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57)화 (257/456)

257. Celebrity(4)

무대를 마친 멤버들은 지친 얼굴로 의자에 널브러져 있었고, 조금 전 무대를 떠올린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내가 망칠 뻔한 무대를 멤버들이 커버해줘서 간신히 마치고 온 상황.

긴 기다림 끝에 겨우 올라선 무대였다.

빛의 축제인 터라 주변은 온갖 불빛들로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무대 아래 객석의 사람들은 이어진 공연에 즐거워하기도 했고, 취향에 맞지 않았는지 지루한 기색도 보였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눈빛을 보내고 손짓과 목소리로 대화하며 앉아있었다.

마냥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감정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MC는 박화중 선배님이었다.

‘무사이’ 때도 MC를 맡았던 분이라 행사장에 도착하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었다.

박화중 선배님은 우리를 가요계에 떠오른 새로운 별이라며 과분한 소개를 해주셨고, 객석 일부도 우리를 아는 듯했다.

우리 노래를 들은 적 없어 가사를 모르더라도, 빠른 비트는 보통 듣는 사람을 즐겁게 만드니 첫 곡은 ‘Confusion’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두 번째 곡을 결정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졸업식과 ‘Pluto’ 중 어떤 곡이 행사와 잘 맞을까 싶어서 서포트 팀원분들, 팀장님, 우진 형, 우리까지 모두가 함께 의견을 모았다.

가족 단위나 연인들이 많이 올 텐데 그러면 드라마에서 자주 흘러나왔던 ‘졸업식’이 더 익숙하지 않겠냐는 의견.

음원 차트에 쭉 자리매김하고 있는 곡이고, 여러 사람이 챌린지를 통해 불렀으니 ‘Pluto’가 더 익숙할 거란 의견.

결국 낙점된 건 ‘Pluto’였고, 우리는 무대를 열 두 곡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연습했다.

첫 행사니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우리를 알아봐 줬으면 해서.

최대한 열심히 준비한 무대였기에 멤버들도 나도 긴장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반짝이는 불빛에 취한 것처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층을 이루듯 머릿속에 쌓여만 갔다.

그러나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

‘Confusion’에서 사선으로 서로 엇갈리게 위치를 바꾸는 안무 도중이었다.

바닥 정돈이 덜 된 것인지 무대에 올랐을 때 생각보다 미끄러웠고, 급히 자리 이동을 하던 내가 휘청인 건 한순간이었다.

이어질 통증과 무대를 망칠 거란 생각에 아찔해지던 그때, 내 뒤에 있던 찬이가 뒤로 넘어갈 듯 휘청이는 내 등을 받쳐주었다.

덕분에 뒤로 한번 허리가 꺾였을 뿐 오뚜기처럼 몸을 다시 세울 수 있었다.

바로 이어지는 파트가 내 파트였던 덕분에 언뜻 보면 안무 동작인 것처럼 실수와 안무가 매끄럽게 이어졌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찬이에게 고맙다는 눈짓을 보내고는 가까스로 태연한 얼굴로 무대를 무사히 끝마쳤다. 무대를 내려오자마자 지켜보던 우진 형이 달려왔다.

우리가 무사한 걸 확인한 형의 잔소리를 한바탕 듣고 난 후에야 이렇게 쉴 수 있었고.

“그나저나 힘찬이 반사신경 쩐다. 어떻게 그 타이밍에 그렇게 받쳐줄 생각을 했어?”

“애가 넘어가게 생겼는데 무슨 생각이 있었겠어요. 그냥 가서 받은 건데 생각보다 잘 넘어가서 다행이지.”

빨래처럼 의자에 널려있던 경환 형이 찬이가 앉은 의자를 발끝으로 톡톡 건드리며 웃었다.

“그 와중에 슬쩍 앞에 가린 님들도 좀 쩌는 듯.”

“단순히 위치 바꾸는 안무였으니 망정이지 진짜 큰일 날 뻔했어.”

“환이 너는 내일 통증 있으면 병원 꼭 가고.”

“진짜 무대 망치는 줄 알고 엄청 놀랐어요….”

찬이가 받아주던 그 순간, 상황을 파악한 준이 형과 영빈 형이 평소보다 대형을 좁혔고, 덕분에 내 실수가 그나마 가려질 수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어떻게 그런 판단을 했지?

“거기서 우리가 우왕좌왕했으면 진짜 기사 나갔을 거야. 다들 고생했어.”

긴장이 풀린 탓인지 조금 잠긴 목소리의 준이 형이 멤버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 덕분에 무대가 끝나고 내려오는 내내 죄책감에 시달리던 내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았다.

내가 실수를 해도 이렇게 받쳐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이런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팀 멤버들이라는 게 정말 고마웠다.

“찬아, 고마워. 다들 고마워요. 진짜 덕분에 잘 넘길 수 있었어요.”

숲에 진 그늘처럼 내 주변에 일렁이던 죄책감도, 미안함과 고마움과 정체 모를 뒤섞인 마음도 일단은 꾹 눌러두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멤버들에게 이 말이 가장 먼저 하고 싶어서.

이전에도 지금도 가장 빛나는 사람들에게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마음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고맙다는 말을 꺼내자 갑자기 대기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뭐지? 반응이 왜 이래?

“…?”

갑자기 내려앉은 정적에 어리둥절해서 멤버들을 바라봤더니, 찬이 얼굴이 영 이상했다.

“너 표정이 왜 그래?”

“아니, 넌, 왜 갑자기. 아, 아무것도 아냐!”

당황한 듯 허둥지둥 무어라 중얼거리던 찬이가 포기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모습이 이해되지 않은 내가 그나마 평소 찬이 모습을 잘 파악하는 둘을 바라봤다.

경환 형과 준이 형은 내 눈빛에 잠시 서로를 바라보더니 픽 웃었고, 준이 형이 입을 열었다.

“네가 힘찬이한테 고맙다고 할 일이 생기기도 하네. 어휴, 쟤 부끄러워서 빨개진 것 봐.”

“엥, 왜 부끄러워요? 내가 처음 하는 말도 아… 닌가? 처음 하나?”

“난 일단 처음 듣는 것 같은데?”

“악! 그만해! 차라리 평소처럼 혼나는 게 낫지! 내 손!”

섬세한 찬이한테는 감당 못 할 부끄러움이었는지 찬이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대기실 안에서 몸부림쳤다.

저런 반응을 보일 정도로 내가 찬이에게 평소 친절하지 못했나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때, 세빈이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와, 진짜 살다 보니까 환이 형이 찐빵한테 고맙다고 하는 날이 오네요.”

“야, 너 자꾸 나랑 맞먹을래?”

“왜, 뭐, 이 찐빵 같은 형님아.”

우리 세빈이가 조금 이상해진 것 같았다.

요새 연습에 너무 무리했던 탓일까?

“세빈아, 예쁜 말 해야지. 난 평소에도 멤버들에게 친절했던 것 같은데, 쟤는 도대체….”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저렇게까지 반응할 일인가 싶어 곰곰이 기억을 뒤져보았다.

정말 찬이한테 고맙다고 말한 일이 처음인가 싶어서.

“….”

없는 것 같았다.

멤버들에게 고맙다는 말은 자주 하는 편이었지만, 찬이한테만 단독으로 고맙다고 한 적은.

평소에 찬이와 내 대화는 대부분이 서로에 대한 장난, 잔소리, 그리고 잔소리였다.

순간 치밀어오른 부끄러움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영빈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처음엔 부끄러워도 서로 솔직하게 고맙다고 하는 게 맞지, 뭐.”

“네….”

간신히 대답한 나는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멤버들이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장난치고 놀린 덕분에, 나를 무겁게 짓누르던 죄책감을 어느새 잊어버렸다는 걸.

찬이 반응이 평소보다 격렬했던 것도, 형들이 괜히 툭툭 서로 건드리며 장난쳤던 것도 날 위한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전생의 언래블은 그때의 나와 비슷한 나이였다.

그래서 그들을 알게 되고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고 응원하면서 더 몰두했었고.

나는 이렇게 방구석에 처박힌 폐인인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제구실 못 하는 사람인데.

나랑 비슷한 나이의 저 애들은 저렇게 빛을 뿌리며 살아가는구나 하면서.

안전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준 부모님의 보호, 틱틱거렸지만 언제나 나를 지켜보는 누나라는 방어막.

그것들에 둘러싸인 나는 힘들게 외부로 나가려 하지 않았었다.

나에게 없는 것들을 가진 언래블이 그래서 그토록 빛나 보였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순간 나와 함께 무대에 올랐던 지금의 언래블은 그보다 더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역시 우리 애들은 대단했다.

포잉의 한숨 소리가 들렸지만, 못 들은 척하기로 했다.

* * *

보통 관람객들은 우리 무대가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없었지만, 무대에 익숙한 팬들이나 노련한 기자들은 달랐다.

다행히도 대처를 칭찬하는 짧은 기사는 있었지만, 우리를 탓하는 뉘앙스의 기사는 없었다.

서포트 팀 누나들은 십년감수했다며 무대 관리를 소홀히 한 주최 측을 열심히 욕하면서 의상과 메이크업을 정리해주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대에 물기가 있었고, 그 때문에 다른 팀들도 미끄러질 뻔했다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그래도 누구 다치는 일 없이,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된 게 다행이다 싶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구에서의 행사는 그렇게 혼란 속에서 끝났지만, 부산 행사는 생각보다 더 신나게 치를 수 있었다.

뛰어놀 수 있는 공연 무대가 더 컸다. 덕분에 찬이와 세빈이가 사방을 뛰어다니며 애교를 부리고 다닐 수 있었다.

처음에는 부끄럽다고, 못 한다고 울상이던 세빈이도 부모뻘의 관객분들이 호응해 주시니 금방 신난 듯 예쁘게 방실방실 웃고 다녔다.

게다가 우리도 훨씬 조심한 덕분에 실수 없이 끝낼 수 있었다.

우진 형이 귀띔해준 바로는 대구 축제의 무대가 미끄러웠던 일로 타 그룹의 팬클럽에서 크게 항의했다고 했다.

아무래도 지자체에서 직접 운영하는 지역 축제다 보니 사람들 반응에 민감했을 터.

“그러니 여기는 그쪽 같은 일 안 생기려고 더 열심히 준비했겠지. 여론이 안 좋아지면 안 되니까.”

“그냥 처음부터 잘해주면 안 되는 걸까….”

“뭐, 거기에도 또 어른들의 사정이 숨어있겠지.”

경환 형과 찬이, 세빈이는 벌써 두 개째 닭꼬치를 먹어 치우며 작은 목소리로 서로에게 속삭였다.

무대에서 내려온 우리는 우진 형을 졸라 축제를 구경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우진 형과 함께 움직이는 조건으로.

“형, 우리 저거도 먹자!”

“저녁 안 먹을 거야? 군것질 너무 많이 하면 안 되는데.”

“우리가 축제에 언제 또 오겠어요. 그러니까 저기 염통 꼬치도….”

그렇게 입가에 꼬치 양념을 다 묻히고 먹는 막내 라인들 모습에 우진 형은 한숨을 푹 내쉬며 새로운 꼬치를 손에 쥐여주었다.

옆에서 나는 열심히 닦아주고 있었고.

영빈 형은 은행구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종이컵 안에 든 은행을 이쑤시개로 콕콕 집어먹고 있었다.

준이 형은 처음엔 빼더니 결국 내가 내민 닭꼬치를 거절하지 못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들이 우리를 잘 몰라보네요.”

“인지도가 많이 늘긴 했어도 전체 인구에 비하면 턱도 없지.”

잘생긴 애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니 사람들이 ‘어?’하는 눈으로 힐끔거리며 보기는 했다.

연예인인가? 하는 그런 눈빛.

다만, 바로 뒤에 한 덩치 하는 우진 형이 버티고 있어서 쉽사리 다가오지는 못했다.

간혹 우리를 아는 듯, 눈이 마주치면 불빛보다 환하게 웃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우리 솜뭉치들은 남달랐다.

우리를 배려해주는 것인지 눈을 빛낼 뿐,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얘들아, 슬슬 돌아가자. 사람 몰린다.”

“아, 네엥….”

우진 형이 걱정스럽다는 듯 우리에게 말했고, 찬이는 아쉽다는 듯 신발로 바닥을 괜히 꾸깃거렸다.

공연장 주변을 밝히는 대형 조형물들, 그리고 아직 이어지고 있는 축하 공연.

그 덕분에 넓게 조성된 축제 부지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그걸 확인한 우진 형이 잠깐이라도 구경할 수 있도록 우리를 데리고 나가준 것.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우진 형과 세 걸음 이상 멀어지지 않았고, 주변을 구경하며 신나게 군것질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형, 마지막으로 우리 다 같이 한 컷 찍으면 안 돼요?”

“저기 가서 서봐, 형이 찍어줄게.”

“아니, 형도 같이요!”

우진 형의 팔에 매달린 세빈이가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고 발을 동동 구르자, 놀란 듯 잠깐 눈동자가 커졌다.

그사이 우리가 형을 둘러싸고 사진 찍자고 졸라대자 웃음 섞인 목소리가 답했다.

“그래, 같이 찍자. 팀장님한테 자랑도 하고.”

“오오! 좋은 생각이에요!”

“손에 든 빈 꼬챙이는 일단 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신난 우리가 밤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 무리 같은 조형물 아래 모였고, 우진 형이 지나가던 행인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우진 형을 가운데 두고 우리가 둘러싸듯 서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어머, 그, 요리조리 쑥쑥 맞죠?”

“앗, 네! 저희가 그거 광고 찍었어요!”

“광고 덕분인지 저희 애가 비타민을 잘 챙겨 먹어요. 광고보다 실물이 더 잘생겼네. 사진 같이 한 장 찍어줄 수 있어요?”

갑자기 야생의 고객님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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