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22)화 (322/456)

322. 어느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2)

아이돌그룹은 보통 1위를 한번 해야 소속사에서 핸드폰을 돌려준다고 했다.

세빈은 다른 아이돌 그룹 멤버들과 대화하다 그 사실을 처음 알고 얼마나 깜짝 놀랐던지.

바로 주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허들이 높을 거라는 것은 몰랐다.

아직도 1위 했던 때를 떠올려보면 단순히 우리가 잘해서라는 생각보다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좋든 싫든 자꾸만 여러 이슈를 몰고 다닌 언래블.

그들에 대해 다른 아이돌들이 나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는 걸 세빈도 알았다.

몇 번인가는 직접 듣기도 했고.

그들도 눈치를 보느라 눈앞에서 말하지는 않았다.

멤버들과 화장실에 갔을 때, 혹은 다 같이 사용하는 대기실을 배정받았을 때.

그도 아니면 스쳐 지나갈 때 등.

좋은 사람들이 언래블 주변에 유난히 많다는 것도 이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충격을 받기도 했다.

특히나 바로 전 대기실에서 지환과 웃으며 장난을 치던 사람이 화장실에서 다른 팀 사람과 욕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그런 세빈을 붙잡은 건 힘찬이었다.

평소랑 달리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세빈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냥 질투하는 거라고.

저들이 갖지 못한 걸 우리가 가졌기 때문에 질투하는 거고, 여기서 소란이 생겨봤자 별로 좋을 게 없다고 했다.

평소랑 너무 다른 힘찬의 모습에 세빈은 힘찬이 이런 소리를 처음 듣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힘찬 뿐만 아니라 다른 형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라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가끔은 동생 같기도 했던 힘찬이 보인 그 모습이 무척이나 낯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힘찬도 이제는 자신의 감정이나 모습을 감추려 들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세빈을 이제는 선 안으로 받아들여 주는 것 같아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세빈은 조금 더 힘찬을 편하게 대했다.

그동안과 미묘하게 다른 모습에 힘찬은 처음에는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왜 그렇게 변한 건지 눈치채고는 씩 웃었다.

그 후로는 둘이 투덕거리는 일이 늘었고, 지환에게 한 소리 듣기도 했다.

장난치는 건 좋은데 감정 상할 짓은 하지 말고 위험한 짓은 절대 하지 말라며 둘 모두를 혼내던 지환.

그 앞에서는 조심하겠다고 얌전한 얼굴을 했지만, 그 뒤 힘찬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세빈은 자신도 모르게 짓궂은 얼굴로 웃어버렸다.

물론 세빈과 시선을 마주한 힘찬도 그와 비슷한 얼굴이었고.

그렇게 세빈은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 배워갔다.

개인적인 공부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형들과 같은 교복을 입게 되어 무척이나 기뻤지만, 티 내지 않으려 애쓰기도 했다.

연습생이나 연예인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라 동갑내기 선배도 있고 후배도 있었다.

후배라니!

세빈은 처음 자신에게 선배님이라고 깍듯하게 인사하는 신인 아이돌을 보고 화들짝 놀랐었다.

언래블 멤버들과는 이제 스스럼없이 치고받고 장난도 치는 세빈이지만, 그 외에 사람들은 아직도 어려웠다.

그런 자신에게 선배님이라니.

두 눈이 동그래진 세빈을 보고 힘찬과 경환이 얼마나 웃었던가.

데뷔 1년이 되어간다는 게 실감이 나면서도 이 생활에 자신이 적응했다는 게 놀라웠다.

선배님하고 불렀던 사람을 같은 반에서 만난 건 무척 서먹했지만, 활달한 친구라 금방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스케줄에 치이느라 학교에서는 졸기도 했지만, 학업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적어도 중간은 하고 싶었다.

그래야 부모님에게도 명분이 설 것 같아서 더 놓을 수 없었다.

세빈은 중학생 때 느꼈던 것들과 고등학생이 된 후 느끼는 것들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 일 년 사이 세빈에게도 무척이나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학생이었으니까.

하지만, 춤과 팀에만 신경 쓰고 살던 세빈은 다른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에 끼기 어려웠다.

모르는 주제의 이야기와 타인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낄 수 있는 건 게임 이야기 정도?

중학교 때는 학교생활에 큰 관심이 없었기에 그저 입 다물고 얌전히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형들과 같은 학교에 왔기에 저 때문에 언래블에 관해 나쁜 소문이 돌까 걱정스러웠다.

더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려 했고, 같은 반 친구들과도 무난하게 지내려 노력했다.

종종 지환이나 힘찬이 간식을 사서 세빈의 반을 찾아오기도 했다.

오지 말라고 퉁명스럽게 툴툴거리는 세빈을 보고도 지환은 마냥 다정했다.

이것저것 사 온 간식을 세빈 근처의 다른 학생들에게 나눠주기도 하면서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다.

그 모습에 힘찬은 질색하며 네가 무슨 학부모냐고 투덜거렸지만.

힘찬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세빈의 반 친구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그 둘은 아이돌이 많은 이 학교에서도 워낙 유명했었기에 둘이 반에 올 때면 시선이 배로 꽂혔다.

처음 형들이 다녀갔을 때는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다.

다 같이 숙소 생활하는 거냐는 질문부터 숙소에서도 잘해주냐는 질문.

실제 성격은 어떠냐는 떠보는 듯한 질문과 자기네 팀 형들과 바꾸자는 장난스러운 말도 있었다.

다행히 세빈의 반에는 연습생이 더 많았고, 세빈보다 아이돌 선배인 사람은 없었다.

같은 반 친구가 은밀히 전해준 말에 따르면, 아이돌 선배라는 이유로 괴롭히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운이 좋은 거라던 그 친구.

세빈은 그 이야기를 들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그 친구가 다른 사람과 함께 언래블을 욕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서글서글한 웃음이 좋았던 그 친구는 자신이 직접 봤다며 세빈과 힘찬, 지환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다.

정말이지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 * *

“우리 막둥이, 뭐해?”

“그냥 있어요!”

우리 막둥이가 요새 무언가 고민이 있는지 가끔 얼굴이 흐렸다.

혼자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몇 번인가 목격했기에 걱정스러웠다.

혹시 누가 괴롭히나?

종종 세빈의 반을 찾아갔던 나는 재빨리 그 반에 있었던 인간들을 떠올려봤다.

우리 애랑 같은 반이라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노력했는데 혹시 역효과가 난 건 아닐까?

근심, 걱정이 차올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동그란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찬이랑 쿵짝이 잘 맞는지 장난이 늘었고, 조금 더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기억하는 그쪽 세상의 세빈이는 조금 외로워 보였으니까.

적어도 나와 함께 지내는 세빈이는 친구도 많이 만들고 더 많은 것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얘들아, 준비 다 됐지?”

“넵.”

우진 형의 부름에 세빈이를 두어 번 토닥여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세빈이와 내 스케줄이었다.

미리 사연을 신청받고 그 사연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조언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평소에는 조금 더 연령대가 있는 사람들이 초대되는 편이었지만, 이번에는 청소년 특집이라 우리가 초대되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에서도 몇 명 초대되었고.

사전 리허설 때 인사하러 돌아다니다 세빈이랑 같은 반 친구가 있어서 깜짝 놀랐었다.

그쪽 그룹과는 친분이 없었지만, 아는 얼굴이 보여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세빈이는 약간 긴장한 듯했지만 금방 잘 웃었고.

다행히 이번에는 익숙한 얼굴이 제법 있었다.

“아이구, 우리 세빈이 왔네?”

“안녕하세요, 선배님.”

“지환이도 오랜만이네! 에이, 우리 사이에 딱딱하게 선배님은.”

언제 보아도 무척 호탕한 성격인 고민영 배우님이었다.

영빈 형이 예전에 요리 프로에 출연했을 때, 민영 배우님과 세영 배우님이 함께 출연했다고 들었다.

그때 찬이랑 세빈이를 무척 귀여워해 주셨다고.

무사이 촬영 때도 잘해주셨지만, 오늘 세빈이를 보자마자 반가워하시는 걸 보니 세빈이 꽤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았다.

우리 애가 어디 가서 빠지는 귀여움은 아니지.

흐뭇한 얼굴로 세빈의 뺨을 조물조물하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민영 배우님을 구경했다.

“아이고, 민영 씨! 애 얼굴 다 빨개지잖아.”

“귀여워서 그러는 건데요, 뭐.”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미궁탈출에서 함께 했던 이영진 형님이었다.

“형님, 오랜만에 뵈어요.”

반가운 마음에 활짝 웃으며 다가가자 내 어깨를 두드려준 형님은 민영 배우님에게서 세빈이를 구출해주셨다.

영진 형님은 패션쇼 이후로 몇 달 만에 얼굴을 보는 것이었지만, 그동안 주기적으로 연락을 했기에 어색하지 않았다.

휴대폰 번호를 먼저 넘겨준 분들에게는 주기적으로 연락을 해서 안부를 챙기고 있었다.

그들이 신인 아이돌에게 개인 번호를 줬다는 것 자체가 좋게 봤다는 호의의 표시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틈날 때마다 그들에게 연락하고 관계를 잘 유지해놓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다. 이제 몸은 괜찮은 거지?”

“네. 저 진짜 괜찮아요. 보내주신 홍삼도 잘 먹었어요.”

“아, 그러고 보니까 지환이가 홍삼을 좋아한다면서?”

“하, 하하. 좋아하는 것까진 아닌데요….”

그놈의 홍삼 짤은 아직까지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홍삼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건지, 들어오는 선물 중엔 유독 홍삼이 많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던 나는 부러운 듯한 눈빛을 보이는 다른 신인 그룹 멤버들을 보았다.

하지만 선뜻 인사하러 오지 못하는 모습에 속으로 작게 혀를 찼다.

대화 중이라 끊는 게 겁난다면 슬쩍 가까이 다가오기라도 하는 게 좋았다.

그러면 선배님들은 보통 인기척을 느끼고 인사할 틈을 주셨으니까.

무조건 먼저 인사하고 친근하게 굴어도 좋게 봐줄까 말까 한데 저렇게 불러주길 기다려서야.

우리는 회사에서도 준이 형도 모두가 무조건 먼저 가서 인사하라고 가르쳐줬다.

안타깝긴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누구를 불러서 인사시켜주기엔 아직 짬이 부족했다.

이분들도 그간 출연한 프로그램에서 좋았던 인상 덕분에 친근하게 대해주셨지만 까마득한 선배님들이었다.

가까이라도 있으면 슬쩍 말이라도 꺼내 볼 텐데.

‘저것도 다 자기 복임.’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자기 밥그릇 못 챙기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녹화에 들어갔고, 덕분에 우리는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다른 분들과 좋은 분위기를 보여서인지 방송국 스태프분들도 평소보다 더 유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그게 모든 출연진에게 공평하게 대해준 건 아니었다.

그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소속사에서 미리 알려주지 않았나 하는 의문도 들었다.

우리는 늘 방송 출연 전, 회사에서 메인 PD와 AD, FD, 작가뿐만 아니라 최대한 많은 사람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

어떤 성향인지, 이전 작품은 무엇인지 등.

우리가 사전에 최대한 많이 공부하고 알고 가야 현장에서 대응하기 좋을 것이라는 말을 늘 입버릇처럼 하셨다.

우진 형이 함께해주곤 했지만, 모든 일에 형이 나설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남의 걱정을 해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긴장을 바짝 조였다.

상담프로그램은 여러모로 어려웠다.

이전에 우리 팬들을 대상으로 한번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지만 그때도 무척 힘들었다.

어설픈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낫고, 무작정 긍정해줄 수도 없었다.

곧이어 게스트를 소개하고, 출연진들이 서로 근황을 짤막하게 이야기하며 분위기를 풀었다.

그리고 이어진 첫 번째 고민.

“학교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자신을 욕하고 있다는 걸 다른 친구를 통해 들었다는데요, 아, 이거 곤란하죠.”

프로그램의 메인 MC는 아나운서 출신의 홍민준 이었다.

신청자의 사연을 쭉 읽어준 그는 안타깝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걸 직접 들었으면 바로 따지기라도 할 텐데 건너서 들었으면 좀 그렇죠.”

“일단 사실 여부부터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뒤를 이어 영진 형님이 능숙하게 멘트를 받았고, 민영 배우님이 맞장구치며 의견을 덧붙였다.

그러자 MC의 시선이 우리 세빈이와 같은 반인 애가 있는 그룹을 향했다.

“마침 신청자가 17살이라고 하는데, 또래들 이야기를 먼저 들어볼까요? 재준 군?”

대본에는 원래 세빈이가 먼저 답을 하라는 내용이 있었지만, 호명했으니 어서 답을 해야 했다.

“선배님 말씀처럼 사실인지를 먼저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요. 중간에서 이간질하려는 걸 수도 있으니까요.”

‘PD 뭐라 한다. 앵무새냐고 투덜거리고 있음.’

‘아….’

내 옆에서 주변을 매의 눈으로 살피던 포잉이 살포시 내게 전해주었다.

안타까움에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간신히 더 늦기 전에 답했지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이미 사실 여부를 확인하라는 말을 다른 사람이 먼저 했기에 조금 다른 방향을 원했던 것 같았다.

“그래요, 세빈 군은 어떻게 생각해요?”

MC도 대답에 별다른 반응 없이 곧바로 우리 애한테 질문을 던졌다.

늘 겪는 일이지만 이렇게 칼 같은 사람들 반응은 언제나 숨통을 조이는 것 같았다.

세빈이에게로 화살이 돌아가고,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얌전히 바른 자세로 앉아있던 우리 애는 엷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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