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56)화 (256/456)

256. Celebrity(3)

녹음 부스에 들어설 때면 늘 발끝부터 머리칼 끝까지 긴장이 꽉 들어찬다.

처음에는 무서웠고, 지금은 조금이지만 익숙해졌다.

그래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한 번은 가영 형에게 물어보기도 했었다.

자꾸 긴장되는 데 형만큼 연차가 쌓이면 좀 나아지느냐고.

그때 가영 형은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었다.

형도 마이크를 쥐는 그 순간에는 늘 긴장되고 떨린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 순간이 너무 즐겁다고.

그 말에 내가 뭐라고 말했더라?

어쩌면 그냥 웃었던 것 같기도 하다.

고정 트레이닝 이후에 틈날 때마다 개인적으로 가지는 연습 시간.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매일 매일 공부해야 할 것들은 계속해서 쌓여가고 있었고, 내 몸은 한 개뿐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이 연습 시간이 늘 긴장되면서도 행복했다.

요령이 없었던 내가 시간을 들이부어서라도 잘할 수 있다는 것.

나는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나랑 가장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곳이 내 자리가 되었다.

이제는 이것들이 무척이나 행복하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마이크를 꼭 쥐었다.

유리창 너머로 흐뭇하게 웃고 있는 소현 팀장님과 우진 형의 얼굴이 보였다.

그 모습에 이상하게 조금 더 힘이 났다.

“이 노래를 듣는데 갑자기 솜뭉치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냥 너무 좋아서, 네. 그냥 들려주고 싶었어요. 충동적으로 녹음하는 거라 연습 못 했는데 그래도 예쁘게 봐줬으면 좋겠어요.”

카메라 렌즈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 * *

갑자기 지환이 영상을 하나 찍고 싶다고 했을 때, 소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언래블 애들은 혼자 무언가를 하는 일이 극히 적었고, 저들끼리도 혼자 무언가를 하게끔 두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함께 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애들.

그게 소현이 생각하는 언래블 이었다.

일전에 지환이 혼자 깜짝 GIVE 앱을 켰을 때 멤버들이 쳐들어왔던 것만 해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때 어찌나 웃기던지.

하지만 요 며칠은 시상식 무대에 신경 쓰느라 다들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게다가 곧 행사에 참여해야 하기에 최근에는 정말 연습실에서 죽은 듯이 연습하기 바빴다.

그런 와중에 커버 곡을 올리고 싶다고 찾아온 지환은 평소랑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평소보다 더 반짝거리고 있는, 즐거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에 흥미가 동했던 소현은 흔쾌히 촬영을 허락하며 우진에게 도와주라고 했다.

이전처럼 지하의 작은 무대를 쓸 거냐는 소현의 질문에 지환은 고개를 젓더니 보컬 룸을 청했다.

이전보다 훨씬 자기 일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하려는 모습은 긍정적인 신호였다.

호기심이 동한 소현은 지환의 촬영을 지켜봤다.

카메라 앞에서 제법 능숙하게 멘트를 이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진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애들 중에 제일 많이 는 게 지환이지?”

“네. 정말 많이 늘었어요. 지금도 매일 매일 쑥쑥 크는 것 같아요. 본인도 워낙 열심이고요.”

“키만 빼고 다 크네.”

“풉, 지환이 들으면 울어요, 팀장님.”

다행히 지환이는 둘의 대화가 들릴 리 없는 녹음실 안에 있었다.

지환은 몇 번 음을 잡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들려온 노래는 하령이라는 솔로 가수의 곡이었다.

늦은 밤, 혹은 새벽이 막 시작하는 시간 홀로 여러 생각에 빠질 때, 소현도 많이 들었던 곡이었다.

부드러운 벨벳 같은 허밍이 노래의 시작을 알린다.

[내가 잠들지 못했던 밤.

내가 꿈꾸지 못했던 밤.

당신은 부디 고운 밤이길,

무수한 밤 나는 빌어요.]

유난히 초롱초롱했던 지환의 눈망울이 노래를 시작하면서 촉촉하게 변했다.

노래에 흠뻑 빠져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당신을 부를 수 없어서,

당신을 만나러 갈 수 없어서,

당신의 고운 밤을 간절히 빌며

고작 이 노래를 바람에 실어요.]

눈망울은 촉촉했지만, 슬픔은 아니었다.

아련하고 그리운 느낌이 드는 멜로디와 호소력 있는 지환의 목소리가 하나로 녹아들어 따뜻하게 데운 우유처럼 어깨에 힘이 빠졌다.

‘언제 이렇게 노래가 늘었지?’

회사 내의 평가에서 지환은 아무래도 영빈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최근까지 지환의 보컬 능력을 제대로 보여줄 곡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은 지환을 다재다능하지만 특출나게 잘하는 게 없는 멤버로 기억했다.

하지만 소현은 지환이 언래블의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어서 멤버들이 더 빛난다는 걸 알았다.

마치 데뷔를 결정짓는 무대를 했던 날 직접 말했던 것처럼, 지환은 꼭 그런 역할을 해냈다.

이런 평가를 종합했을 때 지환은 언래블의 구심점이자 감초 같은 멤버로 메인으로 쓰기엔 약간 아쉬운 멤버였다.

하지만 오늘 보여준 모습은 그동안의 평가를 수정해야 할 것 같았다.

지환은 그저 그동안 보여줄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다.

‘요 녀석. 또 숨기고 있었구만?’

자꾸만 멤버들에게 좋은 기회를 밀어주려고 하는 걸 항상 지켜보는 소현이나 우진이 모를 리 없었다.

사실 지환이 이런 소현의 생각을 알았다면 억울해했을 것이다.

지환은 딱히 숨기려고 한 적은 없었다.

그저 꾸준히 열심히 연습했고, 영빈과 보컬 선생님에게 계속 쥐어짜지다 보니 실력이 훌쩍 늘었던 것뿐.

지환은 연말 여러 무대를 앞두고 가장 부족했던 춤에 더 몰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직전까지는 작곡만큼이나 노래 연습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었다.

노래는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갔고, 지환은 눈을 질끈 감으며 자기도 모르게 허공을 움켜쥐었다.

속삭이듯 시작해서 따뜻한 우유처럼 마음을 달래주던 노래가 이 노래가 끝나는 날 당신을 만나러 가겠다는 가사로 마무리되었다.

노래가 끝나고 몇 번 눈을 깜박이던 지환은 수줍은 듯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최근에 자주 듣는 노랜데 들을 때마다 솜뭉치들이 생각나더라고요. 저희는 늘 여러분들 곁에 있다고 그렇게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저희도 그렇게 생각할게요.”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이 영상을 보게 될 팬들에게 기쁜 듯이 속삭였다.

그렇게 영상 촬영이 끝나고 보컬 룸을 나온 지환은 평소처럼 실없는 소년으로 돌아와 있었다.

소현에게 툭 다가와 홍삼 빼먹지 말고 잘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고, 우진에게 건강 잘 챙기라고 삐약거리고.

그 모습이 재밌어서 소현이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리자 어리둥절한 얼굴로 소현을 바라봤다.

“넌 진짜 재밌는 애야.”

“제가요? 재밌는 건 찬이죠.”

“아, 힘찬이랑 넌 좀 다른 종류의 재밌음이랄까.”

“네? 어휴, 우리 팀장님 또 요새 야근하셨나 보네. 얼른 집에 좀 가세요.”

소현에게 흰소리하지 말라는 듯 힐끔거리더니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무래도 지환이 쟤는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 같아서 소현은 더 즐거워졌다.

“이건 팀장님이 알아서 올릴 테니까 병아리는 다시 연습하러 가라.”

소현은 지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씩 웃었지만, 지환은 병아리라는 말에 힘없이 어깨를 툭 늘어트렸다.

“저놈의 병아리….”

지환이 뒤에서 무어라 구시렁거리던 모처럼 흥겨워진 소현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 * *

“으, 어떡해요. 저 너무 떨리는데.”

“너무 걱정하지 마. 늘 그렇듯 어떻게든 될 거야.”

“어떻게든 되는 게 아니라 잘 해내야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처음 행사를 뛰게 된 우리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차에 올랐다가 파김치가 되어 도착했다.

장거리 이동이 익숙하지 않았던 탓도 있었지만, 최근에 수면 시간이 많이 줄었던 탓이 컸다.

계속 긴장 상태였다면 각성이라도 되어 있었을 텐데, 한번 잠들었다 깨면서 긴장이 풀리니 더 힘들었다.

겨우 각자 편한 방법으로 몸을 풀고, 목도 풀고 의상까지 갖춰 입었더니 이제는 무대 직전이라 떨렸다.

여태까지는 객석의 사람들이 아이돌에게 친화적인 무대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지역축제의 오프닝 공연이다 보니 여러 연령대의 손님들이 가득할 게 뻔했다.

회사에서도 이 부분을 우리에게 충분히 인지시키며 무대 매너와 주의 사항을 알려주었다.

물론 우리 세빈이는 그런 것들과는 별개로 늘 무대에 오르기 직전에는 달달 떠는 게 일상이었지만.

찬이는 그런 세빈이 옆에서 오늘도 폴짝거리며 세빈이를 놀리기 바빴다.

저런 행동들이 찬이 나름대로 세빈이 긴장을 풀어주려는 것임을 알기에 크게 말리지 않았다.

난 그저 평소처럼 세빈이 입에 막대 사탕을 물려주면서 머리를 쓰담쓰담해주었다.

포잉도 평소처럼 질린다는 눈으로 바라보다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우리 애들 예뻐하는 건 이제 적응할 때도 됐는데 포잉은 아직도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래놓고 포잉도 우리 애들을 매일 열심히 살피고 있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내가 넌지시 물어보면 너랑 같은 팀이니 당연히 잘 챙겨야 팀에 지장이 안 간다고 뚱한 얼굴로 말했지만, 그런 말에 속을 내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치기에는 포잉이 우리 멤버들에 대해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생각보다 대기가 더 길어지자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앉아 작은 목소리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따로 떨어져 있기엔 춥기도 했고.

다행히 초대 가수에게는 각자 대기실이 주어졌지만, 임시 천막이었기에 방음은 좋지 않았다.

“그나저나 환이 너 또 혼자 막 커버 올리고 그러면 안 된다? 꼭 우리한테도 말해줘.”

“그때는 갑자기 솜뭉치들한테 들려주고 싶어서 팀장님한테 쫓아갔다니까요.”

“혼자만 솜뭉치들한테 이쁜 짓하고! 우우! 치사하다!”

“치사하다고 할 게 아니라 너도 춤추는 거 찍어서 솜뭉치들 보여줘, 인마.”

영상을 찍고 나오면서 예상했던 대로 멤버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영상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커버송을 올렸냐며 내 옆구리를 찔러댔고.

그 후로도 한 번씩 잊을 만하면 저렇게 꺼내서 툴툴거리는 용도로 썼다.

“빈이 형도 커버 올렸는데 왜 나한테만 그래.”

“환아, 이렇게 형을 판다고?”

“팔기는요, 그냥 사실을 얘기한 거죠.”

내가 영상을 올리고 얼마 후, 영빈 형이 찾아왔었다.

커버를 올려볼까 하는데 어떻냐고.

그때 솔직히 많이 놀랐었다.

영빈 형이 준이 형도 아니고 나한테 그런 걸 묻는다는 게 너무 신기했으니까.

영빈 형은 우리에게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

방송에서처럼 말이 적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막 많지도 않았다.

영빈 형은 말을 꺼내기 전까지 너무 많이 생각해서 되려 말이 적은 것 같았다.

생각이 깊어지다 보니 타이밍이 지나가 버려 말하지 않고 삼키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우리는 영빈 형의 대화 방법에 익숙했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은 형이 너무 말이 없다고 재미없어했다.

그 정도로 말이 적은 형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영빈 형과 평소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보통은 내가 형에게 보컬 레슨에 대해 질문하면 형이 알려주는 쪽이었다.

그 외에는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고.

하지만 이번처럼 일적인 면에서 단둘이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이라 당황스럽긴 했었다.

영빈 형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팬들에게 더 많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커버송도 올려보고 싶고, 팬들과 소통도 하고 싶다고 했다.

노래 부르는 것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는 영빈 형이기에 이야기를 들은 나는 형이 편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나는 내가 잘하든 못하든 해주고 싶으면 움직이는 쪽이다.

하지만 영빈 형은 너무 좋아하니까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

그래서 이전 커버송 영상을 업로드할 때도 형은 한참을 연습실에서 나오지 않았었다.

그러니 스스로에게도 부담이 갈 수밖에.

그건 성격적인 부분이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적었다.

그래도 그냥 조금 안타까워서 영빈 형에게 조금 힘을 뺐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일이라고 자꾸만 되뇌면 너무 힘들어지니까.

어떻게 된 게 우리 맏형들은 죄다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엄격한지.

그 이야기 후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건지 영빈 형은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커버송을 올렸다.

그리고 난 누구보다 기쁜 마음으로 잠들기 전 그 곡을 반복 재생했다.

누구도 내 덕질을 막을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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