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16)화 (316/456)

316. How you like that(3)

사실 준이 형이 답하기 전에 이미 무어라 말할지 어느 정도 짐작은 했다.

늘 그렇듯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겠지.

회사도 이제는 우리에게 음원 순위나 기사를 봐도 괜찮다고 했다.

다만, 되도록 댓글은 보지 말라고 할 뿐.

억지로 막는다고 인간의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다는 것을 그분들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하준 형도 그 점을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보고 싶으면 봐도 괜찮아.”

“···!”

순간 호기심과 기대가 뒤섞인 멤버들의 시선이 준이 형에게 쏠렸다.

하지만 이후 이어진 말에 다들 손에서 핸드폰을 놓았다.

“난 안 볼 거다. 늘 말하잖아. 보고 싶으면 봐도 괜찮다고. 그 후에 올 후폭풍도 견딜 수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했잖아.”

평소처럼 다정하게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형이 우리에게만은 저승사자만큼이나 무서웠다.

“내일 새벽부터 방송국 가야하고 앞으로 쭉 스케줄이 밀려있는데, 괜찮겠어?”

하준 형은 우리에게 무작정 강요하지 않았다.

해도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구분하는 명확한 선이 있었고,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해주는 쪽이었다.

더불어 이유를 듣고도 하지 말라는 행동을 했다면, 그 후 뒷감당도 본인이 하면 된다고 했다.

단, 팀에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냉정하다면 냉정했고, 친절하다면 친절한 기준이었다.

되도록 기사나 우리 관련 글들을 찾아보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고 얼마 뒤에 일이 한 번 있었다.

가끔 회사 분들이 성적이 좋을 때, 반응이 좋은 기사는 보여주기도 했었다.

그래서 날것의 네티즌들은 어디까지 매워질 수 있는지 찬이나 세빈이는 잠시 잊은 듯했다.

누구나 겪지 않은 일 앞에선 그게 어떤 영향을 줄지 예상할 수 없으니까.

찬이와 세빈이는 사람들이 자신들에 대해 무어라 말할지 몹시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악플러 고소 사건 때조차, 거르고 걸러 가장 순한 맛만 보여줬던 것을 막내들이 잊어버린 것.

형들의 눈을 피해 둘은 핸드폰으로 기어코 검색했고, 그날은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기사만 본 게 아니라 커뮤니티나 SNS에도 들어가 본 듯했다.

언래블을 향해 동정심 팔아서 돈 버는 그룹이라며 비웃는 글도 있었고, 멤버 개개인을 무작정 욕하는 글도 있었다.

차마 보기 힘든 사진끼리 합성해놓고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댓글을 단 글도 있었다.

이미 고소 건은 진행되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자 또 슬금슬금 악플이 고개를 들던 시기였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었고 그건 우리 애들도, 악플러들도 마찬가지였다.

회사 분들과 팬들의 아낌없는 애정과 고운 말들에 녹진해졌던 둘은 호되게 열병을 앓아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다음 날 일정이 외부 촬영이 아닌 자체 콘텐츠 촬영이었다는 것.

잠을 이루지 못해 퀭해진 눈, 티 내지 않으려 했지만 불안해하고 자꾸만 고개 숙이는 모습.

이상한 모습에 추궁하자 둘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전날의 일을 실토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나는 준이 형이 둘을 다독이지 않을까 했지만, 형은 의외로 냉정히 잘랐다.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그 책임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대신 절대로 본인이 해야 할 일에 지장을 주지 말라고 했다.

냉정히 말하는 형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던 둘은 그 뒤로는 행동하기 전 조금 더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뭐, 포잉을 통해 들은 바로는 이후 준이 형이 다른 멤버들 몰래 한 명씩 따로 만났다고 했었다.

그때도 혼을 내는 게 아니라 차분히 타이르고 다독여 주었다고.

재밌는 건, 준이 형 말이 맞다고 담담한 얼굴을 했던 다른 형들도 몰래 찬이와 세빈이를 찾아갔다는 점이었다.

앞에서는 혼내놓고 뒤에서는 또 걱정되어 안절부절못했을 형들을 생각하니 귀엽다 싶었다.

물론 나도 찬이와 세빈이를 따로 만나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날 이후 우리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좋아해 주고 응원해주시는 팬들의 편지로 만족하고, 가끔 회사 분들이 보여주는 것들만 보자고.

주로 회사에서 일차로 검수가 끝난 기사들만 보았고, 순위가 많이 올라갔다고 하면 들어가서 보았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걸 몸소 겪은 덕이랄까.

그리고 그날 나는 다른 멤버들 몰래 준이 형의 작업실에 찾아갔었다.

역시나 어두운 얼굴을 한 준이 형.

그때 표정과 쓸쓸한 분위기가 아직도 선명했다.

혼자 너무 다 하려고 하지 말라는 내게 준이 형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너희 형이고 팀 리더니까 그건 형이 해야 할 몫이라고.

평소보다 더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 모습이, 마치 나보다는 자기 자신을 타이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티 내지 않고 그냥 웃었다.

본인이 원하는 바를 지지해주는 것 또한 팬이자 동생의 역할이니까.

평소보다 축 처진 어깨를 조물조물해주며 앞으로 더 말 잘 듣겠다고 아부도 해주었다.

그 후로는 다들 알아서 더 조심하는 편이었다.

우진 형이 신기해할 정도로 우리는 우리 관련된 글은 피해 다녔으니까.

간혹 멤버들끼리 다 같이 기사나 순위를 보고 거실 바닥을 구르며 기뻐하긴 했지만, 혼자는 보지 않았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나도 그냥 해본 말이야···.”

“우진 형 만나면 물어봐, 형은 말해주겠지.”

“그러네! 지금 우리끼리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다!”

정작 질문했던 경환 형보다, 세빈이가 준이 형 대답에 더 기뻐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며 입술을 삐죽거리는 경환 형의 모습이 낯설었다.

저 형이 언제부터 저렇게 준이 형한테 애같이 굴었지···?

저건 찬이나 세빈이가 하던 짓인데.

경환 형의 모습을 본 찬이는 질색한 표정을 하면서 멀찍이 떨어졌다.

그래, 낯설겠지. 이해해.

그러니 내 곁에서도 좀 떨어져라···.

자꾸 무슨 일만 생기면 찬이랑 세빈이가 나한테 매달려서 힘에 부쳤다.

둘 다 나랑 먹는 게 크게 다르지 않은데 왜 이렇게 무거운 거야?

약간의 소란이 있었지만, 다행히 그 뒤로는 평소처럼 소란스럽고 포근한 일상의 시간이 흘렀다.

평소처럼 찬이와 경환 형은 쿠션을 던져대며 장난치다 두 맏형에게 혼나고.

세빈이와 찬이가 러그 위에서 굴러다니다 다른 형들을 발로 차고···.

뭐, 그런 평화로운 평소의 모습들.

여전히 우리 애들은 유쾌하고 하찮아서 행복해졌다.

* * *

“오늘 초대 손님은 여러분들이 기다리던 그분들이죠?”

“아! 드디어 그분들이 온 건가요?”

콩닥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입장을 기다리는 우리를 보며 지나가던 스태프분이 피식 웃으셨다.

괜찮아요, 저도 알아요.

저희 되게 하찮아 보이죠···?

준이 형은 우리를 진정시키려 애쓰다 나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알아, 형. 찬이랑 세빈이 잘 챙길게!

우리는 오늘 ‘아이돌 히스토리’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아이돌 히스토리’는 이름 그대로 아이돌에 대해서만 다루는 방송이었다.

매주 컴백하는 아이돌을 부르고, 그들과 앨범에 관해 이야기하고.

방송 시간 내내 그 아이돌 그룹과 온갖 이야기를 나누는 흔치 않은 방송이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나서야 방송국에서도 제대로 아이돌 취급한다는 이야기가 아이돌 팬덤에 있었다.

‘Pluto’ 활동 당시에도 출연을 논의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무산되어서 무척 아쉬웠었다.

그랬던 프로그램에 이번에는 컴백하자마자 초대되었다.

우리 애들이 벌써 이만큼 컸다 싶어서 괜히 어깨가 으쓱거리기도 했고.

곧이어 두 MC가 언래블을 외쳤고, 잽싸게 옷매무새를 만진 우리가 공손히 인사하며 걸어 나갔다.

“언래블, 안녕하세요! 드디어 만나네요.”

“와, 저번에 못 만나서 엄청 아쉬웠어요.”

녹화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단체 인사 있으면 해달라는 말로 말문을 연 두 MC는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진행이 매끄러웠다.

중간중간 두 분의 멘트에 멤버들의 반응도 지나치게 과장되지 않았고, 타이밍도 괜찮았다.

다행히 걱정했던 찬이도 세빈이도 긴장하지 않고 곧잘 대답해나갔다.

새 앨범에 대한 질문이 오가고, 미리 준비한 대로 열심히 답하는 시간이 지나갔다.

멤버들 리액션이 자연스럽고 괜찮았는지 PD님 표정도 편안했다.

우진 형도 모처럼 푸근한 얼굴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그 모습들이 이제는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좋다, 진짜로.

“그러고 보면, 환 씨가 팀에서 보모 포지션이라고 하던데, 진짠가 봐요.”

“네? 보모요? 어휴, 아니에요. 저는 저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사람입니다.”

MC들 멘트에 집중하랴, 카메라 챙겨보랴, 애들 지켜보느라 정신이 없던 나는 화들짝 놀라서 손을 저었다.

그렇게 이름 붙으면 주야장천을 놀릴 사람들이 순식간에 열 명 정도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에요. 워낙 멤버들이 장난을 좋아해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MC인 희민은 어떤 얼굴로 무슨 말을 해야 얄미울 수 있는지 무척 잘 아는 사람이 틀림없었다.

방실방실 웃으며 던지는 질문들이 은근히 날카로워서 아차, 하면 실수할 법한 것들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민감한 주제를 후벼 파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궁금할 만한 것들을 묻는 거라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졌다.

대부분 대본을 충실히 따라 진행되는 터라 걱정도 덜했다.

“딱 보니까 평소에 누가 말 안 듣는지 알겠다. 하준 씨, 한 명만 골라서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 해봅시다.”

또 다른 MC인 아노는 아이돌계 대선배이기도 했다.

워낙 입담이 좋아 예능에서 포텐을 터트리고 자기 캐릭터를 확고히 굳힌 좋은 케이스.

나중에 우리 찬이도 저런 자리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선배님이었다.

“하하, 다들 말은 잘 들어요.”

누가 봐도 신빙성 없을 만큼 영혼이 1그램도 들어있지 않은 준이 형의 답.

그 형을 흔들리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찬이.

“그래그래, 다 잘 듣는데 그래도 그중에 한 명을 고르자면?”

MC들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준이 형을 부추겼다.

“음, 그러면 당사자가 부끄러울 수 있으니 익명으로 해볼까요?”

“오, 그렇지. 이름은 말하지 말고 평소에 부탁하고 싶었던 걸 말해봅시다.”

기회를 잡은 하준 형은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멤버들을 한번 쭉 훑어보았다.

“와, 지금 다들 시선 피하는 거 봤어? 평소에 다들 리더한테 잘못한 게 많나 보네!”

본인도 겪어본 일인지 아노는 신나서 외쳤다.

“자, 저기 카메라 보고, 영상 편지처럼!”

카메라를 찾은 준이 형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저 조금 부끄러우니까, 예뻐 보이라고 꽃 배경 같은 거 넣어주시면 안 될까요?”

“감독님! 반짝이도 같이 넣어주세요! 영상 편지 스타일 아시죠?”

OK 사인을 보내듯 카메라 감독님은 카메라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준이 형은 큼, 하고 목소리를 다듬더니 인자한 얼굴로 말을 시작했다.

“제발 몸 좀 사리고 운동 좀 하자. 내가 이름 말 안 해도 누군지 알지?”

그 순간 멤버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형?

당황한 내가 준이 형과 멤버들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홍삼이랑 비타민 먹는 거로 어떻게 때우려고 하지 말고. 가뜩이나 몸도 약한 애가 움직이는 건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준이 형을 보며 입 모양으로 ‘나?’하고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불안해하던 찬이는 이미 입꼬리가 씰룩씰룩 춤추고 있었고, 세빈이는 입을 가리고 있었다.

나, 아니, 나 왜?

“트레이너 쌤이 형한테 하소연하더라. 너 자꾸 도망간다고. 형이랑 이제 약속하자. 알았지, 환아?”

익명이래 놓고 대놓고 내 이름을 불렀다.

“형···?”

“아차, 익명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네.”

거짓말!!

당연히 찬이나 경환 형에게 남기는 메시지 일 줄 알았는데 졸지에 말 안 듣는 동생이 된 나.

무척이나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형을 바라봤지만, 이 자리에 내 편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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