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53)화 (253/456)

253. live(8)

멈칫했던 것 치고 올라가는 길은 화기애애했다.

예전처럼 마냥 실장님이 무섭지는 않았으니까.

그간 다사다난한 우리를 위해 늘 바쁘게 오가고, 뒤치다꺼리에 고생하셨다는 걸 우리도 이제는 알았다.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애써주셨는데 외형만으로 판단하면 안 되지.

물론 내가 누구에게 생긴 걸로 뭐라고 하기에는 참 그랬다.

웃지 않으면 무서워 보이는 건 실장님 못지않게 내 얼굴도 좀 그랬으니까.

다행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예전의 내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잊지 않으려 애썼지만 꿈을 꾸고 난 이후부터는 자연스럽게 놓게 됐다.

굳이 과거의 나를 붙들고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지금 나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었으니까.

가끔은 내 몸이 내 것이 맞나 하는 이상한 괴리감이 느껴지지만 버티지 못한 정도는 아니었다.

“오늘 촬영은 어땠어? 감독님이 너희 잘한다고 늘 칭찬하던데.”

“감독님이 저희를 너무 잘 알아버린 것 같아요….”

“응? 왜?”

“저희 약점이 뭔지 너무 잘 알고 계신달까.”

“먹는 거로 조련하는 스킬을 갖고 계신 게 분명해요!”

실장님은 가는 길 내내 우리에게 최근 연습은 어떤지, 촬영은 어땠는지 넌지시 물어보셨다.

특히나 언래블 스토리 촬영팀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처음에는 멤버들 대답에 어리둥절한 눈을 하셨지만, 이내 이해하셨는지 크게 웃으셨다.

“너희가 한참 성장긴데 잘 못 먹으니까 그렇지.”

“저희가 타 팀에 비해서 되게 잘 먹는 편인데도 왜 식탐은 사라지지 않을까요.”

그렇게 잘 먹이려고 애쓰는 내게도 멤버들이 먹는 양은 까마득했다.

그나마 준이 형이나 영빈 형이 덜먹는 편이지만, 나머지 셋은… 휴.

멤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련하게 중얼거리는 내 목소리에 실장님이 어깨를 두드려주셨다.

“네가 고생이 많다.”

“네. 저 조금 고생하는 거 같아요.”

“지환아, 네가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뭐가 되냐!”

“사실을 말하더라도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 있단다.”

멤버들의 아우성은 한 귀로 들어와서 반대쪽 귀로 흘러나갔고, 그사이 자연스럽게 우리는 회의실 앞에 멈췄다.

“자, 소현 팀장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들어가자.”

“네엥….”

연습하고 숙소에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찬이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실장님 뒤를 따랐다.

연습을 빼먹을 수는 없으니 회의가 끝나고 연습도 끝나면 아마 새벽에나 숙소에 돌아가게 될 것.

“얘들아, 왔어? 촬영은 잘했고?”

“넵. 잘하고 왔어요.”

“저희는 늘 잘하고 있죠!”

“저거는 말이나 못 하면….”

언제 늘어졌냐는 듯 씩씩하게 답하는 막내들 대답에 팀장님도, 실장님도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자세한 건 내일 다시 이야기하긴 할 건데, 일단 이번 활동은 슬슬 마무리할 때 됐잖아.”

“네… 벌써 그렇게 됐네요.”

“아쉽다….”

나도 멤버들도 다음 주면 12월이라는 사실에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11월 11일 조금 급하게 컴백을 했고, 오늘까지 쉼 없이 내내 달렸다.

과분한 사랑을 받아 1위라는 것도 해봤고, 덕분에 1위 공약 라이브 방송도 했다.

예능에도 출연하고 개인 스케줄도 하고 있었고, 나는 연기에 도전해보기도 했고.

12월 8일 금요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이번 활동은 끝이 난다.

“진짜 딱 한 달 활동하는 셈이네요.”

“조금 더 활동할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인기 좀 얻었다고 질질 끄는 느낌 주는 건 별로라서.”

웃으며 말하는 팀장님의 목소리에 무언가 그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았지만 애써 캐묻지 않았다.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이라면 적절한 타이밍에 알려주실 테니까.

회사와 우리 사이에 이런 신뢰 관계가 만들어졌다는 것도 신기했다.

전생에는 전지적 솜뭉치 입장에서 회사 욕을 하는 날이 훨씬 많았는데.

전생과 비교하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달라져서 비교 자체가 어려웠지만, 지금 나는 회사에 만족했다.

“오늘 갑자기 보자고 한 건 몇 가지 너희랑 이야기할 게 생겨서 그래.”

방금까지 소소한 이야기로 웃던 우리였으나, 팀장님이 본론을 꺼내려는 듯 운을 떼자 다들 자세를 바로 했다.

“첫 번째로 축제 출연 섭외가 들어왔어.”

“진짜요?”

“저희도 행사 갈 수 있어요?”

팀장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멤버들의 들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처음에는 인지도가 없어서, 그 후에는 온갖 사건이 터져서 그간 행사에 가본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구설에 오른 그룹이다 보니 인지도가 어느 정도 붙은 다음에도 주최 측에서 꺼리는 것 같았다.

우리가 잘못한 건 아니었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으로 간사했다.

이런 일방적인 상황에조차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잘못이 없다고 해도, 우리가 무언가 빌미를 준 게 아니냐는 식의 말도 무수히 많이 들어왔다.

그런 부정적인 이야기 때문에 행사 섭외가 오는 곳들은 가격 후려치기가 심했다.

물론 회사에서 이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진 않았지만, 홍보팀 대리님이 분기탱천해서 다른 분과 이야기 하는 걸 들었다.

그래도 우리를 좋게 봐주시던 회사 분들이 무척이나 속상한 듯 말해서, 그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할 수 있었다.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같은 회사 사람들이 우리를 좋게 본다는 게 더 중요했다.

무사이 공연을 준비하던 때 냉대받던 걸 생각하면 더욱더.

팀장님은 처음부터 어정쩡한 상황에서 돈 때문에 공연 다니면 괜히 행사비만 후려치려고 한다고 말해 주셨다.

그러니 너희가 더 잘될 때까지 그런 부분에 연연하지 말라고.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급하게 돈을 벌려고 하는 것보다 더 멀리 보기로 했다.

멤버들과도 이미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눴던 부분이고.

그런 것과는 별개로 지금 이렇게 행사 이야기를 꺼냈다는 건 꽤 큰 무대인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대구랑 부산에서 각각 축제가 있는데, 축하 공연에 출연해달라고 연락이 왔어. 시에서 하는 축제라 꽤 크게 하거든.”

팀장님은 활짝 핀 얼굴로 이게 어떤 축제인지, 그리고 이 축제에서 섭외가 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주셨다.

몇 년째 이어지는 지역 축제인 만큼, 이걸 시작으로 앞으로 연락 오는 행사들을 기대할 만하다고.

다른 것보다 이번에 ‘이승 탈출’에 출연했던 덕을 보는 것 같다고 하셨다.

힘찬이는 벌써부터 무대에 설 생각에 신나는지 오늘부터 안무 연습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히죽거렸다.

여기서 더 열심히 하면 얼마 전 핼쑥했던 영빈 형 꼴이 날 것 같아 애써 그 목소리를 무시했다.

우리 막내 둘은 자기들 연습 텐션을 따라 했다가는 맏형들과 내가 파김치가 된다는 걸 자꾸 잊는 듯했다.

물론 PT 쌤도 체력을 인정하는 경환 형은 제외였다.

저 형은 우리 몰래 산삼이라도 먹고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체력이 좋았다.

문득 팀의 최연장자들과 내 체력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슬퍼졌다.

그래도 전생보다는 조금 더 잘 버티는 걸 마음의 위안으로 삼아야겠다 싶었다.

“두 번째는, 다음 앨범 준비를 이제부터 조금씩 미리 해둘 생각이니까 너희도 아이디어를 생각해달라는 거.”

올해 6월 데뷔 후 짧은 텀을 두고 앨범을 3개나 발매했던 건, 신인상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실적이 있어야 후보에라도 이름을 올려본다며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해보자고 했다.

그 때문에 이번 앨범은 비용과 일정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만들었지만, 다음 앨범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내년에나 새 앨범을 낼 테지만, 연말 연초는 부쩍 바쁠 거야. 그러니 미리미리 준비해야 해. 너희도 알지?”

바쁠 거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여러 시상식과 행사들.

그 많은 시상식 중 몇 군데나 우리를 불러줄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의미를 이해한 멤버들의 얼굴에 행사 출연 이야기 때보다 더 선명한 색이 드리워졌다.

그건 마치 오로라를 닮은 오색찬란한 빛이었다.

상을 받는 건 기대하지 않는다고 해도 한쪽에라도 우리 자리가 있었으면.

무수한 별들 사이에서 우리도 희미한 빛이라도 뿌릴 수 있기를.

누구도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그 선명한 마음들이 빛나고 있었다.

솔직히 상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다른 상들은 워낙 쟁쟁한 분들이 많아서 기대하지 않는다고 해도, 신인상은 아주 약간이지만 기대하고 있었다.

“마지막 소식은 내가 이야기할게요, 팀장님.”

들떠있는 우리를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던 실장님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 좋은 기회가 생길 것 같아. JC엔터 알지? 그쪽이랑 같이 새 프로에 들어가는 거로 이야기가 거의 됐어.”

* * *

회의가 끝나고 몰아치듯 연습까지 끝낸 우리는 연습실 바닥에 널브러져 회의 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대형 기획사인 JC엔터.

우리와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골든아워, 지난번 마주쳤던 멜트가 소속되어 있는 회사였다.

아이돌 명가로 이름 높은 회사와 방송국의 합작 프로그램에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는 이야기.

출연하면 분명히 인지도는 늘 것 같았다.

고된 춤 연습이 끝난 후라 색색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멤버들은 각자가 무언가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물끄러미 그런 멤버들을 바라보던 내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경환 형은 언제 곡을 만들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 풀린다고 우릴 쥐어 짜놓고.”

“내가 언제. 그냥 우리 멤버들한테 아이디어 좀 얻어볼까 하고 이야기를 나눈 거지.”

“그게 이야기를 나눈 거라고요? 이 형이 양심을 어디다 버리고 온 거야.”

연습실 바닥을 한 바퀴 빙그르르 돌던 찬이가 입을 삐죽거렸다.

나도 꾸준히 곡을 쓰는 중이었고, 내 컴퓨터에는 미디 작업 중인 곡들과 멜로디가 완성된 곡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저 이거다! 할 만큼 마음에 드는 곡이 없어 계속 연습 삼아 만들고 있을 뿐.

하지만 경환 형이 막힌다고 했던 곡은 평소 형이 작업하던 것보다 공을 들이는 것 같았다.

그런 곡이 잘 됐다는 건 충분히 좋은 일이니까 멤버들은 놀림 반 기쁨 반으로 형을 콕콕 찌르고 있었고.

“기분이 쫌 이상해요.”

“맞아. 나도.”

결국,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세빈이와 찬이가 바닥에서 꿈틀대다 툭 하고 엎드리며 중얼거렸다.

“왜?”

“그냥… 행사 초청도 그렇고, 큰 프로젝트에 우리 부르는 것도 그렇고요.”

“어차피 우리는 초반에 몇 화만 나오는 건데 뭐.”

“그래도요. 풍선에 바람이 자꾸 들어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해요.”

처음 스케줄이 늘었을 때는 마냥 기뻐하기만 했었다.

우리도 드디어 다른 아이돌 선배들처럼 정말로 방송에 나가는구나 하면서.

무언가 자꾸 커다란 게 턱하고 우리 앞에 놓이자, 은연중에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게 우리 것 맞아?

예전엔, 우리가 생각보다 꽤 잘되고 있는 걸 멤버들이 못 느끼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그 뒤로 많은 일을 겪으면서 맏형들은 이제 어느 정도 체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아직 우리 막내 라인은 이 모든 것들을 낯설게만 느끼는 것 같았다.

더 욕심을 내도 괜찮을 텐데 그간 있었던 일들이 아직 떨어지지 못한 딱지처럼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딱지는 억지로 떼어내면 결국 흉터가 남는다.

내가 과거를 놓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멤버들에게는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었다.

천장을 보고 누워서 숨을 고르던 준이 형이 비스듬하게 누워 둘을 바라봤다.

준이 형이 움직이자 우리 모두 자연스럽게 몸을 틀어 형을 바라봤다.

조건반사 같은 그 모습에 준이 형도 영빈 형도 부스스하게 웃었다.

“이상한 거 아냐. 우리가 그만큼 열심히 했다는 이야기야.”

“운도 여러모로 작용했지만, 우리가 준비 안 됐다면 기회도 없었을 거야.”

우리 몰래 둘이 또 여러 이야기를 나눈 건지 두 맏형은 주거니 받거니 입을 열었다.

“우리는 지금까지처럼 조심해서 열심히 하기만 하면 돼. 달라진 건 없어, 얘들아.”

“형이 얘기했었잖아. 우린 그냥 열심히 하기만 하면 돼.”

처음 1위 했던 날 저녁이 떠올랐다.

다들 신나서 어쩔 줄 몰라 하던 그 순간에도 더 먼 곳을 바라보는 듯했던 준이 형 모습이.

거기에 더해 퉁퉁 부은 눈으로 인형을 괴롭히던 막내들 모습.

지쳐 보였지만 어떤 날보다 눈이 빛났던 영빈 형, 평소보다 목소리가 한 톤 더 높았던 경환 형 모습도.

두 형님의 말을 얌전히 듣고 있던 우리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배시시 웃는 세빈이 머리를 쓰다듬어준 준이 형이 씩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집에 가자, 병아리들.”

“아, 왜 형까지 병아리라고 해요!”

“형은 꼭 아닌 것처럼 말하네!”

어색했던 공기는 거품처럼 파스스 녹아 사라졌다.

어차피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우리가 한 팀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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