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70)화 (270/456)

270. 아름다운 밤(6)

그렇게 언래블의 몰래카메라는 감독님을 위한 몰래카메라로 끝이 났다.

남몰래 스킬을 통해 속마음을 확인하니 최 감독님이 몰래카메라를 지긋지긋하게 생각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니 적어도 당장은 저 감독님이 다른 사람에게 몰래카메라를 가벼운 마음으로 하자고 하진 않겠지 싶었다.

‘생각보다 다들 연기가 괜찮았지?’

‘영빈이 쟤는 연기하지 말라고 하셈.’

‘우리 빈이 형은 연기 좀 못해도 괜찮아. 노래를 잘하니까.’

‘하, 이 계약자 놈아, 너는 진짜···.’

영빈 형을 옹호하는 발언에 포잉은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형은 언래블의 메인 보컬인 것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쳤다.

어차피 연기에 뜻이 있는 것도 아닌데 상관없지, 뭐.

영빈 형은 평소에도 거짓말을 정말 못하는 편이고 임기응변에는 약한 편이라 역할을 딱 정해줬다.

아마 오늘 같이 촬영한 게 최 감독님이 아니라 윤 감독님이었다면 몰래카메라는 택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윤 감독님은 정말 나와 멤버들 한 명, 한 명을 많이 알고 계셨고, 알아가려고 늘 노력해주셨다.

가끔은 너무 잘 알아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괴로워하는지도 꿰고 있다는 게 문제지만.

현장은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우리는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파티하면 생각나는 음식을 팬카페를 통해 추천받아 메뉴를 꾸렸는데 우리 솜뭉치들의 창의력에 감탄했다.

어쩜 그렇게 정성인지 메뉴 추천과 함께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레시피도 함께 알려주었다.

다만, 너무 창의력 넘치는 음식과 과정이 복잡한 음식은 제외했다.

“세빈아, 그거 말고 이거 달자니까?”

“원래 트리 제일 위에는 별 다는 게 국룰이거든요?”

“그게 바로 선입견이라는 거야! 별 말고 이게 더 멋있을 거야.”

“경환 형!”

아무래도 요리를 시키기 불안한 세 명은 트리와 숙소 꾸미는 일을 맡겼다.

하지만 그마저도 각자 취향이 다르고 예술의 세계는 너무 심오해서 트리가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그냥 속 편하게 하던 거 하는 게 낫네.”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난 내가 여기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영빈 형과 내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옆에서 가지를 자르던 준이 형이 중얼거렸다.

그나마 가장 덜 위험할 것 같은 멤버를 고른 게 우리 준이 형.

“근데 애들이 가지를 먹을까?”

“아마 아무 생각 없이 먹을걸요?”

편식이 심한 멤버들에게 새로운 음식을 해주고 싶었던 나는 파티 음식을 찾다가 팬이 알려준 메뉴에 이거다 싶었다.

멜란자네는 가지에 피자처럼 토마토소스와 치즈를 듬뿍 넣어서 만드는 음식이었다.

필러로 얇게 벗겨낸 가지를 내 앞으로 밀어준 준이 형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영빈 형은 픽 웃었다.

추가 베이컨을 깔고 그 위에 얇은 가지를 올려 안에 떡을 넣곤 돌돌 말았다.

“일단 눈에 제대로 안 보이게 만든다?”

“네. 토마토가 맛이 좀 세잖아요. 원래는 더 예쁘게 만들려고 했는데 그냥 가리기로 했어요.”

기름 두른 팬에 잘 말아둔 베이컨 등을 넣고 겉면이 노릇해지도록 구웠다.

베이컨이 구워지는 냄새에 경환 형과 찬이가 슬금슬금 다가왔지만, 세빈이가 금방 둘을 다시 잡아갔다.

“이야···. 이제 진짜 세빈이가 실세네. 저 둘을 완전 휘어잡았어.”

“원래 잘되는 그룹은 막내가 실세라잖아요. 우리도 세빈이 덕에 잘되겠네.”

우리끼리 낄낄거리며 음식을 하나씩 준비해갔다.

한참 동안 트리 꼭대기에 별을 두네, 음반을 두네 어쩌네 하고 싸우던 트리 팀도 제법 얌전히 거실을 꾸미고 있었다.

내 소중한 러그는 촬영을 재시작하는 순간 방안으로 얌전히 잘 숨겨두었다.

“제법 그럴듯한데?”

“그쵸? 여태까지 중에 제일 잘된 것 같아요!”

“트리 많이 만들어봤어?”

“이번이 세 번째에요. 어릴 때 집에서 두 번 만들어봤어요.”

“오, 그래도 경험자네?”

의기양양한 세빈이 모습에 찬이가 묻는 동안, 경환 형은 트리 밑에 우리가 서로를 위해 준비한 선물 상자를 얌전히 모셔두었다.

“그런데 상자가 왜 저렇게 많아?”

“그냥 딱 6개 놔두면 너무 없어 보이잖아요. 그래서 빈 상자도 몇 개 놨죠.”

“아아··· 경환이가 센스 있네. 확실히 막 쌓여있는 게 더 있어 보인다.”

준이 형이 토마토를 자르다 감탄했다.

이런 걸 보면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우리를 너무 믿는다고 해야 할지.

준이 형의 몰래카메라야 진작에 최 감독님의 몰래카메라로 바꿔버렸다.

하지만 준이 형의 깜짝 생일 파티까지 포기한 건 아니었다.

아니, 되려 그 몰래카메라 덕분에 우리는 더 쉽게 형을 속일 수 있었다.

간을 봐달라는 핑계로 입에 잡채를 넣어주자 맛있다고 엄지를 척 드는 준이 형.

난 어릴 적 생일 때마다 엄마가 잡채를 해줬던 기억 때문에 생일상에는 꼭 잡채를 올렸다.

“동서양의 조합이야?”

“그럼요. 한국 사람은 밥 먹어야 힘써요.”

사실 촬영 때문에 바쁠 것 같다며 아침에 간단히 우리끼리 밥을 먹었다.

준이 형네 어머님이 보내주신 갈비찜과 내가 끓인 미역국으로.

다른 멤버들 생일 때처럼 생일 파티도 못했는데 이 형은 아침에 다 같이 밥을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했다.

도대체 이 형은 머릿속에 음악이랑 멤버들 빼면 뭐가 있는지 궁금했다.

“우리 다 했는데 도와줄 거 없어요?”

“나도 이제 도와줄 수 있는데!”

숙소 여기저기에 장식을 붙이던 멤버들이 할 일이 없다며 우리 앞에 모여 앉았다.

눈이 초롱초롱한 것이 아무래도 의욕 게이지가 맥스를 찍은 상태인 것 같았다.

영빈 형과 나는 진즉 이 상황을 대비했다. 미리 이야기를 들었던 준이 형은 우리의 선견지명에 감탄한 듯했다.

“그럼 이거 조립 좀 해줄래?”

“이거 그냥 올리면 돼요?”

“응. 여기 보면 잘라놓은 거 있잖아? 그거 너희 맘대로 놓고 싶은 거 올리면 돼.”

“나 이거 알아. 이거 카나페 맞죠?”

“우리 찬이 똑똑하네. 맞아.”

세빈이 보란 듯이 이름을 말하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찬이.

그런 찬이 모습에 세빈이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 찐빵 형은 언제 크려고. 에휴.”

“야!”

“자자, 싸우지 말고 예쁘게 만들자. 솜뭉치들도 볼 거니까.”

메인 요리는 나와 영빈 형이, 자잘한 재료 준비는 준이 형이 도왔기에 생각보다 음식 준비는 금방 끝났다.

새벽 형들이 사줬던 큰 상을 펴고 이것저것 음식을 올려놓자 금방 화려해졌다.

방금까지는 녹화였고, 이제부터는 생방송을 할 차례였다.

우리가 트리를 만들고 요리했던 영상은 나중에 편집돼서 미션 카테고리에 올라갈 예정이었다.

GIVE 앱 라이브를 위해 장비가 세팅되는 동안 누나들이 다가와 우리 상태를 한번 점검해주었다.

그리고 시작된 생방송.

“둘, 셋! 안녕하세요, 크리스마스에도 함께 하고 싶은 언래블입니다!”

“항상 함께하고 싶은 언래블입니다!”

이번에는 미리 인사할 멘트를 정해놓았기에 정돈된 분위기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빠르게 늘어가는 시청자 수와 그때부터 올라가는 채팅창의 메시지들.

언제 보아도 뿌듯해지는 광경에 의식하지 못한 사이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환이 기분 좋은 일 있냐고요? 왜요?”

“환이가 여러분들이랑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니까 기분 좋은가 봐요. 엄청 행복하게 웃네요.”

“엇,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니까 뭔가 엄청 부끄러운데요?”

몰래카메라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더 처졌던 것도 음식 준비하고 숙소를 꾸미면서 모두 사라졌다.

덕분에 우리는 잔뜩 충전된 기운찬 모습으로 솜뭉치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방송을 켜서 사실 조금 걱정했어요. 솜뭉치들 자야 하는데 저희 때문에 늦게 잘까 봐.”

“그래도 크리스마스랑 200일을 함께 축하하고 싶어서 욕심을 부렸어요. 미안해요.”

웃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맏형들 모습에 솜뭉치들이 허둥지둥 메시지를 보냈다.

미안하다고 하지 말라는 말, 파티에 초대해줘서 고맙다는 말, 같이 보내고 싶어서 설렜다는 말 등.

온갖 예쁜 마음을 담은 메시지들이 부산스럽게 쏟아졌다.

“음식 엄청 많죠? 이거 저희가 한 거예요!”

“이거는 제가 만들었어요. 저 이제 요리 잘해요!”

“이건 요리가 아니라 조립 아냐?”

질 수 없다는 듯 막내 라인도 저마다 어떤 걸 했고, 어떤 걸 도왔는지 신난 목소리로 자랑했다.

숙소 내부를 꾸민 크리스마스 장식과 반짝거리는 트리를 칭찬하자 다들 어깨가 하늘을 뚫고 올라갈 만큼 높아졌다.

요란한 소개 시간과 함께 우리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어떤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

팬들의 생각을 얼마만큼 했는지 등 멤버들의 입에서 쉴 새 없이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갑자기 현관에서 벨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솜뭉치들 잠깐만요!”

당황한 준이 형이 우진 형을 봤다. 알겠다는 듯 우진 형이 현관문 쪽으로 다가갔다.

갑자기 발생한 상황에 당황한 기색도 잠시. 준이 형은 금방 표정을 수습하고 솜뭉치들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저희가 배달시킨 게 없는데 갑자기 초인종이 눌려서 매니저 형이 확인하러 갔어요.”

“치킨 시킨 거 아니에요!”

이전 라이브 때 치킨 사태를 겪은 솜뭉치들이 있었는지 치킨 시켰냐고 묻는 질문이 제법 많았다.

아니에요, 솜뭉치들···.

우리가 매번 라이브 때마다 치킨을 시키진 않는걸요···.

왠지 라이브 치킨 먹방으로 솜뭉치들에게 인식된 것 같아 슬퍼졌다.

솜뭉치들을 둥기둥기 달래던 준이 형은 곧이어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이 쏟아질 것처럼 커졌다.

“생일 축하합니다~!

장난기 가득한 가영 형의 목소리, 불을 꺼준 센스 있는 우진 형.

기다렸다는 듯 화음까지 넣어가며 축하 노래를 부르는 멤버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민하준!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하준 형,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준이 형, 생일 축하합니다~!”

오배달인가 싶었던 이 헤프닝은 사실 우리와 우진 형, 그리고 케이크를 들고 등장한 새벽 형들과 진우 형의 합작이었다.

“아니, 이게···.”

“어! 초 녹는다! 얼른 불어야지!”

“소원부터 빌고!”

“아, 네!”

사고 회로가 고장 나버린 것처럼 어버버하던 준이 형은 어쩔 줄 몰라 하다 가영 형과 키스 형의 목소리에 조건반사처럼 움직였다.

얌전히 눈을 내리감고 속으로 무언가 소원을 빌더니 후- 하고 초를 끄는 모습이 평소보다 더 순해 보였다.

다시 불이 들어온 거실.

“여러분, 이게 다 무슨 일이죠···?”

혼이 나간 듯 중얼거리던 준이 형은 채팅창에 올라오는 수많은 생일 축하 메시지에 입을 꾹 다물었다.

- 자랑스러운 민리더 생일 축하해!

- Happy birthday Hajun!

- 生まれてくれてありがとう

- 사랑해 하준아!

우리의 처음 생방송보다 외국어 메시지가 점점 더 많아졌고, 채팅 메시지는 더 빠르게 올라갔다.

몰아치던 감정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준이 형은 이내 평소보다 더 환하게 웃었다.

잠깐이지만 준이 형의 눈가가 촉촉해졌고, 누구도 그런 형을 놀리지 않았다.

“고마워요, 솜뭉치들, 형들.”

“형, 우리는요?”

팬들과 축하하기 위해 늦은 시간에 함께해준 형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자, 찬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얼른 칭찬해달라는 듯 머리를 내미는 동생의 모습에 웃음이 터진 준이 형은 그런 찬이를 한번 꼭 안아주고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리고 정말 고마워, 래블이들.”

그 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던 세비 형이 진우 형에게 눈짓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선물 증정식이 있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끝내고 팬분들이랑 다 같이 놉시다!”

“예압!”

“파티다!”

잽싸게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있던 준이 형의 생일 선물을 챙겨온 우리는 형 품에 선물을 안겨줬다.

이에 질세라 새벽 형들도 각자 들고 온 쇼핑백을 품에 안겨줬고, 순식간에 선물에 둘러싸인 준이 형은 소리 내 웃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이 있었고, 분위기는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보드라웠다.

정말 완벽한 크리스마스 파티 겸 생일 파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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