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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18)화 (318/456)

318. How you like that(5)

- 형 화보 찍었다! 나오면 사인해서 보내줄게!!

“아뇨, 형 괜찮아요. 제가 그냥 사서···.”

- 아냐, 6개 사서 사인해서 보내줄 테니까 꼭 봐!

등 뒤로 멤버들이 웃느라 굴러다니는 게 안 봐도 눈에 훤했다.

가영 형 옆에서 세비 형이 제발 그만하라고, 창피하다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언뜻 욕설도 들리는 것으로 보아 키스 형이나 세비 형이 기어코 참지 못한 듯했다.

“하, 하하···. 이왕 할 거면 세비 형이랑 키스 형도 해줘요.”

- 얘네 사인은 필요 ㅇ···! 으악!

이왕이면 공평하게 모두의 사인을 넣어달라고 했더니, 필요 없다고 외치려던 가영 형의 비명이 들렸다.

“형? 괜찮아요?”

어딘가 부딪힌 건가 싶어 되물었더니, 키스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 형이야.

“키스 형, 가영 형 괜찮아요? 어디 부딪혔어요?”

“키스 형! 잘 지내죠?”

옆에 있던 찬이가 같이 외쳤다.

그 목소리를 들은 키스 형은 웃음기 가득 담긴 목소리로 대꾸했다.

- 누가 보면 몇 달 못 본 줄 알겠어.

자연스럽게 키스 형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세비 형은 어떤 얼굴일지 떠올랐다.

아마 가영 형은 어디 부딪힌 게 아니라 키스 형과 세비 형에게 응징당해 사라진 모양이었다.

“우리 찬이는 형이 늘 보고 싶은가 봐요.”

- 찬이만? 다른 애들은?

“어우, 너무 자주 보면 정들어요. 안 돼요.”

천연덕스럽게 대꾸하자 수화기 너머로 형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넘쳤다.

그런 형들 반응에 우리 애들도 웃느라 바빴고.

키스 형은 오랜만에 일을 했다며 조만간 앨범을 하나 낼까 한다고 했다.

형 특유의 나직하고 조금은 건조한 목소리가 담담하게 자신들의 근황을 전해주었다.

“형이 라디오 하면 좋겠다.”

“응?”

옆에 앉아 얌전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빈이가 툭 이야기를 던졌다.

“맞아, 키스 형은 라디오 DJ 같은 거 해도 좋을 거 같은데.”

“그러면 너무 팩폭만 날려서 시청자들 순살 되는 거 아냐?”

경환 형의 긍정과 찬이의 대꾸.

슬쩍 시선을 돌려보니 준이 형과 영빈 형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다는데요?”

- 혹시라도 기회가 있다면 경험해보는 건 좋겠지. 그런데 순살이라고 한 거 힘찬이냐.

“아뇨! 경환 형인데요!”

- 힘찬이는 다음에 따로 형이랑 이야기할까?

“으악! 안돼!”

휴대폰 하나를 놓고 그 사이로 참 많은 사람이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 떠들던 그때, 문득 생각났다는 듯 키스 형의 질문이 훅 치고 들어왔다.

- 아, 환이 너 괜찮아?

“네? 저 왜요?”

- 아까 진짜 찰지게 넘어지더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이만 끊어요, 형! 형들도 쉬어야죠!”

“다행히 뼈는 무사한 것 같아요. 멍은 든 것 같지만.”

“형!”

빠르게 전화를 끊으려는 나와 픽하고 웃더니 상황을 전한 준이 형.

영빈 형은 그런 나와 형을 재밌다는 듯 구경하고 있었다.

- 그래, 뼈 안 부러졌으면 됐다. 본방 챙겨볼게.

- 준아, 방송 날짜 알려줘.

“네, 걱정 마세요.”

“알려주지 마요!”

키스 형과 세비 형의 말에 착실히 답하는 준이 형.

형이 우리 팀인지 새벽 팀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전화가 끝나고 태평하게 러그에 쓰러져있는 좀비들을 둘러봤다.

“아니, 다 같이 흑역사인 걸 굳이 형들한테 알리는 이유가 뭐야?”

“어차피 본방 하면 형들은 다 볼걸? 언래블 흑역사 이러면서 검색해볼 사람들이잖아.”

굳이 형들에게까지 그 영상을 보낸 찬이는 이미 한차례 나에게 응징당했다.

안마를 빙자한 고문을 당하고는 축 퍼져서, 불에 구워진 찹쌀떡이랑 비슷해졌다고 해야 할까.

“그도 그렇긴 한데, 그걸 직접 말하는 거는 쪼금···.”

그런 찬이 등에 기대있던 세빈이가 타박했지만, 이미 안마 당하고 조금 삐져있던 찬이는 고개를 휙 돌리며 모른 척했다.

저저, 소심한 놈.

“아무튼 안 다쳐서 다행이긴 하다.”

‘아이돌 히스토리’ 촬영 중 이런저런 미니 게임과 함께 막판에 진행했던 게 배속 댄스였다.

칼군무를 추구하는 아이돌답게 우리는 평소 연습할 때 느리게도, 빠르게도 연습을 해두었다.

느리게 하면 안무의 디테일을 더 꼼꼼하게 살필 수 있었고, 빠르게 하면 무대에서 뛰어다닐 때에 대비가 가능했으니까.

“그래도 빠른 게 낫지, 느린 것보다는.”

“그건 인정.”

여태까지 대부분의 안무가 단체 대형이 많았던 터라 우리는 제영 쌤의 극진한 사랑을 아주 아주 많이 받았다.

제영 쌤이 춤에는 너무 진심이라 찬이나 세빈이도 버거워할 만큼 우리를 쥐어짰으니까.

‘마른오징어도 쥐어짜면 물 나온다. 일어나!’

더는 못한다고 연습실 바닥에 널브러진 우리를 향해 외치던 제영 쌤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어우, 씨. 갑자기 소름 돋아···.

덕분에 처음 두 배속 댄스는 무난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 정도로는 우리의 멘탈을 흔들 수 없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다른 그룹들도 그러하듯, 여러 곡의 여러 파트가 무작위로 흘러나오면서 문제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1절과 2절 사이에서 헷갈리고, 자기 자리 찾아가다 충돌사고 나고.

처음에는 이거 틀리면 제영 쌤한테 혼난다며 이를 악물고 했지만, 점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리고 결국 급히 자기 자리를 찾아가던 찬이와 내가 부딪혔고···.

바로 뒤에 있던 경환 형은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피해버려서 나는 바닥을 한 바퀴 굴러야 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다.

하지만 곱게 입고 방긋방긋 웃다가 혼자 바닥을 구르니 그 창피함이···.

괜찮은 척 급히 뛰어가 대형을 맞췄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두 MC의 눈빛이 이상했다.

다친 건가 싶어 촬영을 중지하려던 감독님도 내가 벌떡 일어나서 뛰어오자 웃어버리셨고.

나중에 우진 형이 촬영한 영상을 보고 알았는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얼마나 당황스러웠던 건지 얼굴과 목이 토마토보다 빨갛게 변해있었다.

피부가 하얀 편인 터라 그게 너무 적나라하게 찍혔고···.

감탄하던 아노 선배님은 내 손을 꼭 붙들고 말했다.

‘너 몇 킬로냐? 난 종이가 날아가는 줄 알았어!’

‘진짜 팔랑거리고 굴러가더라. 괜찮아?’

수치심 테스튼가?

이분들 나 싫어하나?

다시 얼굴이 달아오르자 찬이가 참지 못하고 촬영장을 구를 기세로 웃기 시작했다.

그 후엔 카메라 감독님과 PD님이 다가오더니 몸 괜찮냐는 말과 함께 고맙다고 하셨다.

정말 재밌는 컷을 건졌다고.

잘 추던 애들이 ‘쿵’하고 부딪히더니 한 놈은 갈 길 가고 부딪힌 애는 데굴데굴 굴러가고.

그 와중에 2차 충돌 날 뻔했던 애는 너무 매끄러운 동작으로 피하더니 자기 안무하고 있고.

팔랑거리며 굴러가던 애가 발딱 일어나서 자기 자리로 달려오는데 삶은 문어처럼 터질 것 같은 붉은 색이었다며 활짝 웃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당시의 상황을 싱글벙글한 얼굴로 무척이나 자세히 말해주신 두 분.

그 덕분에 안무에 집중하느라 상황을 잘 몰랐던 멤버들까지 다 알게 되었다.

경환 형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봤지만, 본능적으로 뭐가 다가오길래 피해버렸다는 말에 할 말이 없었다.

얘들아, 나 아끼는 거 아니었어···?

내가 날아가도 안 잡을 거야?

다음에 또 와서 좋은 컷 뽑아달라며 싱글벙글하셨는데, 내 귀에는 욕으로 들렸다.

찬이는 우진 형에게 촬영하던 영상을 달라고 하더니 그걸 냉큼 단체방에 보내버렸고.

내 이 새끼를 그냥!

처음에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우진 형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자 마음껏 웃었다.

잘했다고, 좋은 컷 뽑아냈으면 된 거라고 위로인지 놀리는 건지 모를 말을 남겼다.

“그래도 환이가 크게 안 다쳐서 다행이지.”

“네, 몸은 안 다쳤는데 마음은 다친 것 같네요. 우리 멤버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겠음.”

슬그머니 눈치를 보던 영빈 형이 한마디 덧붙였지만, 늦었다.

영빈 형도 영상 보고 엄청 웃는 걸 내가 똑똑히 다 봤다.

난 우리 형들이 그렇게까지 신나게 웃는 걸 처음 봤다.

뒤늦게 멤버들이 달려들어 우쭈쭈해 보려 했지만 냉정한 나는 받아주지 않았다.

“우리 환이 예능 나가도 엄청 사랑받겠다. 이런 건 진짜 예능 신이 돕는 거랬는데.”

“그치? 안 다치고 이런 장면 뽑는 거 쉽지 않다고 아까 선배님들이 그러더라.”

준이 형과 영빈 형이 나를 가운데 끼고 열심히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다.

“우와, 그럼 우리 환이 형이 더 많은 솜뭉치 모아오는 거네요?”

“그렇지, 이렇게 또 우리 환이가 한 건 했다.”

“아, 진짜! 그만 해요!”

세빈이와 경환 형까지 달라붙어서 이러고 있으니 더는 버틸 수가 없어진 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버렸고.

킬킬대며 지켜보던 찬이를 한번 밟아준 나는 방으로 도망쳐버렸다.

거울을 보지 않았지만, 아마 내 얼굴은 또 토마토처럼 변했겠지.

한숨을 푹 내쉰 나는 비어 있는 침대 옆자리를 바라보며 툴툴거렸다.

‘포잉은 오늘도 늦나 보네.’

최근 포잉은 자리에 없는 날이 제법 많아졌다.

낮에는 나를 쫓아다니면서도 졸고 있었고, 밤에는 볼일이 있다며 나갔다.

아마도 그때 일의 뒤처리 때문인 것 같았는데 몇 번 물어도 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본인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라는 말만 남길 뿐.

하지만, 포잉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장님과 누나가 전해준 이야기, 공정한의 태도 등.

아마도 사람은 할 수 없고 요정이 할 수 있는 그런 식의 응징이겠지.

그들에게 악몽 같은 벌을 내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늘 나를 작고 약하고 하찮다고 표현하는 내 요정님.

내 눈에는 포잉이 훨씬 작고 약해 보이는데.

가만히 포잉이 없는 빈자리를 쓰다듬던 나는 이불을 끌어다 덮었다.

몸은 조금 쑤시고 말았지만, 마음에 입은 이 큰 상처는 한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날이었다.

* * *

“안녕하세요, 언래블 환입니다.”

“오! 반가워요! 진우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아, 넵 감사합니다!”

컴백하자마자 여기저기 불려 다니기 시작한 멤버들과 달리, 나는 미리 이야기했던 대로 영화 촬영장으로 왔다.

다 같이 출연해야 하는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촬영장에 가고 싶다고 했던 것.

‘별이 잠든 도시’ 촬영 때처럼 촬영장과 다른 배우분들의 연기를 보고 싶었다.

감독님과 작가님께도 미리 말씀을 드렸고, 회사와 미연 선생님께도 이야기했었다.

너무 아는 게 없으니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고 배우고 싶다고.

‘별도시’ 때도 작가님과 감독님이 사정을 많이 봐주셨다는 걸 알기에 조심스럽게 물었었다.

생각보다 더 흔쾌히 허락을 해주셔서 감사의 의미로 컴백하면서 촬영장에 간식을 보내기도 했다.

나중에 진성 형에게 들은 이야기였지만, ‘별도시’ 촬영 초반에는 못마땅해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고 했다.

현장에 있던 배우분들이나 스태프분들 중에는 평생 드라마, 영화 등 연기에 목숨을 걸고 계신 분들도 있었으니까.

겸업이라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보니 너무 가볍게 대하는 게 아니냐는 반응이 있었다고.

하지만 어린 내가 현장에서 공부하고 노력하면서 열심히 간식도 뿌리는 걸 보고 시선이 좋아졌다 했다.

“역시 맛있는 게 최고죠?”

“네가 열심히 했으니까 그렇지.”

다른 분들과 인사를 모두 나눈 뒤, 옆에 다가온 진우 형을 보며 작게 속삭였다.

그 모습을 본 형은 피식 웃더니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고.

“아, 나 진짜 기대된다. 형 연기하는 거 이렇게 보는 거 처음이잖아요.”

“야,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긴장되잖아.”

“에에에이, 형이 긴장한다고? 형 경력이 얼만데.”

오늘은 연기 공부는 핑계고 사실 진우 형이 촬영하는 날이라 팀장님을 졸라 촬영장으로 찾아왔다.

눈을 반짝이는 내 모습에 진우 형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허, 무슨 부모님 직업 체험도 아니고. 그래, 이왕 온 거 이 형님이 얼마나 잘하는지 꼭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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