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 EL DORADO(1)
“서로의 첫인상이 어땠는지 궁금해하는 질문이 꽤 많았어요. 어떤 느낌이었나요?”
인터뷰는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동안 시달렸던 것과 달리 내 출연에 어떤 의도는 없었는지 탐색하지 않았다.
그동안 있었던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왜 출연하게 되었냐는 것.
원래도 연기에 욕심이 있었냐는 질문부터 여러 의혹이 있는 건 알고 있냐는 노골적인 질문까지.
미리 준비하고 대비를 했어도 그런 모든 질문이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가끔은 왜 이렇게까지 집요할까 싶어 속이 답답했고.
그 모든 것들이 언래블이 조금씩 덩치를 키우며 붙은 어그로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꾹 눌러버렸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는 없다는 걸 수도 없이 들어왔다.
하지만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듯 종종 견디기 힘든 감정들이 치밀 때가 있었다.
오늘은 시작부터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셔서 다행이지만.
여러 번 인터뷰로 힘들다 보니, 자꾸만 안 좋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뭉클뭉클 튀어나왔다.
그런 나를 현실로 다시 끌어온 건 차분한 진성 형님의 목소리였다.
“처음에는 밤톨만 한 게 눈만 초롱초롱해서 신기했죠. 현장 스태프들이고 배우들이고 전부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어요. 아주 넋을 놓고 보던데요?”
“선배님, 밤톨이라뇨! 이렇게 큰 밤톨이 어디 있어요.”
볼멘 목소리로 투덜거리자 이서랑 기자님도 형님도, 현장 스태프들도 모두 웃었다.
“그러고 보니 지환 군이 팀 내에서도 제일 작았죠?”
“아니에요, 저희 막내랑 제가 비슷하긴 하지만···. 아니, 갑자기 왜 제 키가!”
속이 쓰리지만 사실이었다.
나보다 작았던 세빈이가 이제는 나보다 아주 조금 커졌다.
찬이도 경환 형도 180cm가 되었고.
도대체 왜 나만 키가 안 크는 걸까?
시무룩해진 내 모습에 진성 형님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나중에 한꺼번에 크려나 보지. 뭐, 지금 키도 작은 건 아니잖아.”
“그래도 이왕이면 좀 더 크고 싶어서 그러죠.”
주거니 받거니 하는 우리 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던 기자님이 질문을 이어갔다.
“진성 씨는 그렇고, 지환 군은 어땠어요? 혼자 연기하는 것도 그렇지만 누군가랑 합을 맞추는 것도 어려웠을 텐데.”
처음 현장을 떠올리던 나는 그때의 분위기를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걱정을 엄청 많이 했어요. 연기는 저에게는 마법 같은 영역이었으니까요.”
“마법이요?”
“네.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것들이 실제 현실로 구현되는 것들이니까요. 게다가 김미연 선생님께 여러 가지를 배우면서 겁을 먹기도 했고요.”
“선생님이 제자 교육에 굉장히 엄해서 저도 어릴 때는 선생님께 몇 번 호되게 혼이 났었습니다.”
옆에서 거드는 진성 형님의 말에 기자님의 눈이 동그래졌다.
진성 형님이 김미연 선생님과 연이 있다는 건 여태까지 밝힌 적 없었던 이야기였으니까.
인터뷰 때문에 형님과 사전에 이야기를 나누었던 나는 놀라는 대신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문득 선생님과 처음 인터뷰에 대해 여쭈어보았던 날이 생각났다.
선생님의 이름을 언급해도 될지 처음에는 많이 고민했었다.
괜히 내게 쏟아질 혹평들 때문에 선생님의 명성에도 누가 될 것 같아서.
하지만 선생님은 혀를 차며 그렇게 순해 빠져서 어떻게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생각을 하냐고 되려 혼을 내셨다.
뭐든지 다 가져다 써먹으면 된다고, 본인의 제자인 이상 당연히 잘할 거라며 자신만만하게 웃으셨다.
그런 믿음 덕분일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몰두해서 연기할 수 있었다.
아니, 가끔은 이게 연기일까 싶을 만큼 ‘임지웅’이라는 캐릭터에 지나치게 몰두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속이 곯다 못해 짓물러 가는 게 꼭 이전의 지환이 같아서.
그래서 지웅이를 연기하는 시간 내내 가슴이 너무 아팠다.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한 두 소년 모두 결국 놓는 걸 택했으니까.
그렇게 몰두했던 덕분인지 다행히 연기에 대한 잡음은 없었다.
그러나 연기를 욕하려던 사람들이 본인 뜻대로 안 돼서 아쉬웠던 걸까?
그 이후엔 내 출연 자체에 대해 여러 카더라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다양한 배우 풀을 가진 ON 엔터가 힘을 쓰거나 돈을 썼을 거라는 말들이 가장 많았다.
실제로 어떻게 된 일인지는 나도 알지 못했다.
회사의 모든 내용을 내가 알 수는 없었으니까.
다만, 팀장님은 알쏭달쏭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에게 먼저 제안한 건 방송국이고 네 출연 분량이 늘어난 것도 작가님 요청이야. 너도 알잖아. 그 과정에서 회사가 로비한 건 없다.”
다만 그 외에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흑막 같은 분위기를 풀풀 풍기던 팀장님.
하지만 절대 불법적인 일은 없었다고 하셨기에 믿었다.
그 후로도 인터뷰는 비슷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질문에 서로 대답을 하고, 중간중간 약간의 농담이 오가고.
“대본 리딩 때도 다른 배우분들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바짝 긴장했었거든요.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너무 신기했어요. 제가 그런 분들 사이에서 한사람 몫을 해내야 한다는 게 걱정이었죠.”
그때를 떠올리며 어깨를 부르르 떨자 포잉은 가증스럽다는 얼굴이었고, 우진 형은 안쓰럽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어느 쪽인 진실인지는 포잉만 알겠지.
“기억난다. 그때 지환이가 눈이 쏟아질 것처럼 커져서 저희끼리 나중에 놀렸어요.”
“으으···. 이제 그만 놀리세요!”
“두 분 정말 사이가 좋은 것 같아요. 어휴, 부러운데요?”
자꾸 무슨 이야기를 할 때마다 옆에서 장난치듯 말을 거는 진성 형님 때문에 진지하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더 많은 모습을 드러내 내게 쏟아지는 의혹들을 덜어주려는 배려라는 걸 알기에 기꺼이 어울렸다.
그렇게 형님과 내가 투닥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기자님이 신기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이렇게 사이가 좋아진 건 기특한 후배가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일까요?”
그 질문에 미묘한 표정이 된 진성 형님이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처음엔 진우가 아끼는 동생이라고 그래서 호기심이 동했었죠.”
“여진우 배우 말씀하시는 거죠?”
언제 장난을 쳤냐는 듯, 금세 배우의 얼굴로 돌아온 형님은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
“진우가 집 밖으로 나도는 걸 잘 못 봤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는 동생들을 만나러 간다는 말을 종종 하더군요.”
“그게 언래블이었던 거군요.”
“네. 새벽 분들과 함께 언래블을 만난다고 하더군요.”
새벽 형들과 진우 형이 SNS에서도 여러 번 우리 편을 들고 좋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게다가 방송에 출연하거나 개인 방송을 할 때도 우리를 언급했고.
덕분에 우리 팬이 아닌 분들도 무인도 패밀리라며 우리를 언급하곤 했다.
“그러다 직접 만나고 겪어보니 왜 진우가 그렇게 예뻐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으, 당사자 앞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좀 부끄럽거든요.”
아까부터 쏟아지는 거침없는 표현에 자꾸 얼굴이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과녁에 묶여있고, 칭찬이라는 화살이 내 몸에 쿡쿡 꽂히는 것 같았다.
여태까지 이렇게 직설적인 표현들은 없었기에 더 부끄러웠다.
이제 보니 우리 애들뿐만 아니라 나도 칭찬에 매우 약한 타입이었나보다.
모든 인터뷰가 끝나자 이서랑 기자님은 이후 자신만만한 얼굴로 기대해달라는 인사를 남기고 떠나셨다.
인터뷰를 끝내고 머리가 멍해졌던 나는 형님을 바라보며 웃었다.
“오늘도 고마워요, 형”
“고맙긴. 내가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도 아닌데.”
다시 평소의 무뚝뚝한 얼굴로 돌아온 형님.
그렇지만 목소리에 담긴 온기는 모른 척할 수 없을 만큼 선명했다.
가끔은 억울한 마음에 속상하기도 했다.
이전 생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온갖 일이 일어나는 지금의 삶이.
하지만 그 모든 일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이런 소중한 온기 덕분이었다.
그렇게 조금 더 형님과 최근 근황을 이야기하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헤어졌다.
“지환아, 괜찮아?”
“네. 괜찮아요.”
숙소로 향하는 동안 우진 형은 계속 내 안색을 살폈다.
오늘따라 유독 창백하다며 걱정이 가시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른 애들도 오늘은 일찍 숙소로 갈 거야. 너 먼저 들어가서 자자.”
“네엡.”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면시간이 쭉쭉 줄어들었던 멤버들이 오늘은 그나마 일찍 쉰다는 말에 다행이다 싶었다.
우진 형은 내가 회사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자 안도한 듯 보였다.
우리가 다 같이 움직이려고 하는 건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누구 하나 연습이 끝나지 않으면 나머지가 모여 기다리는 일이 흔했으니까.
개인 스케줄이 생긴 멤버는 다른 멤버들이 회사에 있다고 하면 늦은 시간이어도 회사로 향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 체력이 너무 축났던 터라 당장이라도 잠들고 싶었다.
“눈 좀 감고 있어. 도착하면 깨워줄게.”
“으응. 고마워요, 형.”
보통 형이랑 둘이 이동할 때는 졸려도 최대한 참았었다.
운전하는 사람 옆에서 자는 건 실례라고 배웠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유난히 힘에 부쳐서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드라마 인기가 늘어나면서 내게도 관심이 쏟아지는 건 감사한 일이었다.
다만, 순수한 호의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보니 심적으로 너무 지쳤다.
가장 힘을 내서 앨범을 준비해야 하는데 혼자 이렇게 버거워하는 게 멤버들에게도 미안했다.
차라리 잠들었으면 좋겠는데.
눈을 감고 있는데도 잠드는 게 아니라 실수했던 내용이 자꾸 생각났다.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 멤버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 앨범에 대한 걱정 등.
온갖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가던 생각은 진성 형님이 해주셨던 이야기를 툭툭 건드렸다.
‘혹시 누가 나에 대해 캐물으면 그냥 네가 아는 만큼만 말하면 되니까 피하지 마. 괜히 너한테까지 불똥 튄다.’
최근 형님의 사생활을 파느라 눈이 뻘게진 이들이 있다고 했다.
그제야 전생에 드라마 방영 중 이슈가 됐던 여러 기사가 떠올랐다.
처음 ‘별도시’를 고를 때도 생각났었던 내용이었다.
출연진 중 몇 명에 대한 여러 추측성 기사들.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 만큼 배우들에 대한 온갖 소문이 돌았다.
어차피 모두 루머로 판명 나고 드라마는 더 크게 인기몰이했었다.
하지만 그중에 진성 형님도 포함되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두고 살 걸 하는 후회가 또 반짝 떠올랐다 사라졌다.
한편으로는 걱정되었다.
무뚝뚝한 척하지만 사실은 정 많고 따뜻한 진성 형님이 상처받을 모든 일이.
결국 온갖 고민에 빠져 잠들지 못했던 나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간신히 씻고 러그 위에 뻗어버렸다.
단순하게 살고 싶었는데 무슨 일이 이렇게 다 복잡한 걸까.
* * *
“어? 얘는 왜 여기서 저러고 있어.”
“지환아, 자?”
언래블 멤버들이 숙소에 도착했을 때 마주한 것은 러그 한쪽에 웅크리고 잠든 지환이었다.
어지간히 피곤했는지 혼자 숙소에 있을 때면 늘 잠들지 못하고 기다리던 애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얘 침대로 옮겨야겠다, 경환아.”
“응.”
평소보다 창백한 얼굴에 이마를 짚어본 하준은 다행히 아프진 않은 것 같다며 경환을 불러 함께 지환을 방으로 옮겼다.
“쟤 요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가뜩이나 비실비실한 게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은지.”
툴툴거리는 힘찬의 목소리에도 걱정이 한가득했다.
“너희도 피곤할 테니까 오늘은 일찍 자자.”
“네엥···.”
지환뿐만 아니라 멤버들 모두 얼굴색이 좋지 못했다.
비척거리며 숙소 안을 돌아다니는 멤버들을 바라보다 작게 혀를 찬 포잉.
포잉은 조그만 인간들이 기특하면서도 걱정되었다.
인간의 아이는 약하다는 동료 요정 옥사의 말이 갑자기 떠오른 포잉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모든 멤버들에게 좋은 꿈을 선물해야 할 것 같았다.
‘반성문 한 장 쓰고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