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How you like that(2)
온갖 찬란한 빛의 조명과 그보다 더 빛나는 애정 가득한 눈망울들.
그 눈부신 모든 것들 아래 멤버들은 작은 실수도 없이 안전하게 무대를 완성했다.
기존의 현란했던 머리카락 색과 의상에 비하면 이번에는 정제된 세련미를 추구한 듯했다.
멤버 중 절반은 검은색 머리였고, 나머지 절반만 각기 다른 색으로 염색을 했다.
의상도 화려한 액세서리나 장식을 덧붙이기보다는 포인트 브로치나 넥타이 등으로 마무리했다.
가장 화려한 장식이 심장 위쪽에 붙은 몇 개의 메달과 어깨의 견장 장식이었고.
노래의 분위기도 그전까지처럼 무겁고 몰아붙이는 듯한 비트의 곡이 아니어서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물론 이전의 ‘Confusion’은 펑키한 느낌에 활발한 곡이었지만, 그 곡과도 완전히 달랐다.
높은 산에서 조그맣게 흐르던 물이 합쳐져 바다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
점점 더 많은 소리가 모여 확 퍼지는 모양새는 귀를 즐겁게 만들었다.
게다가 각자의 고난을 상징하는 폐허와 그걸 넘어서는 모습이 팬들에게는 여러 가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일이 있었다.
당사자인 언래블이 가장 힘들 테지만,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팬들도 속이 말이 아니었다.
왜 우리 애들만 계속 이런 일들이 생기는지.
내 가수가 사고 치는 게 아닌 게 어디냐고 말하는 타 팬들도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우리 애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계속 사건 사고가 생기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 대상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 등.
그렇게 팬들의 타는 듯한 속을 달랜 것도 늘 언래블이었다.
언래블은 언제나 그 모든 일을 발판 삼아 더 높이 뛰어올랐다.
이번에도 다를 건 없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들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무대를 통해 보여줬다.
격렬함보다는 절제된 모습을 보이는 세련된 안무, 여섯 명이 한 몸처럼 흩어졌다 모이는 동선 등.
가사와 뮤직비디오는 두말할 것 없었다.
산산이 조각나 과거의 위엄을 찾아볼 수 없는 신전과 폐건물들, 우거진 정글 모두가 언래블의 적이었다.
하지만 멤버들은 그 모든 것을 다른 수단 없이 본인의 몸으로 뚫고 나와 그 위에 우뚝 섰다.
되려 그것들을 밟고 서서 팬들을 향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지지 말자고.
우리는 이런 것들에 지지 말고 우리의 길을 가자고.
그 후에 이어진 소소한 대화도, VCR도 모두 행복한 시간이었다.
멤버들은 여전히 활기차고 장난기 가득했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VCR에서는 뭉클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 이번 쇼케이스 미침….
늘 그렇지만 우리 애들 미모는 오늘도 열일했어… 진짜로 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ㅠㅠㅠㅠ
애들별로 A4 열 장씩 빼곡하게 채울 자신 있지만, 너희도 다 아는 얘기니까 참을게ㅠㅠ
아니, 근데 진짜 코디님 어느 방향에 계시냐구ㅠㅠ
진짜 복 받으셔야 한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ㅠㅠ 정균찡이 괴롭히면 몰래 당근을 흔들어 주시구요….
내 사비 털어서라도 코디님 붙들어놔야 한다고 본다. 나 진지해, 궁서체야.
매번 착장 미쳤다고 했지만, 이번은 진짜 역대급이야.
원래 나 히스, 작은환, 세빈은 절대 청초파였는데ㅋㅋㅋㅋ
(물론 우리 애들이 어울리지 않는 컨셉은 없다는 거 알아. 과몰입 ㄴㄴ)
오늘 무릎 꿇었어. 그래, 내가 무지했다. 인정할게.
카리스마 섹시 도발ㅠㅠㅠㅠㅠ
오늘 쇼케 못 본 사람은 덕질 인생의 절반을 손해 본 사람임 ㄹㅇ
나중에 편집본이라도 꼭 보길 바라….
(히스, 작은환, 세빈이 흑발에 뒤로 넘긴 머리 사진)
ㄴ울 막내가… 언제 이렇게 컸지…?
ㄴ내말이… 토끼 머리띠하고 웃던 사진이 아직도 내 최애컷인데 오늘 바꿨자나.
ㄴ아닠ㅋㅋㅋ 너네 단체로 아련아련 열매 먹었어…? 점들이 너무 ㅋㅋㅋ
ㄴ하지만 원뷰어 말은 ㅇㅈ 진짜 인생 손해 본 거 맞음ㅇㅇ 꼭 영상 찾아봐
- 세계관 해석하던 선생님 어디 계세요?
뮤비 보니까 뭔가 있어! 뭔가 있는데! 난 잘 모르겠어ㅠㅠㅠ 내 눈은 옹이구멍인가? 뭔가 있다는 것만 알겠어ㅠㅠ 선생님들, 제가 간절히 기다립니다. 해석해주세요….
ㄴ222 저도 기다립니다
ㄴ33 여긴가요…? 줄 서서 기다리면 금손님이 와준다는 곳이
ㄴ폐허가 고난이고 막 애들이 넘어써! 그리고 뙇!! 그 위에 서서 춤추는 게 멋있어! 근데 해석이 안 돼.ㅎㅎ 저도 줄 서봅니다.
팬들은 적어도 오늘만은 그간 마음 졸이던 것을 내려놓고 마음껏 즐겼다.
뮤직비디오는 이번에도 무언가 있다는 분위기를 폴폴 풍겼고, 이제는 병아리가 아니라는 분위기를 무대 내내 보였다.
물론 무대할 때가 아닌 토크에서는 원래 그들의 병아리가 맞았지만.
처음 회사에서는 봄처럼 화려하고 화사한 분위기의 곡이 더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최종 심사에서 고심하던 두 곡 중 한 곡은 마침 가사만 적당히 맞추면 분위기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논의 결과 최종 심사에서 타이틀은 ‘Samsara(輪廻)’로 결정되었다.
A&R팀과 멤버들, 작곡가와 회사가 수많은 회의를 한 결과였다.
멤버들이 특히 마음에 들어 하던 곡은 타이틀이 아닌 수록곡으로 넣게 되었다.
아쉬웠던 것도 잠시, 뮤직비디오와 컨셉 포토, 녹음을 진행하면서 모두가 수긍할 만큼 그럴듯한 그림이 그려졌다.
한편, 두 곡 모두 작곡한 신인 작곡가 조이는 ON 엔터와의 인연이 황금 동아줄을 잡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함께 작업하는 동안도 무척이나 만족스러웠고, 직접 곡을 부르는 언래블을 만난 후에는 더 즐거웠다.
그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멤버들이 의견 내는 데 굉장히 적극적이라는 것이었고, 회사가 유연한 태도로 수용한다는 것.
아직 신인이지만 그런 그에게도 흘러들어오는 이야기는 많았다.
대부분 회사에서는 소속 아이돌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는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더불어 직접 작곡했다던 아이돌도 실상은 비트 몇 개를 넣거나 멜로디를 조금 추가한 게 다인 경우가 많았고.
물론 직접 곡을 만드는 가수도 많았지만, 데뷔 초부터 자기 곡을 넣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회사로서는 최대한 안전한 방향으로 가고 싶은 게 맞으니까.
그건 작은 회사일수록 더 도드라지는 특징이었다.
하지만 조이는 이번에 ON 엔터와 함께 일을 하면서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내실이 튼튼한 회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멤버들이 미리 준비해온 자료에도 잔뜩 공을 들인 티가 났다.
확인하면서 속으로 감탄할 만큼.
처음에는 한 곡만 넘기려 했었다.
다른 곡은 따로 푸시 들어온 엔터도 있었고.
두 곡 모두 넘긴 건 다분히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그 후 함께 가사를 쓰면서 자신이 최선의 결정을 했다고 믿었다.
멤버들은 자신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명확하게 컨셉을 이야기했고, 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맺음 되는지까지 그리고 있었다.
전문가의 기획이었다면 조이도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다.
조이가 신인이라고 해도 이제 데뷔 1년 차인 신인과 전문가는 확연히 구분할 수 있었다.
그는 작곡가로서의 활동만 신인이었으니까.
“거기에 윤회 사상을 섞을 줄은 몰랐지.”
쇼케이스를 GIVE 앱으로 지켜보던 조이는 헛웃음을 삼키며 홀로 중얼거렸다.
단순히 고난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만들 거라 생각했다.
평행 우주와 불교의 윤회 사상을 섞어 세계관을 확장 시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여태까지 앨범에서도 그렇게 밑밥을 깔아둔 것도 몰랐고.
조이는 앞으로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씩 웃었다.
물론 그를 만족스럽게 하는 것 중 확실한 한 가지는 통장이었다.
* * *
“으어어아으….”
“왜 여기에 사람이 아닌 게 있는지 아는 사람?”
“모르겠어. 하지만 확실한 건 난 아냐.”
컴백 쇼케이스, 인터뷰, 그 뒤 짧은 GIVE 앱까지.
내일은 새벽같이 방송국으로 달려가야 했다.
불안한 마음에 회사에서 몇 번 더 안무를 맞춰본 우리는 겨우 숙소에 도착해 뻗었다.
긴장을 많이 했던 찬이는 씻자마자 빨래처럼 쿠션 위에 널려있었고.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닌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끙끙거리고 있었다.
다들 그런 찬이를 보며 바보가 옮는다고 멀찍이 떨어졌더니 서운했는지 또 한바탕 버럭했다.
처음 하는 것도 아닌데 무대에 오르는 건 늘 긴장되고 떨렸다.
어떻게 이렇게 늘 새로운지 이 기분이 적응되는 날이 올까 싶었다.
“몸살 나면 진짜 망한다. 알지? 이상한 사람은 지금 약 먹고 자.”
“혹시 모르니까 다들 비타민 지금 먹고.”
준이 형과 영빈 형은 우리처럼 힘들 텐데도 일어나 멤버들을 챙겼다.
아기 새처럼 누워서 입만 벌리고 있는 멤버들 입에 비타민과 영양제를 넣어주는 모습이 참….
“이러니 사람들이 병아리라고 부르지.”
“포기하면 편하다니까?”
병아리 호칭을 좀 떼고 싶었던 내가 중얼거렸지만, 옆에 엎드려 있던 경환 형은 느긋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게 포기가 돼요? 난 이왕 하는 거 좀 멋있는 거 하고 싶어요.”
“그러기엔 세빈이 너는 이미 토끼던데.”
“형은 원숭이잖아!”
불퉁한 목소리로 자기는 멋진 거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세빈이는 ‘토끼’라는 말에 도끼 눈을 했다.
“토끼가 나은지 양이 나은지.”
“조용히 해.”
졸지에 양으로 낙인찍힌 영빈 형이 자신에게 튄 불똥에 한 소리 했다.
팬들에게 처음 박힌 이미지가 준이 형부터 차례대로 늑대, 양, 곰, 고양이, 원숭이, 토끼였다.
그 스티커를 붙여준 게 각자 이미지로 그대로 굳을 줄 몰랐지.
아니, 그렇게 따지면 내게 붙인 건 호랑이였는데 왜 내 이미지가 고양이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른 형들은 스티커 대론데 왜 나만….
솜뭉치들을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그 부분은 이해할 수 없었다.
포잉은 사랑스럽지만 그렇다고 내가 고양이랑 닮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렇게 영양가 없는 수다를 끊임없이 나누면서도 각자 몸을 주무르는 손은 쉬지 않았다.
이제 다시 바쁘게 활동할 테니 몸에 긴장이 풀리면 곤란했다.
이럴 때 긴장이 풀리면 몸살 나기 딱이었으니까.
팀장님과 우진 형의 말로는 컴백 일정이 정해지자마자 들어온 스케줄이 제법 많다고 했다.
이번에는 메이저 예능 쪽에서의 연락도 제법 있었다고.
케이블 방송사 쪽은 ‘Pluto’ 때보다 연락이 세배는 더 많다고 했다.
봄맞이 축제에서도 꽤 많은 출연 요청이 있었다고.
아직 우리에게는 봄에 맞는 곳이 없어 이런저런 계산을 두들기는 곳들도 있을 거라고 했다.
신인상 후 나온 앨범이니 이번 앨범이 중요하다며 다들 입을 모을 정도였으니까.
어느 정도 몸도 입도 풀린 우리는 꾸물꾸물 모이기 시작했다.
“근데, 오늘 유독 반응 좋지 않았어요?”
“그치?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거 아니지?”
오늘 기자들의 반응, 팬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그동안 우리는 늘 그룹의 정체성은 명확하나 대중성이 부족하다는 평을 들었다.
이번 앨범에는 그 꼬리표를 떼기 위해 더 열을 올렸고.
여전히 내게 작곡을 알려주는 에단 쌤에게 묻기도 했었다.
도대체 그 대중성이 뭐냐고.
그때 선생님은 재밌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너희가 아주 많이 유명해지면 너희 노래가 대중성 있는 노래가 된다고.
그게 아니라면 누구라도 금방 따라 할 수 있는 쉽지만 특색있는 노래를 만들든가.
너무 어렵다고 투덜거려봤지만, 그게 쉬웠으면 작곡가들이 전부 부자였을 거라며 웃으셨다.
수많은 곡을 만들고 없애고를 반복한 선생님도 잘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지만 좋은 노래는 ‘대중성’이라는 키워드가 없어도 괜찮다고 하셨다.
‘대중성’의 또 다른 말은 익숙한 멜로디라는 뜻이라 잘못하면 죽도 밥도 안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니 너무 초조해하거나 조급해하지 말고 많이 만들고 많이 경험하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예술을 접하며 더 많은 세상을 보는 것.
그게 좋은 곡을 만들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되어 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어깨를 토닥여주셨다.
그 말을 이번 곡을 준비하는 내내 생각했다.
그게 조금은 영향을 준걸까?
그전까지는 쇼케이스를 해도 기자들 반응이 오늘처럼 뜨겁지 않았다.
괜찮은 신인, 기대되는 신인 정도 취급 반, 여러 사건·사고가 있었으니 뭔가 주워갈 것 없나 하는 반응 반.
하지만 이번에는 몇몇 어그로성 질문은 있었지만, 그보다 흥미롭다는 얼굴이 더 많았다.
“…우리 순위 한 번만 볼까?”
답지 않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경환 형이 준이 형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어진 준이 형의 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