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 Scream(4)
결국 에드가 벌였던 일은 JC엔터에도 이야기가 들어갔고, 대로한 실장은 에드와 디아를 불러다 험한 말을 쏟아냈다.
에드의 퇴출을 언급할 정도로 분노에 찬 실장.
이번 일로 물어야 할 위약금과 프로그램 제작 지연으로 발생할 부수적인 비용들, 땅에 떨어진 이미지 등.
어마어마한 손해로 대표와 이사들의 분노를 한 몸에 받은 실장은 눈이 뒤집혀있었다.
에드가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디아가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어찌 되었든 팀 내에서 일어난 일을 리더인 디아가 몰랐다는 건 변명할 수 없었으니까.
간신히 그런 실장을 말린 디아는 피곤함에 찌든 얼굴로 에드를 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가뜩이나 하겸의 차가운 시선과 한 치의 흔들림 없던 지환의 눈빛에 주눅 들었던 에드.
지친 얼굴로 숙소로 돌아온 둘을 나머지 멤버들이 둘러쌌다.
그들도 매니저를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가 있기에 에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쌓여있는 상황.
“박화영, 너 미쳤어?”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그만해, 나도 내가 미친 거 알아….”
욕설과 추궁이 오가는 가운데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에드는 점점 더 말을 잃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이제 1년도 안 된 신인 그룹을 질투해서 이 사달을 내다니.
루와 페리는 도무지 이해되질 않았다.
“화영아, 우리가 너한테 뭐 서운하게 한 거 있냐.”
“우리끼리 잘해나가는 거로 부족했어? 형들이 너한테 이거밖에 안 되냐.”
멜트의 멤버들이 가장 화났던 건, 에드의 경솔한 발언보다 자신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듯한 에드의 태도였다.
언래블 멤버들이 마음에 드는 것과는 별개로 멜트는 긴 시간 함께 고생해온 한 팀이었다.
연습생 시절까지 하면 개인차가 있긴 해도 거의 10년.
게다가 에드는 까탈스럽긴 해도 막내인지라 멤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에드를 아껴왔다.
그랬는데 골든아워가 언래블을 예뻐하는 걸 질투했다고?
질투 때문에 함부로 입을 열어서 이 사단을 만들고?
자신들이 긴 시간 동안 에드에게 쏟았던 신뢰와 애정이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진창에 처박힌 기분이었다.
늘 에드 편을 들어주던 사피도 딱딱하게 얼굴을 굳힌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모든 멤버가 에드에게 묻고 싶은 건 한가지였다.
“우리는 도대체 너한테 뭐냐?”
지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여태까지 침묵을 지키던 디아가 물었다.
묵직한 한마디.
몇 년의 시간을 함께 보낸 멤버들보다 다른 팀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는 듯한 에드의 태도가 그만큼 멜트에게는 충격이었다.
“…아냐, 그런 거. 그냥 내가 잠깐 미쳐서 그런 거야. 형들한테 불만 있었던 게 아니야.”
서로 욕하고 싸우는 날도 있었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와 친애의 감정이 늘 밑바탕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에드를 바라보는 멤버들의 시선에는 한 조각의 온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배신감과 실망, 상처, 분노가 뒤섞여 날카롭게 찔러올 뿐.
제 손안에 쥔 게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잃어봐야 소중함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은연중 멜트 멤버들이 자신의 곁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에드는 이제야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
왈칵 겁이 난 에드가 떨리는 눈으로 멤버들을 살폈지만,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에드를 바라보았다.
“나중에,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지금은 솔직히 네가 무슨 말을 해도 좋게 들리지 않아.”
두통이 치미는 듯 이마를 꾹 누르던 디아가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나, 둘 일어서 각자 방으로 흩어지고 거실에 홀로 남은 에드.
텅 빈 거실의 소파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던 에드의 시선이 천천히 거실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쿵, 쿵.
고요한 거실을 울리는 건 불안하게 뛰는 에드의 심장 소리뿐이었고, 이제는 누구도 그의 곁에 있지 않았다.
세상에 홀로 버려진 듯한 기분.
경솔하게 내뱉었던 말들이 이렇게 되돌아올 거라는 걸 그때는 몰랐었다.
양손에 파묻은 에드의 얼굴은 후회의 눈물로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 * *
경환은 홀로 GIVE 앱을 켜는 게 처음이라 조금 긴장한 상태였다.
원래는 하준과 세빈도 함께 켜려고 했지만, 지환이 혼자 해보라고 했다.
같이 하는 것도 좋지만, 혼자서도 잘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싱긋 웃는데 차마 못 한다고 할 수 없었다.
경환은 늘 ‘그래도 내가 형이다’라고 마음속으로 새기며 사는 사람이었다.
형이 돼서 동생한테 긴장돼서 못하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마 지환도 그걸 알기에 그렇게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말했겠지.
한바탕 소동이 있고 나서 열흘 정도는 외부 활동 없이 각자 연습에만 몰두했고, 지환은 멤버들의 감시하에 쉬어야 했다.
가뜩이나 기초체력이 약한 지환은 한번 쓰러질 때마다 얼굴이 반쪽이 되는 터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니까.
더 쉬게 해주고 싶었지만, 컴백 일정을 더 미루기 힘들어진 터라 어쩔 수 없었다.
회사에서는 미뤄진 컴백 일정 사이 믹스 테잎을 선공개하는 게 어떻겠냐고 의사를 물어왔다.
하준, 경환, 세빈이 함께 작업한 세 개의 곡.
완성된 곡을 들은 팀장님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경환의 솔로곡은 뮤직비디오까지 찍게 되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며 어찌나 기합이 들어가 있던지.
다른 멤버들이 개인 연습에 몰두하는 동안 경환은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재밌을 것 같다며 멤버들을 카메오로 출연시키기도 했고.
경환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늘 고민이 많았다.
래퍼 C.I, 언래블의 C.I, 그리고 그냥 백경환.
모두가 분리할 수 없는 자신이라는 것을 알지만 조금은 구분을 지어놓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 곡은 그런 생각을 하는 래퍼 C.I의 모습을 가장 많이 넣은 곡이었다.
전과는 다른 분위기의 곡에 걱정하기도 했지만, 공개 후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사랑을 받고 있었다.
혼자 있을 때면, 괜히 피식피식 웃고 있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아마도 지환의 일이 잘 마무리되지 않았다면 곡이 성공했어도 기뻐하기 힘들었을 것.
지환의 작은아버지에게 인사를 한 날.
늘 작고 약하게만 보였던 동생을 둘러싸고 모두가 함께 이야기를 들었다.
그동안은 서로 묻지 않은 채 모른 척하고 있었다.
괜히 멤버들에게 말하느라 지환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지 않았으면 했으니까.
일이 잘 마무리되어서일까?
지환은 이번 일을 계기로 조금 더 성장한 듯 단단해졌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특유의 미소를 머금고 그간의 이야기를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다.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 꾹 눌러 참는 듯한 힘찬의 숨소리, 품 안의 쿠션을 꽉 누르는 세빈이.
그리고 그사이를 조용히 흐르는 나긋나긋한 지환의 작은 목소리.
큰아버지라는 인간의 패악질과 자신과 누나의 일들.
이 일을 예감하기라도 한 듯 일전 누나에게 과거의 일을 들었던 날.
더 굳게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계기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상황까지.
가감 없이 멤버들에게 자신의 밑바닥까지 뒤집어 보여준 지환의 모습에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되려 지환이 멤버들을 걱정한 듯, 이제 정말 괜찮다고 환히 웃었다.
경환에게는 그 미소가 이상하리만큼 슬퍼서 기억에 콕 박혀버렸다.
그 후 선공개 곡을 정하는 회의에서 경환은 솔로곡을 먼저 공개하고 싶다고 의견을 냈다.
이번 일을 겪으며 경환 나름대로 각오를 다졌으니, 그걸 밖으로 내보이고 싶었던 것.
적극적으로 말하는 경환의 모습에 반가워하던 지환의 얼굴, 팀장님의 응원, 다른 멤버들의 신뢰 어린 눈.
가슴 근처가 뻐근해지는 기묘한 기분을 떠올리자 긴장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시작된 GIVE 앱 라이브.
“안녕하세요, 솜뭉치들. C.I입니다.”
묵직한 목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환하게 불을 밝혀둔 작업실 안에 울려 퍼졌다.
[ㅠㅠㅠㅠㅠㅠ기다렸다구!]
[?????]
[경환아! 오늘 혼자 해?]
방송을 켜고 인사를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들어온 팬들의 인사가 쏟아졌다.
그중 많은 이들은 경환 홀로 앉아있는 모습에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아, 오늘은 음. 네, 혼자 하래요, 환이가.”
[ㅋㅋㅋㅋ환이가 시켰어요?]
[언래블의 실세는 세빈이인가 화니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태연하게 말해서 나도 모르게 수긍해버렸다!]
팬들은 덤덤하게 말하는 경환의 모습에 즐거워했지만, 경환은 팬들이 왜 웃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특유의 단조로운 사고방식 덕분에 되묻지 않고 다음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번에 새 곡을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리게 됐잖아요? 그래서 작업 에피소드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 방송을 켰어요.”
방송 전, 우진 매니저와 소현 팀장은 방송의 방향에 대해 경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송 시간은 얼마나 할 것인지,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등 세세한 부분을 정한 뒤 시작한 것.
“마북동불닭꼬치님? 거기에 닭꼬치 맛집이 있는 건가요? 아, 일단 오늘은 저 혼자 하는 게 맞아요. 그래서 조금 어수선할 수도 있어요.”
무수히 올라오는 질문을 하나씩 보던 경환은 팬들의 닉네임까지 함께 읽어가며 답을 하기 시작했다.
“깊은산속부레옥잠님, 총 몇 곡이 공개되냐면요, 네, 총 3곡이 공개될 거에요. 네? 말해도 되는 거 맞냐고요? 어, 음. 괜찮을 거예요.”
순수한 질문도 많았지만, 이상한 요구도 끊임없이 올라왔다.
애교를 부려달라, 결혼해달라 같은 늘 있던 메시지뿐만 아니라 왜 다른 멤버는 없는지, 캐묻는 질문들.
이해할 수 없는 이모티콘을 계속해서 보내는 사람도 있었고, 정신이 쏙 빠질 만큼 채팅창은 빠르게 올라갔다.
“제가 워낙 말재주가 없어서. 음, 다른 애들 있을 때보다 별로 재미없죠?”
처음 메시지를 하나씩 읽으며 답할 때는 반짝반짝했던 경환의 눈이 조금 시무룩해졌다.
자신 외에 다른 멤버들을 찾는 메시지에 약간은 서운해진 것.
꿀단지를 뺏긴 곰마냥 어깨가 조금 처진 경환의 모습에 솜뭉치들의 손이 빨라졌다.
절대 아니라는 말과 함께 저런 건 어그로니까 그냥 무시하면 된다는 말들.
“아, 그런 거예요? 제가 재미없어서 그런 게 아니고요?”
순하게 눈을 끔뻑이며 되묻는 경환의 모습에 솜뭉치들은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평소 늘 묵직한 모습을 보였던 경환의 풀어진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온 것.
팬들에게 잔뜩 우쭈쭈 받으며 다시 기운을 차린 경환은 조금 신이 나서 작업 과정의 에피소드를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한밤중에 혼자 공부하던 세빈이와 마주쳤던 일,
세빈이가 쓴 가사에서 영감을 받았던 것,
그날 자신들을 보고 비명을 지른 영빈 형 얼굴이 재밌었다는 둥.
처음 찍었던 비트의 일부분을 들려주기도 하고, 지금과 다른 점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한껏 신나버린 곰돌이는 전문 용어가 튀어나오는 것도 모르는 채 싱글벙글이었다.
그렇게 신난 경환의 얼굴을 처음 보는 솜뭉치들은 차마 못 알아듣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고.
[그래, 네가 기쁘면 나도 기뻐…. 작곡 공부 안 해서 못 알아들은 내가 잘못했네.]
SNS에 올라온 어느 서글픈 솜뭉치의 넋두리.
그 글에는 무수한 ‘좋아요’가 찍혀있었다.
한편 방송을 지켜보던 다른 멤버들은 두 가지 모습으로 갈렸다.
머리를 부여잡고 앓는 소리를 내거나, 경환의 모습에 신나게 웃거나.
머리를 부여잡은 멤버들은 늘 그렇듯 하준, 영빈, 지환이었고, 웃느라 바쁜 건 막내들이었다.
“대본이라도 써줄걸….”
“관둬. 쟤는 대본 써준다고 될 애가 아냐….”
함께 방송을 지켜보던 하준의 중얼거림에 영빈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형, 제발 냥톡 좀 봐요…. 지금이라도 쫓아가서 문 두드릴까? 어떡하지?”
지환은 당장 작업실을 쳐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번뇌에 빠졌다.
팬들이 이쪽 일을 하는 게 아닌 이상 ‘Modulation’이 뭐고, ‘Reverb’이 뭔지 알게 뭐람.
이대로 가다간 솜뭉치들이 작곡 공부를 하러 갈 것 같아진 지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장 솜뭉치들을 구하러 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