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92)화 (292/456)

292. EL DORADO(3)

초점이 맞지 않는 카메라처럼 흐릿하기만 한 화면이 멋대로 요동치는 바다처럼 마구 흔들려댄다.

간신히 잡힌 초점은 먼 거리에서 풍경을 비추고 있을 뿐.

어둑해진 하늘 아래 희미한 달빛이 백사장을 비추던 그때, 새까맣게 일렁이던 바다에서 두 소년이 힘겹게 빠져나왔다.

한 명은 이미 정신을 잃은 듯 또 다른 소년이 부축해 끌고 나왔고, 끌고 나오던 소년마저 비틀거리다 그 옆에 쓰러진다.

안타깝다는 듯 카메라의 초점이 흔들렸고, 화면이 힘겹게 깜박거리다 정상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두 소년은 사라진 후였다.

습하고 물비린내가 날 것 같은 동굴 입구, 벽에 기대 있던 창백한 얼굴의 소년.

정신을 잃은 듯했던 소년의 눈꺼풀이 힘겹게 꿈틀거렸다.

몇 번의 꿈틀거림 후 간신히 눈을 뜬 소년은 동굴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누군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몸이 성치 않은 듯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어라 중얼거리는 듯 입술이 달싹였지만, 화면 너머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한걸음, 또다시 한 걸음.

억지로 몸을 끌고 가듯 빛이 새어 나오는 곳으로 몸을 움직인 소년은 망설이듯 등 뒤를 돌아본다.

몇 걸음 걷지 않았지만 그 길이 유난히 길었던 것 같았다.

누군가를 부르는 건지 그 자리에 서서 중얼거리던 소년은 이내 빛 안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윽고 화면은 빽빽한 숲 한가운데 있는 청년과 아직 앳된 소년을 비춘다.

그들 앞에는 이 공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빛을 내는 새카만 색의 문이 서 있었다.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처럼 문의 테두리를 장식하는 섬세한 장식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심각한 얼굴을 한 청년은 걱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눈앞의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은 무언가 대화를 주고받는 듯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윽고 청년은 소년을 자신의 등 뒤에 숨기고 문의 손잡이를 잡는다.

천천히 열리는 문과 그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찬란한 빛.

어느새 화면은 새하얀 빛으로 가득 찼고, 빛이 사라진 자리엔 문도 어느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 * *

“아, 입이 막 근질근질하다. 이거 보면 우리 솜뭉치들이 좋아해 주겠지?”

“응. 내가 보기에도 되게 멋있게 나온 거 같아.”

“흐흐흐,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롄가?”

“아냐, 어림도 없으니까 다시 들어가.”

멤버들은 조만간 공개될 티저 영상의 편집본을 확인하며 들뜬 마음을 토해냈다.

찍을 때의 고생은 어디 갔는지 하나같이 얼굴에는 기쁨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물론 찬이가 이상한 목소리를 꾸며내다 내게 핀잔만 듣고 구시렁거리기도 했지만.

“잘했어, 얘들아. 앨범 재킷 사진들도 잘 뽑았더라.”

“작가님이 잘 찍어주신 거죠, 뭐.”

겸손하게 인사하는 예의 바른 우리 준이 형.

그 모습에 흡족하게 웃던 팀장님 얼굴이 아주 조금 무서웠다.

요새 무리하고 계신 건지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올 것 같은 얼굴이 퀭했다.

그 얼굴로 웃고 있으니까 진짜 흑막 같잖아요, 팀장님···.

“팀장님, 왠지 지구 정복을 꿈꾸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지구 따위 정복해서 어디다 쓰냐. 퇴사도 못 하는데.”

“방금 되게 진심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본심이 흘러나왔지만, 팀장님은 더 강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경환 형이 퇴사하고 싶으신 거냐고 눈썹을 축 늘어트리며 물을 만큼.

평소 거의 표정 변화가 없던 경환 형이 울적해지자 당황한 팀장님이 허둥지둥 수습하셨지만 난 보고 말았다.

팀장님의 등을 토닥이며 씩 웃던 경환 형의 얼굴을.

왜 우리 팀 사람들은 점점 팀장님 화 되어가는 거지···?

아니, 정윤 실장님에 더 가깝나.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한탄을 삼키던 나는 영상을 몇 번씩 돌려보는 막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둘은 진지한 얼굴로 무어라 쑥덕거리고 있었지만, 더는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역시 혼자 있고 싶어···.

“아, 오리진 챙겨보고 있지?”

“네. 틈나는 대로 보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반응이 나쁘지 않으니까 다행이긴 한데.”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늘 있었다.

방송국이 주최하고 여러 엔터와 협력하는 형태, 혹은 엔터사에서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형태 등.

당장 우리만 해도 ON 엔터에서 주최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형태로 데뷔했으니까.

물론 처음의 의도와 달리 방송 시작부터 소속 연습생들 사이에 문제가 있었다. 그 와중에 김우빈이 크게 빵 터트려버려서 많은 내용이 생략된 상태로 끝나게 되었지만.

우리와 달리 아이돌 명가로 이름난 JC 엔터가 주최하는 프로젝트다 보니 여러 부분에서 말들이 많았다.

처음 출연진이 공개되면서 우리가 출연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이들도 꽤 많았다고 했다.

굳이 타 엔터의 신인 아이돌을 넣어야 했느냐부터 급이 다른 애들을 굳이 끼워 넣은 걸 보니 돈을 받았냐 등등.

적당히 뭉개고 넘어갈 수 있는 내용이라 회사에서도 대응하지 않았다.

아니, 열심히 우리 이름을 언급해줘서 홍보실 대리님이 되레 고마워했다는 말도 있었고.

하지만 긍정적인 이야기보다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팀장님은 우리를 걱정하셨던 모양이었다.

“팀장님, 저희 진짜 열심히 잘 찍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맞아요. 골든아워 형들이 저희 예능감 좋다고 칭찬해줬어요.”

“오구, 우리 병아리들 그랬어? 나중에 팀장님이 또 소고기 사줄게.”

팀장님의 얼굴이 걱정이 비치자 찬이와 세빈이가 쪼르르 팀장님 곁으로 달려가 열심히 자신들의 활약을 어필했다.

그런 노력이 가상했는지 살짝 흐려졌던 팀장님의 안색은 다시 평소처럼 돌아왔고 소고기 파티를 약속하셨다.

저런, 팀장님 대표님 카드 뺏어오시려고요···?

슬쩍 그사이에 끼어든 경환 형까지 넷이 사이좋게 방방 뛰고 있었지만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아, 너희 메인 쇼 반응 말이야.”

“아! 연습하러 가야겠다! 팀장님 나중에 봬요!”

“저, 저도 아까 작업하던 게 생각나서!”

한걸음 떨어져서 구경하던 것도 잠깐, 팀장님의 입에서 금기시된 그 이름이 나오자 우리는 부리나케 흩어졌다.

제발, 누가 내 머릿속에서 그 장면 좀 지워줬으면 좋겠다!

안정적인 인지도를 확보와 방송국과 회사의 딜, 여러 복합적인 요인 끝에 출연하게 된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여장을 제의한 것도 방송국이었고.

화제성을 빌미로 한 번쯤은 파격적인 변신을 해야 하지 않냐며 웃던 작가님 얼굴이 떠올랐다.

이 흑역사도 두고두고 위캠을 떠돌겠지?

아무리 반응이 좋았고 우리 팬들도, 시청자들도 재밌어했다고 해도 치마는 두 번 다시 입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구두가 더.

어떻게 그걸 신고 무대를 뛰어다니는 거지?

‘뭐든 열심히 한다고 하지 않았음?’

‘조용히 해, 포잉. 진짜 후….’

얄밉게 속삭이는 포잉을 차마 때릴 수 없었던 나는 깊은 한숨만 푹푹 내쉬며 발걸음을 옮겼다.

차라리 일해야지, 일하면 잊힐 거야.

* * *

“아, 기분 진짜 이상하다.”

“우리 막내가 졸업이라니.”

“형도 곧 졸업식이잖아.”

곧 졸업식이 시작될 대강당의 이 층.

졸업생들의 가족들이 모인 곳에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우리는 오늘, 막내의 중학교 졸업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여있었다.

“뭔가 고등학교 졸업은 그냥 그런데 중학교 졸업은 기분이 좀 이상해.”

“그래요? 난 둘 다 이상할 것 같은데.”

당장 내일모레 자신의 졸업식이 예정된 경환 형은 자신의 졸업보다 세빈이 졸업이 더 들뜬 것 같아 보였다.

회색 블레이저에 남색 조끼, 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맨 우리 세빈이.

유난히 뽀얗고 예쁜 우리 막내는 한눈에 봐도 아이돌이었다.

다만 친구들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는지 주변에서 세빈이를 힐끔거리며 쳐다볼 뿐 다가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우리 애가 낯을 많이 가려서 그렇지 무서운 애는 아닌데.

속상한 마음이 들었지만, 억지로 친구인 척하는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것보다 낫다며 마음을 달랬다.

다행히 세빈이는 시무룩한 기색 없이 조금 들뜬 얼굴로 주변을 살피다 우리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배시시 웃었다.

“어떡하냐, 우리 세빈이 너무 예쁜데.”

“저 조그만 게 벌써 졸업이라니···.”

맏형들은 벌써 기분이 이상한지 싱숭생숭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누가 보면 형들이 쟤 업어 키운 줄 알겠어!”

“반쯤은 우리가 키웠지. 이제 너희랑 같은 학교니까 잘 챙겨줘야 한다?”

“우리 막내는 고등학교 교복 입어도 예쁠 거야.”

오늘따라 주접 지수가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맏형들 모습에 찬이는 질색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진 형은 왜인지 모르지만 자기가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고.

그동안 듬직한 형의 모습만 보여준다 싶었더니, 첫 만남 때의 감성적인 모습이 다시 드러난 모양이었다.

“제발 다들 조용히 해요···.”

물론 마냥 삐약거리던 우리 막둥이가 졸업하고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건 기뻤다.

무사히 잘 자라고 있는 게 가끔은 형으로서 굉장히 뿌듯하기도 했고.

처음과 지금이 가장 다른 멤버를 꼽아보라면 세빈이를 고를 만큼 많이 활기차고 밝아졌다.

그러니 그 과정에 함께한 멤버들이 유난히 감성적으로 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를 지켜보는 시선도 있었으니까.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세빈이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쳐다보고 있었던 건지 세빈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자 그건 또 부끄러운지 샐쭉하게 웃더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졸업식이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회사 일이 바빠 혼자 왔다며 애써 웃어 보이는 세빈이 어머님을 챙겼다.

어머님께 숙소에서 세빈이가 어떤 모습이고,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모두 다 말씀드렸다.

어머님께 이야기하면 분명 아주 조금이라도 세빈이 아버님께도 이야기가 들어갈 것 같아서.

정말로 세빈이가 잘하고 있다는 걸 아버님도 이해하고 세빈이를 인정해주셨으면 해서 부지런히 입을 놀렸다.

그런 우리를 이해한다는 듯 애틋한 얼굴로 웃어주시던 어머님 모습에 문득 전생의 부모님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지루하고 긴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끝나는 동안 우리는 어머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

“뛰지 말고.”

세빈이는 어머님과 우리가 있는 쪽으로 신나게 뛰어오더니 어머님 품에 쏙 안겼다.

키만 컸지, 아직 애기라니까.

잔뜩 신난 얼굴로 자기도 이제 다 컸다며 꽃다발을 품에 안은 세빈이가 우쭐해 하는 사이, 우리 주변으로 몇몇 학생들이 다가왔다.

“안녕, 우린 세빈이 형이야. 세빈이 친구들이니?”

준이 형이 금세 영업용 미소를 머금고 온화하게 주변의 학생들에게 말을 걸자, 학생들은 확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형, 여기서까지 그렇게···.

“저기, 같이 사진 찍어도 돼?”

“세빈아, 친구들이랑 사진 찍자.”

어머님 품에서 한껏 어리광부리던 세빈이는 주변에 다른 학생들이 몰려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을 떨었다.

여자애들과 남자애들의 비율이 비슷한 걸 보니 다행히 다른 애들에게 따돌림당하지 않고 잘 지낸 것 같았다.

“이제 슬슬 이동해야 할 것 같은데.”

우리 애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의 멤버들도 있었는지 심심치 않게 기자들이 보였다.

우리가 둘러싸고 있었고, 우진 형과 회사 분이 한 분 더 지키고 서 있어서 카메라를 불쑥 들이밀진 않았지만, 곧 다가올 것 같았다.

인터뷰해야 하는 기자들과는 이미 일정을 마친 상태라 판단을 끝낸 우진 형이 조용히 우리를 불렀다.

우리 애 졸업식이니 모처럼 행복한 분위기를 지켜주고 싶었던 우리도 평소의 영업용 미소를 장착하고 몸을 빼기로 했다.

“엄마가 맛있는 거 먹재요!”

그래, 오늘만큼은 우리 세빈이가 주인공 할 수 있게 해줘야지.

‘입이 귀에 걸리겠다, 계약자 놈아.’

‘좋은 날이잖아.’

한숨을 푹푹 내쉬는 포잉의 모습은 오늘도 모른 척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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