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07)화 (307/456)

307. Scream(3)

끼익하는 녹슨 쇠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어두운 화면이 깜박거렸다.

천장에 위태롭게 달린 조명 하나가 흔들거리며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렸다.

후드를 뒤집어쓴 누군가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걸어와 조명 아래 섰다.

푹 눌러쓴 후드 아래 얼굴이 가려졌던 그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래퍼 C.I가 피식 웃으며 어디선가 날아든 마이크를 잡아챘다.

마이크를 붙들고 무언가 랩을 하던 C.I.

하지만 화면을 보던 사람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잔뜩 멋진 척을 하던 C.I는 당황한 얼굴로 마이크를 툭툭 치면서 ‘아, 아’하는 시늉을 한다.

어두운 공간이 주던 무거움과 으스스함이 사라지고 어이없어 헛웃음이 흘러나올 타이밍.

머쓱한 표정을 짓던 C.I는 후드를 벗으며 ‘에이씨!’ 하더니 ‘컷!’하고 외쳤다.

그리고 이어진, 몸이 움찔할 만들 만큼 신나는 리듬.

드디어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그냥 놀이, 네가 한 대치니까 나도 한 대 쳐준 것뿐.]

흥겨운 리듬과 점점 빨라지는 랩.

곧이어 음산했던 배경이 후드득 무너지듯 사라지고 알록달록한 건물이 가득한 배경이 나타났다.

[내 친구는 날 이렇게 소개해, He’s a scream!]

툭 하고 바닥을 차는 듯한 발놀림과 휙 하는 사이 등장한 버스 정류장.

어디선가 빵빵! 하는 소리와 함께 언래블 멤버들이 버스를 들고 나타났다.

진짜 버스가 아니라 종이로 된 버스 모형이었다.

[네 생각보다 잘 놀고 잘 웃는 그저 그런 스무 살]

익살스러운 얼굴로 언래블 멤버들이 버스와 함께 씩씩하게 C.I 앞을 지나가 버렸다.

손을 흔들던 C.I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어깨를 으쓱하곤 다시 마이크를 흔들었다.

[하지만 hater에겐 Nightmare, 빈틈을 살라 먹어 scream 하게 하지.]

과장된 몸짓과 무심한 듯 툭툭 내뱉는 랩과 무겁게 내려앉는 목소리를 중화시켜주었다.

쉬운 가사와 멜로디, 중독성 있는 훅까지.

영상과 노래를 보고 있자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까딱거리고 있었고, 솜뭉치들은 이마를 ‘탁’치고 있었다.

그동안 언래블의 랩 라인을 비하하는 언플은 늘 있었다.

언더에서의 실력을 아는 이들은 쉽게 비웃지 못했지만, 언래블 데뷔 후엔 그전의 느낌을 주는 곡이 없었으니까.

C.I의 이번 곡도 언더 때처럼 비트 안에 메시지를 때려 넣은 빡센 곡은 아니었다.

위트있게 자신의 적들을 비웃으며 언래블로서, 래퍼 C.I가 이룩한 걸 덤덤한 얼굴로 흔들어댔다.

너희가 아무리 짖어도 내가 쌓은 성은 견고하다는 듯 실력으로 덤비라고 픽 웃고 말았다.

본디 헤이터들이란 그저 입과 손가락으로만 짖는 작자들이니까.

꼬우면 너도 해봐, 나만큼만 해봐, 하고 손짓하고 있었다.

언래블의 팬들 중 하준과 경환의 팬들은 많은 수가 언더에서부터 쫓아온 팬들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에게로 몰려들었으면 좋겠다던 빡빡 민 머리의 C.I를 기억하던 이들은 환호했다.

예전처럼 거센 랩은 아니었지만, 위트를 넣은 새로운 타입의 랩이 귀를 즐겁게 했으니까.

이건 언래블의 C.I가 보내는 출사표였다.

여태까지처럼 네가 휘두른 주먹에 맞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의 의미를 담은.

솜뭉치들은 공식 채널을 통해 공개된 경환의 솔로곡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촬영 중 불미스러운 일로 우리 애가 또 아파졌다고 들었다.

가뜩이나 연약한 지환이 이번에도 아팠다고 하니 솜뭉치들은 애가 탔다.

정보는 철저히 통제되었고, 회사에서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다만, 문제가 있어 그 과정에서 지환이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는 말을 남겼다.

본인이 계속 활동을 고집했지만, 소속사는 아티스트의 건강이 우려되어 새 앨범 발매를 조금 늦추겠다는 말도 함께 기재되어 있었다.

늦어진 만큼 더 좋은 앨범을 선보이겠다는 말과 사과를 남긴 공지였다.

일부 솜뭉치들은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태도에 불만을 표했다.

하지만 다수의 솜뭉치는 늘 자세한 공지를 올리는 소속사에서 에둘러 말하는 것을 보아 알려져서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덕질 경력이 어느 정도 되는 이들은 작은환의 개인사와 연관되어 있다고 짐작했다.

처음 기사가 떴을 때, 스치듯 언급된 내용을 본 솜뭉치들도 있었다.

소속사에서 힘을 쓴 건지 대다수 기사가 묻히거나 두리뭉실한 내용으로 바뀌었지만.

JC 엔터 측에도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긴 했지만, 그들은 즉각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제작진 중 일부가 개인적인 악감정으로 사전 협의 없이 촬영에 개입했다는 말과 함께 언래블을 지지한다는 말.

이후 프로젝트 ‘Origin’의 공식 계정에도 하나의 공지가 올라왔다.

책임을 통감하며 연관된 모든 이에 적절한 조치를 취했음을 알렸다.

다만, 프로그램과는 전혀 연관이 없음을 밝히면서 새로운 PD와 작가로 계속 촬영해 나갈 것을 공지했다.

골든아워와 멜트의 팬들도 기민하게 상황을 살폈다.

혹시라도 자신의 아이돌에게 불똥이 튄다면 응전할 태세를 준비했지만, 그들의 본진은 되려 언래블을 옹호하는 발언들을 남겼다.

사건의 피해자인 지환이 직접 남긴 SNS의 메시지에.

여러분의 작은환은 무사합니다.

보고 싶어요, 솜뭉치♥

얀 형, 전복 고마워요. 저보다 멤버들이 더 잘 먹은 건 안비밀….

하겸 형, 한우는 언제?

(버터 전복구이를 위에 멤버들이 손하트 한 사진)

#솜뭉치사랑해 #골든아워

@Unravel_ltt 님에게 보내는 답글

화나, 형이 준 홍삼은?

@Unravel_ltt 님에게 보내는 답글

환아, 형이 한우 사 갈게. 한가영이랑 놀지 마.

@Unravel_ltt 님에게 보내는 답글

우리 환이 한우 먹고 싶어?

@Unravel_ltt 님에게 보내는 답글

지화나! 형도 한우 사줄 수 있다!

지환은 얀이 보냈다는 전복으로 전복구이를 해서 멤버들과 먹었다는 인증 사진을 올렸다.

그러자 득달같이 새벽의 가영은 자기가 준 홍삼은 왜 인증 안 해주느냐고 투덜거렸다.

키스까지 등장해 한우를 사주겠다며 같은 팀인 새벽의 한가영을 디스했다.

거기에 여진우가 한우 먹고 싶냐는 다정한 물음과 유명하다는 한우 맛집 링크를 함께 남겼다.

게다가 다른 연예인의 SNS에 댓글을 잘 안 남기기로 유명한 멜트의 디아가 친근하게 남긴 댓글까지.

화룡점정으로 그날 푸른 음악 노트에서 하겸은 새벽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누가 정말 언래블의 형인지 가리자는 것.

거기에 그치지 않고 개그맨 나민수와 미궁탈출에서 인연을 맺은 류진호 등등 많은 연예인이 이러저러한 말을 남겼다.

일부는 친분 과시, 일부는 관심을 나눠 받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판을 크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촬영장에서의 일로 요란하고 시끄러웠던 연예란 기사들이 이날부터 급 방향이 바뀌었다.

형들에게 사랑받는 언래블, 아이돌 숨겨진 인싸는 언래블이 아니냐는 발언 등.

기자들이 그간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한 것.

분위기가 반전되자 사람들도 질린 얼굴을 했던 게 언제냐는 듯 흥미진진한 얼굴들을 했다.

일부는 관심을 노렸겠지만, 가장 친했던 이들은 순수한 의도로 보인 행동이었다.

다만, 이름값 높은 이들의 발언과 행동이 생각보다 더 많은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덩달아 언래블과 함께 촬영했던 스트리머들의 시청자 수가 증가했다.

그들의 작당 모의가 정작 당사자들을 제외한 많은 이들에게 뜻밖의 이득을 안겨준 셈.

그렇게 소란스럽게 분위기가 달구어지고 며칠이 흘렀다.

조금씩 관심이 시들시들해지던 타이밍에 ON 엔터에서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지환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발생할 만큼 큰 충격을 주었던 친척의 횡포.

그 후 간신히 유일하게 남은 가족의 도움으로 성장하던 지환이 아이돌이 되자 금전적 이득을 위해 접근한 점.

개인적인 감정과 금전에 눈이 멀어 그들과 작당 모의한 일부 제작진.

그로 인해 지환은 큰 고통을 감수해야 했고, 현재 치료받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그들에 대한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최대한 지환의 이야기는 배제하고 발표하려 했지만, 정윤은 그것만으로는 명분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당사자인 지환과 연희에게 알렸고 그들은 가해자들이 사회적으로 매장되길 원했기에 수긍했다.

두 번 다시 이런 수작을 부리는 이가 없도록 경고하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

큰아버지 밑에서 기를 못 펴고 살았던 다른 친척들이 덤벼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얼마 후, 지환은 작은아버지와 재회했다.

작은어머니의 병원비를 지환이 두 분 몰래 전부 납부해버리자, 작은아버지가 놀라서 뛰어온 것.

공정민, 그는 심성이 유약했지만, 욕심에 휘둘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막내인 그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정욱을 잊지 않았다.

정욱은 언제나 정민에게는 가장 힘이 되어주는 형이었다.

유약한 성격 탓에 따돌림도 당하고 형제들에게 치이기도 했지만, 정욱이 있어 정민이 바로 설 수 있었다.

그랬던 정욱이 세상을 떠나던 날, 정민은 자신의 슬픔 때문에 남겨진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자신의 아내가 아이들을 돌봐주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괜히 그들과 가깝게 지내다 형제들에게 여지를 주면 안 된다는 아내의 말에 수긍했다. 그립고 보고 싶어도 꾹 참았다.

TV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을 때는 기뻐서 눈물이 났었고,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안타까움에 발을 굴렀다.

그러다 이번에 형님이 벌인 일들을 기사로 접하고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 인간이, 미친 인간이!

가슴을 치며 쫓아가고 싶었지만, 아내의 만류로 참았다.

병석에 있는 아내는 다른 형제들까지 발을 들이밀까 걱정했다.

정민이 형제들과 완전히 연을 끊고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한 행동들.

그러다 아내의 수술이 끝나고 병원비를 내려다 원무과에서 전한 이야기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길로 당장 회사 앞에 찾아왔지만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그를 발견한 건 지환이었다.

“작은아버지!”

“지환아!”

환한 얼굴로 웃으며 달려오는 아이의 얼굴은 그리운 형님의 얼굴을 떠올리기 충분했다.

“이놈아, 왜 그랬어!”

“작은어머니가 저희한테 해주신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환은 그 길로 연희를 불렀고, 외부의 시선을 염려해 다시 회사로 들어갔다.

처음 정민을 본 멤버들은 또 그 인간들인가 싶어 경계했지만, 지환이 웃는 걸 보며 마음을 놓았다.

그 후로는 미어캣마냥 지환과 작은아버지가 들어간 휴게실 주변을 맴돌며 궁금해했고.

곧이어 도착한 연희.

얼마 전, 병원에서 연희를 만났던 정민은 또 눈물을 보이며 둘의 손을 놓지 못했다.

한껏 고집을 부리는 지환의 모습에 정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고, 이후 연희와 지환이 병원을 찾아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고 정민이 휴게실 문을 나서자, 그 앞을 맴돌던 멤버들은 화들짝 놀라 엉거주춤 서 있었다.

지환의 눈치를 보며 쭈뼛거리던 멤버들.

그 모습에 예상했다는 듯 피식거리던 지환이 정민에게 멤버들을 소개해주었다.

“저랑 같은 팀 멤버들이에요.”

“나도 안다, 내가 이름도 다 외워놨어.”

“안녕하세요! 지환이 형 하준입니다.”

정민은 직접 응원할 수 없기에 기사와 방송을 열심히 찾아봤다고 했다.

앨범도 전부 하나씩 사고, 애들이 나오는 광고의 물건도 사고.

멤버들 한 명, 한 명, 이름을 말하며 멤버들에게 고개 숙여 고맙다고 했다.

우리 지환이를 잘 챙겨줘서 고맙다고.

화들짝 놀란 멤버들과 지환이 붙들고 이러시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정민은 어떻게든 고마운 마음을 표하고 싶었다고.

“이쪽은 정우진 형, 저희 매니저 형이에요. 매일 매일 엄청 잘 챙겨주세요.”

“저분은 김소현 팀장님. 저희 담당이시고 늘 저희 사고 친 거 뒤처리한다고 바쁘세요.”

회사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이름과 소개를 들으며 정민은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그렇게 작기만 했던 조카가 이렇게 다 커버렸다.

“네 작은 엄마가 이걸 봤어야 하는데.”

“수술 잘 됐다고 들었어요. 회복하시면 한번 모실게요.”

그리고 이 모습을 포잉이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의 계약자가 드디어 제대로 된 혈육을 만난 순간.

포잉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뒤를 사뿐사뿐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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