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54)화 (254/456)

254. Celebrity(1)

개인적으로 출연했던 방송이 하나, 둘 정리되고 라디오 방송 하나만을 남겨두던 어느 날.

평소 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작은 회의실이 아닌, 커다란 회의실로 오라는 전달을 받았다.

우리도 그간 경험이 쌓인 터라 큰 회의실로 오라는 말을 들은 순간, 중요한 이야기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이동하기 직전, 우리는 둥글게 모여 최근 우리 근황을 점검했다.

“우리 뭐 잘못한 건 확실히 없지?”

“네! 방송 나가서도 실수한 거 없어요.”

“저도 없는 것 같아요.”

“아, 나 편의점 나가다 걸린 적은 있는데.”

“그걸로 다른 회의실로 부를 리 없잖아, 바보야.”

“언제 또 혼자 탈출한 거야?”

아주 작은 찬이의 일탈 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음을 확인했다.

얼마 전, 팀장님과 실장님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한 덩어리로 뭉쳐서 회의실로 가는 길.

스쳐 지나가는 회사 분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면, 웃으며 받아주셨다.

다들 얼굴이 좋은 걸 보면 무언가 좋은 일이 있는 건가 궁금해졌다.

준이 형이 가볍게 문을 두드리자 들어오라는 실장님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어요.”

“아냐, 우리도 지금 왔어.”

“너희 그새 더 컸니? 저번보다 더 길쭉해진 것 같은데.”

“헤헤, 지환이 빼고 다 컸어요!”

“나도 컸거든?”

“세빈이는 아주 쑥쑥 크는 중이네.”

회사의 주요 결정권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하지만 평소보다 훨씬 풀린 얼굴로 우리를 보며 온갖 칭찬을 해주시는 게 꼭 오랜만에 본 손주를 대하는 것처럼 푸근했다.

왜들 이러세요…. 키 얘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평소에는 팀장님과 거의 모든 의사소통을 다 했고, 조금 커다란 일에는 실장님이 오셨었다.

그 외에 대표님이나 이사님들, 다른 실의 실장님들은 거의 얼굴 볼 일이 없었다.

그나마 그중에서는 이사님보다 대표님 얼굴을 더 자주 뵈었달까?

종종 우리 연습을 구경하고 가기도 하셨고, 실장님이 틈나는 대로 우리를 데리고 가서 인사시키셨었다.

한바탕 훈훈한 분위기가 흘러가고 우리가 얌전히 자리에 앉자, 흐뭇한 얼굴을 하던 대표님이 입을 열었다.

“오늘 전략 회의에 언래블을 부른 건, 그동안의 실적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기 위해서입니다.”

가끔 팀장님을 통해 어떤 과정을 통해 정산금이 산정되고 우리 통장으로 입금되는지는 들었다.

하지만 통장에 찍힌 금액은 이상하게 현실감이 없었다.

생각보다 굉장히 큰 금액이 숫자로 적혀있었지만, 외출을 하지 않고 쇼핑도 하지 않으니 정말 그냥 숫자 같았다.

이게 내가 번 돈이라는 실감이 안 난다고 해야 할까.

팀장님은 멤버별 정산금이 다르니 절대로 서로의 수익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러다 보니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힘들었고.

우리 메일로 분기별 정산서도 발송해주신다고 했는데 찾아본 적은 없었다.

메일 자체를 안 들어가니 아마 스팸메일이 가득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너무 금전적인 부분을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신 걸까?

아니면 우리를 아티스트로서 대우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으셨던 걸까.

여태까지의 우리 앨범 판매량, 위캠에 공개된 주요 영상들의 뷰 수, 허니비 광고 비용 등.

무수히 많은 차트와 빼곡한 수치들.

어떻게 보면 데뷔부터 지금까지 올해의 활동을 정리해주시는 것 같기도 했다.

자세히 알지 못했던 제작 과정의 여러 비용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실장님이 주도한 모든 설명이 끝난 후 대표님이 인자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언래블이 굉장히 잘하고 있고, 사랑받고 있다는 걸 제대로 알았으면 합니다. 물론 악플이나 순위를 보고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에 대한 객관화는 매우 중요해요.”

그리고 잠시 무언가 고민하는 듯 턱을 만지작거리던 대표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유력한 신인상 후보로 몇 곳에서 이야기가 나왔어요. 후보 무대 준비를 해야 할 테니 아이디어 회의는 이후 별도로 진행하면 될 것 같아요.”

점심에 짜장면 먹을래? 하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셔서 나도, 멤버들도 처음엔 인지를 못 했다.

“…? 네?”

“신인상 후보요?”

“예상 못 했어요? 어느 정도 예상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준 형과 나는 방금 들은 이야기가 맞는지 되물었고, 그런 우리 모습에 대표님은 되려 어리둥절해 했다.

“흐음…. 방어적인 것도 좋지만, 너무 겁먹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회사는 늘 아티스트 보호를 최우선으로 할 겁니다. 믿어도 좋아요.”

“넵.”

“알겠습니다….”

대표님은 둥글게 돌려서 너무 숨어만 있지 말라고 타박하셨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무서운 게 더 많았지만, 피하기만 한다고 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팀장님의 얼굴이 잠깐 흐려졌다 평소의 얼굴로 돌아가는 걸 보았다.

팀장님은 유난히 다른 사람들보다 우리의 보호에 굉장히 예민하셨으니까.

이렇게 회사 내부에서도 우리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걸 오늘 회의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몇 가지 피드백을 받고 연습실로 돌아온 우리는 각자 생각에 빠졌다.

숫자의 힘은 무서울 정도였다.

여태까지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것들이 구체화되어 눈앞에 놓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한눈에 봐도 급격하게 늘고 있는 판매량과 백만 뷰를 달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 등.

홍보팀에서 체크하고 있는 내용도 신기했다.

인터넷 전반에 퍼진 기사와 게시글들을 체크하고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의 비율을 수치화하고.

홍보 기사 외에 외부 기사에서 내리는 평가,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의 평가 등….

많은 고려 상황을 토대로 언론에 대응하고 홍보 방향을 정하고 있었다.

우리 한 그룹을 위해 도대체 몇 명의 사람들이 일을 하는 걸까.

“이상하게 어깨가 더 무거워졌는데, 기분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맞아, 부담감도 좀 있는데 그보다 책임감이 더 느껴지는 것도 같고.”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된 내가 운을 띄우자 영빈 형이 부드럽게 웃으며 받았다.

회사에서는 투명하게 모든 것을 공개했다.

물론 우리에게 공개하지 않는 무언가가 더 있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출연을 위한 방송국 사람들의 음식 대접 같은 것들.

우리가 알아서 좋을 것 없는 것들은 제외된 내용일 테니 알려 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보니까 우리 엄청 잘나가는 것 같아. 으, 혼나는 줄 알고 엄청 쫄았는데.”

“지금처럼 계속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거죠?”

혼자만의 생각이 끝났는지 멤버들이 하나둘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했고 표정은 다행히 다들 밝았다.

“그나저나 무대 준비는 어떻게 하지?”

“팀장님이 가이드라인 주지 않을까요?”

회의실에서 한 이야기는 대부분 잠깐 언급하고 흘러갔지만, 가장 중요한 게 남았다.

시상식.

KAA(Korea Artist Awards)야 ON 엔터와 척을 지고 사는 것으로 유명해서 자연스럽게 목표에서 제외했다.

ON 엔터가 배우만 전담했던 시절의 트러블과 몇 가지 어른의 사정이 얽혔다는 걸 스치듯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다음 주에 시작하는 시상식이니 부르려면 진즉 불렀겠지.

그렇다면 회사가 말한 것은 12월 중순, 말에 있는 두 시상식과 1월에 있을 세 곳의 시상식 중 어딘가라는 뜻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시상식 정보와 멤버들이 이리저리 들었던 정보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에게는 다행히 여러 번 시상식을 경험한 든든한 아군도 있었다.

물론, 그 아군이 새벽 형들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시상식 무대에 대한 고민에 비하면 사소했다.

세부 회의 전까지 최대한 무대를 고민해보자는 이야기를 나눈 후, 각자 연습을 위해 흩어진 멤버들.

나는 그 틈에 작업실로 향하며 전생의 기억을 더듬었다.

시상식은 팬들에게도 피 말리는 곳이었다.

물론 저렴한 금액에 내 새끼를 볼 수 있다는 건 좋았고, 다른 가수들의 화려한 공연도 좋은 볼거리였다.

하지만 대부분 시상식에 내 가수를 인질 잡혀 몇 시간 동안 그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고 버텨야 했다.

내 가수 콘서트만 몇 시간 즐기는 것도 아니니 지치는 건 당연한 일.

공연은 보통 늦게 시작해서 늦게 끝나니 대중교통이 끊기기도 일수였다.

출연진에 대한 처우도 늘 말이 많았다.

그렇게 유료 투표를 유도하면서 보기에도 불편해 보이는 의자에 출연진을 앉혀두기 일쑤였다.

한겨울이니 무대 의상만으로는 추울 텐데 제대로 된 난방이 안 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기엔, 응원하는 팬이 적으면 우리 애가 얼마나 속상할까 싶어 포기하기도 쉽지 않은 일.

안타깝게도 좋지 않은 내 머리론 올해 시상식의 신인상이 누구였는지 다 기억해내진 못했다.

다만, 우리 애들이 신인상을 탔었다는 건 기억했다.

당시 데뷔한 아이돌 중 크게 인기몰이를 한 그룹이 없었으니까.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있는지 기억을 더듬던 나는 포잉의 두드림에 정신을 차렸다.

‘왜?’

‘어제 이야기하려다 말았던 거.’

‘아, 응. 무슨 일이야? 혹시 우진 형 관련된 거야?’

지난밤, 포잉이 내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 했었다.

하지만, 며칠간 수면시간보다 연습 시간이 길었던 탓에 지친 나는 포잉의 목소리가 자장가 같았다.

그 덕에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잠들어버렸고.

‘우진 매니저 일 맞음.’

‘형 무슨 일 있어? 어때?’

나를 이상한 생명체를 보듯 해괴한 표정을 짓던 포잉은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꺼냈다.

‘너는 촉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뭐야, 그 표정 좀 상천데?’

‘시끄럽고. 병이 있는 게 맞는데 지금 일을 계속하기에는 조금 힘들 수 있다고 했음.’

‘….’

방금까지 시상식 때문에 들떴던 나는 찬물로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형이 많이 아파? 병원에서 뭐래? 치료가 안 되는 거야? 수술은?’

‘일단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나도 모르게 당황해서 정리되지 않은 말들이 두서없이 튀어나왔다.

말을 이으려던 포잉이 내 반응에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내 허벅지를 내리쳤다.

‘어, 응. 알았어.’

‘네가 놀란 건 알겠는데, 좀 참고 이야기를 들어. 넌 당황하면 행동부터 나가는 것 좀 고쳐야 됨.’

의자에서 반쯤 몸을 일으켰던 나는 얌전히 의자에 앉아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혹시나 했던 일이 진짜라고 확인하니 더더욱 당혹스러웠다.

아니길 바랐는데.

내 무릎 위에 있던 포잉은 책상 위로 올라와 나와 시선을 맞췄다.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병 이랬고, 완치 방법은 없다고 했음. 다만 초기라 약물치료와 운동 치료를 병행하면 일상생활은 충분히 가능한 병임. 수술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병이라고 했다.’

‘…그럼 어떡해?’

‘그래서 내가 치료에 도움을 주기로 했음.’

‘포잉이? 처벌받으면 어떡하려고.’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진 형이 너무 좋아서, 형이 완치 없는 병에 걸렸다는 말에는 발밑이 바스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이 파르르 끓어 넘치는 물처럼 머릿속 가득 떠올랐다 사라졌다.

포잉이 치료에 도움을 주는 건 기쁜 마음이 들었다가도, 우려가 동시에 밀려왔다.

우진 형을 구할 수 있는 건 기뻤지만 포잉에게 페널티가 생기는 건 싫었다.

예전에 첫 라디오 방송에서 이마를 다쳤을 때나 무사이 촬영 중 다리를 다쳤을 때.

그때도 포잉은 자신이 치료를 도와줄 수 있다고 했었다.

그래서 형이 아프다는 말을 들었을 때, 포잉이 치료해 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었다.

하지만 나 외에 다른 인간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면 포잉에게 좋을 게 없다던 말도 함께 떠올랐다.

‘무슨 일이든 대가 없이 주어지는 건 없지만, 당장 목숨에 지장이 있는 병이 아니니 조금 도와주는 정도는 괜찮아.’

짧은 시간 동안 너무 격렬한 감정의 사이를 오갔더니 몸에 힘이 쭉 빠졌다.

포잉에게 너무 고맙고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됐다.

혹시라도 내가 포잉의 도움을 지나치게 당연시하게 될까 봐.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언젠가 나랑 친한 사람이 아프게 된다면 또다시 나는 포잉에게 부탁할지도 모른다.

처음 한두 번은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그때도 과연 괜찮을까?

조그맣고 약하지만 누구보다 강한 내 요정님.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포잉에 대한 여러 감정이 서로 충돌하는 동안, 포잉을 꼭 끌어안았다.

부지런히 털을 쓰다듬어주고 그 작은 이마와 내 이마를 마주 댔다.

‘포잉, 고마워….’

‘보나 마나 또 쓸데없는 생각 할 테니 말해두는데, 넌 그냥 네 할 일만 잘하면 됨. 널 돕는 게 내 일임.’

불퉁한 목소리에는 언제나처럼 나에 대한 염려가 그득했고, 날 토닥이는 솜방망이는 말랑했다.

‘우진 형한테 홍삼이라도 사줄까? 어때?’

‘인간의 체질에 따라 다르다고 하지 않았음? 당사자한테 물어보는 게 어떰?’

‘그럼 서프라이즈가 안 되잖아.’

‘서프라이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잠시간 뭉클한 마음으로 포잉과의 스킨쉽을 즐긴 나는 우진 형에게 줄 건강식품을 골랐다.

허니비 광고 때 워낙 많은 비타민제를 받은 터라 영양제는 주기 애매했다.

포잉은 언제 본 건지 피로 회복에 꿀이 좋다며 소포장 된 꿀을 추천했다.

생각난 김에 이것저것 회사로 주문을 넣은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뺨을 두드렸다.

정신 차려야 했다.

할 일은 많았고, 앞으로 갈 길은 더 멀고도 멀었으니까.

어느 정도 마음도 정신도 수습한 나는 작곡 프로그램으로 시선을 돌렸다.

택배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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