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 Celebrity(6)
“솜뭉치들, 우리 보고 싶었어요? 나는 늘 보고 싶었는데!”
“저도요! 일주일만이죠? 다들 뭐 하고 있었어요?”
카메라 불이 들어오자마자 멤버들, 아니 찬이와 세빈이는 들뜬 목소리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런 둘을 붙잡고 인사부터 하자고 말리던 준이 형도 이제는 자포자기한 상태.
그저 피식거리며 두 동생의 머리를 헝클어트렸고, 그제야 아차 싶은 둘은 형 앞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우리 막내들은 솜뭉치만 보면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네요. 그래도 제대로 우리 인사하고 이야기 나눌까요?”
메시지 창 가득 반갑게 맞이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의 메시지에, 기쁜 건 준이 형도 마찬가지였는지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준이 형의 인사하자는 한마디에 줄 맞춰 앉은 우리 모습이 재밌었는지 유치원 선생님 같다는 말도 올라왔다.
무언가 할 말이 많은 듯 찬이가 입술을 삐죽거렸지만, 아직 인사 전이라는 걸 상기하며 꾹 참는 듯했다.
“둘, 셋! 안녕하세요! 함께 풀어나가는 미래, 언래블입니다.”
“함께 풀어나가는 미래, 언래블입니다! 솜뭉치들 반가워요!”
“함께 풀어나가는 미래, 언래블입니다! 솜뭉치들 안녕요!”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를 마친 우리는 두 줄로 앉았던 대형을 풀고 조금 편하게 앉아 주르륵 올라오는 메시지 창의 문구를 확인했다.
오늘은 춤을 보여줄 생각이었기에 휴대폰을 삼각대 위에 얹어놔서 그런지 글자가 뚜렷하게 보이진 않았다.
“형들이 자꾸 뭐라 해요!”
“찬아, 우리가 너한테 뭐라고 하는 건 그만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찬이가 우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쳤고, 옆에 있던 영빈 형이 조용히 그런 동생의 말을 반박했다.
“자자, 솜뭉치들 앞에서 못난 모습 보이지 맙시다, 우리.”
“여러분, 그거 알아요? 요새 우리 막내가 자꾸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고 있다는 거.”
“아, 형! 쫌!”
점잖은 척하려던 세빈이의 계획이 경환 형의 폭로로 무산되었다.
그렇게 잠시간 평소처럼 왁자지껄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제 우리에게 익숙해진 솜뭉치들은 우리 말을 반박하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와, 이제 우리 솜뭉치들 못 놀리겠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는 것 같아요!”
“솜뭉치들이 똑똑해서 그래. 우리도 솜뭉치들을 잘 알아야 할 텐데 말이지.”
늘 카메라 앞에서 느껴지던 긴장감이 약간의 토크로 풀어지자, 멤버들의 상태를 눈대중으로 확인한 준이 형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저번 주에 이어서 2주 차 깜짝 선물로 라이브 무대를 보여주려고 해요.”
“평소에 솜뭉치들에게 많이 보여주지 못했던 곡들도 있잖아요? 그중에서 우리가 꼭 들려주고 싶었던 곡을 골랐어요!”
“우리 선물이 솜뭉치들 마음에도 들었으면 좋겠어요.”
“잠깐만 기다려줘요!”
삼각대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멤버들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연습실 뒤쪽에 가지런히 놓인 각자의 의자 앞에 섰다.
’마지막 이야기’는 몇 번 무대도 선보였던 만큼 가볍게 동선만 변경해 보여줄 예정이었으나, 우리가 걱정했던 건 ‘서성이다가’였다.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를 가진 곡이라 어설픈 안무를 넣기도, 그렇다고 ‘마지막 이야기’처럼 위치 변경만 넣기에도 아쉬웠다.
시간을 쪼개 여러 고민을 나눈 끝에 우리는 너무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이건 넘치는 감정을 자기도 모르게 고백하는 사랑 이야기였으니, 다른 무언가를 추가해버리면 온전히 곡에 집중하기 힘들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익숙한 전주와 함께 에단 쌤에게 붙들려 한 음절씩 쪼개가면서 곡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고생했던 녹음 시간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어떤 노래를 만들고 싶었는지 고생했던 에단 쌤의 이야기도 함께 떠올랐고.
[예고 없이 눈물이 흐를 수 있다는 걸 네게 배웠어.
때로는 침묵이 행복하다는 것도 네게 배운 거야.]
이번 시작은 세빈이였다.
에단 쌤은 우리의 나이가 다른 것처럼 곡도 점차 자라가는 소년처럼 나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는 풋풋함은 세빈이와 어울릴 것 같다고 하셨고, 어디가 목적지인지도 모르고 헤매는 서툰 가사는 찬이와 맞을 것 같다고 하셨다.
화려한 조명이 없어도 홀로 빛날 수 있는 내 동생이 양손으로 마이크를 꼭 쥐고, 어느 날 느껴진 설렘을 담아 노래했다.
투명한 목소리는 정직했고, 그만큼 복잡한 감정을 몰랐다.
그저 소녀를 통해 배워가는 하나하나의 감정들이 소중하다는 것만 알았다.
[함께하던 발자국이 어느새 한 발 뒤에,
습관 같은 네 웃음이 미워진 건 싫어서가 아냐.]
우정인지 사랑인지 가늠하기 힘든 마음을 찬이가 노래했다.
고작 몇 달이 지났을 뿐인데, 훨씬 가다듬어진 목소리가 이제는 제법 자기감정을 담아내고 있었다.
조금씩 더듬어가며 감정의 이름을 알게 되는 건 경환 형이, 애틋함을 알아가는 건 내 목소리에 어울릴 거라고.
그 후 애달픈 마음을 드러내길 두려워하는 건 하준 형과 영빈 형의 목소리가 각기 다른 울림을 줄 거라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한 살 한 살 함께하는 시간이 흘러, 말하지 않고는 못 견딜 만큼 소중해진 마음을 상대방에게 문득 꺼내놓고 만다.
[이제 알아, 널 위해 살아가고 싶다는 걸.
마지막 날에도 너와 함께 이 길을 걷고 싶은 거야.
그러니까 널 사랑한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과 앞으로도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노래했다.
빛도 보지 못하고 어둠에 잠길 뻔했던 우리를 믿고 함께 해준 소중한 사람들.
이 마음을 사랑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곡을 이해하고 가사를 이해하고 성에 차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던 시간이 마이크를 타고 작은 무대 가득 울리고 있었다.
우리가 이 곡을 부르며 팬들을 떠올렸던 것처럼, 팬들도 이 노래를 듣고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길 바랐다.
꼭 우리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저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고, 그 사람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을 떠올리면서 우리 모두에게는 소중했던 시간이 있음을 기억하기를.
* * *
- 나 뷰어는 새삼 우리 애들이 얼마나 따수운 애들인지 깨닫고 대가리 깸…. 어떻게 다들 이렇게 말을 예쁘게 하지?
ㄴ 주소록엔 형1, 형2지만 나름대로 소중한 가족 같은 형 1, 2 (씨아이)
ㄴ 꼭ㅋㅋㅋ발음에 조심해죠랔ㅋㅋㅋ
ㄴ 우리 화니는 콩만 해요, 완두콩((°ㅅ’)*찡긋)
ㄴ 아닠ㅋㅋ우리 경화니 놀리지 말라구!
ㄴ 주소록엔 모지리지만 우리 모지리는 나만의 모지리(작은환)
ㄴ 소중하고 예쁜 동생이지만 사고뭉치 우리 찐빵이(민리다)
ㄴ 야 니넼ㅋㅋ 애들 놀리지 마로라ㅋㅋㅋㅋㅋ
ㄴ (솜뭉치) 언래블 놀리는데 진심인 편
ㄴ ㅇㅈ
- 서성이다가 진짜 팬 렌즈 뺴고 봐도 명곡인데 ㅠㅠㅠ 많이 알려졌으면 조케따.
ㄴ ㅇㅇ 진짜 이번 앨범 뭐하나 빼놓기 아까울 정도로 버릴 게 없어 ㅠㅠㅠ
ㄴ 난 아직도 매일 애들 스토리 영상 자기 전에 세 번씩 보고 잔다 ㅎ. 해석했던 뷰어야, 내가 너 잘되라고 매일 빈다 ㅠㅠㅠ
ㄴ ㅋㅋㅋㅋㅋ엌ㅋㅋㅋ고마워…. 이번 면접 붙으면 너뷰어 덕분으로 알게…♡
ㄴ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ㄴ 애들 신인상 꼭꼭 받게 해주시고 로또 되게 해주세요.ㅠ
ㄴ 이번엔 꼭 퇴사 성공 할 수 있게 해주세요 ㅋㅋㅋㅋㅋ
ㄴ 언래블 절☆신인상☆대
ㄴ 얘드라 오늘 투표는 다 했니? (투표요정)
- 확실히 울애들 노래 많이 늘지 않았어? (수정함!)
솔직히 나는 세빈이랑 우리 찐빵이 보컬이 늘 걱정됐거든. 물론 연습 많이 한 티가 나는데 아무래도 영빈이가 너무 넘사고 환이가 확 중간을 잡고 있어서 안정적으로 들린다 싶었거든.
춤 포지션 멤들은 좀 무시당하는 것도 많이 봐서 걱정도 됐고.
근데 이번에 그 걱정 싹 털었어ㅠㅠㅠㅠ
울 애기들 도대체 언제 연습을 글케 많이 했지? 데뷔 앨범이랑 비교하면 진짜 딴 세상임 ㅠㅠㅠ
ㄴ 너뷰어 맘 뭔지 알겠다. 나도 옛날 본진이 좀 그런 게 있어서 결국 불화설 돌더니 해체했거든 ㅎ. 요새는 진짜 다 잘해야 되니까ㅠ
ㄴ 걱정 ㄴㄴ 울애들은 노력으로 다 커버 가능함 우리만 믿고 기다려주면 된다
ㄴ 원뷰어야 네 맘은 알겠는데 좀 둥글게 수정해줘! 어그로 붙으면 분란 생겨서 괜히 경고 먹을 수 있어 ㅠ
언래블이 방송사 스케줄을 하나둘 정리하고 있었지만 팬들은 쓸쓸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공식 채널을 통해 영상이 업로드되었고, 1주년도 아닌 200일을 기념한다고 한 달 내내 이벤트를 준비해주었으니 쓸쓸할 틈도 없었다.
되려 소속사에서 끊임없이 올려주는 떡밥들을 주워 먹다 배탈 날 지경이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가수가 정성껏 떡밥을 한술 한술 떠서 입에 넣어주고 있으니 피곤하고 지친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스밍과 투표에 열중할 수 있었다.
데뷔하고 딱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신인상.
솜뭉치들은 언래블의 신인상에 진심이었다.
* * *
최근 멤버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쑥덕거리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물론 우리 애들은 늘 자기들끼리 뭉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일이 많았지만, 최근 모습은 느낌이 달랐다.
그전까지는 무언가 자기들끼리 속닥거리고 장난치느라 바빠 보였다면, 요새 모습은 무언가 다투는 것 같기도 했고 상의하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볼라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다들 고개를 저었기에 다시 말을 꺼내기도 모호했다.
우진은 조금 낯선 멤버들의 모습에 무언가 고민거리가 있나 걱정하기 시작했고, 자신에게 상담하지 않아 약간의 서운함을 느꼈다.
언제나 무슨 일이 있으면 함께 이야기했던 멤버들이기에 이 낯선 모습이 우진에게는 조금 크게 다가왔다.
‘이게 자녀들이 독립할 시기에 부모들이 느끼는 허전함인가?’
사춘기 자녀들을 대하는 올바른 부모의 자세라는 책까지 사서 읽어볼 만큼 우진은 나름대로 진지했다.
그래서 오늘은 큰마음을 먹고 멤버들을 숙소에 데려다준 후, 오랜만에 함께 간식을 먹자는 말로 꼬드겨 늦은 시간이지만 함께 자리했다.
물론 팀장님이 알았다면 우진의 멱살을 잡겠지만, 다행히 공범들은 입을 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연말 무대들을 위해 앨범 제작 기간 때만큼이나 먹는 걸 조심하고 있던 멤버들은 오랜만에 보는 햄버거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모습이 애잔하고 귀여웠지만, 오늘은 꼭 물어보리라 마음을 다잡은 우진이 멤버들이 어느 정도 배를 채운 걸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얘들아, 요새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넹?”
감자튀김을 하나씩 집어 먹는 세빈이를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리며 괴롭히던 찬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아니, 요새 너희끼리 자꾸 상의하는 것 같아서. 형이 뭐 도와줄 건 없어?”
“아….”
그제야 무슨 이야기인지 눈치챈 듯 하준이 곤란한 듯 눈동자를 굴렸다.
그 말이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 우뚝 행동을 멈춘 멤버들은 서로 분주히 눈빛을 주고받았다.
대부분의 눈빛이 하준과 지환에게 집중되는 것을 보니 무언가 고민이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언래블 애들은 무언가 자기들끼리 문제가 있으면 꼭 하준이나 지환을 붙들고 이야기를 하니까.
하준이는 리더라서 그렇다 치더라도 지환이 그런 포지션이 된 건 의외였지만, 생각보다 능숙하게 멤버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 같았다.
보통 주로 공적인 느낌의 이야기는 하준, 멤버 개개인의 일상적인 이야기는 지환이 담당하고 있는 듯했다.
경환이 슬쩍 엉덩이를 뒤로 빼고 영빈의 옆으로 붙더니, 세빈이도 슬금슬금 뒤쪽으로 물러났다.
자연스럽게 함께 장난치던 힘찬이도 뒤로 빠지는 그림이 되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준과 지환이 우진이 대면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지환의 눈에 희미한 배신감이 스쳤고, 하준은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더니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저기, 형. 그러니까…. 진짜 별거 아니거든요?”
“응. 뭔데 그래. 괜찮아, 말해봐.”
“하…. 환아, 도와줘.”
평소에 회사 사람들을 대상으로도 똑 부러지게 자기 의견을 말하던 하준이 말을 주저하자 우진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다른 게 아니라…. 후, 진짜 부끄럽고 창피해서 내가.”
지환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감싸 쥐더니 천천히 요 며칠 간의 상황을 우진에게 설명했다.
“…찬이가 우리도 이제 셀럽 아니냐고, 사람들이 알아보는 데 더 조심해야 할 것 같다면서요….”
축제 날을 기점으로 찬이와 세빈이가 쑥덕거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옷차림과 외모에 부쩍 관심을 보인 게 시작이었다고 했다.
평소랑 다른 행동에 멤버들이 둘을 짤짤 흔들어대다 막내들의 어이없는 고민을 알게 되었고, 그때 경환이 셀러브리티와 인플루언서의 차이를 화두로 던졌다고 했다.
그때부터 두 단어의 차이, 앞으로 사람들이 알아볼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가지고 셋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
하준과 영빈, 지환은 제발 창피하니까 밖에서 그러지 말라고 그 셋을 다그치고 입을 틀어막곤 했다. 하지만 하나에 꽂히면 오래가는 막내 라인답게 자기들끼리 며칠간 그러고 놀았다고 했다.
하필이면 그걸 우진이 목격했던 것.
지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우진은 자신의 손에 햄버거가 들려있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