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 같이가요(1)
우진 형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순간,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찬이는 빛보다 빠르게 우진 형 등에 매달렸다.
“아하하, 밖에서 실수 안 하려고 열심히 고민했어요! 형, 역시 우리가 최고져?”
“…그랬니?”
우진 형에게서 평소와 달리 이를 악문 듯 억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찬이는 못 들은 척 열심히 애교를 떨었다.
세빈이에게도 얼른 들러붙으라고 눈짓하는 걸 보니, 우진 형이 왜 화났는지는 모르면서도 생존 본능이 깜박거린 것 같았다.
이렇게 촉만 좋은 내 새끼 같으니라고….
이제는 정말 눈빛만으로도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하는 건지 경환 형과 세빈이가 우진 형 옆에 착하고 들러붙었다.
등 뒤에서는 찬이가 어깨를 주무르고 양옆에서 두 멤버가 우진 형의 팔을 주무르고.
영빈 형은 차마 이 몰골을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는지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준이 형과 나는 그사이 무수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말려봐, 환아.’
‘형, 나 좀 살려줘요….’
‘우진 형 많이 화난 건 아니겠지?’
‘우리는 이제 아무것도 모르는 거로 해요….’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런 멤버들에게 차마 화를 내지 못한 우진 형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 녀석들, 걱정했잖아.”
우진 형은 옆에서 묵묵히 팔을 주무르던 경환 형의 머리에 꿀밤을 놓더니 찬이와 세빈이에게도 공평한 응징을 내렸다.
“너희도 점점 사람들이 알아볼 테니 조심해서 나쁜 건 없는데, 그렇다고 건방져지면 안 된다. 아직 너희 신인이야.”
“그럼요! 저희는 아직 쪼그만 병아리같이 연약한 아이돌이죠.”
“진짜 너는 말이나 못하면….”
“헤헷.”
찬이가 쫑알거리며 우진 형의 마음을 풀어주는 사이, 나는 슬금슬금 내 옆으로 온 세빈이 볼을 쿡쿡 찔렀다.
“그러게 형이 뭐라고 했어, 그냥 평소처럼 조심하면 된다고 했잖아. 찬이 닮으면 안 된다니까?”
“안 닮았어요!”
우리 찹쌀떡 같은 몰랑한 막내는 근래의 본인이 꽤 찬이와 비슷해졌다는 걸 모르는 듯했다.
그래, 세상엔 모르고 사는 게 나은 것들도 있으니까….
나는 우리 막내의 멘탈을 위해 속으로 많은 말을 삼키기로 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우리가 조금 더 건방져지거나 나쁜 물이 들기 전에 우진 형이 이렇게 한번 브레이크를 걸어줘서.
하다못해 나도 가끔은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에게 흠칫 놀라곤 했다.
가장 연예인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사람들이 알아볼수록, 더 많은 시선을 받을수록 경계심이 느슨해지곤 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걸 바로 얼마 전 겪었는데도 착각하게 된다.
마주하는 시선 안에 동경과 질투, 애정과 호기심 등 온갖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곤 했으니까.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는 사이 우진 형은 눈을 끔뻑거리며 눈치를 보던 세빈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희가 정말 잘하고 있고, 잘되고 있는 것도 맞는데, 이럴 때가 제일 조심해야 할 때야. 사람들이 너희에게 희미한 호감을 품었을 때, 아주 작은 흠집만 보여도 더 무섭게 돌아설 거야. 나는 너희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자만하지 않고 조심만 한다면.”
진지한 표정으로 본인이 겪어온 일들을 일러주는 우진 형의 얼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형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꽤 많은 회사를 경험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평소보다 무거운 걸 보니 정말로 걱정을 많이 한 것 같았다.
“네. 꼭 늘 예의 바르고 선 잘 지키도록 노력할게요.”
“그래, 그거야. 너무 건방지지도 않게, 너무 숙이고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그게 제일 어렵지만, 너희는 잘할 거야.”
준이 형이 우리를 대신해 진지한 얼굴로 답했고, 그제야 우진 형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어휴, 아무튼 오늘 햄버거도 이 일도 다들… 알지?”
“넵! 저희 입 무거운 거 알잖아요.”
대답은 찰떡같이 잘하는 찬이가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우진 형도 결국 웃었다.
우리와 우진 형만 아는 작은 헤프닝의 밤이 그렇게 흘러 지나갔다.
* * *
“지환아.”
“네, 선생님.”
나는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에단 선생님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주기적으로 내게 숙제를 내주셨고 나는 꽤 성실히 그 숙제를 해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중간고사처럼 총 피드백을 듣는 날이라 평소보다 더 긴장하고 있었다.
그동안 들었던 피드백과 여태까지의 모든 결과를 총정리하는 시간.
내가 긴장한 걸 눈치챈 선생님이 피식 웃었다.
“아직도 그렇게 떨리니?”
“그럼요. 전 선생님 앞에 있을 때가 무대에 오를 때만큼 떨려요.”
우는 시늉을 하며 어깨를 축 늘어트리자 선생님이 가볍게 내 어깨를 두드려주며 들고 있던 종이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지환아, 완벽한 곡이라는 게 있을까?”
“음… 잘 모르겠어요. 제가 아직 다른 곡을 평가할 만큼 많이 아는 게 아니니까요.”
내 대답을 들은 에단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빠진 듯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다 소리가 끊기는 순간, 다시 입이 열렸다.
“완벽한 곡은 없어. 난 그렇게 생각해. 잘 팔린 곡은 있겠지만. 뭐, 누구나 잘 팔리고 싶어 하고. 그렇지?”
“네.”
얌전히 자세를 가다듬은 나는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동그란 안경 너머의 짙은 갈색 눈동자가 순간 엄격한 빛을 발했다.
“오늘 네가 완벽한 곡을 만들어도 내일 들으면 쓰레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 그 반대도 충분히 될 수 있고. 넌 너무 완성에 집착하고 있어. 알고 있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속이 뜨끔해졌다.
멤버들도, 우진 형도, 회사 사람들 누구도 몰랐던 속마음을 선생님은 훤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한 곡, 한 곡 정성을 쏟아붓는 건 좋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에 찰 때까지 그것만 붙들고 있는 건 미련한 짓이야.”
“….”
이어지는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은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선생님 말씀대로 나는 곡 하나를 만들 때마다 한참을 붙들고 늘어졌다.
이제야 겨우 걸음마를 배우고 있는 내게서 제대로 마음에 차는 곡이 나올 리가 없다고 믿었으니까.
거기에 혹시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어딘가 조금이라도 다른 곡과 비슷하다 싶으면 다 잘라버렸다.
여태까지 사랑받았던 곡들엔 언제나 멤버들과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
내가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다 보니 점점 더 곡의 완성도에 집착하고 있었고.
아무것도 내 실력으로 느껴지지 않아 그 집착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생각이었는데, 내가 만든 곡들을 가장 많이 들은 선생님이 그 집착을 말하고 있었다.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순식간에 곡이 나올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거랑 집착은 다르잖아. 그렇지?”
부드러운 질책이 쏟아지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건방지다고 혼을 내셨으면 그렇게 혼나고 말았을 텐데.
“걱정되는 것도 알겠고, 부담감도 알겠어. 그래도 지금처럼 계속 완벽한 곡이라는 이름에 집착하면 어느 순간 너무 지쳐서 놓고 싶어질 거야. 가끔은 그냥 내키는 대로 해도 괜찮아. 몇 마디 만들고 그냥 저장해도 좋고, 처음부터 끝까지 건반 몇 개로 뚱땅거려도 괜찮아.”
선생님은 그동안 내가 제출했던 숙제를 전부 꺼내놓고 한참 동안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한껏 시무룩해진 내가 어쩔 줄 몰라 하자 선생님은 한번 들어보라며 곡 하나를 틀어주셨다.
단조롭게 몇 개의 음이 피아노 건반을 통해 흘러나왔다.
“어…?”
“익숙하지?”
그리고 얼마 후 허밍과 함께 뚱땅거리는 기타 줄 튕기는 소리가 더해졌고, 투웅- 하고 울리는 드럼 소리가 함께 들렸다.
“이건….”
“네가 여태 해왔던 숙제 중에서 몇 마디만 빼서 조합한 곡이야. 가볍지? 귀에도 부담스럽지 않고.”
“네. 이렇게도 될 줄 몰랐어요.”
멍하니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숙제를 한다고 머리를 싸매던 날들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종종 계절, 느낌, 바람의 세기나 사람들의 웃음소리 같은 주제로 짧은 멜로디를 만들어 오라고 했었다.
그때마다 나는 주어진 주제에 부합하기 위해 많은 소리를 듣고 주제에 가장 어울리는 소리만 빼 오려고 애썼다.
그 각 각의 멜로디가 이렇게 섞여서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게 내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떤 주제를 놓고 곡을 만드는 연습도 좋지만, 주제에 얽매이지 말고 곡을 만드는 연습도 해봐, 지환아.”
잠시 안경을 벗고 눈두덩을 꾹꾹 누른 선생님의 얼굴에는 쓴웃음이 드리워져 있었다.
“내가 너를 조금 더 제대로 파악하고 방향을 잡아줬어야 하는데, 그게 늦어서 네게 부담을 지어준 것 같아.”
“아니에요, 제가 너무 부족해서….”
허둥거리는 내 손에 자신의 손을 얹은 선생님은 한번 손을 꾹 쥐었다 놔주며 말을 이었다.
“아냐, 지환아.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이상 나는 네게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알려줘야 하는 게 맞아. 지금부터라도 우리 힘을 좀 빼고 네가 재밌게 곡을 만들 수 있도록 해보자.”
좋은 곡, 잘 팔릴 수 있는 곡, 누군가의 곡을 카피하지 않은 내 곡.
늘 내 발목에 매여있던 많은 것들이 재밌게 해보자는 선생님의 말씀에 조금씩 부스러지는 것 같았다.
곡을 만드는 건 늘 어려웠다.
혹시라도 또 졸업식 때처럼 같은 짓을 반복할까 봐.
무의식중에라도 다른 사람의 곡을 빼앗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했고, 그것만으로는 나는 늘 죄스러웠다.
조금씩 그렇게 두려움이 먹물처럼 번져가기 시작하니 더는 작곡을 배우는 것도 즐겁지 않았다.
처음에는 프로그램을 만지고 마스터 키보드를 누르며 소리를 합치는 게 즐거웠다.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더 배워갈수록 불안했다.
그래서 더 완벽한 곡을 만들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것 같았다.
“죄송해요, 선생님….”
“죄송하긴, 내가 더 미안하지. 여태까지는 단순히 방법을 배웠다고 치고, 앞으로는 재밌게 노는 걸 알려줄게. 내게 작곡이 정말 재밌었던 것처럼,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지환아.”
울컥하고 뜨거운 감정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꾸역꾸역 삼켰다.
속으로 수천 번도 더 죄송하다고 빌었지만, 차마 당사자에게 말할 수 없었던 무거운 덩어리가 아주 조금 녹아내렸다.
이렇게 느리게 걷는 내가 선생님 덕분에 또 한 걸음을 뗄 수 있게 되었다.
* * *
경환은 지환의 축 처진 어깨가 자꾸 눈에 밟혔다.
곧 있을 연말 무대 연습 때까지만 해도 숨이 차 힘들어할지언정 기분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개인 레슨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복도 한복판에서 우두커니 서 있던 지환의 등이 오늘따라 유난히 작아 보였다.
무언가 고민하듯 얼굴을 찡그리며 한숨을 내쉬던 지환은 터벅터벅 자신의 작업실로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평소에는 인기척에 그렇게 예민하던 애가 경환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혼이 쏙 빠져 있었다.
쫓아갈까 말까 잠시 고민했던 경환은 지환이 작업실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단정하고 곧은 눈썹이 몇 번 꿈틀거렸지만, 무작정 찾아가는 것보다 조금 기다려 주기로 했다.
경환은 멤버들이 서로가 알아야 하는 일이라면 숨기지 않고 말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게다가 경환은 지금 상담 때문에 이동하던 중이었다.
갈등하듯 경환의 시선이 닫힌 문 앞에 서성이다 이내 상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만간 콩만 한 동생과 따로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