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09)화 (309/456)

309. 아주 NICE(1)

장난삼아 한우 발언을 한 덕에 형들의 시달림을 한껏 받은 나는 그 후로 한우의 ‘ㅎ’도 꺼내지 않았다.

이 징한 인간들….

기본적으로 숙소를 벗어나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 나는 한우고 뭐고 그냥 집이 편했다.

포잉은 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라며 즐거운 듯 나를 비웃었다.

이상하게 최근에 포잉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무언가 후련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발걸음이 평소보다 0.8 포잉만큼 더 가벼운 것으로 보아 무언가 기분 좋은 일이 있는 듯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봤지만, 답해주지 않아 포기해버렸지만.

포잉은 꽤 고집이 센 편이라 한번 안된다고 하면 결정을 잘 번복하지 않았다.

“오리진은 어떻게 됐어요?”

“대충 뭉개고 넘어가는 것 같은데 망했지. 시청률 훅 떨어졌대.”

“시청자 게시판도 난리라던데?”

메이크업을 받으며 우진 형에게 프로그램에 관해 물었고, 예상했던 결과가 흘러나왔다.

우리 출연분이 끝나고 멜트로 넘어가야 할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미 논란이 있었던 탓에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나마 골든아워와 멜트의 팬들은 내 새끼 얼굴을 본다고 보고 있을 테지만, 신규 유입은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우리 솜뭉치들도 더는 보지 않을 것 같았고.

나중에 팀장님께 슬쩍 들은 바로는 JC 엔터에서 물어야 할 위약금 때문에 방송국과 JC, 두 곳이 기 싸움 중이라고 했다.

잘못은 방송국 소속이 했는데, 계약서는 JC 엔터에서 썼으니.

게다가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에드가 아주 살짝 발을 걸치고 있다는 걸 방송국에서 알아버렸다.

그런 작은 틈을 놓칠 리 없었던 터라 꽤 아웅다웅하고 있다고.

방송국과 아예 척을 질 수 없는 JC 쪽은 미칠 노릇일 터.

팀장님은 신난 목소리로 우리는 양쪽에서 받아먹을 거 다 챙기면 된다고 하셨다.

뭐, 팀장님이 중간에 살짝 내 눈치를 보긴 했지만.

그런 팀장님께 최대한 많이 뜯어내자고 악동같이 웃어 보이자 주먹을 불끈 쥐며 힘내겠다고 하셨다.

“화나!”

“요, 오랜만!”

저쪽에서 현란한 색을 한 머리통을 한 놈들이 뛰어왔다.

“환이만 보이냐!”

“환이는 아팠잖아. 그러니까 먼저 인사해야지.”

“괜찮아?”

“이제 안 아파?”

오늘은 DCL과 함께 언래블 스토리를 찍는 날이었다.

출연료 협의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야기가 잘 되었는지 DCL 측에서도 허락했다고 했다.

여전히 보라색, 노란색, 초록색의 화려한 머리카락 색을 뽐내는 DCL.

이번엔 휴이가 보라색, 레노가 노란색, 자인이 초록색이었다.

레몬 같아진 레노와 풀잎 같은 자인이 내 몸을 더듬거리며 멀쩡한지 확인하려 들었다.

“괜찮으니까 좀 떨어져!”

“우리 환이거든? 저리 가!”

질색하는 나와 내 앞을 막는 찬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휴이까지 네 명은 메이크업을 점검해주던 가희 누나에게 혼났다.

“난 가만 있었는데 왜…?”

가만있다 날벼락을 맞은 휴이가 억울한 얼굴을 했지만, 못 들은 척 넘기기로 했다.

“괜찮아?”

“저 그 질문, 백 번은 들은 것 같아요.”

“그만큼 다들 걱정한 거지, 뭐.”

곧이어 새까만 머리로 염색한 리우 형이 다가왔고, 웃으며 장난스럽게 답했다.

“알죠, 그만큼 고맙고. 근데 진짜 저 이제 괜찮아요.”

“그래, 그럼 됐다.”

느긋한 얼굴을 한 리우 형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 영빈 형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실내 촬영을 하고, 나중에 이긴 팀, 진 팀이 각각 별개로 미션을 수행하는 형태라고 했다.

안 좋은 일이 있었으니 친한 그룹과 잘 노는 모습을 보이면, 팬들이 조금 더 안심하지 않겠냐는 소현 팀장님의 의견이었다.

내 컨디션을 고려해 가볍게 진행할 거라는 감독님의 웃음이 믿기지는 않았지만.

아늑한 분위기로 꾸며진 세트장에 우리 6명, DCL 4명이 둥글게 앉으니 꽉 차 보였다.

“이야, 이렇게 보니까 많긴 많네.”

“저희는 게스트니까 좀 살살 해주시는 거죠?”

“감독님한테 그런 게 통할 것 같아?”

자리 잡고 앉자마자 조잘거리는 우리와 그런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스태프분들.

원래 우리 감독님, 그러니까 윤관영 감독님이 스태프분들 가운데 서 있는걸 보니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확실히 최병섭 PD가 저 자리에 있을 때보다 훨씬 안정감 있었다.

그 사람은 이제 PD라고 불리지도 못할 테지만.

“자, 오늘 미션은 간단합니다.”

“늘 간단하다고 하시잖아요!”

“맞아! 운동회 때도 그러셨으면서!”

입버릇처럼 간단한 미션이라고 하는 감독님에게 찬이와 세빈이가 발끈했다.

“나 그거 봤다. 너희 그거 찍고 몸살 났지?”

“안 났겠냐?”

리우 형이 준이 형에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못 들은 척해줬다.

벨크로 달리기는 진짜 선 넘었지.

“진짠데. 싫으면 좀 어려운 거로 바꿀까요?”

“아뇨. 전 늘 감독님을 믿습니다.”

감독님이 씨익 웃자, 불길함을 느낀 경환 형이 한 손으로 찬이 입을 막으며 재빨리 부정했다.

“하하, 진짜 간단한 게임을 할 거예요. 하지만 벌칙은 간단하지 않으니 조심해야 할 겁니다.”

상큼하게 웃는 감독님 얼굴은 평소처럼 사악해 보였다.

그래, 이게 우리 감독님이지….

이어진 룰은 감독님이 장담했던 것처럼 어렵진 않았다.

5명이 한 팀으로 팀을 나누고, 양 팀은 제작진이 준비한 게임을 한다.

게임은 3가지였고, 마지막 게임의 점수가 조금 더 높으니 막판 뒤집기가 가능할 거라고 하셨다.

“일단 팀부터 나누죠. 앞에 통에서 종이를 하나씩 뽑아주세요.”

우리 앞에는 접힌 종이가 든 통이 준비되었다. 다들 긴장한 얼굴로 하나씩 뽑아서는 손에 꼭 쥐었다.

지금의 선택에 미래의 내가 달렸으니 신중할 수밖에.

“종이에는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이 적혀있습니다. 각 팀 팀장은 종이에 팀장이라고 적혀있으니 손들어 주세요!”

뭔가 불길했다.

내가 게장을 싫어해서 찝찝한 걸까?

감독님을 믿느니 그냥 벨크로 달리기를 한 번 더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어느새 불신의 아이콘이 된 감독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눈이 마주쳤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감독님이 방긋 웃으셨고 불길함은 배가 되었다.

“양념은 이쪽으로 모이세요!”

“간장게장은 여기요!”

손을 번쩍 든 양념게장 팀 팀장은 세빈이었다.

간장게장 팀은 자인이 팀장이었고.

“이야, 짠 듯이 이렇게 팀이 갈리네요.”

감독님의 말처럼 짠 것처럼 각 팀 인원들이 공평하게 나뉘었다.

양념게장은 세빈이, 영빈 형, 리우 형, 레노, 나.

간장게장은 자인, 휴이, 준이 형, 경환 형, 찬이.

“몸으로 하는 게임이면 우리가 질 것 같은데요….”

“형이 어떻게든 해볼게.”

시무룩한 막내를 위해 영빈 형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아냐, 영빈 형. 그러지 마. 그러다 어디 부러지면 어떡해….

“오늘은 간단한 게임이랬으니까 힘쓰는 거 안 하겠죠.”

확실히 힘쓰는 게임이라면 우리가 간장 팀을 이길 수가 없었다.

자인이나 휴이도 몸이 좋은 편인데 경환 형이랑 찬이는 도저히 이길 자신이….

“이쯤에서 첫 번째 게임 공개합니다!”

활짝 웃는 감독님이 각 팀 팀장에게 준 것은 4X4의 빈 빙고판이었다.

“첫 번째 게임은 여러분들의 상식을 시험해볼 게임입니다. 앞으로 해외로 활동을 뻗어 나갈 여러분들이라면 각 나라의 수도 이름은 당연히 알고 있겠죠?”

나는 감독님도 16개국 수도 이름을 모를 거라는 데 오늘 저녁밥도 걸 수 있었다.

각 팀 팀장인 우리 세빈이와 자인은 빈 빙고판을 들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마 우리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겠지.

“수도 이름 빙고가 첫 번째 게임입니다. 쉽죠?”

해외 활동할 거니까 당연히 수도 이름 다 알지?

하고 가불기를 거는 감독님에게 차마 반박할 수 없었던 우리는 입만 벙긋거리며 속으로 욕을 삼켰다.

그래, 저 인간이 쉽게 넘어갈 리가 없지.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방긋 웃으며 호루라기를 부는 감독님이 얼마나 얄미워 보이던지.

팀장을 중심으로 세트의 양쪽 끝으로 모인 우리는 그때부터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다.

“일단 저쪽 팀에서도 알만한 수도는 여기랑 여기에 적으면 좋을 것 같아요.”

팀장이 된 세빈이는 볼펜을 꼭 쥐고선 빙고판의 끝부분을 톡톡 두드렸다.

“난 가서 망볼까?”

“수작 부리면 손모가지 날아간다.”

누가 봐도 자신 없어 빠지려는 레노의 모습에 리우 형이 담담히 답했다.

리우 형의 대답에 움찔한 레노는 물에 데친 시금치처럼 쪼글쪼글해져서는 얌전히 내 옆에 앉았다.

힘내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리우 형이 한마디 덧붙였다.

“버릇 나빠져, 너무 오냐오냐하지 마.”

“자자, 한 팀이니까 빨리 이거부터 채워요, 우리.”

세빈이가 상황을 중재하며 빙고판을 두드렸다.

우리 애가 언제 이렇게 커서 듬직해졌지?

감격한 내가 기특하다는 듯 세빈이를 바라보자, 우리 막내는 부끄러웠는지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얼마 후.

감독님에게 빙고판을 검사받은 우리는 간장 팀이 다 채우길 기다리며 여유를 부렸다.

“너네 그걸 어떻게 다 채웠어?”

“글로벌한 활동을 하려면 필수 아닙니까?”

우리 팀에서 도발을 담당한 레노의 대답에 자인이 뒷목을 잡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이어진 게임.

“프놈펜.”

“없… 어요. 오타와!”

“저희 빙고요.”

“왜 벌써!”

간장 팀의 찬이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외쳤다.

그 옆에 있던 휴이가 경환 형에게 프놈펜이 어디냐고 물었지만, 우리 형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형이 그걸 알면 적었겠지.

나도 몰랐는걸?

우리 팀에는 우리도 몰랐던 치트키가 있었으니, 바로 영빈 형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영빈 형은 어릴 때 세계 지도 보는 취미가 있었다고.

덕분에 세계 여러 나라의 도시 이름과 수도 이름을 알고 있다며 쓱쓱 적어나갔다.

간장 팀도 알법한 수도명과 잘 모를 것 같은 수도명을 적절히 섞어서 적어 놓은 것.

이번 게임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영빈 형의 손만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 형, 진짜 천잰가 봐.”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세빈이, 레노는 고개를 끄덕였고 리우 형은 작게 팔불출이라고 중얼거렸다.

“수도 이름 빙고판은 양념게장 팀 승리!”

간장게장 팀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간장 팀은 아는 수도 이름이 부족해서 머리를 쥐어짜다 제작진의 도움을 받아야 했으니까.

물론 아무 대가 없는 도움은 아니었다.

다음 게임에 페널티가 부여될 거라고 했는데 우리는 그런 페널티 없이 빙고를 완성했다.

처음 걱정과 달리 의기양양해진 우리는 다 같이 팔짱을 끼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간장 팀을 바라보았다.

님들 팀엔 영빈 형 없지? 하하하!

“빠르게 갈까요? 다음 게임은 젠가입니다!”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각 팀은 이글이글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 * *

“영화?”

“네. 제가 환이랑 친분이 있는 걸 알아서 그런지 감독님이 깜짝 출연 가능하냐고….”

언래블 멤버들은 언래블 스토리 촬영을 하던 그때.

여진우는 감독에게 시달리다 못해 결국 ON 엔터를 찾았다.

“우리는 홍보되니까 반대할 이유는 없는데 지환이가 할지 모르겠네.”

소현은 얼마나 시달렸는지 피로가 덕지덕지 묻은 여진우가 불쌍했지만, 이건 소현보다 지환의 의사에 달린 일이었다.

소현은 지환이 연기를 재밌어하지만, 본격적으로 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지환을 가르친 김미연 선생님도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연기만 시키라고 하셨고.

선생님은 지환은 강요한다고 되는 놈이 아니라며, 자기 마음이 동하면 하지 말라고 해도, 하고 싶다고 조를 테니 두라고 하셨다.

“안 그래도 저도 물어만 볼 거라고, 너무 기대하지 마시라고 했어요. 컴백 준비 때문에도 바쁘고 요새 좀 안 좋다고도 말했고요.”

한숨을 푹 내쉬던 여진우는 소현에게 감독이 얼마나 질긴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렸다.

“일단 애들 오면 물어볼게. 무슨 역인데?”

“그게….”

곤란하다는 듯 주저하던 여진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고, 소현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 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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