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 live(7)
“우리 깽깽이 많이 먹어라.”
“아 진짜!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여!”
세빈이 입에 군고구마를 넣어주며 경환 형이 한마디 하자, 막내 눈이 뾰족해졌다.
도대체 우리 멤버들은 서로를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인가.
“몽실이 형은 군밤 먹을래요?”
“그래, 콩만 한 놈아.”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서로 저장했던 이름으로 부르며 비실비실 웃고 있었다.
“근데 최찐빵은 타격이 없었다, 진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니까.”
처음 찐빵이라고 불렀을 때는 길길이 날뛰더니 요새는 그러려니 하는 찬이.
쟤는 나중에 빵이라고 불러도 그러려니 할 것 같아서 고개를 내저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팀장 정하는 게 애매해지지 않나요?”
“비슷하게 저장하긴 했어도 똑같지 않은 이름도 있고 하니까.”
“팀 나누는 게임도 이런 식인데 본게임은 어떤 걸 할지, 나만 불안해?”
“아니, 나도 불안해.”
우리는 늘 최후의 만찬을 즐기듯 열심히 먹었다.
하지만 미션 촬영 때는 더 열심히 먹었다.
지금 먹어두지 않으면 다음 끼니는 지옥에서 먹게 될 거라는 이상한 예감.
그 때문에 먹을 수 있을 때 잘 먹어야 한다는 게 우리 모두의 다짐이었다.
“그건 그렇고 군밤 되게 오랜만이에요. 맛있다….”
“숙소에도 좀 시킬까? 고구마랑 이 군밤, 이거 약단밤인가? 그거라던데.”
고민은 잠깐이었고 먹는 건 행복했다.
경환 형, 찬이, 세빈이, 나는 미션에 대한 걱정은 뒤로 밀어 넣고 햄스터처럼 볼이 빵빵해질 만큼 즐겼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두 맏형은 이제 만사 포기한 듯 그저 웃었다.
“가끔 나는 우리 애들이 아이돌인지 그냥… 아이인지 모르겠어.”
“앞에 뭔가 다른 말이 묵음 처리된 것 같은데 기분 탓이에요?”
“아닐걸? 그게 맞을걸?”
찬이가 웬일로 날카로운 질문을 날렸지만, 준이 형은 타격이 전혀 없다는 듯 산뜻하게 답했다.
차마 방송 중에 우리보고 또라이라고 할 수 없었는지 자체 묵음처리를 시전했다.
“우리 애가 좀 모자라긴 해도 착해요. 그치, 막둥아?”
“착… 할 때도 있죠.”
손이며 입가며 고구마가 잔뜩 묻은 세빈이 손에 물티슈를 쥐여주고 입가를 털어주었다.
내 물음에 차마 자기 입으로 찬이가 착하다고 하는 게 싫었는지 우물쭈물하던 세빈이가 한숨처럼 답했다.
그렇게 또 자기들끼리 투닥거리기 시작한 그때, 감독님이 돌아왔다.
“여러분,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었나요?”
“넵. 역시 겨울엔 군고구마랑 군밤이죠.”
“가을 특집이라니까요?”
“예에… 그런 거로 할까요?”
누가 봐도 겨울인데 가을이라고 우기는 감독님의 열렬한 시선을 슬며시 피했다.
“점수 산정을 했는데 역시 맏형들이 괜히 맏형이 아니더라고요. 유사하게 적은 것들까지 점수에 포함했더니 맏형들 점수가 가장 높았어요. 그다음이 씨아이였고요.”
“준이 형이랑 히스 형은 이해되는데, 한 사람은 엄청 의외네?”
“네가 평소에 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다.”
찬이가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말을 해줘서 다행이었다.
내가 했으면 지금 경환 형한테 깔려서 버둥거리는 찬이 대신에 내가 저기 있었겠지.
“그래서 이번에는 하준과 히스가 각 팀 팀장이 될 거고, 팀은 이렇게 나눴습니다.”
감독님은 아까 우리가 저장한 이름이 적혀 있던 판넬 위에 새로운 판을 하나 더 얹었다.
[하준 팀]
C.I, 지환
[히스 팀]
힘찬, 세빈
“아, 왠지 망한 것 같아.”
팀 구성을 본 찬이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중얼거렸다.
“난 마음에 드는데?”
“전 그냥 노코멘트 할게요.”
씩 웃으며 내 어깨에 팔을 두르는 경환 형, 흐뭇하게 웃고 있는 준이 형.
왜인지 모르겠지만 또 무슨 인형 취급받는 것 같았다.
이번엔 소원 인형일까. 휴….
“히스 형, 힘내요. 형한텐 제가 있잖아요.”
“그, 그으래….”
세빈이는 영빈 형의 손을 꼭 쥐고 자신만 믿으라고 했지만, 영빈 형의 얼굴엔 희미한 그늘이 드리워졌다.
영빈 형의 고난이 두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아, 속으로 형의 무사를 빌어주었다.
아무래도 영빈 형은 세빈이랑 찬이 사이에서 살아남는 게 제일 우선인 것 같았다.
“지금부터 세 가지 게임을 진행할 겁니다. 게임을 통해 획득한 포인트로 음식을 구매할 수 있으니까 힘내주세요.”
감독님은 어떻게 하면 사람이 얄밉게 보일 수 있는지 잘 아는 게 아닐까?
음식별 가격표를 새로운 판넬을 통해 보여주시는데, 벌써부터 걱정이 됐다.
옆에서 ‘대하구이’하고 중얼거리는 경환 형 목소리가 유난히 음산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게임입니다! 주어진 풍선을 최대한 많이 지켜주세요!”
커다란 바구니가 각 주장 앞에 놓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풍선이 이렇게 싫어질 줄은 몰랐다.
“풍선에 보시면 예쁜 그림이 그려진 테이프가 붙어 있을 겁니다. 풍선이 터지지 않도록 그 테이프를 최대한 많이 떼어내는 팀이 이기는 겁니다.”
아, 나는 역시 감독님이 싫다….
* * *
우진은 죽을 것 같이 비명을 지르며 발을 동동 구르는 멤버들 모습에 피식거리고 있었다.
고무, 그것도 빵빵하게 바람이 들어가 있는 풍선에 붙은 테이프는 정말 떼기 힘들다.
터질 듯 터지지 않으면서 늘어지는 풍선 모습에 귀를 막고 도망가있는 찬이, 울 것 같은 세빈이.
무덤덤해 보이는 경환이는 손이 워낙 무딘 애라 환이가 등짝을 내려치고 있었다.
풍선 또 터트리지 말고 차라리 저기 가라고.
동생한테 혼나서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뒤에 쪼그려 앉은 모습이 꿀단지를 뺏긴 곰 같았다.
환이도 겁나는지 손을 덜덜 떨면서도 야무지게 테이프를 뜯어내고 있었다.
멤버들의 능력을 최대로 뽑아내려면 먹을 것을 상으로 걸면 된다는 걸, 감독님이 너무 잘 아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멤버들이 ‘으악!’하고 내지르는 비명과 펑! 하고 풍선이 터지는 소리가 현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편, 우진의 머리 위에 있던 포잉도 앞발로 귀를 막고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인간에 비해 청각이 예민한 종의 특성상 굉장히 시끄러웠지만, 그래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꽤 볼만했다.
계약자 놈이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괜찮은 구경거리이기도 했고.
잠시 구경하던 우진은 다시 뻣뻣해지는 다리를 주무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환의 말을 듣고 병원을 방문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저 젊은 날 운동을 포기해야 했던 사고의 후유증 정도로 생각했었다.
낯선 진단명을 듣기 전까지는.
‘강직성 척추염….’
다리가 뻣뻣한 느낌이 들기에 운동을 쉬어서 그런가 싶기도 했었다.
실제로 스트레칭을 하고 가벼운 운동을 하면 나아지기도 했으니까.
갑자기 흉통이 생겼을 때도 잠을 잘못 잤나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병원에서는 심해지기 전에 검사한 게 다행이라고 했다.
심해지면 몸을 앞뒤로 굽히는 것도 어려워지고 여러 합병증을 앓게 된다고 말해 주었다.
완치할 수 있는 병은 아니지만, 약물 요법과 운동 요법을 병행하면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을 거라고 했다.
그때부터 우진의 고민은 깊어졌다.
단순한 일상생활도 가능해야 했지만, 아이들의 매니저 일도 계속하고 싶었다.
회사에 알렸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올지도 조금은 걱정이었다.
그나마 ON 엔터는 직원의 처우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 바로 잘리진 않을 터.
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로 암담했다.
아직 초기고 충분히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 그나마 위안이었지만.
언래블 멤버들을 바라보며 흐뭇해하던 얼굴이 흐려지자, 우진의 머리 위에 있던 포잉이 폴짝 내려왔다.
자신의 계약자는 이상하게 이런 쪽으로는 감이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꽤 마음에 들었던 인간이기에 우진이 떠나는 것은 포잉으로서도 탐탁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조금 도와줄 생각이었다.
직접적으로 손을 쓰는 건 되도록 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 정도는 크게 문제 되지 않을 테니까.
뭣하면 경위서라도 한 장 써서 올리면 그만이었다.
그까짓 거 우진을 위해 한 장 써주면 된다고 생각하며 포잉은 코웃음을 쳤다.
우진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는 계약자였다.
포잉의 호불호를 떠나 이제 막 과거를 떠나보낸 지환이 우진마저 병으로 자리를 비우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계약자의 행복을 위해서라며 포잉은 자신에게 다시 한번 속삭였다.
포잉의 앞발이 조심스럽게 우진의 신발에 얹어졌고, 포근한 녹색 빛이 우진의 다리로 스며들었다.
“응?”
뻐근하고 욱신거리던 다리가 갑자기 따뜻하게 풀리는 느낌에 우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통증이 줄어들면서 따뜻한 물에 찜질이라도 한 것처럼 한껏 노곤해졌다.
어리둥절해 하는 우진을 확인한 포잉은 괜히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시 우진의 머리 위에 올라갔다.
바로 완치는 불가능했지만, 병의 진행을 늦추고 몇 번 더 고생하면 나을 수 있을 터.
계약자 놈이 들으면 또 좋아하면서 열심히 쓰다듬어주겠지.
오늘 밤이 기대되는 포잉이었다.
* * *
간신히 촬영을 끝낸 후, 우리는 오늘 부족했던 연습량을 채우기 위해 회사로 향했다.
“정말 우리 솜뭉치들이 이런 걸 좋아하는 게 맞아?”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 걸 좋아한다고?”
“그냥 우리가 망가지는 게 즐거운 거 아닐까요….”
오늘도 한바탕 혼이 쏙 빠진 멤버들은 우리 팬들이 그럴 리 없다며 중얼거렸다.
늘 우리에게 사랑스러운 말만 하고, 애틋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마주했었다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다만, 전직 솜뭉치인 나는 차마 멤버들에게 꿈 깨라는 말을 해줄 수 없어 입을 다물기로 했다.
내 아이돌의 모습이라면 대부분 사랑하지만, 그들이 엉망진창일 때 제일 즐거워하던 지인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멋있으면 멋있는 대로, 망가지면 망가지는 대로.
그 모든 게 즐겁다던 덕메들의 발언이 새삼스럽게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굳이 현실을 일깨워 줄 필요는 없겠지.
“그나저나 챌린지는 어떻게 되고 있어요?”
“아, 그거 팀장님이 안 그래도 한번 설명해준다고 하시더라.”
스트리머와의 합방은 백수 형님 한 분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른 스트리머 두 명과 차례로 함께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우리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명확했다.
자기 자신을 잃지 말자.
나 자신을 사랑하자.
우리가 그 많은 악플과 협박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처럼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이었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혐오가 넘실거렸고, 근원을 알기 힘든 증오가 흘러넘쳤다.
우리가 이유도 모르고 살해 협박을 받았던 것처럼, 이유 없이 타인의 증오를 받는 이들이 있었다.
단순한 호불호가 아니라 그저 재미를 위해 타인을 망가트리는 감정들에 지지 말자고.
세 번의 생방송을 통해 사람들에게 우리가 불렀던 ‘Pluto’의 의미를 설명했다.
못난 사람들 때문에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우리 예상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다양한 곳에서 관심을 가져줬고 많은 논의가 오가는 중이라는 우진 형의 말에 멤버들도 웃게 되었다.
“아, 진짜 다행이다. 잘될지 어떨지 걱정했는데.”
“난 걱정 안 했는데. 좋은 일이니까 다들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찬이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자 옆에서 우리 막내가 도발을 시전했다.
“뻥 치시네. 너 이 방송 때문에 백수 형님이 더 욕먹으면 어떡하냐고 엄청 쫄았었잖아!”
“내, 내가 언제요!”
그렇게 평소처럼 복작거리던 우리가 회사에 도착하자, 정윤 실장님이 우리 앞에 서 있었다.
“실장님…?”
“왜 여기 나와 계세요?”
“너희 기다렸지.”
“넹?”
“저희를 왜요?”
잘못했던 게 있는지 재빨리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딱히 걸리는 건 없었다.
게다가 혼내러 나오셨다고 보기에는 실장님의 표정이 밝아서 더더욱 알 수 없었다.
잔뜩 쫄아버린 찬이와 세빈이가 엉거주춤 차에서 내리고 맏형들이 제일 앞에 섰다.
“일단 올라가자. 올라가서 제대로 이야기해줄게.”
“넵.”
우진 형을 힐끔 바라봤지만, 평소처럼 푸근하게 웃으며 손짓했기에 도망칠 수도 없었다.
잘못한 건 없지만 이상하게 실장님 앞에만 서면 기가 죽는 우리는 얌전히 종종걸음으로 그 뒤를 따라갔다.