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17)화 (317/456)

317. How you like that(4)

새벽은 꽤 오랜만에 연예인으로서의 본업을 하는 중이었다.

곡 쓰고 연주하고 연습하는 거야 늘 하는 일이지만, 앨범을 낸 지는 꽤 됐다.

다진의 입대 후 셋이서 앨범 하나 낸 게 전부였으니까.

그러다 보니 방송 출연이나 인터뷰, 잡지 화보도 그쯤에 하고 끝이었다.

올해 중후반쯤에는 다진도 제대할 테니 미리 시동을 좀 걸어두는 게 좋지 않겠냐는 대표의 말이 있었다.

말이라기보다 애원에 가까웠지만, 새벽 멤버들이 생각하기에도 슬슬 준비하는 게 좋을 듯했다.

멤버들이 수긍하자마자 대표는 기다렸다는 듯 수북한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방송에 잘 출연하지는 않지만, 새벽도 상업 음악을 하다 보니 가끔은 얼굴을 내밀었다.

더 가끔 광고도 찍었고.

하지만 역시 공연을 가장 많이 했다.

엄밀히 따지면 방송 출연은 큰돈이 되진 않는다.

되려 이리저리 나가는 비용이 출연료보다 몇 배로 들기도 했고.

하지만, 출연이 있어야 인지도가 있었고, 그래야 살 수 있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예능 출연에 목을 매는 것.

하지만 새벽은 데뷔 초반 방송국의 행태에 진저리를 치며 자기들만의 노선을 개척해버렸다.

애당초 새벽은 인디 때부터 여러 곳에서 러브 콜이 올 정도로 이미 꽤 큰 팬덤이 존재했다.

늘 객석과 가까운 공연장을 선호하는 성향 탓에 팬들이 제발 좀 큰 곳에서 해달라고 성화일 정도였다.

밴드의 성향은 메이저 데뷔 후에도 변하질 않았고, 덕분에 팬들만 티켓팅하느라 힘들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영의 작곡, 프로듀싱 실력이 무척 뛰어났기에 특유의 감성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오죽하면 그 키스가 가영의 곡에 반해서 밴드 활동을 수락했을까.

한편, 가영은 귀찮은 일을 방지하고자 주변의 인맥을 적당히 이용해 자신임을 숨기고 꽤 많은 곡을 팔았다.

그게 또 수익의 큰 부분을 차지했기에 방송 출연에 목매지 않아도 되었고.

물론 그것도 언래블에게 곡을 주면서 들통났지만.

가영은 처음 밴드를 하자고 주변 친구들을 꼬드길 때 약속했었다.

어떤 수입이 있든 무조건 인원수로 나눠서 분배하겠다고.

놀랍게도 그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늘 가볍게 보이는 가영이지만, 그는 자기 입으로 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런 인간이라 다른 멤버들이 지금까지 가영을 무인도에 버리지 않은 것도 있었다.

게다가 새벽에서 가장 유명한 게 가영이어서 그렇지 다른 멤버들도 어디 가서 지지 않을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더불어 한 가지 재밌는 것은 가영이 직접 밝히지 않았다면 그의 곡을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새벽의 리더 한가영으로 만드는 곡과 부캐로 만드는 곡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새벽은 자신들이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당시 여러 상황이 잘 맞물렸고, 대처가 적절했기에 그들은 방송국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었다.

보통의 아이돌 그룹이었으면 시도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방송국 쪽에서는 되려 새벽의 섭외에 열을 올리는 편이 돼버렸다.

특히나 예능에서는 가영이나 키스의 출연 요청이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어쩌다 한번 출연할 때마다 한 번씩 빵빵 터트려주겠다, 희소성도 있겠다.

변덕이라도 부려서 출연해주면 여러모로 좋은 일이라 이렇듯 찔러보기식으로 들어오는 일이 제법 있었다.

“아, 다음 주에 푸른 음악 노트 나가는 거 잊지 말고.”

“아, 맞다. 그거 하기로 했죠?”

대표의 당부에 가영은 태평한 얼굴로 중얼거렸고, 세비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분명히 잊고 있었을 것.

가영은 꽤 뻔뻔한 구석이 있는 인간이라는 걸 이 자리에 앉은 모든 사람이 알았다.

한가영 당사자만 빼고 전부 다.

뜬금없이 골든 아워의 하겸이 방송 중에 선전포고를 해버려서 꽤 재밌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걸 잽싸게 잡아챈 그쪽 작가가 적극적으로 대표에게 연락을 해왔다고 했고.

라디오는 공중파에 비하면 제법 많이 출연했던 터라, 새벽도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선택한 잡지의 화보 촬영.

인터뷰 전 사진 촬영을 먼저 끝낸 멤버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좀 제대로 된 질문을 했으면 좋겠는데.”

가영은 소파에 길게 드러누워 불만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음악 얘기를 하고 싶은 거면 개인 방송 하는 게 나을걸.”

키스는 평소처럼 시큰둥한 얼굴로 답했다.

가영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지만, 인터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애당초 흥밋거리가 될만한 질문이나 자극적인 것들을 캐묻는 일이 대다수였으니까.

“성질부리지 말고 제대로 해.”

“난 늘 제대로 하고 있어!”

세비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은 친구와 세상에 불만이 가득한 동생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조합으로 지금까지 잘 버텨낸 자신이 기특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번에는 비교적 정상적인 질문들이 이어졌다.

일단, 가영과 키스가 가장 질색하는 연애니, 결혼이니 하는 것들에 관한 질문은 없었다.

둘이 의견이 일치하는 건 일 년에 한두 번 정도였는데, 그 질문에는 늘 의견이 같았다.

그들이 누구를 만나든 만나지 않든 그게 왜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공인이기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해했지만, 거기에 연애나 결혼까지 간섭하는 건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나 가영과 키스는 본인들 외에 타인에게 꽤 무심한 편이었고, 당사자들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꽤 닮은 점이 많았다.

세비가 그 부분을 지적할 때마다 둘 다 부모님 욕을 들은 듯한 반응을 보이는 점까지.

둘이 질색하는 질문이 없다는 점에서 세비 기준으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인터뷰였다.

자신의 악우는 범인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미친놈이었고, 동생은 인류애가 부족했으니까.

키스는 꽤 예민한 성격이었고, 만성 편두통에 시달리면서 까칠함은 배가 되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최근 컴백한 언래블과 굉장히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인터뷰어가 마지막 질문이라고 운을 띄우며 입을 열었다.

처음 데뷔 직전 갓 태어난 병아리 같던 애기들이 이제는 새벽에게 질문이 되어 돌아올 만큼 자랐다.

세비는 기특함과 뿌듯함을 함께 느꼈다.

“아끼는 동생들이죠.”

“굉장히 재능있는 후배이기도 하고요.”

인터뷰어의 눈이 살짝 커졌다 다시 돌아갔다.

질문이 끝나지 않았건만, 가영과 키스가 냉큼 한마디씩 덧붙이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언래블의 데뷔곡으로 시작된 인연이라고 들었는데, 그것 말고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꽤 조심스럽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이쪽의 눈치를 보는 게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최근 언래블이 얽혀있었던 이슈와 컴백 두 가지 모두 생각하며 선정한 질문인 듯했다.

가영은 눈을 반짝였고, 키스는 허리를 곧게 폈다.

그들이 세비에게 보내는 시선이 어찌나 뜨거운지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을 정도였다.

“아시다시피 저희 멤버들이 별로 성격이 좋지 못하거든요.”

넉살 좋게 웃으며 세비가 입을 열자 가영은 금방 부루퉁한 얼굴이 되었다.

“저희가 조금 낯을 가리잖아요, 다들 아시다시피.”

“그랬죠.”

에둘러 말하는 세비의 표현에 이해한다는 듯 상대도 웃었다.

“그 친구들을 처음 봤을 때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병아리 같았어요. 여태까지 살면서 그렇게 무해해 보이는 사람을 처음 봤다고 하면 이해하시겠어요?”

세비의 대답에 인터뷰어는 언래블의 모습을 떠올리는 듯했다.

살짝 의아해하는 걸 보아 이 사람은 언래블의 소문만 듣고 직접 보진 못한 사람인 듯했다.

“저희 리더가 촉도 좋은 편인데, 그 친구들을 처음 만나고 돌아가는 날 저희한테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어떻게요?”

두 눈 가득 호기심을 드러내는 인터뷰어.

가영은 그때를 떠올리는지 ‘풉’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 옆에 앉아있던 키스는 자기도 모르게 질색한 얼굴을 했다가 급히 표정 관리를 했고.

이 모든 광경을 눈에 담으며 세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일이다, 일.’

노동력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행위.

그러니 저 둘에게 잔소리는 집에 돌아가서 해도 괜찮다.

이상한 대답으로 사고 치게 하느니 본인이 말하는 게 낫다.

“‘언래블이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모습이 상상이 안 된다’라고 했어요.”

“아···.”

다행히 세비가 전달하고자 했던 느낌을 알아차린 건지 인터뷰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조금 더 자세한 이런 저린 이야기를 세비가 덧붙이는 동안, 키스는 그날을 떠올렸다.

한가영은 정말로 촉이 좋았다.

세비는 그런 가영을 보고 진화가 덜 돼서 동물적인 본능이 먼저인 놈이라고 했다.

가영은 특히 자신들에게 해가 될 사람과 득이 될 사람을 잘 구분했다.

하지만 그런 가영조차 그렇게 말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키스는 자신의 편두통이 그들과 있는 동안에는 사라졌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매우 생소한 경험이었다.

키스는 본인이 매우 예민한 성격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성격에서 기인한 편두통은 오랜 시간 그를 갉아먹어 온 만성 질환이었다.

하지만 조금 번잡스럽다 싶을 정도로 활기찬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은 두통을 느끼지 못했다.

그 후로 비슷한 경험을 몇 번 더 하고 나서야 언래블과 함께할 때는 두통조차 사라진다는 걸 깨달았다.

학생 때부터 괴롭혀온 편두통은 키스가 심적으로 편안해졌을 때만 사라졌다.

그리고 그건 보통 음악에 몰두했을 때와 잠들었을 때였고.

그 외에는 미약한 두통과 심각한 두통의 차이일 뿐이었다.

온갖 검사를 하고 약을 먹었지만 그때뿐이었다.

언래블 멤버들, 특히 지환은 한가영의 말대로였다.

키스는 그들이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해치는 모습이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그걸 깨닫는 순간 키스가 못마땅했던 건, 이번에도 가영의 촉이 옳았다는 것뿐이었다.

“귀엽죠, 우리 병아리들.”

툭 하고 내뱉는 키스의 발언에 인터뷰어의 눈이 다시 동그래졌다.

그녀는 오늘 꽤 여러 번 놀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동생들이라 앞으로 무럭무럭 잘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세비는 마무리하자는 뉘앙스의 말을 남기며 가영과 키스를 바라봤다.

오늘은 둘 다 그럭저럭 협조적인 편이었기에 무난하게 촬영도 인터뷰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

“왜?”

세비가 자리를 정돈하고 인터뷰어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 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가영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그런 가영의 모습에 세비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막 인터뷰가 끝났는데 핸드폰이나 들여다보고 있다니.

가뜩이나 온갖 소문을 몰고 다니는 가영이 불성실하다는 꼬리표도 달고 싶은 건가 싶었다.

“단체방 봐봐.”

“?”

씩 웃는 가영의 말에 키스가 냥톡을 열었다.

가영이 단체방이라고 지칭하는 건 ‘무인도 패밀리’방뿐이었다.

그리고 그 채팅방에 보내진 짧은 동영상.

주변 사람들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눈치챈 세비가 눈치를 줬다.

인터뷰어는 무언가 추가로 건질 거리가 있는 건가 하고 눈을 빛냈지만, 세비는 못 본 척했다.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끝내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

채팅방에 보내진 동영상을 확인한 키스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거리며 웃고 있었다.

“힘찬이 무사할까?”

“무사하겠어? 환이가 멱살 잡았을 것 같은데.”

보내준 영상은 멤버들 혹은 매니저인 우진의 핸드폰으로 촬영된 듯했다.

부산스러운 현장의 분위기와 웃음소리가 그대로 녹음된 영상에는 춤추는 언래블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가영이 웃었던 건 비정상적인 빠르기의 노래와 새빨갛게 달아오른 지환의 얼굴 때문이었다.

“진짜 얘네는 보고 있으면 질리질 않아.”

“와, 근데 경환이는 그걸 피하네.”

“걔는 눈치가 없지, 몸이 둔하진 않으니까.”

가영은 지환이 봤다면 불길하다고 했을 미소를 얼굴 가득 머금고 있었다.

정말이지 지켜보고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는 병아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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