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58)화 (258/456)

258. Celebrity(5)

순간 당황한 멤버들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아니, 왜 또 날….

어딘가 익숙한 이 상황에 속으로 한숨을 삼킨 나는, 웃고 있는 리더를 조용히 불렀다.

“준이 형…?”

장난기가 반짝이는 눈으로 웃던 형이 그제야 영업용 미소를 장착하고 다정하게 이야기했다.

“알아봐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저희가 아직 신인이라 매니저 형에게 물어보고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준이 형의 나긋나긋한 모습에 뒤에서 찬이는 몸서리쳤지만, 발등을 꾹 밟아주자 얌전해졌다.

우리 찬이는 멤버들의 부들부들한 모습을 잘 못 견뎌 하는 이상한 병이 있어서….

그때, 우리 옆으로 다가온 우진 형은 순식간에 상황을 이해했고, 웃으며 카메라를 건네받았다.

“저희 찍어주셨는데 저희도 당연히 찍어드려야죠. 저쪽이 예쁠 것 같은데 어떠세요?”

“아휴, 다들 훤칠해서 어디 서도 빛이 나는 것 같네요.”

사람이 몰리기 전에 벗어나야 했던 우진 형이 재빨리 사진을 찍고 카메라를 건네드렸다.

신기하다는 듯 연신 우리를 바라보던 아주머니는 잠시만 기다려보라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우리 손에 쥐여주셨다.

소포장 된 작은 사탕 같은 모습이었다.

“아이돌은 뭐 잘 못 먹는다면서요? 우리 애가 먹던 거긴 한데, 비타민이거든요. 이거 먹고 가요.”

사탕처럼 생긴 비타민이었던지 꼭 쥐여주시는 손길이 무척이나 다정했다.

“앞으로도 저희 많이 지켜봐 주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응원할게요~”

애기들도 같이 봤으면 좋을 텐데 남편분과 함께 공연장에 있다며 한껏 아쉬워하셨다.

그 공연장에서 도망 나왔던 우리는 조금 전 몇 개씩 먹었던 꼬치를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며 환히 웃었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사진을 찍어드린 후에야 우리는 구경을 마무리 짓고 우진 형을 따라 이동했다.

모든 공연이 끝났는지 점점 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잠시의 일탈과 우리를 알아본 사람이 있다는 것.

이 두 가지가 나와 멤버들을 들뜨게 해서 부산 구경을 못 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가야 한단 아쉬움을 잊을 수 있었다.

처음 행사에 왔을 때는 그 지역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었으면 하고 내심 기대했었다.

하지만 주어진 일정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우리에게 그건 멀고 먼 꿈이었다.

게다가 연말 무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현실은 우리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었으니까.

서울로 돌아가는 내내 신나서 종알거리던 멤버들이 잠든 어두운 차 안.

첫 행사에 대한 흥분, 무대를 무사히 끝낸 기쁨, 환하게 퍼져나갔던 불빛.

그 와중에도 우리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준 우리 솜뭉치들.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섞여 폭죽처럼 펑펑 터지고 있었다.

잠든 멤버들을 확인한 나는 포잉을 품에 안고 아직 남아있는 흥분을 나누고 있었다.

‘너는 진짜, 하….’

‘왜! 내가 귀찮아? 벌써?’

’정도라는 걸 모르냐, 이 계약자 놈아!’

종알거리는 내가 귀찮은지 한숨을 푹푹 내쉬는 포잉의 목소리 사이로 우진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환아, 자니?”

“아뇨. 안 자요.”

“형이 너한테 고맙다고 말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서.”

“응? 뭐가요?”

포잉의 앞발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갑작스러운 말에 고개를 형 쪽으로 돌렸다.

“형한테 신경 써줘서 고맙다고. 홍삼도 그렇고.”

“에이, 뭐 그거야 멤버들이랑 다 같이 한 거고요….”

“하준이가 그러더라. 네가 말 꺼내고 먼저 주문해서 그때 자기들도 알았다고.”

하준 형이 날 배신하다니….

형들에게 들키고 다른 분들의 선물까지 준비하면서 꼭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자고 약속했는데.

우리 형님들은 이렇게 나와의 약속을 깨버렸다….

거, 너무하네!

“아니, 그냥 형이 자꾸 피곤해 보이고 그러니까…. 우리 챙기느라 더 피곤한 거잖아요.”

“인마, 그게 형 일이라니까. 무튼 고맙다고 제대로 한번 말하고 싶었어.”

조용조용하게 말하는 우진 형의 목소리에 형이 처음 응급실에 나를 데리고 갔던 날이 떠올랐다.

“형, 나는 아직도 그날 형이 사줬던 콜라가 생각나요.”

“아, 그 병원 앞에서?”

“네. 그날 형이 했던 말들도 다 기억하고요.”

바람 빠진 것 같은 웃음소리가 운전석에서 들려왔고, 덩달아 나도 비실비실 웃었다.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진짜 형이랑 우리 멤버들이랑 오래오래 같이하고 싶어요.”

“안 그래도 그럴 거야. 너희처럼 어리바리한 애들을 나 아니면 누가 맡겠어.”

“아, 이 형님이 또 팩트로 뼈 때리네?”

평소라면 부족한 체력 때문에 일찍 방전했을 나였지만 우진 형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느라 졸린 것도 몰랐다.

함께 뛰어다니고 부대끼는 멤버들보다 중요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그건 몹시 온화하고 부드러운, 그리고 따뜻한 온기가 몸을 감싼 듯한 느낌이었다.

* * *

음악 시상식 중 수상 가능성이 높은 곳들에서 정식 무대를 제안했다. 덕분에 우리는 머리를 쥐어짜 내며 긴 시간 아이디어 회의를 진행했다.

우리 음악을 알려야 했고, 주최 측의 구미에도 맞춰야 했다.

기존 선배 그룹의 음악을 차용할 것인지, 우리 곡으로 할 것인지부터 해서 다양한 논의가 이어졌다. 수차례의 논의를 거친 후에야 우리는 꽤 그럴싸한 무대를 그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회사에서 중요한 무대 구성에 당사자인 멤버들의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거기에 더해 멤버들이 주요 회의에 참여하는 걸 회사에서 당연시 여겼다는 게 가장 뜻깊었다.

우리는 ‘I‘m OK’와 ‘폭풍전야’를 편곡한 곡으로 무대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두 곡을 하나로 합치는 과정에 ‘Pluto’를 약간 섞었다.

이게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언래블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회사에서도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었고.

시상식 전까지는 행사 두 곳을 다녀온 것 외에는 큰 스케줄 없이 연습에 몰두할 수 있었다.

물론 외부 스케줄이 없었을 뿐, 중간중간 언래블 스토리 일상 편을 찍기도 했고 내부 콘텐츠도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드라마 때문에 불려 다니기도 했고.

그렇게 시상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오늘, 우리는 깜짝 라이브 방송으로 팬들을 놀라게 해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비 다 됐어요?”

“너만 준비하면 될 것 같은데?”

“난 이게 다 된 건데?”

“가희 누나! 희주 누나! 찬이 좀 보래요!”

“야! 치사하게!”

의상과 메이크업을 하다 도망 나온 게 뻔한 찬이는 그대로 두 서포트 팀 누님들에게 붙들려 갔다.

그러게 왜 자꾸 혼자 팔랑거리고 돌아다녀.

멤버들은 매일같이 연습에 찌들었던 모습을 지우고 자연스럽게 꾸민 상태였다.

매일같이 흐느적거리는 연습에 찌든 모습만 보다가 오랜만에 멀끔한 모습을 보니 새삼 아이돌이었지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내가 봐도 반짝반짝한 걸 보니 솜뭉치들도 좋아할 것 같았다.

데뷔 100일 기념일 때도 GIVE 앱으로 깜짝 파티를 진행했었다.

200일은 12월 26일 이어서 아예 12월 내내 축제라는 컨셉으로 매주 깜짝 소통을 하기로 했다.

첫 타자로 12월 1, 2, 3일에는 공식 카페에서 팬들과의 채팅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경환 형이 방을 잘못 만들어서 인원 제한이 걸린 줄도 모르고 솜뭉치들이 별로 없다고 시무룩해 했었다.

그걸 보고 뛰어온 우진 형 덕분에 금세 방을 새로 팔 수 있었지만, 문명인과 거리가 먼 경환 형 모습에 솜뭉치들은 몹시 즐거워했다.

심지어 하루에 두 명씩 나눠서 같이 채팅방을 만들기로 했는데 처음 만든 채팅방에는 영빈 형은 들어가지도 못해서…. 하하.

나는 영빈 형 얼굴이 그렇게까지 빨개진 건 처음 봤다.

차마 욕은 할 수 없었는지 경환 형의 등짝을 퍽퍽 내리치는데 말할 수 없는 울분이 섞인 듯했다.

막내 둘은 자기 둘이 해보겠다고 했지만 우리 모두가 둘만 붙여 놓는 건 불안했기에 반대했다.

결국 찬이는 나와, 세빈이는 준이 형과 짝꿍이 되었고.

찬이가 두서없이 말해도 우리 솜뭉치들이 찰떡같이 알아들어서 말하던 찬이가 감탄하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 모습에 속이 터진 내가 네가 말하고도 이해 못 하면 어떡하냐고 소릴 질렀고.

치사하게 찬이는 그 모습을 그대로 솜뭉치들에게 중계하며 자기가 이렇게 구박받고 산다고 우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우리 솜뭉치들은 속지 않았다.

‘우리 찬이 무슨 잘못한 거야, 화니한테 빨리 잘못했다고 해.’

‘그러다 환이가 찬이만 밥 안 준다고 하면 어떡해. 밥 주는 사람 말은 잘 들어야 해.’

등등 내 편을 들어줘서 기분이 좋았다.

다만, 우리 솜뭉치들까지 나를 밥 주는 사람으로 인식했다는 게 조금, 아주 조금 슬플 뿐.

준이 형과 세빈이는 무난한 조합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세빈이는 준이 형을 좋아하면서도 무서워하니 짝꿍이 찬이나 경환 형만 아니면 되니까.

예상대로 둘은 크게 문제 될 것 없이 무난한 채팅 시간을 보냈다.

다만, 세빈이는 타이핑 속도가 빨랐고, 우리 준이 형은 느렸다는 것.

세빈이는 신나게 채팅을 입력하며 말로도 쉼 없이 삐약거렸지만, 준이 형은 세빈이 질문에 답해주면서 타이핑하느라 진땀을 흘렸다고.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우리만 웃느라 바빴지.

그리고 두 번째 주인 12월 9일, 오늘.

라이브 방송으로 팬송인 ‘마지막 이야기’와 ‘서성이다가’ 무대를 준비했다.

팬송인 ‘마지막 이야기’는 팬미팅과 팬클럽 창단식 때 보여줬던 곡이지만, ‘서성이다가’는 제대로 보여줄 틈이 없었다.

에단 쌤에게는 한없이 죄인 같은 마음을 가진 내가 이 곡을 적극 추천했지만, 사실 그런 마음을 빼고 들어도 너무 좋은 곡이었다.

화려한 무대를 준비할 수 없어 지하의 작은 무대에 서서 서로 모습을 점검했다.

“으, 왜 이렇게 무대만 올라오면 떨리지?”

“그래도 좋잖아.”

“맞아, 너무 좋아.”

떨린다고 꿍얼거리던 찬이는 경환 형이 옆구리를 쿡 찌르자 히죽 웃었다.

“형, 여기서 이렇게.”

“아니, 세빈아. 그러니까 이… 렇게?”

“음, 반 박자 빠르게요.”

영빈 형은 세빈이를 붙들고 헷갈리는 파트를 되새기고 있었고.

준이 형은 평소처럼 단정한 얼굴로 마이크를 점검하고 있었다.

“응? 환아, 왜? 할 말 있어?”

“아뇨, 그냥 무대에 올라오니까 좋아서요.”

“나도.”

눈이 마주친 준이 형이 불편한 점이 없는지 물었고, 난 실없이 웃었다.

좋아, 모두 평소랑 똑같네.

* * *

멤버들이 무대 라이브를 준비하던 그때, 공식 SNS에는 하나의 링크가 올라왔다.

주변에서 보는 언래블은 어떤 사람?

#항상_네편 #솜뭉치_사랑해

예전 지환이 올렸던 해시태그에서 한 글자만 바꾼 해시태그였다.

언제나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솜뭉치에게 사랑을 전하고자 올렸던 해시태그였다. 하지만 공식 SNS에서 몇 번 사용한 후, 어느 순간부터는 이 해시태그는 ‘언래블은 솜뭉치 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공식 활동이 끝났어도 멤버들은 쉴 틈 없이 계속해서 팬들과 무언가를 나누고 싶어 했다.

행사 때는 잔뜩 찍었던 행사장 사진과 자신들의 사진을 올려주었고, 평소에도 연습 사진과 일상 이야기를 늘 전해주었다.

100일 때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기에, 팬들도 은근히 200일을 기대하고 있었다.

25일은 크리스마스라 들뜨고, 24일은 이브라 들떴다면 이제 26일은 200일이라 행복한 날이었다.

라이브 방송 예고가 있었던 터라 SNS 알람을 기다리고 있던 팬들은 갑자기 올라온 링크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손은 익숙하게 링크를 눌렀다.

그러자 화면에는 익숙한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정균찡…? 네가 여기서 왜 나와.”

- 언래블이요? 처음에는 걱정도 많이 됐는데 이제는 걱정 안 해요. 알아서 너무 잘하고 있으니까요.

ON 엔터의 대표 박정균이었다.

그 후로 얼굴을 가리거나 드러낸 몇 명의 사람들이 소속 가수 언래블에 대해 이야기했다.

병아리같이 귀엽다며 웃는 팀장, 아직 실력은 부족해도 노력은 부족하지 않다고 자신 있어 하는 실장, 장난칠 때도 많지만 착하다고 하는 서포트 팀 사람들, 자신을 더 열심히 살게 만드는 애들이라고 하는 매니저 등.

다른 연예인이 아닌 같은 회사 사람들이 말하는 언래블 모습에 솜뭉치들은 웃었다.

일반인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고 자연스러운 웃음이 떠오르는 걸 보니 아주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배우가 아닌 일반인이 저렇게 자연스럽게 거짓말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테니까.

우리 애들이 회사에서도 사랑받고 있구나, 이렇게 잘하고 있구나 싶어서 한결 마음이 놓였다.

소속 아티스트 대우에 신경 쓰는 곳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예쁨받는 건 몰랐기에 더욱더.

그렇게 영상을 보며 피식거리고 웃던 솜뭉치들은 영상이 끝나는 시점, 다시 한번 울린 알림에 눈을 빛냈다.

드디어 언래블의 라이브 방송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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