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55)화 (255/456)

255. Celebrity(2)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온전히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건 이름이지 않나 싶어요. 타인과 나를 구분하는 것도 이름이고, 어떤 것이든 이름을 붙이고 구분하는 게 사람이니까요. 그만큼 우리에게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겠죠? 모두가 각자의 이름과 그 모든 삶을 사랑하길 바란다는 예쁜 마음을 곡에 담은 분들입니다. 우리 푸른 음악 노트 시청자분들은 익숙한 이름일 거예요. 언래블 어서 오세요!”

“둘, 셋! 안녕하세요! 함께 풀어가는 미래, 언래블입니다.”

“안녕하세요! 언래블입니다!”

“오랜만에 뵈어요!”

이제는 익숙하고 친근하기까지 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얌전히 앉아 기다리던 우리도 타이밍을 맞춰 씩씩하게 인사했다.

‘Pluto’의 마지막 활동은 우리와 인연이 깊은 하겸 형의 ‘푸른 음악 노트’였다.

“얼마 전 음방에서 1위 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많은 분이 정말 감사하게도 사랑해 주셔서….”

“그다음 날이던가? 하준 씨는 저랑 방송해서 따로 인사드렸는데, 멤버들에게도 전해주셨나요?”

“네. 준이 형이 선배님이 칭찬하고 격려해주셨다고 엄청 자랑했어요.”

“아니, 난 언래블한테 한 건데 하준이만?”

반년의 시간 동안 함께 코너를 진행한 하준 형과 하겸 형은 굉장히 친해 보였다.

처음과 달리 서로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기도 했고, 준이 형도 평소보다 더 편안한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늘 동생들을 챙겨야 하는 입장에 있다가 하겸 형에게 동생이라고 챙겨지니 느낌이 다른 모양.

사실 하겸 형은 우리가 1위 할 때마다 우리랑 있는 단체 채팅방에 축하 인사를 보내주셨다.

처음에는 하겸 형과 나 단둘이 있는 채팅방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단체 채팅방이 생기더니 어느샌가 하나둘 인원이 늘어났다.

지금은 결국 언래블과 골든 아워의 친목방이 되어버렸고.

우리는 그 채팅방에서 다이어트의 심란함과 방송 활동에 대해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었다.

하지만 방송에서 시시콜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에, 마치 오랜만에 인사하는 듯 능청을 떨고 있었다.

이런 걸 보면 우리 준이 형도 이제 프로 방송인 다 됐네.

처음 바짝 긴장했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이제는 멤버들이 알아서 자기 몫의 답변을 해내는 걸 보니 뿌듯해졌다.

보이는 라디오라고 옷에 잔뜩 힘준 찬이나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고 답하는 세빈이.

우진 형이 말렸지만 꿋꿋하게 검은 티와 블랙진을 입은 경환 형.

긴장한 기색을 잘 숨기고 가끔 한마디씩 답변하게 된 우리 영빈이 형.

우리 애들이 이렇게 잘 크고 있다.

“환 군, 무슨 생각을 했길래 또 그렇게 웃어요?”

“네?”

“예전에 첫 라디오 때 기억나요?”

그날은 워낙 정신도 없었고 사고도 있었던 터라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하지만 웃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니 불현듯 당시 나눴던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불안한 표정으로 하겸 형을 바라보자 형은 짓궂게 웃었다.

“설마…?”

“네, 부처님 미소, 할머니 손주 미소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었죠.”

“아, 혀엉….”

제발 그러지 말라는 뜻으로 울상이 된 내 얼굴을 보더니, 웃음보가 터졌는지 형은 숨넘어갈 듯 웃었다.

“여러분, 방금 보셨죠? 환 군은 불리할 때만 이렇게 애교가 자동으로 나와요. 이런 게 생활 애교라고 하던가요?”

“그게 아니잖아요! 여러분, 속으면 안 돼요!”

첫 방송의 날카로운 추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당황한 내가 파드득거리며 형을 말리자, 멤버들까지 웃느라 룸 안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밖에서 지켜보던 우리 솜뭉치들도 웃느라 바쁜 것 같았고, 채팅창에도 웃기다는 글이 올라가고 있었다.

“이렇게 저 한 사람 희생해서 모두가 웃으면, 그래서 여러분이 행복하면 전 괜찮아요….”

모든 걸 내려놓은 듯 시무룩하게 중얼거리자, 솜뭉치들은 나를 달랜다고 열심히 또 메시지를 올려주었다.

“여러분, 속으면 안 됩니다. 환이가 저렇게 이야기하는 건 여러분들이 달래줄 걸 알기 때문이에요!”

“제가요?”

“얘가 요새 연기 배운다더니, 여기서도 연기하네!”

타이밍 좋게 하겸 형이 연기를 언급했고, 자연스럽게 내가 촬영한 드라마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역시 하겸 형의 진행은 굉장히 능수능란해서 속으로 감탄했다.

“그러고 보니까 환 군이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있던데요?”

“네.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를 주셔서 연기에 도전할 수 있었어요.”

“‘별이 잠든 도시’였죠? 한미영 작가님하고 이구영 PD님이 오랜만에 의기투합했다고 굉장히 요새 핫하죠.”

“처음 도전하는 연기인데도 다들 너무 잘 챙겨 주셔서 더 열심히 했어요.”

”이야, 이제 공 배우님이네요?”

“어휴, 아직 전 한참 멀었죠. 너무 좋은 경험이었어요. 현장의 활기찬 분위기가 굉장히 들뜨게 되더라고요.”

“여러분, 삐약거리던 우리 병아리들이 이렇게 여러분의 사랑을 먹고 많이 자랐어요. 크, 제가 다 뿌듯하네요.”

얼마 후면 드라마가 방영된다.

이미 절반 이상 촬영이 끝났고, 드라마 제작 발표회도 성대하게 진행했다.

제작 발표회 전에는 따로 홍보를 뿌리지 않기로 합의했었다. 하지만 드라마 쪽에서 회사로 홍보해 달라는 은근한 요청이 있었기에 틈날 때마다 언급은 하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 라디오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준 곳이 없었다.

하겸 형이 할애해준 시간 동안 달달 외워둔 내용으로 약간의 홍보를 끝내자 숙제를 마친 기분이 들었다.

그 후로도 이번 앨범의 곡, 방송 활동 중의 에피소드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나서야 우리는 무사히 라디오를 마쳤다.

그리고 이번 활동의 정말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솜뭉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 대박! 오늘 보라 간 뷰어들 좋겠다퓨ㅠㅠㅠ 나도 우리 애기들이 주는 핫초코 먹고 싶다….

(오늘은 우리가 쏠게요! 라고 적힌 커피차 사진)

(멤버들 스티커 붙은 일회용 컵 사진)

ㄴ 우리 애들 너무 따수운거 아니냐고ㅠㅠㅠㅠ 나 왜 집이지?ㅠㅠㅠ

ㄴ 역조공 실화냐 진짜. 솜뭉치들 추울까 봐 따순 거 준비해준 거 봐 ㅠㅠㅠ

ㄴ 이게 데뷔 1년도 안 된 애들이라고?? 진짜 리얼루다가.내가.하 ㅋㅋㅋ(통장 내줌)

ㄴ ㅋㅋㅋㅋㅋ통장 뭐야 ㅋㅋㅋ그럼 내 지갑도.

ㄴ 이거 바! 애들 직찍 올라왔어! ㅋㅋㅋ졸귀.

(커피차 입간판이 실제 키보다 커서 슬픈 지환이 사진)

(옆에서 놀리다 민 리더님한테 혼나는 힘찬이)

(핫초코 먹고 행복해하는 세빈이 사진)

(얼죽아 지만 추운지 손 떠는 영빈이 사진)

(시무룩한 지환이 머리 쓰다듬어주는 경환이 사진)

나 진짜ㅠㅠ 이렇게 알콩달콩한 애들 처음이야.ㅠ 무해하다, 무해해.

ㄴ 경환이 또 검은색이야…. 아니, 잘 어울리는데 그래도 다른 색도 좀 ㅠㅠㅠㅠ

ㄴ 얘드라, 경환이 옷장 좀 확인해줘.

ㄴ 코디분들, 우리 경화니 노란색 옷은 잠옷뿐이에요?ㅠㅠ

ㄴ 사진 뭐야 대박! 어느 금손님 사진이니? 내가 그분 계신 곳으로 절해야겠다ㅠㅠㅠ적게 일하고 많이 버시라고 ㅠㅠ

ㄴ 이름 말해도 되나? 병아리콩 님이야!

ㄴㅇㅇ 좋은 건 널리 널리 공유해야지! 아 진짜 오늘 현장 간 뷰어들 부럽다.

ㄴ 22.현생 망해라.과장 놈이 내 연차만 반려 안 때렸어도 내가ㅠㅠㅠㅠㅠㅠ

ㄴ 그 과장이 오늘 연차 썼다면 그 사람이 솜뭉치일 가능성도 있다 ㅋㅋㅋㅋ

ㄴ 큼, 뷰어 사원, 미안해요. 나도 어쩔 수 없는 솜뭉친가 봐.

ㄴ 앗. 과장님.?

ㄴ 야잌ㅋㅋㅋ니네 그만 놀려!

현장에 참석하지 못한 팬들은 현장에서 급히 보내주는 사진들에 설레하고 있었다.

그리고 급히 그 사진을 올리던 현장에 있던 누군가는 심장이 쿵쿵거려서 숨쉬기가 곤란할 지경이었다.

팬들을 위한 역조공은 요새 꽤 많아진 일이라지만, 흔하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아직 많은 돈을 정산받지 못했을 신인 그룹이면 더더욱.

그 마음도 너무 예뻤지만, 이번 앨범의 마지막 방송이라고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팬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예뻤다.

체온보다 뜨거운 시선에는 곧고 한결같은 애정이 듬뿍 담겨있어서 병아리콩, 아니 수아는 행복했다.

미니 팬 미팅 내내 멤버들은 폴짝폴짝 사방으로 움직이며 둥글게 모여있는 모든 팬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전에 양해가 된 모양인지 처음과 다르게 작은 확성기를 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수아는 첫 깜짝 팬미팅이 생각났다. 그날은 저 작은 확성기나 마이크도 없었는데도 마냥 씩씩했었다. 작은 환과 세빈이는 감정이 복받쳤는지 울기도 했고.

힘찬이는 또 잔뜩 흥이 올랐는지 당황하는 세빈이를 끌고 나와서 춤을 추고 있었다.

세빈이도 이내 체념한 듯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한숨을 폭 내쉬더니 예쁘게 춤을 추었다.

뒤에서 보컬 라인인 영빈과 작은 환이 노래를 불렀고, 랩 라인인 하준과 경환이 중간중간 화음을 넣거나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우리 애들은 자꾸 동요를 이렇게 멋있게 부르고 난리야, 진짜.”

옆에 있던 또 다른 솜뭉치도 흐뭇한 얼굴로 멤버들이 부르는 멋쟁이 토마토에 흠뻑 빠져들었다.

수아도 토마토가 주스 될 거라는 이 노래가 이렇게 신나는 날이 올 거라는 건 꿈에서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팬들은 미니 팬미팅 때마다 멤버들이 동요를 부르자, 다음 동요는 무엇일지 추측하기도 했다.

물론 그 뒤로 이어진 본인들의 노래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세심하게 펼쳐지는 표정 연기와 손짓, 녹아내릴 것처럼 달콤한 목소리.

무엇하나 빠질 것 없이 마음에 흠뻑 스며들었다.

그렇게 언래블의 이번 앨범 활동도 무사히 끝날 수 있었다.

* * *

“아, 홍삼 잘 먹고 있어. 고맙다. 얘들아.”

“꼭 빼먹지 말고 챙겨 먹어요. 우리랑 오래오래 같이 다녀야죠!”

“맞아! 우진 형은 우리랑 끝까지 같이 가야 해!”

“그래, 오래오래 같이 다니자. 너희가 꼬부랑 할아버지 돼도 내가 매니저 해줄게.”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

우진 형은 불현듯 생각났는지 우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병원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다는 티를 낼 수 없었기에 우진 형에게 몰래 선물을 할 생각이었다.

주문까지 끝내놓고 택배가 오기를 기다리던 나는 어쩌다 보니 영빈 형에게 걸려버렸다.

내 생각에는 평소랑 똑같았던 것 같은데, 영빈 형 보기에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평소에는 침대 위나 러그 위에서 꼼짝 안 하던 내가 자꾸 현관문을 신경 쓰고 있었다고.

망둥이 사건 때문인 줄 알고 맏형들이 걱정하는 바람에 어떻게 된 일인지 순순히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얘기를 들은 영빈 형은 그러지 말고 이번 기회에 고마운 분들에게 선물하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급하게 러그 위에서 굴러다니던 멤버들을 불러 모아 회의를 했다.

회사 모든 분들에게 선물을 돌리기엔 아직 우리가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두 번 얼굴 본 사람들에게까지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해서 가장 고마운 회사 분들을 몇 명 꼽아 그분들께만 조용히 선물을 드리기로 했다.

나중에 누가 들어도 수긍할 만큼 우리를 처음부터 챙겨주셨던 분들만.

그렇게 급하게 추가 주문을 했고 집에 홍삼 선물 박스가 쌓였다.

그걸 본 우진 형은 이게 다 뭐냐고 어리둥절해 했고, 홍삼을 형 손에 쥐여주자 더 눈이 동그래졌다.

얼굴이 둥근 편이라 늘 푸근하게만 보였던 우진 형이 그렇게 당황한 모습은 처음 본 것 같았다.

하준 형이 나서서 설명하자 애틋한 눈으로 멤버들을 바라보던 우진 형이 우리를 쫓아다니면서 껴안았고, 우린 비명을 지르며 도망 다녔다.

공평하게 한 번씩, 컥 소리가 나올 만큼 격한 껴안음을 당한 멤버들이 퀭해지고 나서야 우진 형의 눈가가 붉어졌다.

늘 챙김을 받기만 하다 처음으로 형에게 제대로 보답하는 것 같아 쑥스러웠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러나 다른 분들 것도 준비했단 이야기를 우진 형에게 들려주니 직접 들고 가서 선물하는 건 반대했다.

지금이야 서로 좋게 지내고 있다 해도 사소한 것 하나로 서운해서 틀어질 수 있다면서.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그렇다면서 우진 형이 대신 남들 몰래 선물을 전달해주고 입단속도 하겠다고 했다.

그저 몰래 주기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마터면 작은 불화가 생길 뻔했다. 우진 형에게 더 고마워졌다.

“진짜 우리는 우진 형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치? 역시 우리 매니저가 최고라니까.”

“어이쿠, 비행기 태워도 야식은 안 된다.”

“아, 까비!”

은근슬쩍 햄버거를 노리던 찬이와 경환 형의 얕은수는 이렇게 저지당했지만, 어찌 되었든 행복한 막방이었다.

이제는 연말 무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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