기 급격한 현자 타임이 찾아왔다.

내가 이러려고 아이돌 했나, 우리 솜뭉치들이 이걸 보고 얼마나 웃을 것인가.

이렇게 또 이상한 별명이 생기는 건 아닌가.

수많은 상념이 오가는 전쟁 같은 머릿속과는 별개로 몸은 습관적으로 하라는 걸 또 하고 있었다.

“이거 은근히 재밌는데?”

- 뾱뾱뾱뾱!

“아오, 시끄러워! 경환아!”

“라져.”

준이 형의 외침에 경환 형이 빛의 속도로 달려가 힘찬이를 검거했다.

물론 형이 달리는 와중에도 뾱뾱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어떻게 한 건지 소리가 작았다.

진지한 얼굴로 저렇게 달리니까 진짜 웃음벨이긴 한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던 세빈이는 슬금슬금 움직이더니 망연자실해 있는 영빈 형의 등에 매달렸다.

“빈아, 너 이제 무겁다니까.”

“아닌데! 저 환이 형 다음으로 가벼운데!”

힘겹게 비틀거리던 영빈 형의 한탄에 세빈이는 곧장 반박했다.

세트장은 이미 개판 오 분 전 같고, 제작진은 마냥 즐거워하고 있고.

방송이 이래도 괜찮은 거 맞아?

한참 현실을 부정하느라 세트장의 테이블 위에 엎드려 울적해 하던 내 귀로 영빈 형의 목소리가 꽂혔다.

“쟤는 살이고 넌 압축 근육이라 단단하잖아.”

“와, 저도 살 아니거든요? 나도 근육 생겼거든?”

발끈 한 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어김없이 ‘뾱!’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의 정적.

그 정적 사이, 내게 집중된 시선.

나는 그 순간 온 우주에 홀로 서 있는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

아, 갑자기 누나가 보고 싶네….

누가 나 집에 보내줘라….

* * *

- 언래블 온도 차 모음!

나 뷰어는 울애들 갭 차이에 맨날 발리고 이제 순살이 되었어.

너희도 나와 같이 순살의 세계로 가지 않을래?

첫 번째로 우리 민리다.

(온화한 얼굴로 부루퉁한 얼굴을 한 찬이 머리 쓰다듬어주는 하준) VS (입술 비틀어 웃으며 목줄 뜯어내는 하준)

두 번째 냉 미남인 척하는 히스

(함박웃음 지으며 달려오는 세빈에게 팔 벌리는 영빈) VS (서늘한 눈매로 카메라 힐끔 보더니 피식 웃는 영빈)

세 번째 우리 백곰돌씨

(거실 숙소 바닥을 막내들이랑 구르고 있는 경환) VS (헤이터들을 비웃으며 빈정거리는 랩을 하는 경환)

네 번째 소중한 병아리 작은환

(세빈이 품에 안고 다른 멤버들을 꿀 떨어지는 눈으로 바라보며 손짓하는 지환) VS (패션쇼 악당 웃음 사진)

+ 작은환 부캐 우리 지웅이….

(환하게 웃는 지웅과 그런 지웅에게 생수 뿌리며 장난치는 상혁) VS (옥상 난간 잡고 텅 빈 얼굴로 하늘 응시하는 지웅)

다섯 번째 사고뭉치 우리 찬이

(지환이 등 뒤에서 끌어안고 시원시원해 보이는 미소 짓고 있는 힘찬) VS (무표정한 얼굴로 눈물을 떨굴 것 같은 지환 얼굴로 손을 뻗는 사진)

여섯 번째 우리 막내 병아리!!

(기다려주는 형아들보고 활짝 웃으며 달려가는 세빈) VS (처연한 얼굴로 새까만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세빈)

너희 이 중에 하나만 고를 자신 있어ㅠㅠㅠㅠ?

아주 우리 애들 요망해서 진짜ㅠㅠㅠ

ㄴ 하나만 고르다뇨, 선생님.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말씀을…(이미 숨진 뷰어의 온기가 남아있는 글이다)

ㄴ 이 와중에 다들 냉미남미 뿜뿜한 사진이지만 막내는 처연미 넘치는 사진인 거.흡ㅠㅠㅠㅠ

ㄴ 지웅아… 누나는 너 못잃어ㅠㅠㅠㅠ그곳에서는 행복하니…?ㅠㅠㅠ

ㄴ 부캐하니까 또 애들 여장 생각난닼ㅋㅋ하, 영상 이미 6546135번 봤는데. 다시 앓으러 갈게.

- 온도 차 모음 사진 보고 생각난 건데 애들 짤 보면 서로 누구랑 있는지에 따라 확확 달라서 그게 너무 귀여움ㅋㅋㅋ

(숙소에서 무언가 찾는 게 없으면 지환이 부르는 짤)

ㄴ 아, 나 이거 뭔지 알 것 같아!!

ㄴ 세빈이는 누구랑 있어도 막내 티나고 찬이도 막내 티나고ㅋㅋㅋㅋ

ㄴ 민리다는 히스나 작은환이랑 있을 때랑 막라랑 있을 때 분위기가 많이 다르짘ㅋㅋ

ㄴ 나도 뭔지 알 거 같아zzzz 작은환 특히 멤들한테 하는 거랑 형아들한테 하는 거 넘나 온도 차 극명하곸ㅋ

(멤버들이 책 읽는 지환이 계속 만지고 부르고 장난치는데 반응1도 안 해주는 짤)

(새벽 멤버들과 여진우 사이에서 쑥스러워하는 지환 사진)

ㄴ 난 그것도 너무 좋더라ㅋㅋㅋ꼭 밥 먹을 때는 서로 막 반찬 주고 먹여주고 하는 거ㅠㅠㅠ 맛있다고 너도 먹어보라고ㅠㅠㅠ

(세빈이 입에 반찬 넣어주고 힘찬이 수저 내밀자 고기 얹어주는 지환이)

(지환이 밥그릇에 가득 쌓여있는 반찬들)

ㄴ 그것도 형라랑 막라 분위기 달라서 너무ㅋㅋㅋ 휴.

멤버들이 삑삑이 운동화로 곤혹스러운 시간을 보내던 그때도 솜뭉치들은 커뮤니티에서 온갖 짤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닮아간다고 했던가?

언래블이 단단해지는 만큼, 솜뭉치들도 상처받았던 가슴에 딱지가 앉았고, 그만큼 굳은살이 박였다.

노래할 때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빛나 보이는 내 가수들.

그들이 무척 힘들고 가슴 아픈 시간을 이겨내는 동안, 팬들은 자신의 멘탈을 부여잡았다.

같이 흔들려서 주저앉아버리면 내 아이돌의 힘이 되어줄 수 없다는 걸 다들 알았다.

아이돌에겐 팬이 전부였다.

그리고 팬들에겐 자신의 아이돌이 삶의 희망이 되었고.

언제나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멤버들이 핼쑥해진 얼굴로도 괜찮다고 웃으며 팬들을 다독였다는 것을 기억했다.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하지만 늘 그렇듯 잘 이겨낼 거라고 약속해주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더 눈부신 모습으로 자신들의 노래를 들고나왔다.

그러니 믿지 않을 수가 있을까.

평소 그들의 따뜻한 일상은 늘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었고, 자기들끼리 장난치며 구를 땐 같이 웃었다.

멤버들이 아플 땐 속상해서 어쩔 줄 몰라 했고, 그들이 울 땐 같이 눈물을 흘렸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더 나은 자신이 되고자 했고, 행복해했다.

이런 게 운명 공동체 아닐까?

소현은 오늘도 평화로운 커뮤니티를 몇 군데 둘러보고 오랜만에 과거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신인을 발굴하고 팀을 짜고 데뷔시키는 일만 했었다.

대중에게 먹힐만한 컨셉을 잡고, 스토리를 구상하고.

현실에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듯한 기분은 소현을 늘 즐겁게 했다.

나름대로 많은 부분을 아이들을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려 시도하기도 했었고, 엄격하게 대했지만 상벌을 확실히 했다.

하지만 그렇게 데뷔시킨 아이들이 제대로 한 사람 몫을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데뷔까지가 소현의 몫이었고, 그 후는 만들어지는 전담팀의 몫이었다.

그들에게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넘겨주면서 당부의 말을 전하는 것.

그것이 늘 소현의 마지막이었다.

그 후엔 다시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자기 삶을 사느라 그사이 데뷔시켰던 아이들이 어떻게 변하는지는 신경 쓰지 못했다.

회사에서 마주쳐도 수척해진 얼굴을 봐도 그저 몇 마디 안부를 묻는 게 전부였으니까.

머뭇거리며 시간을 내어줄 수 있냐고 물었을 때, 미루지 말았어야 했는데.

고통으로 얼룩진 눈동자를 그때는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오래된 통증이 소현을 뒤흔들었다.

누군가는 소현을 원망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고마워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소현을 잊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데면데면해졌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소현은 지쳐갔다.

보지 않고 듣지 않으려 해도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자신에 대한 말들.

업계에선 능력 있고 재능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당사자였던 아이들에겐 소현은 어떤 사람이 되었던가.

경련하듯 떨리는 눈꺼풀을 손으로 덮으며 무거운 숨을 겨우 내뱉은 소현.

남들이 눈치채지 못한 숨겨진 보석 같은 아이들을 발굴해 무대에 세우는 건 무척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더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기로 했다.

그 때문에 많은 러브 콜을 뿌리치고 박 대표와 정윤 실장의 제안을 받아 ON 엔터에 자리를 잡았고.

연습생 시절부터 손수 관리해온 아이들이 잘 자라는 모습은 그동안 몰랐던 여러 가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진심으로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언래블 멤버들을 보면 가슴이 벅차올랐다.

소현은 더는 온기 없는 세계를 만들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언래블이 언래블로 존재하는 한, 그들만을 위한 세계를 만들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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